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90/140)

  사람마다 배우는 방식이 다르다

  "안 한다니까?"

  "한 번만!"

  "아오! 이 끈질긴 영감이 진짜!"

  "그래, 나이 많은 노인네 소원 한 번만 들어주라. 응?"

  삼색이 카페에서 일주일째 똑같은 대화를 하는 둘을 보며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처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카렌에게 맞은 오즈로의 눈가에 시커먼 멍이 들었다 정도?

  ?

  "재능을 낭비하지 말게! 자네 나이면··· 많긴 많군."

  습관적으로 제자를 영입할 때 쓰는 멘트를 날렸던 오즈로가 재빨리 말을 주워 담았다.

  "알면 그만 해라 좀! 내가 마법을 어떻게 배워? 무엇보다 배울 이유도 없어."

  "더 강해질 수 있다니까?"

  "내가 더 강해져서 뭐하는데?"

  "그건··· 그러면 안 강해져서 좋을 건 뭔데?"

  오즈로가 뭔가 얘기하려다 순감 멈칫하고는 똑같은 논리로 받아친다. 역시나 머리 회전이 빠른 대마법사답다.

  `방금 하려고 한 말도 그 거래 때문에 멈춘 건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재빨리 말을 돌리긴 했지만 오즈로 녀석이 방금 하려고 했던 말은 그게 아니었다.

  "너도 고생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

  또다시 시작되는 둘의 소모적인 언쟁에 삼색이 훌쩍 뛰어 바의 테이블에 누웠다.

  바에 서서 술컵을 깨끗이 닦고 있던 영준이 방실한 엉덩이를 씰룩이는 고양이의 말을 받아준다.

  "그래? 시끄럽지 않아?"

  "저는 두 분이 사이가 참 좋아 보입니다. 카렌님이 지금껏 저렇게 편하게 대하시는 분은 처음 봅니다. 물론 인간 중에서요."

  영물까지 포함하면 삼색이 있으니 말이다.

  딸랑!

  한참 가열된 둘의 열기 어린 대화는 가게로 누군가 들어오며 멈췄다.

  "어! 네 여자친구분 왔다. 이 도둑놈아."

  능글맞은 오즈로의 말에 채린이 얼굴을 붉힌다.

  "그런 말 하면 카렌이 싫어해요. 따···딸기라떼 줘요."

  "알겠습니다. 곧 갖다 드릴게요."

  "고마워요."

  영준이 어느새 앞치마를 갈아입고 카페에서 주문을 받았다.

  "잘 오셨네. 이 녀석 좀 설득해 봐요. 아! 그 나이 먹고도 왜 몰라. 배우는 게 힘이라니까! 날 봐라. 이 나이 먹고도 이렇게 왕성하게 지식을 탐구하니 젊게 살잖아!"

  "그래, 누가 널 그 나이로 보겠냐? 그걸 나이값 못 한다고 하는 거야."

  "어허! 내가···?"

  카렌의 옆에 와서 앉은 채린에게 오즈로가 다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어후···."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카렌을 채린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채린이 일주일 동안 본 오즈로는 카렌의 성격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투덕거리면서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비결은 오히려 상극이라 그런 걸까.

  "그래서···."

  "음료 나왔습니다."

  영준이 쟁반에 음료 3잔을 가져왔다. 그런데 채린이 주문한 딸기라떼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잔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응?"

  "말씀하시느라 목이 아플 것 같아서 유자차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오···고마워."

  "여기 과일도 좀 드시죠."

  뒤이어 영준의 친구도 예쁘게 깎인 과일들을 놓자 둘의 언쟁은 마침내 휴전기를 맞이했다.

  "카렌, 아직 엘리가 얘기 안 했지?"

  이때를 틈타 채린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무슨 얘기?"

  "역시··· 상대방을 너무 생각해도 문제라니까."

  채린이 종이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신도 가족 모임]

  "한길이가 엘리 몰래 말해주더라. 그냥 모른 척하고 있어."

  카렌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즐거워 보이니 그냥 놔둔 게 분명했다.

  채린이 답답한 마음에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카렌은 문서를 읽었다. 그런데 행사 진행 중에 좀 특이한 순서가 눈에 띈다.

  "가족 장기자랑?"

  "교단 내부에서 작게 진행하는 행사니 그냥 별거 아닐걸? 해봤자 카드 마술이나 그런 거 하는 거겠지?"

  "1등이··· 성녀가 내려주는 축복?"

  뭐··· 돈을 주긴 좀 그러니 그냥 같이 기도해 주고 그런 건가?

  "갈 거야?"

  "가야지. 3주 남았네."

  카렌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저번에 생일을 못 챙겨준 게 마음에 남아 있었다. 만회할 기회다.

  "흠··· 장기자랑을 뭘 준비해야 하나?"

  "뭘 그런 걸 고민하냐 주인. 그냥 아무 포션이나 보여줘도 1등 할 텐데."

  삼색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연금술사란 직업이 연합에서 아직도 인식이 안 좋다지만 애초에 카렌의 포션은 수준이 다르다.

  "아냐. 약해. 그건 좀 식상하단 말이지."

  "그럼 실드로 공중부양 같은 건?"

  "엘리는 다 알잖아."

  생일을 까먹은 보상으로는 좀 약하다.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엘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다.

  톡, 톡

  카렌이 테이블을 습관적으로 두드리며 기억을 되짚어 엘리의 취향을 생각해본다.

  ?

  -너무 귀여워요!?

  자연스럽게 최근 기억부터 보니 엘리의 탄성이 터졌던 순간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저번 주에 바로 이 자리에서 오즈로의 아기자기한 마법을 보며 눈을 반짝이던 엘리.

  ?

  "오즈로. 마법 3주 만에 배울 수 있냐?"

  "응?"

  "장기자랑에 좀 쓰자."

  "어··· 가능하지!"

  오즈로가 일단 힘차게 대답했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배우겠다는 게 어딘가.

  `근데 겨우 장기자랑에 내 마법을 쓰고 싶어서 배운다는 거야?`

  지금까지 그렇게 설득했는데? 제국의 왕족이 작위와 돈을 준다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 거절했던 자신의 가르침을?

  허탈함에 대마법사가 순간 울컥하면서 눈이 촉촉해졌다.

  * * *

  퍼어어어엉!

  ?

  엘리가 출근한 시간에 난데없이 우렁찬 폭음이 울렸다.

  숲에서는 새들이 짜증 내며 힘껏 하늘로 날아오른다.

  "아 씨··· 이게 왜 안 되지?"

  벌써 일주일째 제대로 된 마법에 성공해본 적이 없던 카렌이 신경질적으로 땅을 발로 긁었다.

  "상상은 충분한 거 같은데··· 아무래도 너무 마나가 많아도 문제인가? 아님 실드에 너무 익숙해져서?"

  오즈로가 여러 가설을 제시한다. 분명 마법을 발동한다. 다만 유지가 안 되거나 방금처럼 갑자기 터져버려서 문제지.

  "다시 해보자."

  "알았네."

  카렌은 눈을 감고 차가운 이미지를 떠올린다.

  겨울. 한겨울에 눈송이가 피부에 닿을 때의 소름 돋는 한기.

  그 느낌 그대로 심장에서 마나를 뽑아 올려 어깨를 걸쳐 팔꿈치, 손목, 손가락 끝으로 뽑아낸다.

  쩌쩌쩌쩌적!

  "와···."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채린과 삼색이 순간 놀라 뒤로 물러선다.

  카렌의 손끝에서 자라난 얼음 줄기들이 너무나도 거칠게 숲까지 뻗어 있었다.

  앞을 가로막은 나무들은 모조리 날카로운 얼음 파편에 찢겨버렸다.

  "쯧··· 실패야."

  하지만 카렌은 아무렇지도 않게 혀를 차면서 팔을 털어내자 얼음이 유리처럼 반짝이며 파편이 되어 땅으로 흩날렸다.

  "절대 순간이동 마법은 쓰지 말게. 이동하다가 머리라도 끼면 자네라도 바로 죽으니까."

  "좋은 충고야."

  누가 보면 엄청난 위력이라고 놀라겠지만 카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걸 장기자랑에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실드는 잘 되는 데 말이야."

  카렌이 삼색을 바라보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폈다.

  스으윽

  원형의 실드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며 말랑거린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몸, 꼬리까지 털 색깔과 눈썹 하나까지 삼색의 모습을 완벽하게 조형해낸다.

  "진짜 엄청난 마나량과 감응력이긴 한데···왜 다른 마법은 안 되는지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네. 마나가 너무 많아서 감을 못 잡는 걸 수도 있어."

  오즈로가 감탄하면서도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 해부밖에···."

  "너는 좀 조용히 하고. 하긴 쉽게 되면 다 마법사하지."

  "원래 천천히 세밀하게 하는 게 제일 힘들어. 다른 학문도 거의 마찬가지잖아."

  "그렇지."

  카렌이 원하는 마법은 엘리가 좋아할 법한 귀여운 토끼나 이런 동물이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가면 절대 2주 남은 행사에 맞출 수 없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걸로 익혀야겠어."

  "꾸잉, 주인 잘하는 게 뭔데?"

  실드를 익힐 때의 방법을 떠올려 보면 쉽다.

  "몸으로 익힌다."

  그때는 정말 죽기 싫어서 익혔지. 덕분에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다.

  "그럼 내가 대련해줄까?"

  "아냐. 대련으로는 안 돼. 마나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며. 확인해 봐야지."

  "그럼?"

  카렌이 워치로 강이사에게 전화를 걸며 말했다.

  "게이트에 들어간다."

  *

  게이트 신봉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게이트는 축복이다.

  물론 소수 의견이다. 게이트나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죽고 싶지 않으면 소수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포션 팔아요! 연금술사 협회에서 인증한 60% 수제 포션! 특가 세일!"

  "닭꼬치! 특제 슬라임 닭꼬치! 특별히 2+1!"

  ?

  하지만 지금 게이트를 중심으로 시끌벅적한 저 광경을 보면 마치 게이트는 신성한 성물과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자네 제자가 일을 잘하고 있나 보군."

  오즈로가 카렌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카렌의 제자인 민재에 대해서는 일주일 동안 얘기를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 정도는 돼야지."

  심드렁한 말과는 다르게 카렌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민재 녀석이 협회를 잘 운영하는지 지금 보는 것처럼 요즘 연금술사들의 포션 질과 판매처가 확 늘어났다고 들었다.

  "평생 제자 안 받을 것처럼 하더니···"

  "크흠! 게이트 주변은 다 이러는 거야? 엘리니아 같은 경우는 아예 도시가 생겼던데?"

  오랜만에 삼색이 들어간 우주선 가방을 앞으로 멘 카렌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리며 주변을 과장되게 둘러보았다.

  언론에서 항상 떠들던 지옥의 문 같던 게이트의 이미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옛날 활기차던 동네 재래시장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잘 관리된 게이트는 엄청난 자원이나 다름없지. 수명이 다할때까지 마석이나 몬스터 부산물이 무한대로 떨어지니까. 물론 실거주 집값은 떨어지긴 한다더라."

  채린이 게이트의 입구로 익숙하게 일행을 안내하면서 말했다.

  "꾸잉, 인간들은 정말 재밌단 말이야. 저런 걸 이용할 생각도 하고."

  삼색이 자신의 털을 쭈뼛 세울 만큼 불길한 기운을 가진 게이트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A급 이상 게이트는 나도 처음인데···재밌겠구만."

  "가서 도시락 먹자."

  오즈로는 궁금증을 해소할 생각으로 손을 비비고, 채린이 지금 등에 멘 배낭에는 피크닉에 쓸 음식들과 담요들이 들어 있었다.

  아공간에 넣어준대도 과정이 중요한 거라 뭐라나. 그야말로 긴장감이 요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파티다.

  "확인되었습니다."

  게이트 출입을 검사하는 공무원의 명단에는 A급 헌터 한 명. B급 헌터 2명으로 적혀 있었다.

  헌터들이 모인 만큼 강이사가 준비해 준 신분증으로 통과하고 채린의 얼굴마저 오즈로가 마법으로 감췄다.

  모조리 불법이지만 여기서 그런 사소한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우웅

  가까이서 보니 여전하게 기분 나쁜 게이트다.

  "잠시만."

  오즈로가 눈을 감고 손을 몇 번 휘둘러 주문을 건다.

  "무슨 주문인데 들어가기 전에 걸어?"

  "자네처럼 마력을 뺏기지 않으려면 조치가 필요해서 말이야. 다 됐어. 가지."

  모두와 함께 카렌이 발을 내딛자 기다렸다는 듯 게이트가 쑤욱 몸 전체를 집어삼킨다.

  `여전히 기분 나쁘군.`

  예전에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게 침략자들의 행성에서 나온 파편임을 알자 죽어가는 별의 마지막 발악처럼 느껴진다.

  눈을 살짝 감았다 뜨자 어느새 땅을 딛고 있었다.

  "···게이트 잘못 들어온 거 아니냐? 여기 지구 아냐?"

  그런데 가방 속에서 들린 삼색의 말처럼 익숙한 광경이 보인다.

  비록 폐허긴 해도 빌딩 숲과 곳곳의 깨진 간판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커피숍들.

  누가 봐도 익숙한 지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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