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꼴좋다.”
민환의 등에 업혀 병원을 찾은 도이.
(대략 큰길까지만 업혔고 사실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큰길까지라야 스무 발치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다.)
간단히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인대가 늘어난 것 이외의 다른 부상은 없었다.
다행이었지만, 발목이 심하게 부은 관계로 때 아닌 깁스를 다 하고 말았다.
“자꾸 약 올릴래?”
빈정대는 민환을 향해 짜증 섞인 음성을 쏘아붙인다.
가뜩이나 다친 발 때문에 우울한 도이였다.
분명, 그 속을 알면서도 저리 약 올리는 민환.
얄미운 게 꼭 누구와 닮았다. 도이가 아는, 아니 알던 누구와….
“설마 그 다리로 그 먼데까지 간다고는 안하겠지?”
“안하겠지 가 아니라 하겠지.”
“야!!”
“누나!!”
“아 그래, 누나!”
욱하는 김에 버럭 소리는 질렀지만, 민환은 다음 말을 잊지 못했다.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감정은 계속해서 치솟아 오르는데,
어지간한 도이의 고집을 알기에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 진짜, 오늘만 날은 아니잖아요!!”
“아니... 오늘이어야만 해... 꼭 오늘이어야만 한다고...”
“아씨, 신도이!”
“오늘 아니면 일년이나 더 기다려야 하잖아!!”
“넌 깁스를 일년이나 하고 있냐? 다 낳고 가도 되잖아!”
“싫어!”
“고집을 부릴 걸 부려, 이 아줌마야!!”
“…….”
욱하며, 다시금 짜증 섞인 음성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내....
침울해져가는 도이의 표정과 그리움에 그을린 얼굴이 살짝 민환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고 싶진 않지만 약간의, 정말 조금의 동정심이 이른다.
이런.... 꼭 그렇게 말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안가?!”
괜한 말실수로 인해 분위기가 조금 더 어색해졌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상황과 복잡한 생각들로 인해 충분히 어색한데도 말이다.
민환은 서둘러 택시 한대를 잡았다.
얼핏 보기엔 도망이라도 치는 사람처럼 급하게 앞좌석에 올라타서는 서두르듯 보챈다.
나지막한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오는 도이. 오늘따라 민환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민환이니까, 도민환이니까....
라는 말을 몇 차례 곱씹어가며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 위로한다.
“저 자식은 말을 해도.....”
“.....놔둬.”
“화 안 나요? 가뜩이나 다친 것도 누난데 저 자식은 아까부터 계속 저러잖아요.”
“화야 나지, 하지만.... 후우.... 아니지, 이런 말은 내가 할 게 아니지.”
도이는 성민의 부축을 받아가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모르는 두 사람의 분위기 때문에 난데없는 눈치를 살피는 성민.
분명 무언가 있을 것만 같은 두 사람 사이에서 작지만 또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고자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무언가 큰 사건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내심 기대를 해도, 아주 자연히 피해갈 뿐이다.
성민이 원하는 핵심은.
“뭔 대 그래요?”
“별거 아니야. 참, 그건 그렇고, 민환이랑 친구 먹었다며?”
“잘은 모르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누나...”
“나중에.... 나중에… 네가 민환이랑 좀 더 많이 친해지고 나면....
민환이가 널 많이 좋아하게 되면.....
무엇보다... 성민이가 민환이한테 많은 믿음을 주고 나면........”
“…….”
“그때는 다 알게 될 거야......”
가볍게 흘러가는 말인 듯 한 그 말을 남기고 도이는 뒷좌석에 올라탔다.
도이가 천천히 차에 올라타고 이어 성민까지 타고 난 후에,
그들을 태운 택시는 차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
.
“어디 가니?”
쩔뚝쩔뚝,
부은 다리를 절어가며 기어코 만든 미역국을 보온병에 담아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려는데, 마침 누군가 들어왔다.
포근하면서도 훈훈한 음성이었다.
듬성듬성 나있는 새치머리가 그의 나이를 말 했고,
살짝 그늘 진 얼굴 위로 무성한 주름들이 그의 나이를 다시 한번 말 한다.
“네.”
“다리는 왜 그래?”
“그냥, 좀 다쳤어.”
“어쩌다가?”
“그냥.....”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두 사람의 대화가 무척이나 껄끄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보아하니,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보이는 얼굴과,
자연스레 도이의 옆방으로 들어가는 모양새까지도, 아마 아버지인 듯 하다.
그런데 두 부녀간의 대화가 보통의 부녀간의 대화와는 무척이나 달랐다.
“그 다친 발로 어딜 가려고?”
“아빠,”
“…….”
“저기 말예요,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빠는 알아?”
도이는 천천히, 떨리는 음성을 최대한 억제 하며 물었다.
“내일? 글쎄, 내일이 무슨 날인데?”
“6월 12일. 생각나는 거 없어요?”
“6월 12일....”
처음엔 잘 생각이 나지 않는 듯 평온한 얼굴로 [6월 12일]을 말하던 그.
그러나 이내 서너 번 같은 날짜를 되풀이 하고 난 후에 그의 안색은 많이도 굳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 해 봐도 모르겠구나.”
“…….”
“그나저나 아빠 배고픈데, 저녁 좀 차려주겠니?”
간편해 보이는 옷으로 갈아입고는 거실로 나와 앉는 아버지.
그를 보는 도이의 눈이 차게 식어갔다. 따스한 온기 안에 갇혀 버렸다.
“아빠가 챙겨 드세요.”
그리움과 원망의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묵직한 한숨이 곁들여진 음성을 토해낸다.
“미역국은 데우지 않아도 될 거야. 근데 어쩌지? 반찬이 그것 밖에 없어.”
꾸역꾸역 올라오는 눈물을 갖갖으로 참아가며, 그렇게 어렵게 말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문을 열고 나왔다.
그 순간, 그렇게 참았던 눈물이 또르르.... 두 뺨 위로 흘러내렸다.
투벅투벅, 큰 보폭으로 얼른 이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다친 다리로 인해 그럴 수가 없었다.
절뚝절뚝 조금은 힘겹게 서너 발자국 앞으로 나갔다가, 다시 뒤로 도는 도이.
화가 나기에 앞서 서운한 마음은 이루 말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닫힌 문을 빼 꼼이 열었다.
“아빠.... 나 양평 이모네 가. 아마 내일 저녁때쯤이나 올 거야.”
그러나 도이는, 아빠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
넓디넓은 이 집의 정원에 시선을 박아 둔 채로 말 했다.
“그리고 내일은... 6월 12일은....”
“…….”
“엄마 생일 이예요.”
언제쯤 기억해 줄 거야? 언제쯤 웃으면서 말 해 줄 거야?
이제 그만 할 때도 됐잖아....
아빠도 나도.... 이제는.....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으셨다.
도이는 뒤 한번, 안을 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게 넓은 정원을 지나쳐 나왔다.
엄마의 생일을 잊은 듯한,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아버지가 왜 이리 미운지.....
도이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엄마, 미안해.... 미안해 엄마....
나 아직은 어려워..... 아빠의 그런 모습들, 이해하기엔 내가 아직은 어린가봐....
오늘은... 오늘은.....
엄마가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그래도 나.... 조금만 아빠 미워할게..... 조금만 미워할게.....
하지만 엄마.... 밉긴해도... 그래도... 아빠가 원망스러운 건 아니야.
그렇게 엄마 보낸 아빠가 원망스러운 건 아니야.....
아빠도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아빠도 나만큼 가슴 아팠겠지....
항상 그렇듯, 그 말들로 그렇게 나를 위로 해 보지만.....
엄마.... 오늘은 그게 안 된다..... 그것도 어렵다.....
나도 알아.... 어쩜 이 순간, 나보다 더 힘든 게 아빠일지도 모른다는 거....
이 순간 나보다 더 엄마를 그리워하는 게 아빠일지도 모른다는 거....
하지만 아빠니까.... 아빠니까 견디는 거겠지....
나 때문에.... 엄마 그렇게 보내는 거 보고.. 그렇게 보내고 우는 나 때문에...
아파도 견디는 거겠지.....
엄마 그렇게 보내고 못 잊어 하는 나 때문에 더 그런 거겠지.....
하지만 엄마....
오늘은, 오늘만큼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힘들다.... 엄마....
아무리 이해 하려해도 아빠가 밉다....
다른 날 보다 좀 더 많이 밉다....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