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35화 (36/91)

35.

“어! 누나, 오랜만이네요.”

이른 아침 등굣길.

성민은 느긋한 걸음으로 등굣길에 오르고 있었다.

여기저기, 늘 봐오던 풍경들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주변 곳곳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 곳으로 집중된다.

그곳은 교문이었다.

다친 발로 인해 한동안 선도 일을 쉬었던 도이가(그래봐야 일주일이지만)

오랜만에 교문을 지키고 있었다.

“일찍 오네?”

“뭐, 그런가요?”

싱긋 웃는 두 사람 사이에 바람이 지나간다.

그 바람이 장난질이라도 치듯 성민의 앞머리를 자연스레 엉켜 놓고 가면

그 다음을 도이가 이어갔다.

너무나 자연스레 뻗어간 손이 녀석의 앞머리를 가지런히 정리 해 준다.

“앗..... 난.. 그냥 머리가.....”

그러다가 순간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뻘쭘함을 느낀 도이의 손이

다급하게 거둬지면, 성민이 느긋한 웃음을 흘린다.

활짝 핀 웃음이 아닌 미세한 웃음이었지만 보기 좋은 웃음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녀석에게선 전혀, 당황스러움이나 민망함 따위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누나,”

“어, 어?”

“마저 해 주세요.”

“응?”

“이거.”

다소 어리둥절한 얼굴로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보는 도이를 보며

제 손으로 제 앞머리를 가리키는 성민.

순간 도이의 양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고마워요, 누나.”

싱긋, 부드럽게 감긴 한쪽 눈을 보며 짓는 수줍은 미소가 너무나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성민에게.

참 이상하네. 후훗.

“어, 얼른 들어가 봐.”

“이따 문자 보낼게요. 답장 줄 거죠?”

도이는 가볍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좋아요.”

휘적휘적,

큰 키만큼이나 넓은 보폭으로 금세 자리를 뜨는 성민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딩동~ 울리는 문자 소리에 깜짝 놀란다.

이런, 내가 진동으로 해 놓는 걸 깜박 했군!

서둘러 에티켓 모드로 바꿔 놓은 도이는 그제야 문자를 확인한다.

[누나, 나 너무 좋아하는 거 아녜요?

나 어디 안 가요, 그러니까 나 그만 보고, 복장 불량한 애들이나 잡아요. ^_^]

발신은 다름 아닌 성민이었다.

헉!! 이것들! 또, 언제 번호를 주고받은 거야? -_-;

[참, 오늘 토요일인데 오후에 약속 있어요?]

도이는 답문을 보내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 사이 또 하나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도이의 시선이 여전히 성민의 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때 마침 성민이 등을 돌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했다.

도이는 답문대신 고개를 살짝 내 저었다. 좌, 우로.

딩동~

[그럼, 오늘 저랑 데이트 할래요?]

어김없이 날아온 문자를 보고, 이번에는 친절히도 답문을 작성했다.

[좋아.]

학생 주임 선생님이 자리에 안 계시기에 망정이지,

오랜만에 선도에 서는 사람치고는 무척이나 불성실했다.

물론, 그것은 도이뿐만이 아니었다.

어째 이 학교 선도부는 하나같이 불성실 하다.

등교하는 친구를 잡고 수다를 떠는가 하면, 도이처럼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으니,

과연 이것을 천만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_=

.

.

“주말이라 그런가, 사람이 많네요?”

방과 후, 교문에서 만난 성민과 도이는 나란히 놀이공원을 찾았다.

내일이면 유민과도 또 올 텐데,

가고 싶은 곳이 있냐며 묻는 성민에게 굳이 놀이공원을 말했던 도이.

날은 덥고, 덩달아 바람 한점 불지 않으니

맥없이 지치기만 할 텐데도 무척이나 생기발랄해 보인다.

“우리 범퍼 카 탈래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어휴~ 난 정말이지 기다리는 건 질색이라고.

“하지만 다른데도 그 정도는 기다려야 돼요.”

도이는 주변을 한번 빙~ 둘러보았다.

성민의 말 대로 대부분이 그 만큼을, 혹은 그 이상의 긴 줄을 늘어서 있었다.

“.....그러네.”

“타요.”

“그래.”

드르륵.....

너무나 다정하게 두 손을 맞잡고 범퍼카를 향해 가는데,

주머니 속에 핸드폰이 열심히 춤을 추기 시작한다.

왜 인지, 별로 받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도이는 진동을 모른 척 했지만 그 진동은 참으로 끈질기게도 쉽게 멈추지 않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빼 들었는데,

[민이오빠]

액정위에 다정하게 새겨진 이름에 멈칫 하고 말았다.

“누구 전환데 안 받아요?”

“어? 아, 아냐!! 아무것도!!”

빼 꼼이, 고개를 내밀며 발신자를 보고자 하는 성민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너무나 다급하게 배터리를 분리 시켰다.

휴우..... 큰일 날 뻔 했네.

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런 도이를 성민이 곱게 볼 이유는 없었다.

이상했다. 너무나 이상했다.

그 누가 봐도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이가 보여주는 모든 행동들이.

하지만 그 보다 더 이상한건, 기분이 나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행동이 좋은 것만 같은 이 기분.

뭐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이 기분.

성민은 그 묘한 감정에 어색함을 느꼈다.

도이는 황급히 배터리를 분리 시켰지만, 사실,

그 짧은 시간 성민은 발신자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민이오빠’라고 뜨던 그 네 글자를.

“아~ 덥다. 누나,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범퍼 카 안 타고?”

“지금은 범퍼 카 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좋은데요?”

“그럼 그렇게 해.”

“....천상여자네.”

“응?”

“아니, 아녜요. 조금만 기다려요, 슝~ 하고 날아갔다 올게요!!”

“…….”

“참! 무슨 아이스크림 좋아해요?”

“딸기....”

“ok!”

재빠르게 뛰어가는 성민의 모습을 보면서 도이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천상여자....?

훗. 성민아, 네가 아직 나의 실체를 모르는 구나! -_-;

하긴,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나의 실체를 꿰뚫고 있음 내가 곤란하기는 하지. 조금 많이.

그나저나.....

성민이 멀어짐과 동시에 도이의 얼굴에 자리 잡았던 미소가 사라졌다.

대신에 지독히도 나지막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왜 일까....... 왜... 그랬을까?

이미 분리가 된 배터리를 보면서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한 행동에 양 미간이 좁혀진다.

그렇지만 절대로! 유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참으로 못되고, 또 못된 짓인 걸 알지만 그래도 미안하지는 않았다.

오빠, 나 정말 못됐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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