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7/140)

  사실 그 녀석은 우리 중에...

  "주인,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다."

  "응?"

  영준이 방금 중얼거린 말은 청각이 뛰어난 삼색만 들을 수 있었다.

  '이 고양이가 또 왜 이래?'

  카렌은 삼색이 들어 있는 우주선 가방을 꽉 손으로 잡으며 영준에게 다가갔다.

  "축하한다."

  "다 카렌님의 덕분입니다."

  1등급.

  ?

  자신을 아득히 뛰어넘은 그 마나량에 명길이 말을 잃었던 명길이 그 모습에 열이 확 뻗치고.

  `말도 안 돼. 이 아저씨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가련한 인간이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린 결론.

  꾸욱

  `그래 기계가 뭔가 이상했던 거지.`

  재빨리 리셋 버튼을 눌러 측정 기계를 초기화시켜버린 명길은 몰래 등급이 표시된 결과지를 몰래 주먹을 쥐어 구긴다.

  "아저씨. 이거 기계가 뭔가 오류가 있었나 봐. 다시 해 봐. 이번에는 단계별 측정으로 바꿔서 해보자고."

  "그러죠."

  영준이 다시 올라서고 모두가 다시 측정기의 바늘을 바라본다. 아까의 측정과 달리 여러 숫자들이 화면에 떠오른다.

  ?

  [측정을 시작합니다. 안내음이 나올 때까지 움직이지 말아 주세요.]

  처음의 바늘은 당연하게도 6등급 부터 시작하고, 서서히 상승한 바늘이 5등급을 가리켰다.

  [띵!]

  `그래, 5등급이 딱 적당...`

  역시나. 명길이 속으로 안심하고 있을 때.

  [띵!]

  4등급을 알리는 명쾌한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띵!]

  이어서 3등급.

  이제 명길의 여유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저 기계와 아직도 평온한 표정으로 서 있는 영준을 둘러볼 뿐.

  [띵!]

  "2...?"

  결국 자신의 마력 등급을 넘어버리자 명길은 이제는 경악한 얼굴로 기계를 톡톡 쳤다.

  "이거 뭔가 잘못..."

  [띵!]

  "씨발! 역시 기계가 망가졌어! 이봐!"

  마침내 1등급에 바늘이 도달하자 명길이 발작적으로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는 측정실을 나가 관리자를 불러냈다.

  "무슨 일이십니까?"

  급하게 왔는지 옷이 흐트러진 채로 한 남자가 측정실로 들어온다.

  "이거 기계 확인해봐! 어제까지 6등급이었던 이 아저씨의 마나 등급이 1등급이 나왔다고!"

  "아이고! 확인해보겠습니다."

  상황 설명을 들은 관리자의 생각도 명길이랑 똑같았다.

  이미 각성한 지 한참 지난 중년의 남자의 마나량이 급격하게 상승한 전례는 여태껏 없으니까.

  "어? 잠시 이리 와보시겠어요?"

  그런데 여러 수치를 확인해 본 관리자가 잠시 영준을 부른다.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다시 한번 해보시죠."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띵!]

  "음..."

  이번에도 1등급에 위치한 측정기의 바늘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저...명길님이 한 번 측정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래! 이 아저씨가 1급이면 나는 어떻겠어? 어딜 이 고물 따위로..."

  [띵!]

  3등급.

  하지만 이내 모니터에 표시된 성적.

  1등급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숫자에 명길이 이빨을 으드득 깨물었다.

  "그럼 전 이만..."

  일반인인 관리자가 불똥이 튀기 전에 눈치 빠르게 자리를 뜬다.

  헌터들에게 괜히 치인 적이 한 두 번인가, 게다가 눈앞의 분노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질이 나쁘다는 권력과 힘을 가진 양아치다.

  "두 번이나 확인했으니 됐지? 그럼..."

  이번에는 명길이 검사 결과지를 가로채지 못하게 카렌이 재빨리 기계로 가서 서류를 손에 넣었다.

  "말...도 안 돼."

  그 와중에도 명길은 세상 잃은 표정으로 계속 자신의 등급이 표시된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통, 통.

  "응?"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유리를 두드리는 청량한 소리.

  명길이 뭔가 해서 돌아보니 웬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을 향해 가방 안에서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었다.

  "고양...이..."

  방금 자신을 매몰차게 차 버린 그 건방진 직원도 그렇고 저 삼색 고양이도 그렇고, 왜 저런 요물을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까.

  "그럼 가지. 그럼 이제부터는 다른 층으로 가나?"

  "네. 따로 랭킹층이 있습니다. D등급까지는 마나 측정기로, C등급 이상은 기존 순위에 도전해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명길은 원수를 노려보듯 둘을 째려보며 따라 나왔고 영준은 직원에게 측정서류를 내밀었다.

  "아쉽겠지만...어? 마나량이...1등급이시네요?"

  미리 생각해뒀던 위로의 말을 건네려던 직원은 생각지도 못한 등급에 자기 눈을 비비며 서류를 멍하니 바라 보았다.

  "저..."

  "아...네! ?그럼 D등급 헌터 신분증 바로 발급해드릴게요."

  영준이 부르자 한참을 그대로 있던 직원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다.

  "아뇨. 그건 조금 있다가 해주세요."

  "네?"

  당장 신나서 달라 그럴 줄 알았던 영준에게서 의외의 말이 들려온다.

  "C등급에 바로 도전할 생각입니다. 두 번 일하실 필요 없습니다."

  "네? 아...가능은 한데..."

  누구나 자신의 바로 위 등급으로 도전은 된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시스템. 영준은 D급이니 C급의 누군가에게 당연히 랭킹전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게이트 출입 이력이나 대련 기록이 아예 없으신데.`

  소위 말해 장롱 헌터증이다.

  "여기 심명길 헌터에게 도전합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직원은 입을 떡 벌렸다.

  잘 못 듣기에는 영준이 너무나도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내뱉었다.

  게다가 몸은 명길 쪽으로 한껏 돌아갔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어..."

  모두가 멍하게 영준을 바라보았다.

  "봐. 재밌는 일 벌어진다고 했지? 역시 우리가 제대로 키운(?) 보람이 있어."

  한 고양이가 시원한 맥주를 마신 듯 감탄을 토하고, 카렌도 피식 웃었다.

  ?

  `마음에 담아뒀네.`

  자신이 말리긴 했다지만 아까부터 은근하게 저 망나니를 보는 영준의 눈에는 차가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안 됩니까?"

  "되긴 합니다. 하지만..."

  저놈의 아빠가 대형 길드장이고 이겨도 문제라는 걸 어떻게 대놓고 말하나.

  직원은 차마 속에 담아 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럼 하죠. 혹시 겁나십니까? C급 심.명.길 헌터님?"

  "...으드득...랭킹실로 따라와. 마나량만 많은 멍청이에게 실전을 보여주마. 방식은?"

  "장비전으로 하겠습니다."

  둘의 으르릉거림을 보면서 카렌은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저런 거름 하나 있는 게 시선 끌기 좋겠어.`

  영준이 생각보다 더 잘해주고 있다.

  "우리는 관람석에 있을 테니까. 이거 챙겨가. 비어드가 말했던거야."

  네모난 백팩을 넘겨받은 영준이 카렌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따로 선수 대기실로 이동하는 영준을 보내고 카렌은 랭킹실 관람석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주인, 장비전이 뭐냐?"

  "도전자는 원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대. 하나는 협회에서 마련한 기본 무기를 쓰는 대련. 하나는 장비 무제한 전."

  [도착했습니다.]

  "흐아압!"

  "크앗!"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힘찬 기합 소리가 들려온다.

  "와아아, 여기 만화에 나오는 시합장 같다."

  크고 작은 네모난 경기장들 위로 대련과 랭킹전을 치루는 헌터들.

  투명한 방어막 안으로 화려한 기술들과 무기들이 서로 격돌한다.

  "주인, 저기 메인 경기장에 영준이 보인다."

  중앙에 있는 가장 커다란 무대.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망나니 녀석이 억지를 썼는지 용케 저곳을 잡았다.

  "오...무슨 일이야? 왜 중앙 경기장에 명길이 올라가 있어?"

  나름 안 좋은 쪽으로 유명인사인 탓에 층에 있던 모두가 중앙 쪽으로 몰려든다.

  "상대는 갓 D급이 됐다는데? 그냥 또 시작된 거지."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헌터들은 영준을 향해 동정의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는 긴급 의료팀에게 손짓하더니 하는 말.

  "저 아저씨 쓰러지면 바로 데리고 나가요. 또 생사람 하나 잡을 것 같으니까."

  "그럼 곧 시작하겠습니다."

  둘 다 양측에서 걸어 나와서 심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그런데 둘의 장비가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와...저게 다 얼마야?"

  주변의 사람들이 명길이 몸에 두른 고가의 헌터 물품들을 보며 혀를 찼다.

  강철도 두부처럼 베는 명검.

  단단한 합금으로 만든 방패.

  질긴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가죽 갑옷.

  손에는 마나 활용도를 높여주는 고가의 반지들.

  그에 비하면 영준은 정장 한 벌에 꼴랑 뒤로 멘 가방이 전부였다. 헌터가 아니라 당장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이라도 믿을 정도.

  "주인, 저 가방은 뭐냐?"

  "비어드가 요즘 무슨 인간들의 히어로 시리즈 영화에 영감을 받고 만들었대. 근데 내가 봐도 좀 멋지더라."

  "그래?"

  자신의 주인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삼색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영준이 등에 멘 가방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많은 헌터가 저들의 결투를 보러 지금 이 층, 랭킹실에 와 있었다.

  `잘 되고 있군.`

  카렌이 주변을 둘러본다.

  아까는 꺼져 있던 저 무대를 찍고 있는 카메라에 빨간불이 켜진 게 보인다.

  파업 때문에 쉬고 있는 모든 헌터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빨간 버튼을 누르고 팔을 좌우로, 다리는 어깨 넓이로 벌리고 가만히 있어. 돌아오면 술 잊지 말라고!]

  ??

  한편, 자신이 실시간으로 유명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영준은 지금 비어드의 쪽지를 읽느라 바빴다.

  역시나 간결하고, 호탕한 드워프다운 쪽지다.

  "이렇게?"

  촤르르르르륵!

  영준이 시킨 대로 하자 가방이 뒤에서 쫘악 펼쳐지더니 매끄러운 금속이 전신을 감싸 안는다.

  "...저거, 뭔지 알겠다. 날 수 있냐? 영화에서는 날던데."

  "아직 날 수는 없는데 방어력이랑 공격력은..."

  "크아아아악!"

  영준이 내지른 주먹 한 방에 방패가 구겨져 버리며 명길이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구석에 처박힌다.

  "경기 종료! 도전자, 오영준 헌터 승리!"

  "...괜찮다고 하던데."

  역시 드워프의 기준에서 '괜찮다'는 조금 위험한 단어다.?

  "방금 그 속도... 절대 D등급은 아니야."

  "저 갑옷 덕분이가? 그럼 장비빨?"

  "장비전에서 그딴 게 어딨어. 이기면 끝이지. 현장에서는 그것도 능력이야."

  허무하게 결판 난 랭킹전에 모두가 웅성댄다. 심명길이 소문은 그래도 확실히 C등급 헌터의 실력은 갖추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갓 D급으로 올라온, 40대의 중년에게 당할 놈은 아닌데...

  아삭...

  혼란스러운 주위에도 유일하게 여유로운 한 명의 인간과 고양이는 카라멜 팝콘과 콜라를 흡입하고 있었다.

  "아냐...이건..."

  웅성이는 주변.

  자신을 향한 비웃음으로 느껴지는 눈초리들.

  50줄을 바라보는 보잘것없는 아저씨에게 졌다는 열등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명길은 또다시 습관적으로 자신의 패배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내가 질 리가...그래, 네 장비가..."

  "그럼 대련전으로 다시하죠."

  영준이 기다렸다는 듯이 먼저 제안을 던진다.

  "...쟤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왜 주인이 보이냐?"

  완벽하게 한 사람을 파멸시키겠다는 광기가 영준의 눈에서 느껴지자 삼색이 팝콘을 입에 문 채 웅얼거린다.

  "...정말 다시 하시겠습니까? 이미 등급 심사는 도전자의 승리로..."

  "아! 하겠다잖아!"

  심판이 영준을 말리려다 명길과 무대 바깥에 있는 명길의 아빠인 길드장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는다.

  "그럼 각자 원하시는 무기를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명길은 연습용 목검. 영준은 작은 방패만을 들었다.

  "흠...이젠 힘들겠지?"

  "그렇겠지. 근데 왜 다시 하는 거야? 이미 명길의 등급은 차지했잖아."

  "그래도 눈치가 있는 거지. 저렇게 끝나면 저 놈의 아빠가 가만 있겠어?"

  헌터들이 작게 수근거리며 안쓰럽게 영준을 바라본다.

  이기긴 했지만 냉혹한 현실의 벽 앞에 부딪힌 중년에 대한 위로였다.

  "꾸잉,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귀를 쫑긋 거리며 모든 대화를 들은 삼색이 카렌의 품에서 속삭인다.

  카렌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저 시합은...

  "경기 시작!"

  심판의 손이 내려짐과 동시에 영준이 허리를 숙이며 명길의 품으로 파고 들기 시작했다.

  끼기기긱

  상대의 목검이 황급히 돌진을 막으려 영준의 머리 쪽으로 내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곧바로 공격을 빗겨낸 영준이 곧바로 발을 올려 무릎으로 복부를 가격한다.

  "꺼어억..."

  누가봐도 명백한 실력차이.

  단숨에 무릎을 꿇는 명길을 보고 사람들은 제 눈을 의심하며 순간 좌중에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몇 분 전까지 F급 헌터였던 평범한 40대 중년 아저씨가 나지막이 세상에 선포한다.

  "이제 B급에 도전하겠습니다."

  고양이가 짝짝 박수를 치며 영준이 끼고 있는 이어폰으로 응원을 날린다.

  "그렇게만 해라. 우리 중에서 최약체의 힘을 보여주란 말이야!"

  "...그건 대체 무슨 말이야?"

  조금 많이 이상한 응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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