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무섭게 내리쬐는 땡볕 아래서, 선도라는 직분아래 한 시간을 가깝게 서있는 도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볕에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질 만도 한데,
어째 생글생글 보기 좋은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간혹, 이른 더위라도 먹은 건 아닐지..........
의심의 여지가 충분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은 썩 좋아 보이지 않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도이의 행동에 깊게 관여 하지 않는다. 아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때로는 벌겋게 잘 익은 두 볼이, 마냥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이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저렇게 행복한 웃음을 자아내는 것 일까?
무엇이 그리도 기분이 좋은 걸까?
무엇으로 인해 자꾸만 저렇듯 자지자란 미소가 떠나질 않는 걸까?
“풋.....”
굳게 다물린 잇새로 부드러운 미성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주춤, 주변을 살피는 도이.
다행이도 잇새에서 흘러나온 웃음소리를 들은 이는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오전 중에 만났던, 정체불명의 사내 녀석으로 인해 싱글벙글인 것 같아 보이는데,
도대체 그 녀석의 어떤 면모가 이렇듯, 멈출 줄 모르는 웃음을 자아내는 것인지......
“다들 수고 많았다. 얼른 교실들 들어가 봐.”
정신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도이의 귓가로
중저음의 부드럽지만 또한 딱딱한 음성이 들려왔다. 학생주임선생님이었다.
어느새 좀처럼 가지 않던 시간이 다 지나갔는지,
선도부원들은 각자의 교실로 흩어지고 있었다.
도이도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반쯤 나간 정신을 추스르고 교실로 향한다.
“도이야!”
단정하기만 할 뿐, 볼 품 없는 검정색의 단화를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는데 불쑥,
한 녀석이 도이의 앞에 나타났다.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양, 너무나 신난 얼굴이었다.
“너, 또 땡땡이냐?”
“얘는~ 누가 들으면 나는 허구헛날 땡땡이치는 줄 알겠다. 야~”
“그럼 아니냐?”
“어머! 얘, 얘, 말 하는 것 좀 봐라.”
다희는 한층 높아진 언성으로 강하게 부정을 하고는 있지만 넉살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근데, 너 오늘 좋은 일 있어 보인다.”
“좋은 일?”
“응. 어제 저녁이랑은 완전 다른 얼굴인데? 오빠랑 화해 한거야?”
“…….”
잠시, 도이의 얼굴위로 어두운 빛이 스쳐갔다.
“뭐야, 아니.....었어?”
아주 잠시였지만 그 것을 캐치한 다희는 조심스레 물었고,
“다희야.....”
“응....”
“오빠 못 만났어....”
도이는 애써 쓴 웃음을 지었다.
아침나절의 그 실없던 웃음은 아주 잠시간의 말로 뿌리조차 그 종족을 감추었다.
아무래도 다희가 말한 오빠라는 사람과, 도이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허나, 아직까지 그 오빠라는 사람의 정체가 불분명하니,
무슨 일이 있었으며 왜 그 사람이 운운되는 시점에서 한순간에 낯빛이 저리도 변하는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다희야.... 나 교무실에다가 일지 놓고.....”
“어, 누나! 또 뵙네요?”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무겁게 내리 앉자,
천천히 아주 느린 걸음을 걷던 도이는 일지를 핑계 삼아 말문을 돌렸다.
이 순간에 대한 현실도피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쑥, 좀 전과 매한가지로 도이의 앞에 무척이나 반갑게
인사를 해오는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은 오늘 아침에 첫 대면한 정체불명의 그 녀석이었다.
“어, 어.... 그래.”
생전 처음 본 놈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 안 사람마냥
친숙하게 인사를 해 오는 녀석의 행동에 도이는 어정쩡하게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여전히 싱글벙글인 녀석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이상하게도 정이 가는 얼굴이었다.
아니, 얼굴 자체에서 정이 간다기보다는
녀석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정이 간다는 게 더 옳을 것이다.
“그래도 구면이라고, 제가 아는 사람이 누나뿐이라 반가워서요.”
“아....”
“참, 누나라고 불러도 괜찮죠? 선배는 너무 딱딱하게 들리잖아요. 썩 내키지 않거든요.”
“그, 그래.”
녀석은 제법 생기발랄한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
그에 비해 도이는 제법 멍한 표정이었다.
녀석의 말은 마치, 선배라고 부르라고 한대도
자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빙빙 돌려서 말 하는 것 같았다.
견 눈질로 밉게 보자면 충분히 얄미운 말이었지만,
참 이상하게도 녀석의 행동거지가 밉지 않았다.
사람을 단 한번 보고, 그것도 그토록 짧은 시간에 어찌 파악을 하겠느냐마는,
도이는 어쩐지, 자꾸만 녀석이 살살 쪼개는 모습과
지나치도록 보기 좋은 당당함이 마음에 들었다.
“고마워요. 도이누나.”
“도이누나? 너, 내 이름을 어떻게......”
“이름표요. 누나 이름표에 써 있네요. 신도이라고.”
“아, 그렇구나!”
“저기요, 누나. 내가, 앞으로 쭉~ 아는 체 해도 괜찮아요?
내가 아는 척 하면, 모르는 척 할 거예요?”
그렇다고 대답하기엔 쪼끔 뭔가가 찝찝하고, 차마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뭐한 질문이었다.
한마디로 ‘모른 척 하면 안돼요!’ 내지는, ‘모른 척 하면 두고 보자고요. 어디......’
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질문이란 말씀!
묘하게 이맛살을 찌푸리던 도이는 끝내는 알았다는 긍정의 답 대신,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주었다.
녀석에게 대조되지는 못하지만, 녀석 못지않은 환한 웃음을 지어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웃음이, 평범해 보이는 도이의 얼굴 위에서 무엇보다 환한 빛을 발한다.
음, 백만 불짜리 미소라는 말이 제법 그럴싸하게 어울렸다.
자세히 보니까 아침나절에 녀석에게서 보았던 그 묘한 매력덩어리와는 또 달랐다.
미소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홀리게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미소에 녀석이 웃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매력적이네.........”
흘러가듯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은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워낙 작은 말이었기에...
도이도...... 그리고 다희도 들을 수 없었다.
“고마워요. 그럼 누나, 다음에 또 봐요. 우리.”
녀석은 아침나절과 다를 바 없는 부드럽고 매력적인 인사를 해 주며 도이를 스쳐지나갔다.
살짝, 티가 날 듯 나지 않을 듯, 하지만 무척이나 매력적인 윙크.
순식간에 묘한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후훗.
아무래도 녀석은 바람 잘날 없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 같은 여자들의 마음을,
그 심리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고작 두어 번 만남이 있었는데,
그 만남으로만 그렇다고 단정 짓기엔 너무 거창 한 것 같다. 아무래도.
조금 더 지켜본 연후에 뭐라 단정 지어도 짓는 게 낳겠지? -_-;)
“참, 누나! 내 이름 아직 모르죠? 난 성민이예요. 권성민! 내 이름 기억해야 돼요!”
하지만 분명한 건..... 아주 작은 동작 하나와 말 한마디로도
도이의 마음에 커다란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야, 누구야?”
“엉?”
멍하니 멀어지는 성민이의 뒤를 보다가, 기회는 이때다! 다희는 무섭게 물어오기 시작했다.
“존니 쌔끈에다가 매력이 줄줄 좔좔 흐르는데?”
“그냥. 어쩌다 알게 된 애.”
“보아하니 도민환관데?”
“후훗. 네가 보기에도 그래 보이는 구나? 도민환이랑 쫌 많이 닮긴 닮았지?”
“그렇다기보다는 붕어빵이라고 해도 되겠다.
생긴 건 조금 다르긴 다르지만 어딘가 모르게 많이 닮았고. 풍기는 분위기 때문인가?
암튼, 성만 같다면야, 쌍둥이라고 그래도 믿겠는 걸? 이란성쌍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