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3/140)

  부족하면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다들 이쪽을 보고 있다."

  도시 내부로 진입하자 건물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인기척. 삼색이 눈을 가늘게 뜨고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모든 창문에는 마치 짠 것처럼 커튼이 드리웠지만, 야행성 고양이의 어둠에 특화된 눈동자는 그 사이로 자신들을 주시하는 인간들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유령도시 같군."

  새벽이 황금시간대인 술집과 클럽, 심지어24시간 편의점조차 문을 닫은 건 확실히 이상하다.

  오랫동안 운영하지 않은 듯 가게들의 간판에는 먼지가, 입구에는 굵은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딱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도시. 게다가 아까부터 사방에서 느껴지는 끈적함이 카렌과 삼색을 기분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

  "굉장히 짙어."

  거리 하나, 건물 하나에 내려앉아 있는 끈적한 타르 같은 어둠. 대체 침략자들과 광신도들은 여기서 뭘 하는 걸까.

  "그거 같지 않냐."

  "뭐?"

  "TV 보니까 요즘 사이비 종교라든가, 다단계가 기승이잖냐. 그게 도시 단위로 이루어진 거다."

  그건 확실히 소름이 끼친다. 여럿이 동시에 똑같은 말만 해도 흔들리는 게 사람인데 도시 전체가 한 목소리라면...

  "어쨌든 제대로 찾아왔어."

  카렌의 눈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밝게 빛나고 있는 한 건물을 향한다.

  몇십 층은 되는 빌딩으로 신세계의 본사다.

  "끄르르륵..."

  길을 걷는 도중 어둠 속에서는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 소음이 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이상하지."

  연합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어둠에 대한 대책은 간단하다. 밝은 곳에 있을 것. 그러면 최소한 갑자기 잡혀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도시는 너무 어둡다. 이 또한 이 도시가 침략자들과 관계가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

  ?

  "이 도시 인구가 몇이라고?"

  "7만 가까이 됩니다."

  카렌이 걸으면서 절지아의 말을 듣고는 문득 개미지옥에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빛나는 빌딩은 자신들을 향한 날카로운 개미지옥의 이빨.

  지금 자신들을 향하는 수천, 수만의 눈초리는 수렁으로 빠뜨리는 모래 늪.

  "그래도 엘리가 미리 말해줘서 다행이야. 이 사람들을 언제 혼자 되돌리겠어."

  처음에는 귀찮아서 별 생각 없이 데려왔지만 광신도들의 '치료'를 위해서는 이만한 인재들도 없었다.

  성전사.

  무기도 쓰지 않아 적당히 힘 조절이 가능하고, 정신력은 최상에 어둠에 잡아먹힐 염려도 없는 존재들.

  `벨리알에서는 종교단체라면 치를 떨었는데.`

  보통은 본보기로 몇 명 죽이면 겁나서 더 이상 달려들지 않는다. 하지만 순교라는 명목으로 달려드는 지독했던 놈들.

  하지만 이제는 같은 편이 되니 든든하다.

  "준비됐지?"

  "예!"

  성전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불과 이천의 숫자로 몇 배에 달하는 적들을 상대해야 하는 절대적인 열세.

  하지만 신앙으로 무장한 이들의 얼굴에는 두려움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신성력을 실은 주먹으로 때리면 분노 조절에 효과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마음껏 패도록."

  처음 서울에서부터 느꼈고 의장이 확인해준 결과, 광신도들은 외부적인 `힘`에 의해 정화할 수 있었다.

  다만 정부에서는 알면서도 할 수 없는 방법이다. 경찰들이 시민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고통을 준다?

  사진 한 장만 찍혀도 당장 연합 의장은 탄핵당하겠지.

  "근데 그냥 신성력보다는 `주먹`으로 때려서 돌아오는 거 아니냐? 하는 거 보니까 그러는 것 같던데."

  옆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끼어들어서는 눈치 없게 조잘댄다.

  "어쨌든 돌아오잖아. 안 죽이는 걸 고마워해야지."

  카렌은 냉정하게 받아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굉장히 인도적인 방법이다.

  벨리알에서는 조금만 불안한 징조가 생겨도 일단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렸는데 말이다.

  "그건 맞다."

  "너는 곳곳에 보이는 엘프나 인간 타락자들을 정화해."

  "주인은?"

  "난 엘리 지켜야지."

  "...제일 하는 거 없어 보이는데."

  "어허!"

  끄르르르르륵!

  긴장감 없는 둘의 만담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구역을 침범한 침입자들이 거슬렸는지 어둠이 스멀스멀 몸을 이쪽으로 뻗는다.

  하지만 이쪽에는 `악`을 상대할 그야말로 최적의 인물이 존재했다.

  "어둠은 태양의 빛을 이기지 못하리니 그것이 순리이고 믿음이니라. 그 빛 속에서 너희를 구하고, 너희의 이웃을 돌아보라. 그리하면 내가 기뻐하리니."

  엘리가 낭랑한 목소리로 신성력을 담아 성서의 구절을 낭송하자 주변의 성전사들은 감동으로, 어둠은 고통으로 몸을 부르르 떤다.

  "봐. 이게 제일 중요하다니까?"

  "..."

  카렌의 손을 꼬옥 잡으며 성전사들을 이끄는 엘리를 보니 이번에는 삼색도 입을 꾸욱 다물었다.

  우우우웅!

  성전사들의 몸이 성녀인 엘리의 신성력과 공명하면서 눈처럼 하얀빛이 뿜어져 나온다.

  끄륵, 끄륵

  점점 성전사들에게서 나오는 신성력이 강해지면서 서서히 칠흑 같은 밤을 밀어낸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불청객들이 듣기 싫은 비명을 내질렀지만 성전사들은 계속 전진했다.

  "이거 멋있네. 나도 저런 코트 하나 마련해야지."

  삼색이 카렌의 어깨 위로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무릎까지 오는 하얀 롱코트에 마치 잘 훈련된 군인처럼 빛을 뿜으며 걸어가는 성전사들은 마치 신화에 나오는 천사 같았다.

  "길을 잃은 자들에게 지팡이를 쥐여주어라. 인도하라. 보살펴라. 가엾게 여겨라. 양을 보살피는 목자가 되어라. 하지만."

  점점 엘리 목소리가 커지며 마치 전장에 나서기 전 장군의 연설처럼 성전사들을 고양시킨다.

  "만약 그들의 눈을 가리고, 간교한 목소리로 속삭여 절벽으로 이끄는 `악`이 있다면 어쩌겠는가?"

  이미 엘리 연설에 한껏 감화된 성전사들의 얼굴이 분노로 물든다.

  "솔라리 교단에서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어느새 저 앞에서 보이는 신세계의 본진과 주위를 빈틈없이 포위한 사람들.

  지금 자신들에게 말을 건 놈을 보는 카렌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엘프군.`

  저 놈은 핌불에게 세뇌당해 신세계라는 종교를 만든 핵심 인원이다. 과연 주요 지역이라 그런지 곳곳에 익숙한 기운들이 보인다.

  "이 야심한 밤에 어째서..."

  "닥쳐."

  ?

  카렌이 놈의 말을 가차 없이 끊고는 엘리의 손을 잡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저들은 이단이다."

  먼저 이단 심판관이 판결을 내렸다.

  "악을 정화해라."

  그리고 성녀인 엘리가 명령했다.

  "태양이 함께하길."

  그것으로 충분했다.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절지아와 한길을 선두로 성전사들은 일제히 파도가 되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돌진했다.

  "막아!"

  광신도들을 지휘하는 중간 관리자, 타락자들이 명령했다.??

  "와아아아아아!

  ?

  시민들이 동시에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무기들을 들고 성전사들에게 달려든다.

  퍼어억!

  굳은살이 가득 박힌 성전사의 주먹이 신성력을 뿜으며 광신도들의 몸을 가차 없이 두드린다.

  "끄에에에..."

  주먹이 복부에 박힌 한 광신도가 허리가 활처럼 꺾이고, 오늘 먹은 것들을 토했다.

  "형제님, 따끔한 매라고 생각하세요."

  다정한 목소리와 말투, 표정과 정반대로 성전사의 주먹은 쉬지 않고 마사지하듯 온몸을 훑는다.

  "이제...그만..."

  "아닙니다. 아직 눈에 불온한 감정이 남아계시는군요. 품에 숨기신 흉기도 제게 숨길 수는 없습니다."

  "꺼어억!"

  삼색이 이리저리 쏘다니며 타락자들을 정화하다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내가 낫지."

  자신이야 그냥 전기 한 번 지지면 다시 돌아오지만 저건...

  "제발...이제..."

  "드디어 분노 조절에 성공하셨군요! 정신을 차리셔서 기쁩니다."

  성전사들의 하얀 코트는 피와 오물로 물들었고 그 앞에서는 사람들이 무릎 꿇고 애원하는 모습이 결코 아름답지는 않았다.

  "저건 못 쓰겠는데?"

  삼색이 아까부터 촬영드론의 기계음이 들려오는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방송인의 눈으로 봤을 때 저 장면은 불합격이다.

  "그래도 두 진영이 격돌하는 장면은 건졌으니 다행이다."

  "크아아악!"

  계속 타락자들을 정화하면서도 삼색은 머리속으로 편집점을 설정하고 있었다.

  신세계를 이단으로 선포하고 연합에서는 당연히 여러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기득권인 솔라리 교단의 횡포라는 둥, 종교탄압이란 등.

  그 때문에 이것들과 침략자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 영상이 필요했다.

  푸욱!

  "찔렀다!"

  그때 한 여자가 환희에 찬 함성을 지른다. 그 앞의 성전사의 복부가 빨갛게 피로 물든다. 장기가 손상된 치명적인 상처.

  물론 일반적인 날붙이라면 성전사의 살갗을 뚫을 수 없겠지만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칼날이 엄청난 속도로 파르르 진동하고 있었다.

  "허허, 축하드립니다. 자매님."

  "어...어?"

  그런데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다.

  성전사가 다정하게 여자의 손을 밀어내고는 칼을 거침없이 뽑아 버리자 상처 부위가 하얗게 빛나면서 빠르게 아물어 버린다.

  쨍그랑!

  여자가 칼을 떨구고 ?믿을 수 없는 표정과 함께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나의 품 안에 있으면 무엇도 두렵지 아니하니 굳건히 맞서 악에 맞서라. 내가 너희를 지키리니."

  지금 카렌의 곁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엘리 덕분이다.

  안 그래도 잘 죽지도 않는 성전사들의 지금의 생존력은 바퀴벌레 이상이 아닐까.

  "어디 가십니까. 여신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셔야죠."

  성전사의 환한 미소에 여자가 주변을 둘러본다.

  깡!

  경쾌한 타격 소리. 쇠 파이프로 머리를 정통으로 맞은 성전사 한 명이 앞에 있는 놈과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놈들이 무려 이천. 게다가 숫자도 전혀 줄지 않는다.

  "아니...너희는...아프지도 않아? 죽는 게 안 두려워?"

  "아픈 것 또한 시련이고, 죽음 또한 여신께 갈 수 있는 축복입니다.?"

  "미친..."

  여자는 해탈한 표정으로 그저 팔을 추욱 늘어뜨리고는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성전사의 사랑의 주먹을 그저 받아들였다.

  ?

  "쟤네는 이름 잘못 지었다. 저게 진짜 `광신도`지. 저기서 웃으면서 사람 패는 것 좀 봐라."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카렌의 어깨 위로 삼색이 내려앉았다.

  "그래도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어. 이제는 패지 않아도 정신을 차리네."

  "꾸잉, 진짜 광기를 보고 안 되겠다 싶은 거지."

  기세 좋게 달려든 선두가 처참하게 맞으며 강제로 회개하는 장면에 시민들은 의욕을 이미 잃어버렸고 이미 철옹성 같던 인의 벽은 붕괴하고 있었다.

  하나, 둘씩 옆에 있는 자들이 사라지자 마치 전염된 것처럼 서서히 단단했던 모래알이 흩어진다.

  "근데 넌 왜 여깄어? 타락자 처리하라니까?"

  "근처는 정화 다 했다! 나머지는 저 빌딩 안으로 들어가던데?"

  "빌딩?"

  "어?"

  카렌과 삼색의 눈썹이 동시에 크게 출렁였다. 분명 몇백 미터 앞에 있던 빌딩이 어둠 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찌르릇!

  갑자기 삼색의 꼬리가 불길함에 크게 떨린다. 그리고 불안하게 심장을 자극하는 카렌의 전조 능력.

  "이건..."

  "그거다. 오로라에서 핌불이 게이트 밖으로 나오기 전의 느낌."

  "하지만 그런 에너지가 없을 텐데."

  오로라에서는 핌불을 소환하기 위해 무려 반신인 세계수의 에너지를 훔쳤다. 그럴만한 동력원이...

  "후...이름값 하네. '어둠'이 그런 의미였나."

  카렌이 이 도시, 정확히는 저 앞으로 밤을 타고 실시간으로 몰려드는 동력원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짜증나...왜 쟤가 더 잘 나가지? 내가 뭐가 부족하다고?]

  [외로워. 다들 어디서 사람을 만나는 거야?]

  [또 취업에 실패했어. 집에는 뭐라고 말하지?]

  하늘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

  분노, 실망, 죄책감, 무력감, 슬픔, 우울 등 사람들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래서 연합을 이 꼴로 만든 거군. 인간의 감정을 이용해 핌불처럼 자신들의 군주를 소환할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던 거야."

  이제는 숨길 여유가 없는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 놈들이다.

  "어떡하냐? 일단 빌딩이 있었던 곳으로 가볼까? 앞에서 직접 강한 빛을..."

  "아니, 그때는 늦어."

  어둠의 군주가 지구에 나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사히 핌불처럼 격퇴하면 좋겠지만 만약 저 놈이 사람들 사이로 도망친다면? 숨은 어둠을 잡을 수 있긴 할까.

  안 그래도 간신히 수습하고 있는 지금 연합의 상황에 결정타가 될 거다.

  "아예 처음부터 못 나오게 해야 돼."

  "어떻게..."

  쑤욱

  카렌이 영혼 아공간에 손을 집어 넣어서 돌 하나를 꺼냈다.

  "그게 뭐냐?"

  "하나 남은 인공 드래곤 하트."

  "...내가 지금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맞아. 아예 게이트의 공급선을 끊을 거야."

  ?원래는 그냥 대충 재밌겠다 싶어서 장난 삼아 준비해 왔던 계획.

  비어드가 만든 지하도시에서 얻은 영감으로 문득 생각해 본 그야말로 미친 생각이다.

  "의장에게 준비물은 받아 왔어. 태양을 띄운다. '밤'을 없애면 놈의 공급원도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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