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32화 (33/91)

32.

추적추적, 아침에 내리던 비는 점심시간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극히 소량의 비가 종일 내리는 터라 오히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보다 더 끈끈했다.

허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비가 온다고 다소 기분이 울적하기로서니 찾아온 점심시간을 마다할 수는 없다.

해서 도이와 다희는 나란히 급식소를 찾았다.

언제부턴가 습관이 되어 버린 행동중의 하나.

그 둘은 무의식중에서도 어김없이 그들의 지정석이라도 되는 양,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우엉~ 날도 우울한데 반찬까지 날 우울하게 만드네.”

“왜? 맛만 좋구만.”

“좋긴 뭐가 좋아? 이 비린내 풀풀 나는 생선 튀김이 좋아?”

아주 죽을상을 쓰는구만. 저런 남자에 환장한 뇬 같으니라고. 쯧쯧.

“......등 푸른 생선만큼 사람한테 좋은 게 없다더라.”

뭐가 그리 불만인지 하루 종일 투덜투덜 거리는 다희의 행동을 보며..

도이는 잠시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그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 익지도 않은 오이지가 좋아? 앙?!”

“…….”

“그리고 이, 방구만 뿡뿡 나오는 보리밥이 좋아? 앙?!”

맛있게 급식을 먹는 도이와 그에 반해 한입도 먹지 않고 깨작이는 다희.

아니, 정정하겠다.

깨작임과 동시에 반찬 투정하는 세 살짜리 어린아이라 함이 더 잘 어울려 보인다.

그렇듯, 두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대조적이다.

“아, 그래. 넌 그 좋은 보리밥 실컷 먹고 생선 비린내 나는 방귀나 뿡뿡 껴라. 쳇.”

“야!! 먹기 싫음 차라리 먹질 말던가, 왜 죄 없는 음식을 깨작이냐?”

버럭! 그러다 결국은 폭발해 버렸다.

좋게 넘어가려고 해도 좋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뭐든지 꼬투리만 잡으려고 하는 다희의 행동에 슬며시 짜증이 밀려왔다.

“.....인정머리라고는 쥐뿔도 없는 친구뇬 같으니라고.”

“그러는 지는 퍽이나 인정머리가 넘쳐 줄줄 흐르는 줄 알아요.”

“그나저나 넌 참 좋겠구나.

이렇게 날이 우울해도 네 마음을 들뜨게 해 주는 낭군님이 계시니까 말이야. 피휴~”

길게 늘어지는 한탄 섞인 푸념에 도이는

잔뜩 찌푸렸던 인상을 펴고는 쓴 웃음을 짓는다.

그 순간, 왜 쓴웃음을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낭군님은 무슨.....”

“근데 도대체 난 이게 뭐냐고, 우어~”

다희의 푸념은 계속되었다.

“뭐, 그 정도면 백점....은 아니더라도 99점 정도는 줄 수 있잖냐?”

“점수가 꽤 후한데? 내 눈엔 잘 줘야 80정돈데.....”

“네가 짠 거야.”

“피식.... 그러는 네 남자친구의 점수는 대체 얼마나 되는데?”

“음..... 70점?”

“에게? 고작?”

“고작은 무슨, 그것도 후하게 준거라고!”

“남의 남자 친구한테는 후하면서 왜 이렇게 짜냐?”

“아~~ 열 받잖아!!”

다희는 도이에게 핀잔을 받은 후로는 식판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반면 도이는 여전히 맛있는 식사를 즐기고 이었다.

“남자 친구가 성적도 관리 해 주고. 좋지 뭘 그러냐?”

“넌, 유민오빠가 네 말이라면 그저 끔벅 죽으니까 그런 태평한 소리가 나오는 거라고.”

“끔벅 죽긴 뭘 죽는다고.”

“우어~ 몰라~ 몰라~ 암튼 난 울 오빠 얼굴 못 볼 걱정에 벌써부터 눈앞이 깜깜하다고.”

다희는 칭얼거리듯 말 했다.

그리고 그 때, 이 두 사람이 습관처럼 이 자리를 찾듯,

역시나 버릇처럼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민환과 성민이었다.

어느새 식판을 들고 가까워진 그들은 그 짧은 거리를 오면서도 티격태격 하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전보다 훨씬 좋아 진 모양이다.

“애들도 아니고, 밥 한 끼 먹으면서 뭘 그리 궁시렁 거려요?”

“궁시렁이 아니라, 투덜이야.”

“아, 그런가?”

“후훗.”

역시나, 조금 더 정확한 표현력을 구사해주는(?) 성민의 행동과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민환의 행동.

도이와 다희가 아주 잠시 동안 벙진 표정으로 둘을 올려다보았다.

그에 반해 민환은 넉살스런 웃음을 흘린다.

“애들도 아니면서 네 얼굴은 도대체 왜 그 난리냐?”

도이가, 정확히 민환의 왼쪽 눈 아래 붙어진 반찬 고를 보면서 묻는다.

그 상처는 분명, 일주일 전 나태민과의 마찰로 인한 상처가 분명하다.

입가가 찢어 졌던 상처는 말끔하게 나았는지 평상시의 얼굴 그대로였지만,

눈 밑의 상처는 아직까지 새 살이 솔솔~ 돋아나지 못했나 보다.

“내 얼굴이 왜요?”

능청을 부리며 모른 척 시치미를 떼는 민환의 행동도,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저것이 대체 무슨 상처일까....

궁금해 하는 도이도, 조금 수상쩍다.

설마하니 요 녀석, 일주일동안 도이를 피해 다니기라도 한 것일까?

“또 어디 가서 시비 걸다 얻어맞았구나?”

“아~ 누나! 도대체 사나이 도민환을 뭐로 보고.”

“.....심심풀이 땅콩.”

“크헉~!!”

“인간 샌드백은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서 말이지.

왜? 마음에 안 들어? 그럼 그냥 인간 샌드백이라고 해 줄까?”

“푸훗.”

얄잘없는 도이의 태도에 민환이 한껏 미간을 좁힐라치면,

그 곁에서 때 아닌 볼거리에 재미를 즐기는 다희와 성민의 얼굴엔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날씨와는 아주 상반되게 맑은 웃음꽃이.

“일주 일만에 만나서 해 줄 말이 고작 그것 밖에 없어요?”

“응.”

“하여간, 재미없고 무드 없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투덜거리면서도 이제야 들고 있던 식판을 내려놓고는 자리에 앉는다.

“이게 얼마나 영예로운 영광의 흔적인 줄 알아요?”

민환은 눈에 보이는 뻔한 거짓말을 아주 뻔뻔한 얼굴로 지껄였다.

“영광은 개뿔.”

“아~ 정말. 뭘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이 상처가 뭐냐면 말이지~

내가 얼마 전에 어둑어둑 한 밤길을 걸어가는 데 말이야.”

“.....무슨 영화 찍냐? 아님, 시나리오 짜냐?”

“아, 누나!!”

“혹시 그 다음은 이런 내용 아니냐?

어떤 가녀린 여자가 치한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사나이 도민환, 정의의 사도로써 그 곳을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녀린 여인을 구하기 위해 악당의 소굴로 몸을 던졌다.

때 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면....

그 여자는 눈물이 젖은 얼굴로 남자를 응시하고, 치한들은 그 남자의 주위를 빙 둘러싼다.

그렇게 시작되는 피 비린내 나는 혈투.

그 숨 막히는 접전 끝에서 영예로운 영광의 상처와 함께 그녀를 구한다.

그리고 그는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오우~ 바로 그거지, 그거야!! 이야~ 이제 누나도 귀신이 다 됐구나?”

민환의 연기는 실로 수준급이었다.

조금 더 노력하고 공부해서 브로드웨이로 진출 한다 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쿨럭!

“내가 너를 하루 이틀 봐온 것도 아닌데

그 뻔한 레퍼토리 하나 알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어야지.”

“잘나가다가 어째 시비조로 들린다?”

“시비조가 아니라 시비다, 이 놈아!”

“아, 정말! 나랑 전생에 원수라도 졌냐? 무슨 여자가 말끝마다 시비야, 시비가!!”

우걱우걱, 꿩 대신 닭이라고...

아무 잘 못 없는 음식에다가 화풀이라도 하는 듯 민환은 게걸스럽게 밥을 퍼 넣었다.

그리고는 입안 가득 밥이 차 있는 상태에서

타액이 묻은 밥알이 누구의 식판위로 뛰어가던 말든 개의치 않고 말 한다.

“그래가지고 어디 시집이나 가겠어?”

버럭 외치는 민환의 행동에 잠시 도이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반면에 다희는 딱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성민은 자신의 식판위로 튀어 온 밥풀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씨빠빠. 저 썩을 놈!

“.....그건 네가 걱정 할 사항은 아니라고 보는데?”

“어떤 남잔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에 누나랑 결혼하게 될 남자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걱정이야!”

민환은 테이블 중앙에 있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물과 함께 씹지도 않은 밥을 꼴깍 넘기고는 다소 힘에 겨웠는지 콜록콜록 헛기침도 했다.

“민환아....”

“왜, 생각 해 보니까 누나도 걱정 되지? 누나 시집 못 갈까봐 걱정되지?”

“....그 말.... 유민오빠한테 직접 해 보는 건 어때?”

착잡한 듯, 못내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도이의 말에 민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여기서 그 기생오라비가 왜 튀어 나와?”

“네가 걱정 된다며?”

“그런데 왜 그 놈이 튀어 나오냐고?”

민환은 유민의 이름이 거론 된 사실을 무척이나 불쾌해 했다.

“왜? 그 놈이 누나 데리고 살기라도 하겠대?”

“…….”

“뭐야? 왜 말을 안 해?”

“....응.”

“응? 뭐가 응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나... 대신 모진 말 좀 한번 해 줘봐....

....열여덟에 결혼은... 무슨... 결혼이냐고. 난.... 죽어도 못 하겠으니까.”

“…….”

잠시 주변이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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