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좀 봐봐. 어디 안 다쳤어?”
“아파......”
“어, 어디가 아픈 건데?!”
민환은 다급하게 도이를 살폈다.
크게 다친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군데군데 까진 상처가 보였다.
왠지 모르게 버럭,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야!”
다급한 마음과, 주체할 수 없이 밀려오는 화로 인해 냅다 소리부터 지르고 본다.
“이 새끼야, 사람 말이 안 들려? 앙?!”
“민환아, 하지 마. 응?!”
그러나 불러도 대답이 없는 남자.
민환은 살짝 굽혔던 무릎을 곧게 펴고 멀지 않은 곳에 넘어진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저벅저벅, 큰 보폭으로.
그때, 그 남자는 쓰러진 자신의 바이크를 세우고 있었다.
살짝, 무릎부위의 옷이 찢어지긴 했지만 크게 다친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민환은 덥석, 남자의 멱살부터 움켜잡았다.
그를 노려보는 눈동자에서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뭐야......”
남자가 물었다. 나지막하고 차가운 음성이었다.
오히려 기분 나빠하는 감정도 실려 있었다.
‘피해를 본 건 난데, 왜 네가 난리야?’ 하는 것 같았다.
“최소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왜,”
“뭐?”
“내가 왜 그딴 개소리를 씨부려야 하는 건데?”
투박한 음성으로 남자가 말했다.
툭- 기분 나쁘다는 듯이, 더러운 무엇이라도 떼어내듯이 민환의 손을 뿌리치는 남자였다.
제법 가벼운 동작이긴 했지만 민환의 손은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민환의 눈동자에 가득한 살기는 떨쳐내지 못했다.
오히려 화를 더하면 더했지............
“이, 이 새끼가.........!!”
민환의 주먹이 굳게 쥐어졌다.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한다.
허나, 떨리고 있는 것은 민환의 주먹이 전부가 아니었다.
살기가 어린 두 눈동자도 흔들리고 있었다.
늘 천진난만함을 내비추던 순박한 눈이 전혀 다른 감정만을 가득 실고는 흔들리고 있었다.
“미, 민환아!!”
스르륵- 민환의 주먹이 남자의 왼 뺨 위로 올라간다.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도이가 놀랐다.
무척이나 다급한 표정과 음성으로 민환을 불러보지만,
민환의 귀에 도이의 음성이 전달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샤악- 녀석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남자의 뺨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나 이내, 탁- 하며 짧은 마찰음이 들려왔다.
도이는 본능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눈을 떴을 때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보였다.
남자의 손이 민환의 주먹을 제압하고 있었다.
남자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척이나 가볍게 제압을 한 것 같았다.
때문인지 민환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몇 마디 터져 나왔지만.........
“.....이까지 솜방망이로 덤빈 거냐? 건방진 새끼.”
훗, 하는 짧은 비웃음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남자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도이는 다시금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 최고조로 흥분이 되어버린 민환이
그 주먹을 막아내지 못할 거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
“그 손, 내려라. 송아.....”
어깨위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제법 부드러운 손길과 함께 부드러운 음성도 들려왔다.
하지만 그 음성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작고 부드럽지만 어쩐지 거부해서는 안 될 강한 지배력이 느껴졌다.
스르륵... 감은 눈을 살며시 뜬 도이는 제일 먼저 민환을 찾았다.
다행이도 아무런 일이 없어 보인다.
거짓말같이도 남자의 주먹이, 민환을 향해 다가가던 남자의 주먹이 허공에 멈춰서있었다.
민환의 뺨과 한 뼘 정도의 거리를 둔 채로.
“.....씨파.... 운 좋은 줄 알아라..... 솜방망이....”
남자는 허무한 듯, 무안해진 주먹을 내려놓고는 바이크 안장에 올라탔다.
엔진을 가동시키며 스윽-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 묵묵히 달려 나갔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그 자리를 떠났다.
“괜찮아요, 누나?”
조금은 씁쓸해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도이의 한쪽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운다.
“아야!”
“어? 왜 그래요? 어디 다쳤어요?”
“아, 아냐. 괜찮아. 그냥 살짝 겹질린 것뿐이야.”
“어디 봐 봐요.”
“괘, 괜찮은 것 같아. 그냥 둬.”
“무슨 소리예요.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
성민은 제법 능숙한 손놀림을 발휘하며 한사코 마다하는 도이의 발목을 이리저리 살폈다.
언뜻 아무런 볼품없는 단화위로 벌겋게 부은 발목이 눈에 들어왔다.
부어있는 상태를 보아하니 전혀 괜찮을 리가 없었다.
“병원가야겠다. 누나.”
“괘, 괜찮은데. 정말...”
“대신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그 녀석이 원래 그렇게 양심이 없는 놈은 아닌데...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봐요.”
순간, 성민의 얼굴위로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좋지 않은 일이 있어나 봐요, 가 아닌 좋지 못한 일이 있었어요. 하는 것만 같았다.
“아는 사람이야?”
물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끝내 궁금한 것을 물어오듯 조심스레 묻는 도이였다.
성민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아무런 감정 없는 눈길로 빤이 바라다 볼 뿐이었다.
도이는 그 시선이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성민의 두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그 눈동자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친구예요.”
무겁게.... 어렵게.... 꺼내어 뱉어낸 말.
도이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친구라는 말을 저렇게 어렵게 하는 것일까?
왜 친구라는 말을 저렇게 조심스레 하는 것일까? 그런 의문만이 가득 차올랐다.
어쩐지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은 기분까지 들었다.
“넌 안 그런데, 니 친구는 왜 그 모양이냐?”
이상하게 불편해짐을 느꼈을 때,
한동안 그 남자가 떠나고 난 뒤를 바라보며 망상에 젖어있던 민환이
도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심술 맞게 뱉어낸 말에 성민은 그저 힘없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씨파, 친구라고 그랬냐? 가서 전해라.
한번만 더 이따위로 나오면 그 자리에다 묏자리 봐 주겠다고.”
민환은 다소 무거운 음성으로 그렇게 말 했다.
그런데 그 음성에 성민이 웃었다.
기분 나쁜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 웃음을 지으며 장난치듯 물어온다.
“팰라고?”
“.....봐서.”
“내 친구, 주먹 센데....?”
얼굴위로 묻어나는 감정과 달리 장난기 가득 한 음성으로 말하는 성민.
느닷없이 자신의 팔을 잡아끌며 자신을 저지시키는 도이로 인해 남은 말을 아꼈다.
성민이 본 도이의 눈이,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환을 그냥 두라고. 이상하게도 그 눈이 걸린다.
“...상관없어. 그래도 묻어 버릴 거니까.”
잠시 멍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민환은 너무나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핏 마주친 그의 눈동자가 울고 있었다.
여전히 살기 가득한 눈동자가 울고 있었다.
이런 진지한 모습은 아마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칠칠맞아, 여자가?”
심하게 멍해졌는지, 더 이상 말이 없는 성민을 뒷전으로 미뤄둔 채
민환은 애꿎은 도이에게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음성과 달리 표정은 많이 굳어있었다.
단단히 놀라고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괜찮아?”
문득, 성민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두 사람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는 일들 투성이었다.
다친 것도 놀란 것도 본인인데, 오히려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후배 놈을 먼저 걱정한다.
자신의 다친 발목은 안중에도 없는 듯,
그저 조금 놀랐을 일이 전부인 민환을 향해 저리 묻는 도이를 이해 할 수 없었다.
“괜찮지 않으면......”
민환은 도이에게 등을 대며 다시 말 한다.
“병원가자. 업혀.....”
“…….”
도이는 잠시 망설이는 듯싶었지만, 조심스레 자신의 몸을 민환에게 맡긴다.
민환의 눈이, 그의 음성이, 차마 거부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도이를....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성민까지.....
어쩐지 두 사람 사이에 커다란 비밀이 존재 하는 것만 같았다.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민환도,
아무런 대꾸한번 없이 그가 하자는 대로 따르는 도이도.... 어쩐지 흥미로워진다.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빨리, 그들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뒤 따라온다.
무언가 대단한 사실이,
커다란 비밀이 존재하는 것만 같은 예감이 성민을 자극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