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주말에 약속 있어?”
틀어진 도이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더욱 신경을 쓴 것 같다.
유민은 부드럽게 도이를 이끌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아직 특별한 약속은 없어. 왜?”
“그럼 우리 놀이동산 갈까? 모처럼 말이야.”
“놀이동산? 나야 좋지만, 갑자기 거긴 왜?”
“왜긴? 너 깁스 푸른 기념으로 가자는 거지.
고3때 소풍으로 가보고 아직 한번도 못 갔기도 하고.”
씽긋, 윙크를 하는 유민의 얼굴에 깊은 보조개가 페인다.
“다음주에 나 시험인데.”
“아... 그래? 그럼 시험 끝나고 갈까?”
“음... 아니야, 주말에 가...”
유민은 잠시 당황스러워했다.
시험 기간에 놀이공원 행을 마다않는 저 대범함!
말을 잘못 꺼냈다는 뒤 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유민으로써는 도무지 도이의 고집을 감당하지 못하니.....
어차피 질 거 여기서 백기를 들어야 옳은 일일까?
잠시 고민 아닌 고민도 해 본다. -_-;
“시험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야아~”
“어디로 갈까? 오빠?”
“시험 끝나고 가자. 그래도 늦진 않잖아.”
“싫어.”
“....어. 그래.”
하지만, 아무래도 남자친구 된 도리로써,
여자친구의 성적에 지장이 생길 일이 썩 내키지가 않아
살며시 설득을 해 볼 마음을 먹지만....
너무나 단호한 도이의 말에, 단박에 기권 패를 날린다.
“장소는 아무데나, 오빠가 가기 편한 대로 정해.”
“아, 넵!”
유민의 유쾌한 대답에 살며시 웃는 도이.
작게 썬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어가며 두 사람은 계속해서 이야기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도이의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소화가 되지 않아 속이 거북한 듯,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폈는데,
다행이도 유민은 보지 못했다.
“오빠, 도시락 준비할까?”
유민 몰래 끄윽~ 트림을 살포시 해 주고는, -_-;;;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이야기 하는 도이.
하지만 더 이상 스테이크는 입가에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에 샐러드와 그 밖의 음식들을 먹었다.
아아~ 얼큰한 선지 해장국이 먹고 싶다. -_-;;
“번거롭게 뭐 하러 그래?”
“그냥. 음식값도 비쌀 텐데, 매일 사먹는 것만 할 순 없잖아.
그리고 그런덴 별로 먹을 것도 없고.”
“......그러고 보니 한동안은 도이가 해 주는 밥도 못 먹었네?”
유민이 능청스런 웃음을 짓는다.
그 웃음 때문일까? 덩달아 마지막 말의 뉘앙스가 쪼금 많이 묘하게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오빠, 그러니까 꼭 능글맞은 구렁이 같아.”
도이가 약간의 반색을 하며 말 했지만,
“뭐, 나쁘진 않은데?”
유민은 아무래도 좋았다.
“칭찬은 아니었는데.....”
“아무렴 어때? 솔직히 말해서 그간 너한테 좋은 소리 듣고 산 것도 아니잖아. 후훗.”
“엉?!”
“왜, 내 말에 부정이라도 할 셈이야? 그렇겐 못할 텐데. 후훗.”
“오빠!!”
심드렁함 속에 숨겨진 웃음에 도이가 발끈했다.
“하핫. 너 얼굴이 홍당무 됐어.”
“너, 너무 노골적으로 솔직한 거 아냐?”
“그럼, 좋은 거 아냐?”
“가끔은 그냥 곱게 좀 넘어가 주는 센스가 없잖아! 센스가!!”
“피식.”
민망함으로 새빨갛게 문든 도이의 얼굴을 보며 마냥 웃음을 짓는 유민.
좀처럼 붉어진 얼굴이 가라앉을 줄 모르는 도이.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
.
“아~ 미치겠다.”
“얘가 오늘따라 정말 왜 이러실까?”
“아~ 미치겠다. 정말.”
“날이 궂다고 날궂이 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래?”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아침부터 비가 멈추지 않는다.
어제는 잠시 소나기가 지나갔다지만,
오늘은 종일 이슬비 내리듯 촉촉이 온 땅을 적시는 비를 보며
무척이나 심난한 얼굴을 하고 있는 다희.
딱히, 이렇다는 말도 없이 연신 한숨만 푹푹 내쉬는 모습에 덩달아 도이도 한숨이 나온다.
“도이야, 대체 이 망할 시험제도는 언제쯤이나 없어질까?”
“뜬금없이 그건 무슨 소리야?”
무슨, 고독한 연인이라도 되는 양,
다희는 지긋한 눈빛으로 턱을 괴고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본 채로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난, 정말이지 이 나라의 교육제도가 넘 맘에 안 든다고.”
“언제는 네가 마음에 든 거나 있었어?”
“야!! 아우~~ 저것도 친구라고, 정말!”
너무나더 정직한 도이의 말에, 다희의 주먹이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오늘따라 왜 이리 저기압이실까, 정말?”
“아씨~ 몰라.”
“설마 그날이야?”
“....씨.... 도민환 닮아 가냐?”
“여기서 민환이가 왜 나와?”
“민환이가 말끝마다 그날이냐고 묻잖아. 조금만 짜증 부려도.”
“후훗.”
다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철푸덕, 책상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가뜩이나 하루 종일 내리는 비가 이 내 마음을 심난하게 만드는 것도 짜증스러운데,
너는 제발 좀 자재 해 달란 말이지.”
“…….”
“아~ 그나저나, 이놈의 시험. 정말 싫다.
왜, 한 학기에 시험은 두 번씩이나 보고 난리람?”
“너, 기말고사 때문에 아침부터 죽을상인거냐?”
“후우....”
한숨을 내쉬는 다희의 행동을 보며, 역시, 그 이유였구나.... 치부해버리는 도이...
어쩌겠는가?
기말고사라는 놈이 원채... 아무리 싫다해도 피해 갈 수는 없는 것이니.....
“아씨, 오빠가 나 시험 끝날 때 까지 공부하라고 만나지 말자잖아.”
“....바람 난 건... 아니고?”
“야!!”
“깜짝이야.”
“우리 오빠를 뭐로 보고!!”
가벼운 말장난에도
불끈하는 다희를 보며 도이가 설레설레 고개를 내 저었다.
“그럼 그렇지. 결국 이유는 거기에 있었구만?”
“아~ 그렇게 남 얘기 하듯이 하지 좀 마!”
“어유~ 계집애, 성질머리 하고는. 근데 어떡하지?”
“뭘?”
“난 이번 주말에 오빠랑 놀이공원 놀러가기로 했는데?”
“뭐어?!”
열흘 남짓(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남친을 못 보는데서 오는 착잡함에 한숨만 내쉬는 다희를 얄궂게도 놀려먹는 도이.
혓바닥을 쑥~ 내밀며 쪼르르~ 복도로 달려 나간다.
“메~~롱~~ 후훗.”
“야! 신도이!! 이게 누구 염장 지를 일 있나? 네가 그러고도 내 친구야?! 앙?!”
“메~~롱~~”
“야!! 너 거기 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