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4/140)

  더 강한 힘!

  드래곤 하트.

  마법의 종주. 감히 모든 종족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용의 심장.

  "물론 내가 추구한 로드의 심장 출력까지는 구현 못 했지."

  실제로 드래곤 로드의 펄떡이는 심장을 볼 수 있었으면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를 죽여서 꺼낼 순 없지 않은가.

  둥실

  주먹만 한 작은 돌멩이를 쥐고 카렌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엘리야. 조금 있다 내가 무전으로 말하면 신성력을 전력으로 쏟아부어 줘."

  "준비하고 있을게요."

  카렌의 말에 어떠한 의심과 망설임도 없이 나온 엘리의 대답. 이어서 안심하라고 귀의 이어폰을 톡톡 쳐 보인다.

  "절지아님, 한길님. 신성력을 모을 동안 저를 보호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모두 성녀님을 모셔라!"

  자칫하면 이미 잡은 기세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명령이었지만 성전사들은 곧바로 엘리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단번에 끈끈하게 모여든 순백의 장벽. 이천의 성전사들은 하나 되어 매의 눈으로 주변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너는 원래 빌딩이 있던 쪽으로 가 있어. 모습이 드러나면 바로 들어가 정찰해서 게이트 위치를 알려주고."

  [알았다!]

  삼색의 귓속에 낀 이어폰으로 카렌의 목소리가 전해지고 곧바로 고양이가 날쌔게 지붕을 넘어 사라진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쉐에에엑!

  카렌이 빠른 속도로 위로 치솟았다. 이내 구름까지 도달한 후.

  우웅...

  카렌이 손바닥 위로 마나를 집중시키자 그 위에 있던 돌이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애교부리듯 몸을 부르르 떤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본 카렌이 미소를 지으며 은빛 원반에 돌을 실어 앞으로 띄워 보낸다.

  "잘 부탁한다."

  연금술사로서의 필생의 역작인 인공 드래곤 하트. 하지만 카렌은 저 돌멩이를 다른 이름으로도 부르곤 한다.

  현자의 돌.

  출력은 드래곤 로드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한 카렌은 결국 마지막에 다른 쪽으로 자신의 발명품의 방향을 틀었다.

  적응력.

  저 돌은 기억한다.

  마치 지혜로운 현자처럼 자신에게 가해진 가장 강렬했던 충격에 적응해 유지한다.

  그리고 지금 카렌이 가진 가장 강한 무기는...

  기이이잉!

  카렌이 목걸이 아공간을 왼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의장에게 받아 온 물건을 꺼내려 입구를 열었다.

  "미친..."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삼색이 카렌의 아공간 속에서 나온 뭔가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먼저 매끈한 원뿔형의 핵탄두가 선두로,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몸체에 적힌 색이 바랜 글자.

  [Россия / 러시아]

  그 글자 옆으로 아래부터 빨강, 파랑, 흰색의 가로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의 국기가 보인다.

  대격변 후 소실되고, 폐기되어 정말 소수의 핵만 비밀리에 보존되었는데 이게 그중 하나다.

  "비어드가 태양을 만들려면 온도를 1억 도까지 올려야 한다고 했지."

  그 녀석은 지구의 기술과 마나를 활용해서 지하 기지의 인공 태양을 만들었다고 했다.

  ?

  무슨 듣기만 해도 복잡한 원자, 분자, 충돌, 융합, 마나 공학술 등 전문용어를 토해내길래 카렌은 그냥 중간, 중간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이론상 핵폭발 시 도달하는 온도는 1억 5천도 이상. 충분하지."

  카렌의 특기인 임시방편이 또 나왔다.

  어차피 모로 가나 서울로만 가면 되지 않겠나.

  카렌의 주위에서 서서히 은빛 물결이 피어나 주변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오즈로와 싸울 때도 써먹은 본인의 전매특허, 공간 장악.

  카렌이 핵탄두를 현자의 돌 옆에 놓고서는 꼼꼼하게 자신의 실드로 둥글게 감싼다.

  이 정도면 저 내부는 또 하나의 차원을 만든 거나 다름없다.

  딸깍.

  ?

  그리고 품 안에서 꺼내든 무선 리모콘. 불길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붉은 버튼이 정 중앙에 보인다.

  "후우..."

  잠시 심호흡한 카렌이 선글라스를 끼고는 손가락으로 꾸욱 버튼을 눌렀다.

  우우우우웅!

  시야, 소리마저 완벽하게 차단한 내부에서는 아무것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거대한 폭발력은 자신을 가둔 감옥을 부수려 날뛰고.

  "큽..."

  그런 거센 진동을 그대로 받아내는 카렌의 입술은 굳게 다물어지고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면서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당연하다.

  한 일개 인간이 혼자서 몇천 년에 걸친 인류 과학 기술의 정점을 견뎌내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에..."

  성전사를 시작으로 광신도, 이제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모든 사람이 하늘을 바라본다.

  상공에서는 거대한 은빛 물결의 구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출렁이고 있었다.

  아군이고 적군이고 간에 모두가 간절히 기도했다. 만약 카렌이 지쳐서 저게 뚫린다면...

  "괜찮을 거 같은데?"

  그런데 모두가 걱정하는 이 와중에 삼색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할짝

  동물, 아니 영물이란 자신의 생각보다 본능이 먼저 반응하는 존재다.

  그런데 혓바닥의 감촉에서 느껴지듯 지금 핥고 있는 털 한 올조차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다."

  오로라에서는 그렇게 불안했는데 말이다. 왠지 카렌이 성공할 거란 `감`이 느껴진다.

  `아니...이건 감 정도가 아니라...`

  문득 백호와 현무가 설명해 준 청룡의 능력 중 하나가 떠올랐다.

  `예지?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는데.`

  세월이 흘러야만 발현되는 만큼 이제 청룡이 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삼색이 지금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

  "내가 그만큼 재능이 있다는 거지! 저거 봐라. 내 예상이랑 똑같이 흘러간다!"

  주변에 아무도 듣는 사람도 없는데 삼색의 앞발이 여보라는 듯 앞발로 카렌 쪽을 가리켰다.

  두근, 두근.

  당장이라도 터질 듯 요동쳤던 물결이 어느새 서서히 안정되고 있었다

  [엘리, 지금이야. 돌을 향해 신성력을 쏟아 부어.]

  "네!"

  카렌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엘리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응답하소서."

  경건하게 요청하는 성녀의 기도는 여신을 흡족하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편애(偏愛)

  가장 잔인하면서도 자애로운 신의 뜻이 자신이 아끼는 딸의 요청을 받아 도시 위에 강림한다.

  번쩍!

  엘리의 몸에 응축되어 있던 푸른 신성력들과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빛줄기들이 만나 보기 좋은 하늘색 기둥을 만들어 낸다.

  "됐군."

  카렌이 이제는 역할을 다한 은빛 물결을 뒤로 물렸다.

  방사능.

  핵폭발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최악의 재앙. 하지만 인간의 기술은 신을 이길 수 없었다.

  우우웅...

  기둥 속에 통째로 갇힌 방사능은 중화되어 사라져 버렸고 현자의 돌은 서서히 주위의 색에 동화되어 하늘색으로 물들어 간다.

  "저건..."

  인간은 경외하는 존재를 목격할 때 자신의 두 손을 모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성전사들은 일제히 중얼거렸고 모든 지상의 존재가 하늘에 떠오른 하늘색 태양을 보고 기도했다.

  "끄에에에엑!"

  어둠 속의 존재들은 신성력의 뙤약볕 앞에서 비명만 남긴 채 사라졌으며 도시로 몰려들던 부정적인 감정조차 그 모습을 단번에 감췄다.

  "태양이...함께하길."

  이토록 이 구절이 잘 어울리는 순간이 있을까. 성전사들은 자신들의 심판관과 성녀에게 경의를 표했다.

  쨍그랑!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바쁘게 움직이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제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밤의 장막 안에 숨어있던 빌딩이 나타나자 삼색은 유리창을 깨면서 화려하게 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말 그대로 번개처럼 움직이며 층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1층, 아무것도 없고... 2층, 3층, 4층...그런데 주인. 여기 타락자도 있긴 한데... 헌터들이 엄청 많다.]

  "응?"

  그 와중에도 삼색은 보고를 잊지 않았다.

  "그냥 각성자가 아니라 헌터라고?"

  [확실하다. 분위기가 다르다.]

  그저 운 좋게 능력을 각성한 인간이 아닌 게이트를 오고 가며 경험을 쌓은 헌터들을 삼색은 정확히 구분해 낼 수 있었다.

  "일단 나도 그쪽으로 갈게. 계속 보고 있어."

  카렌이 빠르게 빌딩 쪽으로 날아가는 동안에도 삼색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여기는 왜 이렇게 어둡...우아악!]

  "왜 그래?"

  카렌이 다급하게 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삼색을 불렀다.

  [사람들 머리가 둥둥 떠다닌다. 막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는데? 힘들어...짜증나...]

  "연합에서 실종됐던 사람들인가 보네. 계속 둘러봐. 게이트가 있을 거야."

  "알았다."

  이놈들의 원래 계획은 납치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이용해서 빌딩 안에서 느리지만 확실하게 힘을 모을 계획이었나 보다.

  [여기도 사람들...사람들... 찾았다! 꼭대기 층이다! 역시 악당들은 높은 곳을 좋아한다니까?]

  "지금 들어간다.."

  "응? 어떻게?"

  "파편 조심해라."

  쨍그랑!

  이제는 자신의 차례였다. 카렌이 앞으로 손을 뻗자 물결이 와르르르 유리창을 통째로 부숴버린다.

  그리고 가볍게 주인이 들어 올 수 있게 발 받침이 되어주는 은빛 물결에 발을 담근 후.

  `저거군. 조금만 늦었으면 밖으로 나왔겠어. 색깔만 다르고 형태는 비슷하군.`

  눈 앞의 상황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핌불이 나왔던 것과 똑같이 생긴 게이트.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는 검은색 젤리 형태의 몸에 섬뜩한 눈 하나가 반쯤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타락자들도 군데군데 보였지만 과연 삼색의 말대로 헌터들이 지금 있는 층에 가득했다. 그것도 A급 이상으로 보이는 놈들이 다수.

  "이렇게 헌터들이 많았나?"

  하지만 생각도 잠시. 카렌은 오로라에서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까드드드드득!

  은빛 물결이 울렁거리며 천장으로 치솟아 넓게 퍼지고 섬뜩한 소리와 함께 아예 지붕 전체를 뜯어버린다.

  "미친..."

  헌터들이 눈앞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연실색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호오...과연 뭔가 다르긴 하네."

  마지막 층이니만큼 단번에 하늘이 보이며 태양의 빛이 쏟아진다.

  하지만 신성력의 빛 앞에서도 게이트 밖으로 몸을 드러낸 어둠은 나오려고 몸을 꿈틀거릴 뿐 부하들처럼 단번에 소멸하지 않았다.

  "내가 비어드처럼 분자, 원자, 뭐 이런 복잡한 건 모르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알지."

  쩌저저저적!

  카렌의 손끝에서 피어난 거대한 얼음덩어리.

  사각, 사각

  물결이 어느새 날카로운 조각칼로 변해 무 썰듯 얼음덩어리를 순식간에 볼록하게 깎는다.

  츠츠츠츠

  그리고 다시 까끌까끌한 얼음의 표면을 사포로 문지른다.

  [감히 하찮은 인간...]

  카렌이 한창 작업에 열중일 때, 핌불과 같이 머릿속에서 들리는 놈의 목소리.

  아니, 이 놈의 경우에는 어둠이라는 놈의 속성에 걸맞게 음산한 것이 사념이라고 해야 맞다.

  "아, 시끄러워."

  주변의 사람들은 놈의 기운에 괴로워하지만 카렌은 오히려 놈에게 짜증을 퍼부었다.

  "어차피 나중에 볼텐데 귀찮게 왜 기어 들어오려고..."

  ?

  끄드드드득...

  [이...감히, 이 슬라이프님을...]

  놈의 거대한 몸이 카렌의 비아냥에 분노로 떨리자 게이트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요동친다.

  "오! 주인! 쟤도 살 좀 빼야겠다!"

  거기다 얄미운 고양이의 한 마디까지 첨가하니 분노를 자양분 삼아 놈의 본체가 거의 다 지구로 발을 디뎠다.

  하지만 동시에 카렌의 준비도 끝났다.

  계속된 사포질 끝에 매끈해진 얼음덩어리가 완성되었고 카렌은 얼음을 놈의 위로 띄웠다.

  "이렇게 하면..."

  교육 기초과정을 수료한 누구나 알고 있는 과학 상식.

  돋보기의 볼록렌즈로 태양 빛을 모으면 불을 붙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거대한 얼음 돋보기로 신성력이 듬뿍 실린 빛을 한 점에 모으면 어떻게 될까.

  치지지지지지직!

  [그어어어어어!]

  송곳처럼 찌르는 빛에 슬라이프는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주춤주춤 게이트 안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제 좀 반응하네? 어차피 조금 내성이 있어봤자 본질은 똑같잖아. 그저 더 강한 힘이 필요했던 것 뿐이지."

  슈우우욱!

  ?

  마지막 발악.

  얼음 돋보기를 깨려고 놈이 자신의 본체의 일부를 날카로운 창으로 변화시켜 뻗었다.

  딱!

  하지만 카렌은 코웃음치며 손가락을 튕겼다.

  청량한 소리와 함께 손가락 끝에서 환하게 터져나온 빛이 어둠의 창으로 쏟아진다.

  스스스스스...

  바람에 날리는 재처럼 놈의 공격은 빛에 흐트러져 사라져버렸다.

  [...내가...]

  "너희는 항상 말이 너무 많아. 아! 그리고 네가 핌불보다 좀 덜떨어진다. 걔는 게이트 밖으로 나오기라도 했지, 너는 거기서 추하게 끼어서 그게 뭐냐?"

  [크아아아아아아악!]

  카렌은 이미 핌불과의 대화를 통해 놈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지금껏 빛 때문에 받은 고통보다 자존심이 더 상했는지 슬라이프가 괴음을 내지른다.

  "...가끔 보면 주인이 제일 잔인하다."

  삼색이 잔인한 정신 공격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그렇게 슬라이프는 지구에서 고통만 받다 결국 게이트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근데 뭔가 허무한데?"

  삼색이 자신의 앞발을 핥으며 중얼 거렸다.

  "현실은 예방이 최고야. 저거 나오면 얼마나 귀찮아지는데."

  "그거 맞다! 원래 변신 끝나기 전에 조져야지!"

  좀 이상한 비유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적에게 시간을 주고 결국에는 멋지게 물리치는 주인공? 그러다 죽는 놈 수도 없이 봤다.

  "너희는 어떡할래?"

  ?

  주인을 잃은 게이트는 힘 없이 무너져 내렸고 카렌은 피곤한 얼굴로 아까부터 어쩔 줄 모르는 헌터들에게 물었다.

  놈들을 보는 카렌의 눈빛은 여러 생각들을 담고 있었다.

  왜 헌터들이 여기 있을까.

  의장이 말한 우월주의자들이 침략자들과 관련이 있나?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는 그게..."

  우물쭈물하며 뭔가 말하려는 헌터들을 보며 카렌은 습관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잠시 멈췄다.

  지금 카렌의 눈동자에 담긴 가장 큰 감정들은 귀찮음과 피곤함이었다.

  ?

  일단 뭐가 됐든 지금은 쉬고 싶다.

  그 동안 제 시간에 퇴근 못 하던 엘리의 심정이 이런 거였구나.

  "후우..."

  카렌이 눈두덩이를 거칠게 문지르자 눈이 살짝 퇴폐적으로 물든다. 그리고는 아직도 말을 끝맺지 못한 헌터들을 향해 쏘아붙였다.

  "집에 가게 빨리 꿇어. 안 그러면 다 죽여버린다."

  잠시 지구가 아닌 벨리알에서 망나니라 불렸던 카렌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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