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아주 살림을 차리지 그래?”
일곱 시가 조금 넘은 등교시간. 도이는 유민과 함께 나란히 집을 나선다.
푹푹 내리쬐는 햇볕이 오늘따라 따사롭기만 하다.
그런데 날씨와는 반비례적으로 차디 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어딘 가로부터....
“이제 가냐?”
“오빠는 대체, 오빠 집이 어디야?”
“유치하게 니집, 내 집이 다 뭐냐?”
반 지하 입구 위에 떡하니 양팔을 괴고서 아니꼬운 시선으로 둘을 내려다보는 민아.
눈에 띄는, 익숙한 차림새는 도이와 같은 교복이었다.
허나, 어쩐 일인지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또 한 가지의 익숙한 부분을 찾자면,
어제. 유민이 희망고 앞으로 도이를 마중 나갔을 때, 뒤에서 몰래 도이와 유민을 훔쳐보던-
성민에게 나타났던 그 아이라는 사실이다.
“오빠 여기 있는 거, 엄마도 알아?”
“곧 아시겠지.”
“그 말, 참 뻔뻔하게 들리는 거 알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너?”
“옛말에 남녀 칠세 부동석이랬다. 오빠야.”
“뜬금없이 그 말이 왜 나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혹시라도 아빠 이름에 먹칠 하지 마라.
집이라고 보는 눈이 없는 건 아니라고.”
민아의 말에 잠시 시선을 돌려봤다.
집이라고.... 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신경 쓰이는 탓이었다. 헌데, 이것이 웬일?
분명, 도이가 나온 집은, 도이의 집은 반 지하였다. 그런데, 그 앞은....
반 지하라는 명칭과 절대적으로 어울릴 수 없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우선은 부담스러울 만치 넓디넓은 정원.
그 안에, 무성하게 잘 자란만큼 보기 좋게 다듬어진 나무들.
빼곡하니, 빈틈이 없어 보이는 잔디들.
그 모든 것들이 넓은 정원과 잘 어울려져 한껏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 하니까 꼭,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 같다?”
“그럼 아니야?”
살짝 일그러진 유민의 미간.
그러나 민아는 오빠의 그러한 표정이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양,
유민의 어떤 표정 변화에도 개의치 않았다.
“남 연애사업에 쓸데없는 참견은 그만 하고 학교나 가. 인마!”
“어째서 이게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거야?”
“가자. 도이야.”
아침부터 누군가의 참견과 잔소리에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운 유민.
때문에 쏘아붙이듯, 제법 차갑게 동생을 대한다.
“아냐 오빠. 이제 혼자 갈게. 오빠는 얼른 올라가서 쉬어.”
“이 더운 날, 어떻게 걸어가려고 그래?”
“걸어가긴 왜 걸어가? 버스 놔두고.”
“버스 타는 데 까지는 한참 걸어야 하잖아.
도대체 아침부터 무리를 해 가며 진땀을 빼겠다는 이유가 뭐야?
그리고 버스 타면 그 많은 애들 틈새에 끼여.....
어휴~ 난 그런 거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워 보인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쓰디쓴 약을 먹일 때,
그 약을 피하고자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격이랄까?
하지만 유민은, 아주 짧은 말다툼 후 도이에게 백기를 들고 말았다.
한사코 안 집으로 등을 떠미는 도이의 고집에 기권을 하고 만 것이다.
“하여간, 저 고집불통. 알아줘야 한다니까.”
불만을 가득 담은 음성으로 말 하지만 이내,
촉~ 하며 가볍게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는 2층의.....
겉보기만으로도 어마어마해 보이는 집으로 들어가는 유민이다.
물론, 그 뒤를 민아가 따른다.
아마, 그 곳이 유민이, 그리고 민아가 살고 있는 집인 모양이다.
“닭살, 닭살. 천하의 이런 닭살이 또 없지.”
“시끄러 인마. 학교나 가. 얼른!”
“그렇게 볼품없는 계집이나 챙기지 말고 동생이나 한번 챙겨봐라, 좀. 오빠야.”
민아는 쏘아붙이듯 말했지만, 유민은 민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씨, 엄마는 아직 오빠가 자는 줄 알아.
그러니까, 번거로워도 오빠방 한번 들어갔다가 나와.
괜히 들어가면서 시끄럽게 굴어서 아침부터 잔소리나 듣지 말고.”
“…….”
“내말 듣는 거야? 오빠 좋으라고 하는 소리잖아. 사람이 말을 하면 무시 좀 하지 마!”
티격태격하며 들어가는 오누이의 모습.
유민의 표정은 다소 귀찮은 듯 보이고, 민아의 표정은 근심 가득해 보였다.
마치 세 살짜리 어린아이를 물가에 내 놓은 어미 마냥.
그러나 그 둘을 바라보고 있던 도이는 대략 쓸쓸해 보인다.
자신에게서는 존재 할 수 없는 제 3차원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들어간 집은 지난 밤, 도이가 보여줬던 작고 초라한 집과는 천지차이였다.
겉보기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호화스럽고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한 울타리 안에 함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 보여 지는 신분 차이가 무척이나 확실하다.
흔히들 TV에서 볼 수 있는.....
무척이나 잘 사는 주인집과,
그 안에서 주인집의 갖은 눈치를 보며 겨우겨우 하루를 지내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반 지하의 집.
같은 위치, 같은 대지 위에서 확연히 다른 위층과 아래층.
이것이야 말로 자본주의 국가라는 현시대의 대표적인 모습은 아닐까?
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사람들이 공존하는 마당에,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두 집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현 시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휴우..... 그럼 오늘도 한번 걸어볼까?”
어느새 사라진 두 사람의 자취를 쓸쓸이 느끼며 땅이 꺼져라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도이.
천천히 정원을 지나 넓은 만큼 갑갑한 울타리를 벗어난다.
“도이는 벌써 학교 가는 구나?”
“아저씨.”
“오늘도 걸어가는 구나? 날이 제법 더운데.”
“그러네요. 하핫.”
커다란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고급 세단의 차를 정비 하는 김 기사가 보인다.
그는 세단위에 쌓인 먼지를 말끔하게 털어내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도이는 그 인상 좋은 김 기사와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신씨가 아마도 내일이면 오지?”
“...네......”
“가만, 시간을 좀 볼까?”
“…….”
“음.... 아직 십분 밖에 되질 않았네? 도이야, 얼른 타라.”
“네?! 괜찮아요. 아저씨.”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자, 어서! 시간 재촉하지 말고.”
“정말 괜찮아요. 운동 삼아 천천히 걸어가면 돼요.”
“차로 가면 오 분이면 될 거리를 왜, 힘들게 걸어가려고?”
“조금 있으면 민아 나올 거예요. 괜히 또 저 때문에 한 소리 듣지 마세요.”
“까짓것 한소리 들으면 좀 어때?”
한사코 마다하는 도이와, 한사코 태워다 주겠다는 김 기사였다.
그러나 도이는 끝까지 고집을 피웠고,
유민에 이어 김 기사마저도 도이의 황소 같은 고집을 꺾지는 못하였다.
“제가 죄송해서 싫어요. 그리고 번번이 이렇게 신경 쓰시면, 저 불편해요. 아저씨.”
“원, 녀석 하고는. 도대체 고집이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구나.”
“후후. 그럼 아저씨, 오늘 하루도 수고 하세요.”
“그래, 그래. 잘 다녀 오거라.”
“네......”
도이는 싱글벙글, 보기 좋은 웃음을 머금은 채로 뒤 돌아섰다.
허나, 김 기사로부터 대략 스무 발이 떨어졌을 때는,
지독히도 무거운 한숨을 내 쉬고 있었다.
도이의 집임을 떠나, 민아와 유민의 집인 이 곳은, 걸어서는 오가기가 힘든 성북동.
부자동내의 맨 꼭대기쯤이었기 때문이었다.
굽이굽이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는 거야, 오르막길을 걷는 일보다야 쉽다고는 하나,
자가용이 없이 버스정류장까지는 도보로 무려 삼십분 가량을 걸어야하기 때문이다.
찌든 햇볕과 함께 아침부터 진담을 뺄 생각을 하니....
지독히도 낮은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오는 일은 어쩜, 당연한 이치였다....
“그래도 오늘은, 선도부가 아니란 게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