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겨, 경아야!”
“누, 누구세요? 왜, 왜이래요?”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보이는 경아.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
경아는 거세게 저항을 해 보지만 자신을 않은 민환의 힘은 도무지 감당되지 않았다.
해서 아무에게나 도움을 청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큰 비명을 지르려고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조용-
길어야 1~2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스쳐 지나간 민환의 눈동자.
슬픔이 가득 담긴 그 눈동자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무언가 터지려는 경아의 입을 꾹 다물게 만들었다.
“.....미안.”
그리고 이내, 아무리 발버둥 쳐대도 풀릴 줄 모르던 손이 거짓말처럼 스르르....
힘없이 풀려나갔다.
어쩐지 공허해 보인다. 민환도, 경아도......
...그래.... 역시 넌 민주가 아니야. 민주일 수가 없었던 거야.
봐봐....
아무리 박태영이... 하성택이... 하물며 신도이가......
일말의 의심조차 없이 도민주라고 말해도....
이렇게 냉정하게...
모든 게 닮을 수가 없다는 걸 증명해주잖아.........?
너에게서 느껴지는 향긋한 라벤더의 향.....
....기억 할 수 있어...
민주에게선 라벤더 향이 아닌 상큼한 레몬향이 묻어있었다는 걸..
..톡 쏘는 상큼함이 있었다는 걸.... 난 절대 잊을 수가 없다고.....
“...미안.....”
아주 짤막한 한 마디의 말이 들려왔다.
경아는 왜 인지, 넋이라도 나간 듯 멍한 얼굴로 민환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저 자그마하게 입을 벌린 채로 서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한 연유였다.
“…….”
묵묵히 뒤돌아서는 민환의 눈엔 아무런 초점이 없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쓸쓸함에...
경아는 무의식중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레 손을 뻗었다.
그 손이 민환의 손목을 잡았고... 발을 잡아 세웠다.....
“저......”
“미안하다....”
자꾸만 되풀이 되는 같은 말, 같은 느낌의 아련한 그 한마디.
발은 그 자리에 멈춰 섰지만 경아를 돌아보지 않았다.
태영의 말처럼 섬세한 부분부터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민주와... 너무나도 닮은 경아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
“…….”
“그러니까.....”
경아는 몇 차례 말을 얼버무렸다.
무언가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선 듯,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마력으로 인해 머리가 멍해지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렇게 잠시였지만...
그 짧게 뜸들인 시간으로 인해..
아주 가까운 미래에... 두 사람은....
지독히도 슬픈 눈물을 흘리게 될 거라는 걸....
그땐 아무도 알지 못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닥을 뒹굴면....
꺅하는 비명소리가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그 후에는,
“뭐하는 새끼야.”
무겁도록 낮은 음성이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
더욱 차고 섬뜩하게 들리는 음성으로 인해 주변이 고요해졌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잠시 들리는 듯싶었지만 그도 곧 끊어졌다.
너무나 강렬해 보이는 밝은 노란색의 스포츠머리.
햇빛에 살짝 그을려 보기 좋게 탄 피부.
대체적으로 마른 듯 보이지만 어찌 보면 조금은 징그러워 보이기까지 한,
대단한 근육을 소유하고 있는 남자.
검은색의 해골모양이 새겨진 나시티를 지나 울퉁불퉁한 팔뚝에 당당히 새겨진 문신.
딱 보이는 강렬한 첫인상만으로도 충분히,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철없는 어린 아이라 해도 그의 차가운 인상에 경계를 먼저 했을 것이며,
아무리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라 해도 그의 인상착의에 경계부터 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바로, 종로구 일대를 주름잡는 폭주족 라이더의 총장 나태민이다.
“오, 오빠!!”
태민의 등장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하는 경아.
그녀의 얼굴에 어쩐지 두려움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저, 지나가던 어떤 영문 모르는 남자라고
솔직하게 말 하며 한번쯤은 그냥 넘어가도 될 텐데....
도대체 무엇이 두렵기에 파리해진 안색으로... 떨리는 음성으로...
태민의 시선조차 피하는지......
“이 새끼야, 너 뭐야?”
나직한 태민의 음성에 민환은, 찢어진 입가의 피를 대충 닦아 내며 일어섰다.
그리고는 태민과는 다르게 예의를 갖춰 말 한다.
“....죄송합니다. 사람을 잘 못 봤습니다.”
태민에 대한 소문은 어지간히 들어왔던 민환.
괜한 오해라도 사 그의 심기를 건들일 의사는 없었나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민의 주먹에 몇 차례 왼쪽 뺨과 복부를 내어주어야만 했다.
막무가내로 맞을 수만은 없기에 방어를 해 보고,
역 공격도 해 본 다지만, 민환은 태민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절대적으로.......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를 해대는 민환을 보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주먹을 뻗는 태민.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욕설.
익히 소문만을 접했던 긴 시간에서 처음으로 그의 잔인함을 피부로 직접 경험했다.
그 결과로...
민환의 몸 구석구석엔 흐릿하지만 푸른 멍이 당당하게 새겨졌고,
입가를 비롯하여 한쪽 눈가가 살짝 찢어지는 상처를 얻게 되었다.
그것이, 태민과 민환의 첫 번째 마찰 이었다.
.
.
어느덧 일주일이나 지났다.
도이는 유민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다행이도 인대만 늘어났을 뿐이지, 뼈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기에
오늘은 그 갑갑하던 깁스를 푸를 수 있었다.
“아~ 홀가분해. 꼭 날아갈 것만 같아. 오빠.”
“그렇게 좋냐?”
“당연하지~”
“후후.”
꽃을 보고 달려드는 나비마냥 마냥 신나서 펄펄 뛰는 도이의 행동에
유민의 얼굴위로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보는 근심 걱정, 그 모든 것을 떨쳐버린 기분 좋은 미소였다.
“근데 도이야,”
“응?”
“너... 집에 가면.... 꼭.... 샤워부터 해라.
일주일동안 발 한번도 안 닦은 거 티 다나..... 쿡.”
“헉!! 오, 오빠!!”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깁스를 풀어냈음에
기뻐 환호하던 도이에게 가차 없이 찬 물세례를 퍼 붓는 유민.
그의 얼굴에 서린 악랄하기 그지없는 장난기에 도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반면에 유민은 더욱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다.
쯧쯧. 어쩐지 도이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후훗. 가자. 맛있는 거 먹으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도이의 어깨에 팔을 떡하니 올려놓는 모습도
가끔씩 있던 일이기에...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익숙해진지 오래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얄밉다.
그 작은 것 하나까지도.
“싫어! 오빠 혼자 먹어.”
“왜?”
“집에 갈 거야. 우엉~”
“너? 냄새때문에 그렇구나? 괜찮아, 괜찮아~~
여자 친구 발인데.. 냄새 좀 나면 어때? 쿡....”
“오빠!!”
“후훗.”
유민은 전혀, 도이를 달래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더욱 즐기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자극을 시키는 걸 보아하니.
이런~ 사악한 영혼 같으니라고!
“가려면 오빠 혼자가! 난 집에 갈 거야!!”
“야아~ 혼자 먹는 밥이 얼마나 맛없는 줄 알아?”
“그럼 집에 가서 먹던가!”
“널 두고 그럴 수야 없지.”
“아무튼, 나는 버스 타고 집에 갈 거야.”
“그건 안 돼지!
버스 안에 그 수많은 사람들을 질식사로 죽어가는 걸 차마 볼 수가 없다고.”
“오빠!! 아~ 정말!!”
“후훗.”
유민의 그칠 줄 모르는 장난에 도이가 오만가지 상을 하고 있었다.
허나, 그 와중에도 배를 잡고 웃어대는 유민.
한 마디 한마디에 즉각, 예민한 반응을 보이니 더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더군다나 퉁퉁 부어 오른 두 볼이 귀엽기 짝이 없었다.
물론 유민의 눈에만! -_-;
“알았어, 알았어. 오빠가 장난 안 할게. 그러니까 얼른 가자. 배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