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인간의 거울이다
"...정화가 안 되는데?"
삼색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놈들의 눈꺼풀을 발톱으로 슬쩍 올렸다.
흰색 동공에는 여전한 분노가, 몸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음...뭔가 다른가? 일단 기절시켜."
만약 본인의 의지라면 가차 없이 죽였겠지만, 강제로 조종당한 건지 아닌지 아직 확신이 없었다.
"일단 엘리가 있는 곳으로 가자. 이 노인도 좀 데려다주자고."
카렌의 아공간에서 험비가 쓰윽 튀어나왔다. 역시 이런 난장판에서는 든든한 사륜구동 자동차가 최고지.
"내가 운전..."
"안 돼."
"절대 안 돼!"
"..."
단번에 삼색의 말을 끊어버린 카렌과 채린은 혹시나 삼색이 고집이라도 부릴까 재빨리 노인을 뒷좌석에 태우고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올라타 버렸다.
"너는 평생 운전 금지니까 다신 말도 꺼내지 마."
"꾸잉..."
부르르릉!
카렌이 시동을 걸고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덜컹! 덜컹!
대부분의 잔해는 험비의 커다란 바퀴와 서스펜션이 어렵지 않게 타고 넘는다.
"저기 뭔가...컥!"
귀찮은 불청객들이나 버려진 차들로 길이 막히면 차 위에 둥둥 떠 오른 볼링공만 한 은빛 구슬이 찾아가서 `처리`한다.
평소에도 차가 막히는 서울의 특성상 오히려 한가로운 국도를 드라이브하듯 평화로운 차 안. 이때를 틈타 카렌이 차량의 A.I에게 명령했다.
"전화 연결. 엘리."
갑자기 찾아가는 것보다는 미리 연락을 해 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연결 중...]
워치와 자동으로 연동된 험비의 내부 스피커에서 몇 번의 통화 연결음이 들린다.
[연결중...현재 고객님의 사정으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자신의 전화를 받았던 엘리의 번호에서 처음으로 부재중 알림음이 들린다.
"많이 바쁘긴 한가 봐."
"그렇겠지. 저기 봐. 여기가 서울인 게 안 믿겨."
채린이 보고 있는 창밖으로는 어디론가 계속 바쁘게 헬기가 날아다니고 하늘은 도시 곳곳에서 올라온 검은 연기들이 가득했다.
"그래도 거리에 사람들은 거의 없어서 다행이네."
"게이트 때문에 익숙해져서 대피소나 이런 곳으로 다 피하지 않았을까?"
확실히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시체가 거의 없다. 지금 뒤에 있는 노인 같은 경우는 지병이 있었거나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근데 너는 뭐하냐?"
그런데 뒷좌석으로 넘어간 삼색이 자꾸 허공에 헛손질하자 카렌이 거울로 보고 물었다.
"나? 방송 중이다."
"...지금?"
"걱정 마라. 풍경만 찍고 내가 입력한 얼굴은 자동으로 모자이크되고 소리도 안 나간다."
삼색이 자신에게만 보이는 자판을 빠른 속도로 두드려 단숨에 100명이 넘게 들어 온 시청자들에게 채팅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임?]
[미친, 지금 밖에서 뭐 함? 그러다 죽음.]
[그래도 낮이라 다행이네. 밤이면 귀신들에게 무조건 죽었을 텐데.]
[지금 갑자기 사람들이 이상해져서 연합이랑 솔라리 교단에서 대피령 내림.]
[나도 지금 대피소 와 있음. 근데 어딨었는데 상황을 모름? 어디 깊은 숲에라도 들어갔다 옴?]
숲은 맞혔다. 다른 대륙에 있는 곳이었지만 말이다.
이제 슬슬 채팅이 많아지면서 삼색의 눈은 빠르게 훑으면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만 골라낸다.
[웬 겁 없는 미친놈이 서울 한복판에서 생중계한다는 소리 듣고 왔습니다.]
[지금 우리 집 밖에도 시끄러움. 그러다 광신도들에게 잡히면 진짜 죽어.]
[광신도 놈들에게 죽는 거 보여주면 기부금 크게 쏜다.]
[##### 계시록에 기록된 세계멸망이 눈앞에 왔습니다. 모두 제가 파는 면죄부를 사시고 천국 가세요. 메카 은행 343-2135223-21232...####]
[대피소 1-233133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찾습니다. 보신 분들은 034-12....]
[미친놈아, 죽으면 돈이 뭔 소용?]
[그러니까 쏜다는 거지 ㅋㅋㅋㅋㅋ]
평소보다 월등히 많은 시청자 수에, 채팅량. 삼색이 뭔가 이상해서 방송 탭을 켜보니 평소라면 몇천 개 되는 방송 방들이 자신을 포함해 몇 개 없다.
아무래도 방송을 킬 여유까지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자신의 방으로 몰린 것 같다.
[오케이 그럼 나중에 또 킴.]
사람이 많아지면서 슬슬 이상해지는 채팅창에 삼색은 미련 없이 방송을 꺼 버렸다.
"아까 만난 이상한 놈들은 광신도라 부른대. 밤에는 무슨 귀신이 나온다는데 이건 잘 모르겠다. 그래도 세상은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일단 인터넷이 되잖아."
정말 심각하면 지금 방송 보는 사람도 별로 없었겠지. 하지만 의외로 집이나 대피소에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 그런지 알겠다. 저기 봐."
눈앞에 나타난 바리게이트. 그 앞에는 경찰들과 멀리서도 눈에 띄는 흰색 코트를 입은 성전사, 사제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얼핏 보이는 내부에는 피난민들을 위한 임시 텐트들이 가득했다.
"모두 이렇게 피해 있나 봐. 그런데 사제들도 총을 들어?"
"꾸잉, 솔라리 교단 전통이다."
솔라리 교단의 성지 전투 때 없었던 채린이 전술 조끼와 방탄 헬멧으로 중무장한 사제들을 보고 놀란다.
가슴에는 교단의 상장인 붉은 태양이 그려진 사제복을 입은 자들이 매서운 눈으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꾸잉, 엘리가 공부할 때 봤는데 신생 종교라 그런지 재밌는 교리가 많더라. 먼저 스스로를 구하라, 그리고 이웃을 구하려면 총부터 닦아라."
"진짜?"
"내가 봤다. 근데 저런 거 보면 그 광신도라는 놈들은 분노 조절이 굉장히 잘 되는 것 같지 않냐?"
삼색이 비아냥거렸다.
방금까지 활개 쳤던 광신도들은 경비가 삼엄한 이곳에서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그래도 오로라 대륙의 타락자들과 공룡들은 목숨도 도외시하고 달려들었는데 말이다.
참 이름값 못하는 녀석들이다.
"그러게? 저건 핌불처럼 직접적으로 세뇌하는 건 아닌가 봐."
"그건 좀 아쉽다."
만약 그랬다면 삼색의 전기로 단번에 정신을 번쩍 깨워줬을 텐데.
"멈추세요."
끼이익
날카로운 못이 촘촘히 박힌 스파이크 앞에서 카렌이 입구를 지키는 성전사의 지시에 따라 차량을 멈춰 세웠다.
"안녕하십니...심판관님?"
모든 교단의 사제, 성전사들에게는 절지아와 뿌리의 강력한 요청 덕분에 카렌의 얼굴이 일급기밀이자 필수 숙지사항이다.
혹시나 이단 심판관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되니까.
"엘리에게 무슨 일 있어? 전화를 안 받던데."
"성녀님은 굉장히 바쁘신 것 빼고는 무사하십니다."
하긴 평소에도 성전사 100명에 뿌리의 인원들이 어둠 속에서 항시 경호하는 사람. 어떻게 보면 연합 의장보다 안전한 소녀가 엘리다.
그래도 직접 들으니 카렌의 마음에서 아까부터 걸렸던 뭔가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다.
"지금 안쪽이 시민들이 많아 혼잡스럽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추가 병력 호출해서 길 열어드리겠습니다."
"됐어. 그냥 걸어갈게. 여기 뒤에 노인만 부탁해. 부상은 거의 없으니 조금 쉬게 하면 될 거야."
안 그래도 바빠 보이는 데 괜히 시선을 끌고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이거 쓰고 들어가자."
야구모자와 얼굴 반 이상을 가리는 마스크를 아공간에서 꺼낸 카렌이 채린에게 건넸다.
"좋은 생각이네."
S급 헌터라 얼굴이 알려진 채린이나 은발의 카렌이나 누가 봐도 너무 눈에 띈다.
통통한 고양이는...뭐 그냥 품에 안으면 키우는 걸로 보이겠지.
[연합 공무원과 솔라리 교단의 지시에 성실히 따라주시기를 바랍니다. 혹시나 주변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신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검문소를 지나 들어가자 기다린 철제구조물 위에 설치된 스피커들로부터 녹음된 목소리가 반복된다.
"나 이 분위기 본 적 있다."
"어디서?"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이런 거 많이 나온다."
이상하게 걷고 있는 근처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채린의 품에 안긴 삼색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좀비 같은 거?"
"그렇지. 그것도 엄청 많고, 요즘은 능력을 쓰는 빌런들이나 곤충들이 진화해서 꼭 이런 곳을 덮친다. 그리고 다 죽지."
"...재수 없는 소리 할래?"
채린이 슬쩍 팔근육에 힘을 주자 삼색이 황급하게 말을 더했다.
"어차피 주인이 있는데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 여기 인원 전체가 좀비로 변해도 소용없지 않냐."
"그건 그렇지."
"휴유."
단번에 설득당한 채린이 슬쩍 힘을 풀자 가시는 압박감에 삼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모두 안심하세요. 대피소 안에 계시면 안전합니다.]
그때 저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엘리다!"
채린과 카렌이 빠르게 걸어 그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여기 다 모여 있었네."
어쩐지 천막이 가득한데 주변에 너무 없는 것 같더라니, 모두 이 앞에 빽빽이 선 채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상황이 진정될 겁니다. 부족한 식료품들과 의약품들은 최선을 다해 지급할 예정입니다.]
임시로 마련된 강당 위에는 엘리가 마이크를 잡고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혼란에 불안하시겠지만, 저희를 믿고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멋있는데?"
항상 집에서는 귀여운 곰돌이가 그려진 잠옷만 입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보던 모습이 아니다.
똑부러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하얀 법복을 입고 얘기하는 모습은 과연 인류 최고의 종교집단 수장다웠다.
"언제까지 그렇게 말하는데? 개도 안 먹을 감자랑 죽만 먹은 지 벌써 일주일째야!"
하지만 불만 가득한 소리를 군중 속 누군가가 우렁차게 내뱉었다.
"맞아! 우리 할머니가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죽었다고! 그 잘난 신성력은 대체 어디다 쓰는 거야?"
[그분은 오실 때부터 이미 심장마비로...]
"너희는 편한 신전에서 자고 이런 쥐새끼가 득실대는 곳에서 우리를 내몰고 있잖아!"
한 번 시작되니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불만들.
"저 놈들...맞지?"
"맞아."
카렌과 삼색이 예리하게 군중들 곳곳을 훑었다.
연합에 처음 와서 만난 `광신도`들과 똑같은 기운들이 머리 위로 스멀스멀 보인다.
"근데 효과가 있어 보인다."
"당연하지. 저건 넘어갈 수밖에 없어."
잘 생각해보면 씨도 안 먹힐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지만 상황과 계속된 선동에 점점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카렌은 엘리의 얼굴 속에서 숨겨진 당황함이 엿보인다.
`나였다면 저 놈들을 단번에 솎아 내겠지만...`
마음씨가 여리고 아직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은 엘리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우...슬슬 나설 때인가?'
카렌이 고민에 잠겼다.
딸이 저렇게 전면에 나서서 힘들게 일하는데 자신이 숨어 있어도 될까. 물론 저게 카렌의 애초에 목적이었다.
솔라리 교단의 성녀를 내세워 침략을 막는 것. 하지만.
'내가 안 나서면 못 막아.'
그 침략자들의 수장과 마주칠 때 카렌은 느꼈다. 애초에 자신 없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그리고 엘리는 단순히 성녀가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딸이 되어 버렸다.
'그래, 누구든 내 딸을 괴롭힐 순 없지.'
카렌이 생각을 끝낼 때쯤 분위기는 점점 과열되고 있었다.
[조금만 제 말을...]
"웃기지 마라! 혹시 연합에서 주는 지원금이나 식료품을 빼돌리는 거 아니야?"
"맞아. 투명하게 장부를 공개하라!"
갑자기 벌어진 이상 사태.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 배고픔.
거기다 사람들의 숨결이 서로 부딪히는 가까운 거리에서 오는 답답함과 압박감.
결국 몇몇 목소리에서 시작된 선동은 의심에서 확신으로, 마침내는 분노로 바뀌었다.
"성녀님, 뒤로 물러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뒤에 바짝 붙어 있던 한길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뇨. 지금 가면 오해를 풀 수가 없어요. 제가 얘기해 볼게요."
"하지만...알겠습니다."
한길은 자신들을 향하는 찌릿찌릿한 군중들의 시선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드는 회의감.
`왜 이해하지 못할까.`
성녀님과 솔라리 교단은 최선과 전력을 다해 사람들을 살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말하면 들어주실 거예요."
자신이 분명 제일 힘들 텐데도 옅은 미소를 보여주며 마이크를 두 손으로 부여잡는 성녀님이 한길의 눈에 보인다.
[저...]
퍼억!
엘리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발치에 날아드는 날계란. 먹을 것도 없다면서 저런 건 어디서 구했을까.
그게 시발점이었는지 눈이 반쯤 뒤집힌 사람들이 가까운 뭔가를 집어 들었다.
"막아!"
?
성전사들이 순식간에 엘리의 앞에 인간 방어벽을 만든다.
사람들이 돌멩이, 열쇠, 동전 등을 쥐고는 힘껏 손을 젖혔지만...
"꺄아아아아악!"
갑자기 튀어나온 날카로운 비명이 과열된 분위기에 찬물을 쏟아 부었다.
순간 던지려는 자세 그대로 멈춰버린 군중들.
소리의 진원지를 올려다보니 허리가 반으로 꺾인 한 여자가 버둥대면서 허공으로 치솟고 있었다.
"뭐...뭐야?"
수십 미터 창공으로 새처럼 날아간 여자는 순식간에 대피소 밖으로 날아가 이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사라져버렸다.
"으어?"
"으아아악!"
그리고 어깨와 몸을 짓누르는 무형의 기운에 사람들의 목이 일제히 움츠러들고.
우웅우웅우웅
하늘에서는 수십 개의 은빛 구슬들이 하늘을 배회하더니 일제히 목표물을 찾아 낙하한다.
"이게 뭐야? 컥!"
자신의 앞에 떠 있는 은빛 구슬에 한 남자가 당황했지만 구슬은 배로 훅 날아들더니 처음의 여자처럼 남자를 대피소 밖으로 날려 보낸다.
"저놈들은 이단이다."
어느샌가 강당 위에 올라선 은발의 남자를 모두가 올려다 봤다.
남자를 본 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지지만 성전사들과 뿌리의 사람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미친...제발...`
이들은 성지에서 카렌을 눈앞에서 본 사람들.
심판관님의 성격에 대해서는 유명하다. 특히 성녀님을 끔찍이 아끼는데 자기 딸에게 계란을 던졌다?
"아빠? 저분들은..."
"괜찮다. 마이크를 이리 줄래?"
모든 사람이 카렌의 봄처럼 부드러운 미소에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까지 무표정했던, 아니, 냉혹하기까지 보였던 얼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리고 정면을 향하자 순식간에 다시 변하는 싸늘한 눈매.
휘익
"으아아아악!"
카렌이 손가락을 까닥이자 한 남자를 구슬들이 거칠게 실어서 단상 위로 실어 나른다.
"이게 무슨 짓이야! 신을 믿는다는 당신들이 이럴 수 있어? 당연히 우리에게 봉사..."
[이게 신이다.]
마이크에 스산하게 읊조린 카렌이 곧바로 남자의 이마에 자신의 왼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치이이이이익!
"으아아아아아악!"
한껏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진 고통보다 심한 통증이 남자를 괴롭힌다.
남자가 발버둥 쳤지만 은구슬들이 온 몸을 감금하듯 가두는 탓에 유일하게 자유로운 입으로만 한껏 비명을 지른다.
'역시나...'
아까부터 이단심판관의 징표가 진동하더니 역시나 효과가 있었고 확인은 끝났다.
[치워.]
카렌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구슬들이 남자를 밖으로 내다 버리고 카렌은 자기 왼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솔라리 교단의 이단심판관이다. 저놈들은 너희들을 교묘하게 선동하는 광신도였지.]
눈앞에서 벌어진 `심판`에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관중들. 물건을 던지려고 들었던 팔을 슬그머니 내렸다.
"그...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저들도 인권이 있습니다."
한 용감한 사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를 이렇게 만든 이들이 광신도다. 거리를 배회하며 너희의 이웃을, 가족을, 무고한 사람을 죽였고, 지금도 죽이고 있지.]
카렌이 단번에 분노의 화살을 광신도에게 돌리며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저들의 선동에 넘어간 너희의 잘못도 있다. 아니, 실수라고 해야겠지.]
그리고는 처음에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며 마지막에는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준다.
[한 번은 봐주겠다. 내가 솔라리 교단의 성서에 기록된 구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 뭔지 아나?]
돌아오지 않는 대답. 카렌이 방금 항의했던 남자를 바라보자 마주친 남자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나는 편애(偏愛)하는 이다.]
순간 군중들의 머리에 의문으로 가득 찬다.
저게 무슨 소리지? 신은 공평해야 하는 게 아닌가?
종교집단은 당연히 친절하고 대중들에게 봉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풀어서 쉽게 말해주지.]
사람들이 일제히 카렌을 바라본다.
[꼬우면 내 딸한테 화풀이하지 말고 여기서 꺼져.]
"크으! 저거 봤냐?"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삼색이 저 멀리서 뒹굴거리며 웃으며 감탄했다.
"역시 주인이야. 그럼 나는 시킨 대로 오늘 밤에 사람들을 불러 볼까?"
삼색이 워치를 조작해 단체 메시지를 작성한다.
[보내시겠습니까? 발신 대상자. 한민재, 미호, 연합 의장.?]
확인을 요하는 알림음. 삼색이 한 번 씨익 웃고는 전송 버튼을 꾸욱 눌렀다.
?
"시작해보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