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9/140)

  플랜 B를 써보자

  "뭐···뭐야?"

  "갑자기 료쿠님이 날아갔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료쿠의 창이 갑자기 허공에서 멈추고 몸이 제멋대로 날아간 걸로 보였을 거다.

  S급 헌터가 정신을 잃고 날아간 진귀한 상황에 주변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주위가 어떻든 카렌은 방금 자신의 앞에 살짝 움찔거린 뜨거운 마나의 흐름을 따라갔다.

  '저 녀석이군.'

  그 끝에는 창천이 있었다. 바람을 다루는 백호보다 느렸지만 창천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려 했었다.

  "한 녀석은 그래도 괜찮나."

  창천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자신의 능력을 급하게 거두느라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이런 소란을···."

  영준이 카렌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아냐. 갑자기 개가 물려고 달려드는데 어쩌겠어?"

  카렌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료쿠를 보며 만족감에 한 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지금까지 적립되어 있던 짜증이 조금 가신다.

  "카렌님.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다른 헌터들이 꼴사납게 뻗어있는 료쿠를 깨우려고 애쓰는 와중에 강이사가 카렌에게 웬 서류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료쿠쪽 기술자들이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마나석 광산을 발견했다고 작성되어있습니다."

  "뭐?"

  카렌이 서류를 받아들고 대충 훑었다. 이쪽 관련 지식이 없지만, 마지막 줄만 읽어도 핵심은 알 수 있었다.

  -마나석 광산 존재 유.

  "호오···?"

  "어떻게 할까요? "

  과연 강이사가 괜히 저 덜떨어진 놈을 수행하며 바쁘게 움직였던 게 아니었다. 이런 기특한 정보도 알아 오고 말이다.

  카렌이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조사단은 핑계였군. 보고서의 방향은 한 쪽 밖에 없었어.`

  인간이 드워프보다 정확할리 없으니 광산을 발견했다는 조작된 보고서다.

  계획은 어그러졌다. 원래는 마나석 광산이 없다는 걸 확인받으려 자신의 땅으로 조사단을 받아들였는데 말이다.

  "내 땅에서 장난이 좀 지나치군."

  "예?"

  강이사가 무슨 소린가 해서 카렌을 바라봤지만 카렌은 모두를 향해 손을 뻗으며 선포했다.

  "지금부터 여기서 아무도 못 나간다."

  카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반투명한 감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어..어?"

  "으으으···?뭐야?"

  "료쿠님?

  모두가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릴 때 료쿠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비겁하게 기습을 해?"

  그래도 이름값은 하는지 곧바로 몸을 일으키고는 창대를 두 손으로 진지하게 잡고 어딘가를 겨눴다.

  "거···거북이?"

  "료쿠님? 괜찮으십니까? 아직도 머리가···?"

  그런데 사람들이 보기에 창의 목표가 좀 이상했다.

  "분명 저 거북이가 암습을 했다."

  료쿠의 말대로 상의에 물이 흥건하게 젖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눈만 껌뻑대는 저 작은 거북이가?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볼을 꼬집었다. 자신이 이상한 건지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상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젠장, 분명 봤는데···.`

  료쿠는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정말 잠깐이지만 S급 헌터의 뛰어난 동체 시력은 분명 저 거북이의 입에서 물줄기가 날아오는 걸 목격했었다.

  "그냥···."

  카렌의 손가락이 다시 까딱이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휙 뛰어 나갔다.

  "내가 갈게. 지금 죽이면 더 귀찮아 질 거야. 너희도 좀 도와줘."

  채린이었다. 달려가면서 마나를 끌어올리자 미호의 매혹술이 풀리며 채린의 얼굴이 드러난다.

  "너···?너가 어떻게 여길···."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과 공격에 료쿠가 간신히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뒤로 미호의 불과 백호의 바람, 현무의 물이 날아온다.

  "으아아악!"

  단말마를 남기고 다시 기절해버린 료쿠. 채린이 녀석의 목덜미를 질질 끌고 카렌이 만든 감옥에 거칠게 던져 버리며 엘리와 영준을 보며 말했다.

  "이것도 배워. 굳이 1대1을 할 필요는 없다. 싸움에 명예는 집어치워. 이기면 끝이야."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에 둘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채린이 고개를 끼이익 돌려 하나 남은 S급 헌터에게 물었다.

  "너는 맞고 들어갈래. 그냥 들어갈래?"

  창천이 손을 내저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들어가겠습니다."

  창천이 들어가자 나머지 사람들도 얌전히 따라 들어가니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다.

  카렌이 채린을 보며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강이사를 필두로 모두가 카렌을 바라본다. 그런데 카렌의 눈은 감옥 안의 한 인물을 향해 있었다.

  "신하는 주인의 거울이지. 그래도 확인은 해야겠어."

  카렌은 손가락으로 감옥을 향해 까닥거리자 감옥이 자신의 몸을 꿈틀대며 창천을 밀어낸다.

  "어···??"

  순간 튕겨나와 넘어질 뻔한 창천은 간신히 중심을 잡고 카렌 앞에 섰다.

  "아까 왜 공격을 막으려 했지?"

  카렌이 무심한 눈으로 창천을 바라보며 질문한다.

  "억···.?"

  카렌의 몸에서 꿈틀거리는 기운들이 창천을 휘감는다. 숨이 턱 막히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

  압박감으로 아득한 정신속에서 창천의 입이 움찔댄다.

  평소 지략으로 명성이 높은 자신이지만 지금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어떠한 좋은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며 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러···?면 안 되니까요."

  간신히 말한 진심.

  "일단은 마음에 들어."

  "헉···??헉···?"

  ?

  ?

  창천을 압박했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그라들며 카렌에게 빨려든다. 창천이 거친 숨을 내쉬며 심장을 부여잡았다.?

  '이 남자는 대체···?.'

  저 채린도 그렇고 창천을 쓰러뜨린 거북이와 고양이는 뭔가. 그리고 아직 나서지도 않은 일행도 많았다.

  무엇보다 위압감만으로 이 정도라니. S급 헌터의 자부심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이다.

  "네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냐?"

  정말 하나같이 예상을 벗어난 남자의 행동과 말이다. 되물어봐서 심기에 거슬리는 멍청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창천이 머리를 굴렸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모시고 있습니다."

  당연히 낮출 수는 없지만 과도하게 올려서도 안 된다. 창천이 생각한 최선의 답변이다.

  "상황 파악도 그렇고 머리는 저놈보다 확실히 좋아. 기회를 잡을 줄도 알고. 그런데 주인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어?"

  창천을 기특하게 여긴 카렌이 웃음을 살짝 터뜨리며 다시 물었다.

  "저는···?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네 기억을 읽는 것도? 너는 측근이니 온갖 일을 해왔겠지. 검증이 필요해."

  "물론입니다."

  거침없이 나오는 대답에 카렌이 뒤를 돌아보며 현무를 불렀다.

  "읽겠네."

  현무가 창천의 주요 기억들을 추려 카렌에게 전송했다.

  "흠···?나쁘진 않네."

  창천의 자신감은 근거가 있었다. 창천의 후보는 보기 드물게 깨끗했다.

  물론 자잘한 편법들은 있었지만, 저 자리에 오르기까지 없는 게 더 이상하다.

  "합격이다. 네 주인에게 전화 연결해. 현무는 저 녀석들 기억 좀 지워줘."

  "알겠네."

  현무가 뒤뚱뒤뚱 감옥으로 다가가 기억을 지웠고 그 동안 창천은 재빨리 연결된 전화를 카렌의 워치에 돌리고는 물러났다.

  [누구···.]

  "지금 갈게.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혹시 놀라지 말라고 미리 전화한 거야."

  [예? 대체 누구신···.]

  "백호, 현무. 가자. 어딘지 알겠지?"

  "바람이 길을 안내할걸세."

  자신이 연결한 전화를 끊어버리는 카렌을 창천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같이 가야지. 가서 잘 말해봐. 경호원 같은 거 부르면 귀찮아지거든."

  "어···어?"

  ?

  바람 위에 올라탄 카렌이 창천을 향해 손짓하자 스르륵 바람에 딸려가는 몸. 그렇게 카렌이 탄 바람은 하늘로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 * *

  "대체 뭐야?"

  창천의 보기 드문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받은 전화는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끊어져 버렸다.

  "놀라지 말라고? 지금 온다는 게 무슨 말이야?"

  후보가 창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는 통화음만 계속 들려온다.

  휘이잉!

  그때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세차기 들이친다. 그리고 방 한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봐."

  "으···으아아!"

  갑작스러운 등장에 후보가 기겁해서 뒷걸음질 쳤다.

  "진정하십쇼!"

  그나마 아는 얼굴인 창천이 간신히 후보의 마음을 좀 안정시켰다.

  "창천? 이게 대체···."

  "일단 잠깐 앉으시죠."

  마침 응접실에 있던 후보는 손님용 소파에 후들거리는 다리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 쪽은 누구시죠?"

  마치 자기 방처럼 맞은편에 편히 앉은 은발의 남자에게 후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현무? 지금까지의 일들과. 조금 `협조적`으로 바꿔 줄 기억을 보여줘 봐."

  "내 눈을 보게나."

  역시 있는 능력 써먹는 게 이렇게 편하다.

  "여기 뭐 마실 거 없어?"

  "가져오겠습니다."

  S급 헌터를 집무실에 딸린 탕비실로 보내버린 카렌이 현무에게 기억을 받느라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후보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후보의 눈이 번쩍 떠지고 식은땀이 얼굴에 줄줄 흘러내린다.

  "S급 헌터를 저렇게? 얼마 전에 있었던 폭풍이 여기 거북이와 고양이가? 그리고 그걸 막아낸 당신은 대체···."

  과연 현무가 기억을 제대로 보여준 모양이다. 혼란스러운 표정의 후보를 보며 카렌이 창천이 타다 준 녹차를 후르릅 들이키며 말을 툭 던졌다.

  "연합 의장 시켜줄게."

  "예?"

  동네 이장을 시켜준다고 해도 방금 말보단 생동감이 넘칠 거다. 창천과 후보 모두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멈췄다.

  "저쪽 후보는 못 쓰겠더라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을 들은 것처럼 후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현무에게 기억을 받은 후보는 눈앞의 남자가 방금 말한 말의 무게를 잘 알았다.

  "마석을 주지. 대신 채굴지는 다른 곳으로 소문내자고. 그 정도면 지지율 역전할 수 있지?"

  당연히 입구는 카렌의 땅 바깥에 만들고 깊숙한 지하에 있으니 어차피 소음도 전무할 거다. 비어드가 캐고 싶어 하기도 했고.

  "물론입니다."

  연합 최초의 대규모 마석 채굴장을 얻은 대사건이다.

  애초에 큰 차이도 아니었고 이걸로 역전을 못 시킬 정도의 멍청이라면 애초에 이 자리에 올라오지도 못했다.

  하지만 눈앞에 엄청난 기회가 왔어도 후보의 마음은 불안함에 요동친다.

  "대가는 뭡니까?"

  마치 악마를 보는 듯한 자신을 향한 후보의 시선에 카렌이 피식 웃었다.

  "딱히 없어. 여기 온 것도 우연이니까 창천에게 감사해. 너 같은 정치인을 오랜만에 봐서 신기하군."

  ?

  만약 상대 후보가 이상한 짓만 시도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될 일은 없었다. 그리고 후보의 행실이 바르지 않았다면 의장을 세울 마음도 없었겠지.

  "그래도···."

  아무래도 많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이 모든일의 발단이 떠오른다.

  "그냥 의장 된 다음에 내가 말한 공무원 몇 명 잡아줘. 그리고···?흠···.

  "

  짜내려고 해도 딱히 원하는 게 없었다. 돈? 명예? 전부 관심도 없다.

  `강이사라도 데려올 걸 그랬나?`

  만약 같이 있었다면 신나게 협상했을 텐데 말이다.

  "저···그러면 그 마석으로 개발된 모든 제품에 대한 수수료를 드리겠습니다! 특허권에 대한 지분도 물론입니다."

  후보가 카렌의 침묵을 알아서 하라는 협박으로 받아들였는지 뭔가가 술술 나온다.

  "아! 요즘에는 자동차도 마석으로 개발하지?"

  지구에 와서 처음으로 카렌의 물욕을 자극했던 물건. 귀가 살짝 솔깃해진다.

  "물론입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모든 마석 제품의 프로토타입을 드리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추후 언제든지 조건을 추가하셔도 좋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카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후보가 벌떡 일어나 배웅한다.

  "앞으로 잘하자. 연합 의장 돼도 초심 잃지 말고."

  "예···예!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 이 쪽 번호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카렌이 후보의 어깨에 지긋이 손을 올리고는 백호와 함께 들어 왔던 창문으로 사라졌다.

  "조심히 들어가십쇼!"

  창문을 향한 후보의 90도로 꺾인 허리는 한참 동안 그대로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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