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서늘한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어느 날.
넓디넓은 운동장과 4층의 기다란 건물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희망고등학교’ 정문의 바로 맞은편.
작지도 크지도 않은 편의점 바로 앞에 웬 고급의 세단이 미끄러지듯이,
하지만 제법 부드럽게 정차했다.
무더운 여름의 초 입기.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가리고자 하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신분 따위가 노출 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인지....
고급세단의 모든 유리는 칠흑 같은 어둠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면이 온통,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새카만 그 무엇으로 썬 팅이 되어 있던 것이다.
아, 물론! 차의 내부가 아닌 겉에서 보여 지는 것이 그렇다는 말씀!
자, 그럼 이젠 더 이상 겉으로만 보이는 표면적인 시선에서 눈을 거두고,
그 내부로 들어가 보겠다.
그 내부에는.... 기사를 제외하고 중년의 한 부인과 꽤나 곱상하게 생긴,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귀엽다는 느낌을 주는 한 사내 녀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내부는,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와 무척이나 대조되는 일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풍기는 분위기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랄까?
한시를 쉬지 않고 옥신각신 거리는 부인과 사내아이.
도대체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살짝 엿들어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인석아! 엄마 눈이 어디 보통 눈인 줄 알아?”
“에이~ 엄마는 이미 한물 간 눈이라고.”
“뭐어? 아니, 가긴 뭐가 가? 이렇게 멀쩡하구만. 내 나이에 이 정도면…!”
“그건, 엄마의 희망사항에 불과 할 뿐이라고.”
“아니, 그래도 이 녀석이!”
흐음… 아무래도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봐야 할 듯.
“엄마는, 꼰대를 몰라도 너무 몰라. 와이프 맞으우? 아무래도 의심스럽다니까.”
“인석아! 네가 암만 그래도 냉정하게 생각 해 봐라.
장작 20년을 함께 살아온 내가 더 잘 알겠니?
아니면, 이제 고작 17년, 그것도 반올림으로 그렇게 살아온 네가 더 잘 알겠니?”
“그야…!”
“당연히 이 엄마라는 말씀이다.”
“아무튼, 그래도 쟤는 아니야. 어딘가 모르게 구려.”
“쯧쯧. 사람을 겉으로만 보고 평가하는 건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꼰대 반, 엄마 반. 아니겠수?”
살짝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뜨는 녀석.
방금 전 녀석이 내 뱉은 말은 분명, 무언가를 향한,
제 부모를 향한 비아냥거림이 분명했다. 허나, 귀엽상한 녀석의 행동 때문이었을까?
어미는 잠시 현기증이라도 일어나는 양,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며 웃고 만다.
“어, 엄마! 찾았다! 찾았어!!”
그리고 그 때, 내내 엄마와의 말다툼 속에서도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던 녀석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춰 선다.
녀석은 마치, 십년, 아니 몇 십 년 묵은 산삼이라도 발견한 양, 난리 법석을 떨고 있었다.
마치 계집아이가 난리법석을 떨어대듯.
도대체 녀석이 왜 그러는 것인지 궁금하니, 또 가만 보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
녀석의 시선을 멈춰 세운 것이 무엇인지, 그 시선을 따라가 봐야겠다.
음… 그런데, 도대체 녀석의 시선이 어디를 향한 것인지 모르겠다.
녀석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대강 보아하니 고만고만한 게,
눈에 띄는 사물 혹은, 인물이 없다는 말씀.
아니, 이 녀석, 아직 여름 초 입기 일 뿐인데, 벌써부터 더위를 잡수셨나?
도대체 뭘 보고 저리 발광을 해 대는 거야?
“쟤, 쟤 어때? 응?”
“어디? 누구?”
“아 왜, 쟤 말이야. 쟤, 커트머리에 바싹 말라가지고, 열라 구린 얼굴 하고 있는 애.”
갑자기 녀석이 삿대질이라도 하는 양,
두 번째 손가락을 곧게 펴고는 정신없이 흔들어 댄다.
그에 어미의 시선이 어디론가 쏠렸고, 애타게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허나, 제 아무리 녀석의 어미 일손, 녀석이 말한 아이를 찾는 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역시, 녀석은 이른 더위를 먹은 것일까? 흐음!
“어? 웃었다.”
“도대체 누구를 말 하는 거니? 누구?”
“저기, 똑 같이 생긴… 친군지 뭔지 달고는 방긋방긋 웃는 애. 아, 안 보여?”
“저, 저기 하얀 가방 짊어지고 있는 애?”
“아니, 걘 머리가 단발이잖아. 걔 말고 그 옆에. 커트머리에 분홍가방 짊어지고 있는 애.”
“아!”
한참 만에, 어렵게 녀석의 어미가 그 아이를 찾았다.
커트머리에 분홍가방을 짊어지고 있는 애.
아니, 도대체 그 아이는 누구기에 이 녀석이 이리도 좋아라 하는 것이고,
방방 날 뛰는 것일까?
보아하니 생김새는 지극히 평범해 보일 뿐인데 말이다.
잘나지도 않았지만 또한 못난 것도 없어 보이는,
30여명의 아이들을 교실에 모아놓고 보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그런 아이랄까?
뭐, 어째 사람을 겉모습 그 하나만 보고 평가하겠느냐마는.
“얜, 어쩜 보는 눈도 그렇게 없는지. 기왕이면 좀 볼만한 얼굴 고르는 게 좀 좋아?
그럼 잠시간이라도 눈요기도 하고. 아빠 코도 납작하게 누르고. 일석이조 아니냐?”
“엄마는, 내가 지금, 연애 상대 고르우?”
“그래도 그렇지. 어쩜 그리 사내새끼가 계집 보는 눈이 낮은지 모르겠다.”
“이게 다 꼰대 닮아서 그런 거 아니우?”
어김없이 살짝 비꼬는듯한 말과 다시금 반복되는 귀엽상한 애교와 눈짓.
그에 어미는 혈압이 급상승 하는 양, 뒷목을 움켜잡았지만,
전처럼 아들을 향해 싫은 내색, 혹은 아무런 잔소리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낮고 무거운 한숨으로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달랠 뿐. 쿨럭.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암튼, 엄마! 난 쟤로 낙찰 봤어.”
“그래도 이 엄마가 보기엔 영~ 아니다.”
“아냐. 그래도 난 쟤로 할 거야. 어쩐지 뭔가가 있어 보여.”
“이 엄마가 보기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구나.”
“아냐. 뭔가… 음산한 뭔가가 느껴져. 그리고 왠지 필이 왔어!
날 실망 시키지는 않을 것 같아. 그러니까 난 쟤로 낙찰 봐요.”
“차라리 그 옆이 어떠니?”
녀석의 어미는 자꾸만, 제 아들이 낙찰 봤다는(무슨 경매도 아니고….)
계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른 아이들을 살펴보지만, 녀석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김 실장님, 쟤 뒷조사 좀 부탁해요.”
“네. 도련님.”
“그럼, 내일부터 희망고에 첫 출근인가? 아니, 첫 등교겠지. 후후.
어째 앞으로가 기대 되는데. 무척이나 재밌을 것 같아. 안 그러우? 엄마?”
도대체 이 모자가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말하는 것도 그렇고 연애 상대가 아닌 무언가의 상대를 고르는 것
같긴 같아 보이는데, 그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시작 되는 건지를 통 모르겠단 말씀!
아무래도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
그 때, 분홍 가방을 멘 커트머리의 여자아이와,
하얀 가방을 맨 단발머리의 두 여자아이가 고급 세단의 옆을 지나갔다.
여전히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그 아이들이 세단의 옆에 왔을 때,
이 녀석은 커트머리의 여자아이의 얼굴을 무척이나 유심히 살펴보았고,
그 와중에도 그들을 실은 세단은 정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이곳을 빠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