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18화 (19/91)

18.

“그게 무슨 말이야?”

무거운 만큼 침착한 민환의 음성에 도이가 반문을 했다.

하지만 민환은 도이에게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진 않았다.

그저 씁쓸한 웃음을 머금고 도이의 손바닥 위에 곱게 올려진 사진 속 여자를 바라볼 뿐.

“그거 무슨 뜻이냐니까?”

“하아........”

“민환아, 뭐라고 말을 좀 해봐. 응?”

“아냐, 아무래도 괘난 말을 꺼낸 것 같다. 신경 쓸 거 없어.

그러니까 밥 먹자. 식겠다.”

민환은 그렇게 말을 돌리며, 이제까지 들지 않던 수저를 들었지만

이내 그 수저를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무거운 한숨을 다시 한번 토해낸다.

그 모습이 마치, 힘없고 얇은 유리처럼 금방이라도 깨질 듯 불안해 보였다.

“근데.... 누나.....”

헌데도, 더욱 더 불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심산인지.....

이제는 잔뜩 가라앉은 음성으로 도이를 부른다. 그러더니,

“나.... 갑자기.....”

너무나 진지해 보이는 모습에 괜스레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세상천지에는 어떨 줄 몰라도 도이에게만큼은

민환의 이런 모습은 낯설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이는 밀려오는 팽팽한 긴장감을 적당히 조이며 꿀꺽-

마른침까지 삼켜가며 민환을 주시하는데,

“피...자가..... 먹고 싶어진다. 우리 피자 먹으러 가자. +_+”

“..........어....?”

어이없는 그 말 한마디에 팽팽하던 긴장감은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해진다.

“내 입이 이거 말고 피자를 원츄한다고. 그러니까 나가자. 응? 응?”

싱긋, 웃는 모습이 왜 이리 얌체 같은지 모르겠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 얄밉다.

잔뜩 무게를 잡고는 꽤나 진지한 표정을 끌어내기에

무언가 큰 이야기가 터져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피자타령이라니.........

어안이 벙벙해질 만도 했다.

“하하하. 누나 표정 댑따 웃겨. 하하하.”

“네가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반면, 분위기에 압도되어 잔뜩 긴장을 하다가

순식간에 변해버린 도이의 얼굴을 보면서 민환은 뭐가 좋은지 껄껄껄~ 아주 신이 났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이 얄미워 보인다. 젠장!

“웃음이 나오지? 앙?!”

“에이~ 누나~ 그러지 말고~ 이 어여쁜 동생이 피자가 그렇게 먹고 싶다는데!”

“예쁘긴 개뿔!”

“에이~~~”

도이는 버럭, 소리치면서도 기가 찬 실소를 내 뱉지만, 한편으론 못내 웃고 말았다.

그 사이 민환은 능청스레 계산을 마친다.

주인아주머니는 민환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테이블위의

전혀 손도 대지 않은 듯한 두 사람의 설렁탕을 보면서 왜 먹지 않느냐며,

맛이 없었냐고 물었고

민환은 특유의 능청스런 웃음을 지으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가야만 하다고,

더불어 죄송하다며 얼굴 가득 근심서린 아주머니를 조금은 안심 시킨다.

“누나야, 얼른가요.”

“…….”

“근데 우리 무슨 피자 먹을까? 도미노? 피자헛? 미스터?

참, 누나 도미노 좋아하죠? 근데 난 샐러드가 먹고 싶은데 어떡하지? +_+”

식당 주인의 눈치를 봐서 인지 그 식당에서 대략 열 걸음이상 떨어졌을 때,

민환은 두 눈가에서 유별난 광채를 내 뿜으며 묻는다.

그 모습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왔지만 역시, 도민환다웠다.

느닷없이 등장한 사진으로 인한 그 무게감 있던 낯 선 모습은 역시나 싫었다.

그래서 인지 도이는, 다소 어마어마한 대역죄를 살포시 눈감아 주기로 한다.

“먹고 싶은 거 먹음 되지, 뭐가 걱정이야?”

“그런가?”

“응.”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손에서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사진이 껄끄러운 게 사실이다.

“에~ 그럼 또, 무슨 피자를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날까?”

“피자 한 쪽 먹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소문까지 내?”

“에이, 누나는~ 기왕이면 맛있는 피자 먹자는 소리지.”

“왜? 천하의 도민환 입에도 맛있는 거, 맛없는 게 따로 있는 가 보지?”

“......왜 없어? 설렁탕 있잖아....”

“......덴장. 내 사랑 설렁탕을 욕보이지 마!”

아주 살짝, 옥신각신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조금은 즐겁다. -_-;

“도이누나!”

피자 가게는 그리 멀지 않았다.

보통 걸음이라면 걸어서 한 오 분 정도?

하지만 도이의 발로 인하여 사정이 사정인 만큼, 그 짧은 거리를 20분을 거쳐 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매장 안은 제법 붐볐다.

커플로 남자친구와 단 둘이 온 테이블도 많았고 가족이 함께 온 테이블도 많았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틈에서 도이와 민환이 한 발자국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성민아.”

“그 다리로 어딜 그렇게 다녀요?”

“그러게.”

“괜찮아요?”

“걷는 게 조금 불편해서 그렇지, 까딱없어.”

“누나, 오늘도 나 만나니까 반갑죠?”

성민은 아주 매력적인 웃음을 발산 하였고, 도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 녀석은 왜 저래요? 완전 똥 씹은 표정이다.”

도이는 넌지시 성민을 향한 시선을 민환에게로 옮겼다.

그리곤 민환의 시선이 박혀있는 곳을 향해 다시 한번 옮겨갔다.

성민의 양 옆으로 있는 낯익은 두 명의 남자들 중 유난히 차가운 이미지가 강한 아이. 백 송.

민환은 그를 살포시 노려보고 있었다.

벗뜨, 송은 민환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혹시 어제 일 때문에 그런가?”

고개를 양 옆으로 갸우뚱 해 보이더니 한쪽 팔을 자연스레 민환의 어깨위로 옮겨 놓는다.

“야야, 사내자식이 좀스럽게 지난 일 가지고 왜 그러냐?”

“.......젠장.... 먼저 들어가 있을 게.”

툭, 가볍게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팔을 걷어내고는 마치,

피하듯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는 민환의 행동에 성민은 조금 불쾌해 보였다.

“저게 진짜.......!”

“성민아!”

무척이나 기분이 상한 성민.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멱살이라도 쥐어 잡을 것 같아 보였다.

도이는 다급하게 말렸고, 성민은 제법 인상을 썼다.

이제까지는 어쩜, 민환보다 더 능청스런 웃음을 짓고 있었기에 그 모습이 조금은 생소했다.

“그러지마. 응?”

하지만 도이는,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르는 싸움을 걱정하는지,

부탁을 하듯, 달래듯, 그렇게 성민을 잡아 세워놓고는 놔주지를 않았다.

“진짜 안 그럴 것 같이 생겨서 왜 그런대요?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지.”

“니가 이해를 좀 해줘. 응?”

“사람이 이해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민환이로써는 그래도 이게 최선이야. 어쩔 수 없어.”

“...혹시... 저 자식 누나 좋아하는 거 아녜요?”

성민은 진심인 듯 그렇게 말 했지만, 그 말에 도이는 부드럽게 웃었다.

“왜 웃어요?”

“그러는 넌, 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왜긴요, 저 자식 행동이 딱, 그렇잖아요.”

“어쩌지? 반은 맞고, 반은 아닌데.”

“무슨 답이 그래요?”

“표면적으로는 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내가 아니니까.....

.......평생.....”

무슨 말을 이으려는 지, 도이는 꽤 오랜 시간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이내 아주 천천히, 그리고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녀석을 옭매어 놓아버린 과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니까......”

깊이가 느껴지면서도 상당히 어려운 말이었다.

그래서 인지 그 말이 무척이나 슬프게 와 닿았다.

“....과거에 무슨 일 있었어요?”

“응.... 근데, 이 이상 너무 깊이는 말 못해. 그냥 그런 게 있다고만 알아줘.”

“...혹시.... 그 과거가....”

“맞아.... 어제 내가 다친 것과 조금 연관되어 있어.

지금 다친 이 발이.... 저 녀석을 좀 어지럽히고 있을 거야....”

도이의 말을 들으면서 성민과 백송의 두 눈이 마주쳤다.

백송의 표정이나 눈가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지만,

그 순간 성민의 눈가에는 작은 호기심이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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