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에는 벌레가 꼬인다
발표회 이틀 후, 민재의 일상은 똑같이 이어졌다.
물론 발표회 전처럼 매일 밤을 새우거나 그렇진 않았지만, 항상 약초밭을 관리하고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나날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실험을 잠시 끊고 에너지바를 먹고있던 민재의 머릿속에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 발표회에서 PD와 작가라는 사람을 따라가 인터뷰를 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상기되어 있었던 그들의 얼굴.
"그 정도는 아닌데···."
탈모약은 미완성이고 뼈살살 포션이야 카렌님의 엘릭서나 포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거 하나 만들기까지 얼마나 카렌님에게 꾸중을 들었는가.
정말 첫 참가에 의의를 둔 발표회였다. 다들 이렇게 경험을 쌓다가 발전하겠지.
?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에 방송이 나온다고 했었나? 조금 있다 재방송 찾아봐야겠다."
연이은 밤샘으로 어제는 정말 죽은 듯 잠들어 버렸다. 입을 오물거리며 남은 에너지바를 다 먹은 민재가 다시 실험을 시작하려는 찰나.
쾅!
"민재야?"
연구실 문이 거세게 열리자 깜짝 놀란 민재가 간신히 바닥에 떨어뜨릴 뻔한 플라스크를 중간에 잡았다.
영준이었다. 카페에서 일하다 급하게 왔는지 앞치마도 그대로 입고 있었다.
"형님, 무슨 일이에요?"
항상 차분하던 영준의 흥분한 얼굴을 보자 괜히 민재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진다.
"빨리! 카페로 와 봐. TV에 네 얘기 나온다!"
"네? TV요? 그리고 방송은 어제였는데요?"
민재가 뭐라 물어볼 새도 없이 영준이 팔을 잡고 카페로 끌고 갔다. 카페 안의 TV에서는 볼륨을 최대로 틀어 놨는지 아나운서의 말이 귀에 쏙쏙 내용이 박혀 들어온다.
[그야말로 기적의 포션을 발명해낸 연금술사에 대한 이슈가 뜨겁습니다. 다만 헌터와 달리 일반인에게 사용되니만큼 의료적 기준에 대한 새로운···]
뉴스에서 자료화면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맨날 거울에서 보던 자신.
"왔어?"
민재가 멍하니 TV를 보다 들린 소리에 그제야 카페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카렌님? 강이사님도?"
둘은 흐뭇하게 앉아서 영준을 보고 있었고 삼색은 언제나처럼 카렌의 옆에서 입을 쩌억 벌리며 하품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뭐긴 뭐야. 뒷일을 같이 고민하기로 했잖아."
"동생, 진짜 이런 걸 만들어 놓고 예상을 못 했어?"
강이사가 신기하게 민재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연구만 했다지만 자신의 포션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해 이렇게 감각이 없다니.
"저는···그냥 만들었는데요. 포션 만드는 것밖에 생각이 없었어요."
"그래. 잘했어. 나쁜 건 아니야."
카렌의 칭찬에 민재가 아이처럼 웃는다.
일단 목표가 보이면 집중하는 순수한 학구열이 민재의 최대 장점이다.
"그런데 이제 다른 것도 배워야 한다."
카렌이 민재에게 맞은편에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네 결과물이 자랑스럽지?"
"예···예! 그럼요!"
조금 부담스럽긴 해도 자신이 만들어낸 자식같은 포션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데 당연히 자랑스럽다.
띠리링. 띠리링!
그때, 민재의 손목에서 맑은 알람음 소리가 들려온다.
띠리링! 띠리링!
전화벨이 울리며 그 뒤로 수십 개의 문자가 도착하자 민재가 얼떨떨하게 워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계속 쌓여가는 문자들.
"시작됐네. 이게 네가 새로 배울 거다. 문자를 읽어 봐."
민재가 자신에게 날아온 문자 몇 개를 읽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연합방송 작가입니다. 혹시나 연금술사···]
[야! 너 TV에 나오더라? 잠깐 밥 좀 먹자. 동창회 곧 있는 거 알지?]
[민재야. 우리 집안에 인재가 나와서 고모가 참 기쁘구나. 이번 명절에 올 거지?]
방송국부터 학교 졸업 후 단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옛날 반 친구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도 오지 않았던 친척까지 연락이 줄줄이 도착하고 있었다.
번호도 얼마 전에 바꿨는데 대체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모르겠다.
"달콤한 음식에는 벌레들이 꼬이지. 그리고 아직 보여줄 포션들도 많이 남아있잖아?"
카렌이 민재에게서 자신의 옛날 모습을 어렴풋이 투영해 보았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
뭐만 개발하면 이후 대륙 전역에서 보낸 스파이들과 뺏으려는 암살자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중에는 시간이 걸려도 청부받은 조직 자체를 궤멸해버리니 더 이상 안 오더라.
"카렌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민재가 지금도 도착하는 메시지에 당황한 얼굴로 카렌에게 물었다.
"내 방식은 못 써. 여긴 지구고 넌 스타일이 좀 다르잖아."
"그렇습니까···."
민재의 얼굴이 시무룩해진다. 카렌님이 하시는 거라면 뭐든지 따라 하고 싶은데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내가 묻고 싶은데, 너는 뭘 하고 싶어?"
카렌의 물음에 민재가 천천히 자신의 초심을 되돌아본다.
"저는 그저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뼈살살 포션을 개발한 이유도 옛날 저를 키워주신 할아버지가 관절이 안 좋았거든요. 비록 지금은 안 계시지만 어르신들을 보면 생각이납니다."
"그럼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사람들에게 적당한 가격에 네가 개발한 뼈살살 포션을 팔면 되지. 이번에 특허나 자잘한 단계는 강이사가 처리해줄 거야. 보고 배워."
민재가 카렌의 말에 깜짝 놀라 카렌을 다시 바라보았다.
"제 포션을 그렇게 팔 수 있을까요?"
"왜 안 돼? 사람들에게 팔려고 포션을 만든 거니 당연히 돈도 벌어야지. 네 가치를 낮추지 마."
"하지만···제가 그렇게 벌 자격이 있을까요? 저는 카렌님에 비하면···."
민재의 말에 강이사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이 덩치만 큰 동생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연금술사인지, 뭘 만들었는지 아직도 자각이 없다.
"민재야. 네가 카렌님 옆에 있어서 뭘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가 본데."
"예? 제가요?"
"네 기준이 너무 높다. 일단 탈모 포션은 미완성이라고 하니 뼈살살 포션의 상업적 가치를 대충 알려줄게."
민재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자 강이사가 뼈살살 포션 한 병과 준비해 온 자료를 테이블 위에 늘어놨다.
"연합에 각종 관절염으로 고통받고 있는 고령인구가 80%가 넘는다. 막말로 한 병당 저렴하게 500만 원에 팔아도 이들이 안 쓸 것 같아?"
"500···500만 원이요? 이게요? 이거 재료값도 얼마 안 들어갔는데?"
민재가 가격을 듣고 팔을 하늘로 흔들며 버둥거린다.
강이사가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계속 설명을 이어간다.
"500만 원도 대충 잡은거야. 1,000만 원 이상 잡아도 쓸 사람 널렸어. 무릎 연골이 닳아서 계단도 제대로 못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그 돈을 안 쓸 것 같아?"
"아직 젊어서 그래. 강이사, 음료도 마시면서 살살 해. 너도 그 입 좀 닫고."
카렌이 강이사를 부드럽게 자리에 다시 앉히며 충격에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민재를 달랬다.
"죄송합니다."
강이사가 음료를 벌컥 마시더니 심호흡하고는 아까보다 그래도 가라앉은 목소리로 서류를 넘겼다.
"연골은 척추에도 들어가. 그리고 또 한 부위."
"또···또요?"
이제는 자신이 만들어낸 포션을 겁내는 민재. 테이블에 있는 포션을 피해 옆자리로 슬쩍 자리를 옮겼다.
강이사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코를 가르켰다.
"코 성형. 코 끝과 콧등은 연골로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이 포션을 잘만 쓰면 티 안 나고 부작용도 없게 코를 올릴 수 있지."
무릎은 아직 젊은 민재가 공감하지 못했지만, 성형 얘기를 하자 느낌이 확 와닿는다.
민재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이 만든 포션을 들고 바라본다.
`대체 내가 뭘 만든 거야···.`
?
"너무 겁내지 말고. 연락은 그렇다 치고 내 땅에 있으면 너를 해칠 사람은 없다."
신기하게 카렌의 말을 듣자 민재의 두려운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감사합니다."
"그래. 자세한 사항은 강이사랑 진행하고."
"네. 그럼 판매하는 걸로··· 아!"
판매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잊고 있던 정보가 떠올랐다.
"근데 포션 판매는 연금술사 협회인증 없이는 못 하는데···"
"받으면 되지. 맞다. 너 협회에 찍혔지?"
"예."
"어쩐지 이상하게 그쪽에서 무슨 거부를 하더군요. 보통 제가 접근한 루트로는 쉽게 해주는데 말입니다.
강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았다. 다른 과정은 물 흐르듯 진행되는데 협회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막혀버린 이유를.
그래도 지금 연합에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저 포션을 허락 안 해줄까 싶다. 연금술사의 망가진 이미지를 바꿀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고.
"해주겠지."
"저··· 뉴스를 좀 보셔야겠습니다."
카렌이 낙관적으로 대답하는 사이에 영준이 땀을 삐질 흘리며 TV를 가리킨다.
"어?"
익숙한 얼굴이 화면에 나오자 민재가 인상을 살짝 찌푸린다. 결코 좋은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리액션.
[한민재님의 스승이 되신다는 말씀이시죠?]
TV에서는 사회자가 안경을 쓴 중년의 남자에게 질문을 건넨다.
[맞습니다. 제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를 보니 참 뿌듯합니다.]
[그렇다면 저 포션은 어떻게 보시나요?]
[아직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검증을 거치지는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다만 환자들의 안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협회 인증회에서 재료와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금술사 협회에서 나와주신···]
민재의 이가 부드득 갈리고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악연이야?"
카렌이 민재를 보고 물었다. 지금껏 화는커녕 짜증조차 본 적이 없는 이 순한 녀석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
"예. 저를 노예처럼 부려 먹었던 인간입니다. 연금술사 협회에서 퇴출당했었는데 그사이 복귀했었네요."
민재는 저자가 뻔뻔하게 자신을 언급한 건 괜찮았다. 하지만 진짜 화났던 이유는 저자가 자기 입으로 자신을 스승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코 제 스승이 아닙니다."
카렌의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스승은 한 사람뿐이다.
"저자가 무슨 인증회라고 하는데 그건 뭐야? 나는 그냥 팔았었는데?"
지금이야 조선제약이 대신 판매한다지만 예전에는 가내수공업으로 삼색과 집에서 포션을 직접 만들어 경매장에 팔았다.
"그때 이후로 기업들과 협회가 인증회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말이 인증이지 그냥 신입 연금술사와 제약회사 사다리 걷어차는 겁니다."
"호오···"
카렌이 감탄했다. 진짜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힌다. 그런데 결국 자신 때문에 생긴 법이라···
"절대 카렌님 잘못이 아닙니다. 연금술사 협회는 원래 그런 곳이었습니다."
민재가 혹시나 카렌이 미안함을 느낄세라 쩔쩔맨다.
"일단 시스템이 그러니 그 인증회는 결국 가야 하는 거잖아. 준비해"
"예! 꼭 통과하겠습니다."
민재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카렌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주인. 기분 좋아 보인다?"
삼색이 앞발을 앞으로 내밀며 엉덩이를 쭉 펴면서 기지개를 켠다.
"제자가 잘되니 기분이 나쁘진 않네."
"그래. 그리고 제자라고 직접 좀 불러줘라. 쟤는 아직도 모르는 것 같은데?"
"응? 이 정도로 가르쳐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카렌을 보며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절레절레 고개 젓는 삼색.
"내가 미호랑 사귀면서 느낀 게 있는데. 사람들은 관계에 대해 표현을 안 하면 잘 모른다. 그리고 특히 저 곰탱이는 평생 모를걸?"
이 고양이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 게다가 강이사도 동의하는 눈치다.
"그런데 너넨 사람 아니잖아."
"이제 사람으로 변신도 할 수 있거든? 꼭 좋은 말을 해줘도 왜 그러냐?"
삼색이 그르렁거리자 카렌이 재빨리 안으며 녀석의 털을 쓰다듬어 진압에 나섰다.
`이런 반응이 나오니 참을 수가 없지.`
그리고 왠지 자신의 성격이 점점 장난기 많은 삼색을 닮아가는 것 같다. 이 녀석은 자신의 귀찮음을 닮고 말이다.
"그런데 강이사, 마음에 안 드는 게 하나 있어."
"어떤 게 말씀이십니까?"
강이사가 카렌의 말에 긴장하며 워치에서 메모 기능을 켰다.
"내 나이가 젊진 않지. 그렇지?"
"보기에는 20대십니다."
역시 사회생활이 몸에 밴 강이사답게 기분 좋게 돌려 말한다.
"그런데 나이가 있어서인지 젊은이들이 열정적으로 사는 게 마음에 들어."
"저도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민재 같은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우리같은 사람들이 도와주진 못할망정 젊은이 앞길은 막으면 안 되지."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었습니다."
카렌의 품에서 골골대던 삼색이 괜히 카렌의 가슴을 톡톡 치면서 말했다.
"주인도 참 솔직하지 못해. 그냥 제자를 위한 거라고 말해라."
"···그런 거 아니야."
"하여튼···인간들이란."
그런데 언제 제자라고 말해줄까 고민이다. 가슴이 이상하게 간질대는 느낌이 들어 입이 잘 안 떨어진다.
"연금술사 협회는 연합 소속이지?"
"맞습니다."
"그러면 내가 좀 높은 애를 아는데 말이야."
생각해보니 그 녀석이 자동차도 준다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