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8화 (9/91)

08.

“쓰읍~ 새끼. 더럽게 분위기 잡네.”

한동안, 갑작스런 성민의 태도에 모두가 벙져있었다.

한참을 못 볼 거라도 본 사람들 마냥.....

이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성민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물론, 민아는 성민이 급식소를 나갔을 때 그 뒤를 빠르게 쫓아 나갔다.

그저 두 사람의 말다툼이 무엇에서 시작 된 건지,

성민은 민아의 말 한마디에 왜 그래 화를 낸 것인지를 모르는 세 사람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틈에서 순간적으로 어색해진 분위기를 민환이 수습한다.

“생긴 것 같지 않게 노네. 꼴에 사내대장부라 이건가?”

“…….”

“근데, 졸라 멋지네. 남자인 내가 봐도.”

약간의 투덜거림이 섞였지만 기분 나쁜 어투는 아니었다.

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물론 민환은 직접적인 만남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겉으로 보여 지는 이미지와 다른 면모가 이상하게도 마음에 들었다. 민환은.

“근데, 저 두 사람 뭔가 수상하지 않아?”

“응?”

“싫다는 놈한테 엉겨 붙는 꼬락서니가,

하루 이틀 알고 지냈다기엔 너무 곰살맞지 않았어?

더군다나 차민아가 누구야? 불 여시 중에 불 여시 아니냐?

꼴에 배경 하나 잘 났다고 콧대 세우는 꼴, 눈뜨고 못 보지.”

다희는, 마치 탐정놀이라도 하는 양,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서는 여러 가지 추리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세울 수 있는 가정도 세워가면서 말이다.

“참, 그러고 보니 그 새끼, 누나들한테는 꼬박꼬박 누나, 누나 그러면서 살갑게 굴었잖아.

근데 그 불 여시한테는 차민아. 이름 석자 부르지 않았어?”

“흐음..... 이거, 이거~ 뭔가 있어. 확실해. 뭔가가 있어.”

“…….”

어느새 그들의 관심사는.....

허기진 배를 두둑이 채우는 일 보다는 권성민이라는 한 녀석에게로,

조금 더 나아가 권성민과 차민아라는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

“차민아가 살갑게 굴어올 정도라면 백 프로 장담 해.”

“뭘?”

“권성민! 예산인물이 아니야. 처음부터 알아 봤어.”

“어떻게 예산인물이 아니라는 건데?”

“그야........!!! 나도 모르지.”

아주 잠깐 풀죽은 음성이 들렸지만 곧,

다희의 검은 두 눈동자는 초롱초롱, 부담스러울 만치 빛내며 요리조리 굴러다닌다.

무언가, 의문을 풀기위해 스스로 질문하고 그 답을 유추해 내는 습관이었다.

“혹시, 차민아와 맞먹는, 혹은 차민아를 버금가는 대기업의 도련님은 아닐까?”

“대기업의 도련님?”

“아니면, 전 학교에서 이름 꾀나 알려주던 날라리라던가.”

“날라리?”

“그래도 차민아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보통이 그랬잖아.

돈 아님 명예 둘 중에 하나라도 뚜렷하게 보이는 사람.

그런 자격이 갖춰진 자만이 차민아의 유흥이 될 수 있다.

이 사실은 비단, 우리 학교에서만이 공공연한 사실이 아니라고.

물론 두 가지 조건이 다 성립되면 금상첨화지.”

리얼 액션을 가미 해 거창하게 말을 늘어놓은 다희였다.

“난 날라리 쪽에 한 표!”

“왜, 누나?”

“그냥, 여자의 직감으로.”

“흐음...... 난.......”

“…….”

“에이, 나도 날라리다 에 한 표!”

“왜, 내 의견에 동조하는 거야?”

찬반 논쟁도 아닌 것이,

다수결로 인해 무언가를 결정지어야 하고

굳이 투표라는 것을 해야 할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다희와 민환은 진지해 보였다.

나름대로. -_-

“동조 하는 게 아니라, 남자의 예리한 판단력이야.”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자고로 남자보다 여자가 더 예리하단다.”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지. 아무 때나 다 예리하고 들어맞는 줄 알아?”

“암튼,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타당한 이유를 말 해봐! 난 들어야겠으니 까.”

“아~ 퐝당! 진짜 어처구니없는 억진 거 알지? 누나.”

권성민이라는 한 사람을 놓고 내기라도 할 심산이라....

오해 받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세 사람은.....

아니, 도이를 뺀 두 사람은 성민의 과거지사에 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 이름 동내 똥강아지 이름 부르듯 부르라고 있는 거 아니거든?”

“너, 나 알지? 당분간 보지 말자.”

민환은, 제법 무게 있는 음성으로 최대한....

아까 전 성민과 같은 속도, 같은 억양으로 말 하고자 애썼다.

표정까지도 최대한 연출해냈다.

“남자가 이 말을 한 다는 게 어떤 뜻인 줄 알아?”

“어떤 뜻 인대?”

다희는 민환의 다음 말을 위해 맞장구까지 쳐 주며

조금 더 고조된 분위기를 형성시켰다.

그리고 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그들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행동인지....

성민이 사라지고 난 후로부터 내내, 잠잠했다.

물론, 다희와 민환처럼 성민에 대해 여러 가지 궁금증이 몰아닥쳤다.

“아니, 남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뭘 말 하는 줄 알아?”

“음..... 힘이야?”

“응.... 하지만, 단순히 힘만으로 성립되진 않아.

힘도 힘이지만, 이를테면..... 권력이랄까?”

“권력?”

“응. 권력.”

“하지만, 성민이는 이제 열일곱, 자라나는 청소년일 뿐인데.”

다희의 엉뚱한 발언에 잠시, 입술을 비집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요즘은 애들이 더 무섭다는 걸, 모르는 거 아니지?”

“하하하. 아무튼, 그래서?”

“음, 이제 전학 지 고작 3일 밖에 되지는 않았다지만,

어디 중·고등 교가 전학이란 게 쉬운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학을 왔다는 건, 뭔가가 켕기는 게 있을 거란 말이지.”

다소 진지한 민환의 말에, 다희도 도이도...... 절로 고개가 움직였다.

긍정은 아니더라도 부인하지는 않는 태도였다.

“하지만 생긴 걸로 보아서는, 완전 귀공자 타입인데.....

싸움 같은 건 안 하고 살 놈 같아 보이지 않냐? 성격도 서글서글하니, 붙임성도 좋고.”

“원래가 귀엽상하게 생긴데다가 인물이 반반한 놈들이 성질도 뭣 같잖아.

주먹도 잘 휘두르고, 소유하고 있는 깡도 제법이고.”

“그건 뭐에서 유추된 사실이냐?”

“이런~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둡다지만, 바로 앞에 귀엽고 잘 생긴 놈을 보고도 몰라?”

민환은 능청스레 찡긋- 한쪽 눈을 감았다.

“어디서 그것도 말이라고.”

하지만, 민환의 발언에 해당하는 반응은 좋지 못했다.

잠자코 있던 도이가 콧방귀를 뀌듯이 비아냥대고 있었으니.....

그래도, 잠자코 다른 생각을 하는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지 구분이 가지 않던 도이.

끝을 모르고 오가던 녀석들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는 있었다.

“어허, 누나! 지금 그 발언은 나를 무시하는 거야?”

“인마! 한번 쌈질만 했다하면,

여기저기 반창고에 푸르딩딩한 멍만 잔뜩 만들어 오는 주제에,

니 입에서 그런 말 나오면 세상천지 어떤 멍텅구리가 믿겠냐?”

“뭐어? 씹, 누나. 날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니야?”

“무시라니? 나는 엄연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씨, 사나이 가오가 있지 어디 가서 맞고 다니면 쪽팔려서라도.....”

“너어, 뻔이 아는 사실인데 자꾸 부정하면, 가만 안 있는다?”

“뭐야? 협박이야?”

“그건, 내키는 대로 생각해라.”

“호오~ 쌔게 나오는데? 훗, 가만 안 있으면 어쩔 건데? 응?”

조금은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그러나,

“니 친구들.... 부르는 수가 있어. 얼굴도 못 들고 다니고 싶지? 앙?!”

“친구들? 차암~ 그러면 누가.........!!”

“…….”

“........그러지 마세요. 누님.

좀 진정을 하시고, 이 어여쁜 후배를 위해 부디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시면 안 될까요?”

도이의 말에 더 이상 부정하지 못했다....

정말로, 도이의 말이 어느 하나 거짓됨이 없음을 증명하듯.....

친구라는 이름 하나에.... 그 많던 말들이 쏙~ 들어가 버렸다.

절대 부정을 하듯 강하게 나오던 모습은 한순간 허리가 꺾여버린 갈대와도 같았다.

이제는 제법 고분고분한 모습으로 진실 되게 바라는 민환.

나름대로 걱정스러운 건지, 아니면 다만 연출이었을 뿐인지.....

그 속내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순간적으로 강하게 굽히고 들어오는 민환의 모습은....

많은 웃음을 자아내기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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