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34화 (35/91)

34.

“이건 배신이야! 배신!”

“시끄러!”

“아~ 정말. 이 여자가 이 따구로 뒤통수를 다 때리네?”

다짜고짜 도이의 뒤를 쫓아, 아리따운(?) 뒷 자태를 찾았다.

그러고는 포착 된 순간, 획~ 낚아채듯 팔을 끌고는 학교 뒤뜰로....

가고 싶었지만 비가 오는 관계로 목적지를 바꿨다.

사람의 이동이 거의 없는 구석진 계단으로.

“진짜 이러면 안 돼지. 우리 사이에!!”

누가 봐도 반 억지로 맨 꼭대기 층 계단까지 와서는 버럭 소리부터 내지른다.

어딘가 모르게, 무척이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의 민환을 보면서도

도이는 별다른 동요 없이 양팔을 괴고는 태평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왜 인지, 도이의 그 태평함에 민환은 더욱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내가 뭘? 내가 뭘 어쨌는데?”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

“어.”

“히야~ 진짜 뻔뻔하다. 뻔뻔해!”

원래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고....

민환은 자신이 소유한 뻔뻔함은 당연하다는 듯 굴면서도

도이의 뻔뻔함에는 무언가 잘못 되도 크게 잘못된 것 마냥,

큰 사단이라도 난 것 마냥 발을 동동 굴렀다.

“씨! 18살 고2이가 벌써부터 결혼 문제를 운운한다는 게

정삭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생각 해?”

“....알았냐?”

“알았냐?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왜 그렇게 날뛰냐? 축하는 못 해줄망정.”

“왜에? 지금 왜냐고 물었어? 넌 그런 질문이 참도 잘도 나온다?”

민환은 누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설마하니 성민의 말처럼 정말, 그 날인 것일까?

하지만 민환은... 그 누가 뭐래도....

..엄연히... 이 시대의... 지나치게도 건강한 사내아이 인 것을..... -_-;;;

“...후훗. 야, 도민환. 솔직히 말해봐.

너, 내가 유민오빠랑 결혼 얘기 주고받으니까 맘이 심난하지?”

“어떤 뜻으로 묻는 거야?”

“그건 네가 더 잘 아는 문제고.”

“헹~ 옛말에 누가 그러더라. 착각은 자유라고.

쯧쯧~ 이 아줌마도 이제 유통기한이 다 됐나보네.”

음흉한 눈길과 묘하게 빈정대는 어투에 민환은 콧방귀를 꼈다.

하지만 도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어 말 했다.

“5분전까지만 해도 내가 단칼에 널 졸도 시킬 빅뉴스를 가져온다며 씩씩거렸는데,

그 뉴스가 생각보다 빨라서 내가 이렇게 태평하니까 무지하게 약 오르지, 너?”

씨익~ 웃으며 정곡을 찌른 도이의 말에 민환은

몰래 숨겨 놓았던 맛있는 사탕을 혼자 먹다가 들킨 것 마냥 화들짝 놀란다.

(별로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지만)

덤으로 얼굴도 살짝 붉어졌다.

“뭐래, 이 아줌마가!”

“근데 그건 네가 둔해서 몰랐던 거지, 빨랐던 것도 아니야.

물론 내가 말을 안 한 것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너와 만날 시간이 없었던 거고.

그리고 그 얘기가 나온 건 이미 일주일도 더 됐어.”

“뭐어?! 근데 왜 말 안했어?!”

“만날 시간이 없었잖아.”

“전화는 뒀다 국 끓여먹냐?”

“어머~ 몰랐구나? 벌써 끄려먹었는데. 꿀꺽!”

씩씩거리는 민환을 보면서 도이는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씨! 빈정대지 좀 마!”

“후훗. 이 쏠쏠한 재미를 내가 또 모른 척 할 수는 없지 않겠어?”

“아 진짜, 이걸 확!”

욱~ 하는 심정에 무의식중에서 오른손이 살짝 쿵, 움직였지만 이내 허무하게 내려간다.

까딱하다간 한대 쳤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도이는

여전히 고운 미간에 한가득 웃음을 짓고 있었다.

“웃음이 나오냐?”

“응. 근데.... 너, 오늘 왜 그래? 진짜 이상한 거 알지?”

“휴우~ 이건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야. 이 바보야!”

“뭐가 당연한 건데?”

“신도이가 이 도민환한테 어디 그냥 누나냐?”

“…….”

“넌... 씹... 그러니까 넌....

도.... 아, 그래! 도민주 대신이잖아.

근데... 도민주 대신인데... 그냥 누나...일 순 없잖아!!”

살짝, 민환의 눈가에 슬픔이 어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주 잠시 뿐이었다.

민환은 곧 밝아졌고 평소의 모습을 그대로 보였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오해 같은 건 하지 마.

그냥 그간 내가 알아온 누나가 어쩜 이리 남자 보는 눈이 없을까 싶어서 그럴 뿐이라고.”

“…….”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지천에 널리고 널린 게 남잔데...

근데 왜 하필이면 그 놈이냐? 그렇게 남자가 없냐?

너, 남자가 궁하냐? 내가 괜찮은 놈을 좀 알아봐 줄까?”

민환은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도 수차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참! 설마 벌써 결정 한 건 아니지? 그렇지?”

“…….”

“아씹, 꿀 먹은 벙어리냐? 왜 말이 없어?”

“…….”

“진짜, 하지 마라. 응? 하지 마라, 누나야. 내가 이렇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께.”

“…….”

정말이지 민환은 두 손바닥을 맞대고 싹싹 빌고 있었다. 하지만 도이는.....

“그래... 난 언제나 너에게 있어서 민주 대신이었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그래... 그랬어.....”

아무런 힘이 없는 웅얼거림을,

그 소리조차 희미하게 들렸기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 할 수 없는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 순간, 민환은 도이의 말을 모두 알아들은 건 아니었지만

잠시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고,

도이는 민환의 그 손이 무색해지는 말을 내뱉고는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그러지 마. 이미 내 결심은 굳었으니까.

나, 유민오빠랑 결혼할 거야.

물론, 지금은 내가 학생이니까 결혼까지는 아니야.

다만 그 전 절차를 밟는 거지.

곧, 약혼식 날자가 잡힐 것 같다.

축하 해 줄 맘 없다면 굳이 초대하지는 않을게.”

“…….”

“참, 그리고....

네가 왜 그렇게 유민오빠를 싫어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는 둘도 없는 사람이야.

자상하고 따뜻하고, 누구보다 날 위해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

“너에게는 나란 존재가 그냥 누군가의 대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만, 그 사람에게는 전부 일 수도 있다고.

난 유민오빠에게 그런 존재라고.... 알겠니?

암튼, 내 결심은 이미 굳혔으니까 축하 해 줄 수 없다면 방해는 하지 마....

적어도 방해는....”

도이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뻥-

도이의 모습이 곧 사라지자 계단의 난간을 향해 사나운 발길질을 퍼 붓는 민환은,

차마 멀어져가는 도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대로 보내선 안 될 것 같고,

자신의 생각 없는 말로 인해 도이의 기분이 무척이나 상했을 거란 걸

어림짐작 하는 바이나,

완벽하지 못한 웅얼거림이 자꾸만 귓가에 어려 차마 따라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홀로 남아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착잡함을 느낀다.

평소에는 그리 잘 피워대지도 않던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

.

오전 내내 내리던 비는 개였다.

어두침침하던 먹구름은 모두 물러갔고

솜사탕 같이 부드러운 구름들이 둥실둥실 떠 어디론가 열심히 이동 중이었다.

오늘도 역시나 유민이 마중 나와 있었다.

덕분에 여지없이 편안한 귀가를 할 수 있었다.

허나, 다른 날과는 달리 곧장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

도이는 반지하의 계단을 밟아 내려가기 전, 유민을 돌려 세운다.

“있잖아 오빠....”

“응?”

“있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아마도 약혼식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도이는 왜인지, 왜인지.... 쉽게 말을 하진 못했다.

민환의 앞에선 너무나 단호하게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든 결정을 내려 마음을 굳혔던 것도 같지만

그래도 막상 유민을 앞에 세워두니 어려운 모양이다.

“무슨 말인데 그렇게 어렵게 해?”

“후우.... 아니야. 됐어 오빠.”

“....무슨 일 있었니?”

“아냐, 그런 거 아냐. 얼른 올라가. 나도 들어갈게.”

딸칵, 도망을 치듯 서둘러 현관을 열고 들어온 도이는 다급하게 문부터 걸어 잠갔다.

휴우..... 뭐가 이렇게 어려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