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손님 대처법
"참 야단법석이다."
카렌과 함께 앉아 있던 삼색이 카페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바깥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후보의 진영에서 나온 사람들이 혹시나 위험 사항이 없는지 주변을 꼼꼼하게 수색하고 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높은 사람이 오면 꼭 저런다."
"하긴 네가 있던 조선 때는 더 심했지?"
"맞다. 그러고 보면 주인이 특이한 거다."
"그런가?"
하긴 자신이 왕일 때는 너무 예식과 격식을 없앤다고 했다가 재상과 기사들에게 혼났지.
"근데 너희는 왜 다 여깄어?"
카렌이 맞은편에 앉은 엘리, 미호, 채린을 향해 말했다.
그나마 한재민이 요즘 연구소에서 개발한다고 바빠서 안 와서 다행이다. 그 녀석까지 있으면 자리가 꽉 찼을 거다.
"그 녀석들이 온다고 해서 구경하려고."
"그 녀석들?"
"창천이랑 료쿠. 기억나? 너 처음 지구 왔을 때 봤을 텐데?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를 같이 막고 있었거든."
이름이 좀 개성 있긴 하다. 하지만 도무지 기억을 뒤져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안 나. 딱히 중요한 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
"어···그래도 S급 헌터인데··· 각자 후보들의 길드에 속해 있어."
"그러냐. 근데 넌 왜 얼굴까지 바꿨어?"
카렌이 시큰둥한 반응으로 채린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카렌에게는 차라리 이게 더 흥미롭다.
채린의 얼굴은 미호의 술법에 의해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는 사라지고 그저 어디가도 보이는 평범한 여자의 얼굴로 보였다.
"여기 내가 있으면 좀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니야."
연합에 얼마 없는 S급 헌터가 우연히 만난다는 것도 좀 이상하다. 그것도 요즘 한창 이목이 쏠리는 이곳에서 말이다.
"그 분들은 제 얼굴을 알아서 저도 마스크 쓸 거예요. 미호 언니에게 부탁해 눈과 머리카락 색은 바꿨어요."
검은 눈과 머리의 엘리도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말했다. 일반 사람들은 몰라도 거물들은 엘리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색과 눈동자는 어떻게 바꿨지만, 얼굴은 신성력 때문에 미호의 술법이 제대로 먹히질 않는다.
"저거 옛날 영상 보면 거리에서 진짜 많이 쓰고 다니던데 진짜 오랜만에 본다."
삼색이 엘리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마스크를 앞발로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옛날에는 이걸 쓰는 게 의무였다더라. 믿어지냐?"
"신기하네."
모두가 엘리가 시험 삼아 마스크를 쓰자 엘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좀 답답하긴 하네요."
엘리가 입과 코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은 벗고 있다가 오면 써."
"네. 그럴게요."
딸랑 딸랑
"···왜 너희까지 왔어."
카페 종이 울리며 위풍당당하게 입장하는 현무와 백호를 보고 카렌이 손가락으로 입술이 살짝 매만졌다.
"재밌는 구경이 있다고 해서 놀러 왔다."
"전설의 신수는 좀 위엄 같은 거 없어? 왜 이렇게 인간 일에 관심이 많아."
"그대 운명은 굉장히 꼬였다네. 실타래가 아주 재밌게 꼬여 있어."
"뭐?"
현무가 몸을 작게 만들어 테이블 위로 뛰어올라 카렌을 관찰했다.
"원래 운명을 가늠하는 건 청룡의 능력이라 미숙하지만, 자네의 운명은 워낙 커서 조금이나마 보인다네."
점쟁이 같은 현무의 말에 카렌의 미간이 눈에 띄게 오그라들었다.
"야. 너 청룡이잖아. 그 운명 어쩌고 좀 보고 풀어봐."
"후르릅.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너에게 뭘 바란 내가 잘못이다."
어느새 고구마 라떼를 가져와 한 입 크게 빨아 먹는 고양이를 보며 카렌은 포기하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슬슬 바깥도 정리가 끝났는지 한산해졌다.
띠링!
[지금 도착합니다.]
카렌의 워치로 강이사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이사는 현재 두 후보와 함께 이곳으로 오는 중이다.
저 멀리서 차량 행렬이 서서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나마 미리 조율해서 기자들은 없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검은 세단과 벤 위주인 행렬 중에 한 스포츠카가 눈에 띈다.
부우웅!
거친 엔진음과 함께 멋대로 앞서 나온 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내리자 채린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쟤가 창천이야. 싸가지 없는 놈."
그래도 모자랐는지 채린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더더욱 못마땅한 표정을 만들어 내었다.
그 뒤로 살짝 지적인 인상의 남자가 달려와 창천에게 뭐라 잔소리하지만 창천은 귀를 후빌 뿐이다.
"저건 료쿠. 그러고 보니 여기 S급 헌터가 셋이나 모였네."
대선 후보쯤 하려면 길드에 S급 헌터 정도는 보유해야 한다. 카렌이야 시답잖게 보지만 강력한 길드의 빼놓을 수 없는 기준 중의 하나다.
"어? 강이사네."
강이사는 한창 투닥거리는 창천과 료쿠를 기술 좋게 달래더니 어디론가 데려가기 시작했다.
"뭐야? 어디 간 거야?"
"그냥 적당히 안내해주는 거지. 어차피 쟤들이 뭘 알겠어? 광산 확인은 기술자들이 할 텐데."
카렌이 딸기라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강이사에게 들은 바로는 최대한 귀찮게 하지 않는 쪽으로 대화가 됐다고 했는데 잘되고 있는 모양이다.
"꾸잉···재미없다."
"음···."
"쳇···."
삼색이야 그렇다 치고 현무와 백호, 채린까지 김빠진 표정을 하자 카렌은 어이가 없었다.
"너네까지 그러기냐."
"저는 괜찮아요! 어차피 쉬는 날이라 숙제하러 왔거든요."
엘리가 어느새 강이사가 내준 수학 문제들을 풀면서 카렌을 위로했다.
"역시 우리 엘리밖에 없다."
그렇게 평화롭게 한참 동안 수다를 떨고 있자 바깥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한 바퀴 돌고 왔는지 신발에 흙이 묻은 료쿠와 창천이다.
"들어가시죠."
딸랑!
오늘 카페 종이 드물게 여러 번 울리는 날이다. 헌터들이 카페 안에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저거 좀 쎄하네···.`
모두가 헌터들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 카렌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
신발. 료쿠는 입구에서 발을 털고 와서 깔끔한 반면에 창천의 발에서 떨어진 흙이 카페 바닥을 더럽힌다.
료쿠가 건들거리면서 카페 안을 잠시 둘러 보더니 카렌 일행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것들은 뭐야?"
"여기 지역 주민들이십니다. 바깥에 제가 따로 자리를 마련해놨으니 그쪽으로 가시죠."
"하···다행이야. 촌구석이라 그런지 다 이상해. 카페에 거북이랑 고양이들은 뭐야?
"
창천이 카페를 박차고 나가자 현무와 백호가 혀를 끌끌 찼다.
"요즘 것들이란···."
꼰대라고 말할 법도 하지만 이번에는 삼색도 어이없는 눈빛으로 사라진 창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널 보는 것 같아."
카렌이 삼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삼색이 카렌의 손을 앞발로 치우며 강하게 항의했다.
"저건 개념이 없는 거다! '카페 앞에 동물 출입 가능'이라고 써 있다!"
"싸가지는 여전하네. 근데 진짜 별 사건 없이 곧 갈 것 같은데?"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둘의 모습에 채린이 입맛을 다셨다.
"쟤라면 뭐라도 할 줄 알았거든."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채린은 저 인간쓰레기를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카렌이 크게 기분이 상하면 말리려고 오기도 했고.
"여기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이제 방문도 막바지인지 수행원들도 카페에 들어와 음료를 시키고 있었다. 이제 광산을 탐색할 기술자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떠날 거다.
"애초에 정말 귀찮은 일이면 내가 허락을 안···."
"이봐! 여기 머리카락 뭐야?"
그런데 카렌의 말이 중간에 묻힐 정도의 큰 소리가 계산대 쪽에서 새 나온다.
눈꼬리가 갈라진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집게손가락으로 검은색 머리카락을 컵에서 들어 올려 오영준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저건 뭐야?"
"꾸잉. 카페 개점 첫 클레임 축하한다. 사장."
정말 신선한 전개에 모두 신기한 생물을 보듯 남자를 쳐다봤다.
"손님. 제 머리카락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준은 침착하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아서 남자가 건넨 머리카락과 길이를 대보았다. 미묘하게 색이 다르고 누가 봐도 짧다.
"그럼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손님을 이렇게 대해도 돼?"
"정정한다. 클레임이 아니라 진상이었다."
이제는 억지 단계에 들어선 남자를 보며 삼색은 눈을 빛냈고 채린과 미호가 소리를 낮추지도 않고 남자에게 들리라는 듯이 떠들었다.
"왜 저렇게 살까요?"
"그리고 너무 전형적인 못생긴 악당 아니야?"
"맞아요 언니. 생긴 게 못 생기면 행동이라도 예뻐야지."
"방금 이마에 핏줄 선 거 같은데?"
미호와 채린의 환상적인 호흡이 이어진다. 그런데 분명 들릴 텐데도 남자가 애써 무시하며 계속 항의를 이어갔다.
`저거 아까 그놈이 시켰네.`
카렌의 눈은 지금 난동을 부리고 있는 저 남자와 아까 료쿠가 카페 밖에서 살짝 눈짓을 주고 받은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의도가 뭐지? 명분인가? 시선 끌기?`
카렌이 채린에게 물었다. 정보가 필요하다.
"료쿠 쪽의 그 후보는 어때?"
"잘은 모르겠어. 일단 이미지는 좋지만 지금까지 료쿠놈이 사고 친 걸 감쪽같이 수습한 게 그 후보야."
끼리끼리 논다는 건가. 일단 카렌의 마음속에서 1번 후보에 대한 짜증 한 스푼이 적립되었다.
"이거 안 되겠구만. 주인 나오라 해!"
`카페 주인부터 시작해서 뭐라도 파악할 생각인가? 하긴 땅 주인의 지인일 수도 있으니 말이야.`
?
나름 노림수를 짜긴 짰다. 카렌의 신상은 철저하게 가려져 있으니 끌어내려 했겠지. 일단 드러내면 압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
"주인께서는 바쁘십니다. 음료는 환불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주인 얘기가 나오자 진상 손님에게도 정중했던 영준의 얼굴의 목소리와 얼굴이 단번에 딱딱해진다.
"점원 교육을 이따위로 한 주인 얼굴 좀 보게 나오라고 하라고!"
"당신이 그렇게 함부로 말하실 분이 아닙니다."
"뭐? 어딜 손님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을 그렇게 해? 이래서 주인이 문제면 점원이···"
"지랄하지 마십쇼.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닙니다. 쓰레기야. 그 말 취소하지 않으면 당신 입을 뭉개버리겠습니다."
"···어?"
순간 영준의 입에서 존댓말과 반말이 섞인 기묘한 욕이 쏟아져 나오자 순간 남자가 벙쪄서 할 말을 잃고 어버버 댔다.
"오···쟤가 저런 말도 할 줄 알아?"
"꾸잉?"
카렌도 항상 말수가 적고 얌전한 영준의 새로운 모습에 감탄했고 채린은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엘리의 귀를 막았다.
"이···이! 어딜 카페 점원 따위가!"
남자의 주먹이 올라가자 그제서야 제정신이 돌아온 영준이 일을 키웠다는 죄송스러운 마음에 카렌을 흘낏 바라보았다.
그런데 질책은커녕 카렌은 재밌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남자의 말이 다시 영준의 이성을 날려 버렸다.
"사장이 무릎 꿇기 전까지···"
"따라 나와라. 가게 더러워진다."
자신을 욕하는 건 참아도 카렌에 대한 모욕이 계속 나오자 영준이 카운터를 박차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하! 어딜···"
남자가 코웃음을 치며 따라 나갔고 주위 동료들이 남자에게 속삭였다.
"죽이면 안 된다. 지시 알지?"
"걱정 마. 대신 일반인이 각성자에게 건방지게 대들었으니 사지는 부러뜨려야겠어."
하지만 백호가 바람으로 훔쳐 들은 대화를 카렌에게 전해주었다. 카렌의 눈빛이 가늘어지며 이번에는 1번 후보에 대한 괘씸함이 추가되었다.
"구경! 구경! 주인 구경 가자!"
"재밌겠군."
삼색뿐만 백호와 현무도 신나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카렌은 버둥거리는 삼색의 성화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조금 봐주지."
나가자마자 거만한 얼굴과 함께 턱을 치켜세운 남자의 도발이 영준에게 한창이었다.
하지만 영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카페 앞치마의 주머니에서 시커먼 뭔가를 꺼내서 땅에 떨궜다.
쿵
작게 먼지가 일어나며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삼색이 황당한 얼굴로 카렌의 품에서 얼굴 쪽으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게 뭐냐?"
"쟤 일할 때도 항상 저거 갖고 다녀. 카페 대걸레와 빗자루도 수련한다고 강철로 무겁게 쓰더라. 아무리 내가 성장하는 약 줬다고 1년 사이에 B급이 그냥 됐겠냐?"
예상치 못한 카페 점원의 퍼포먼스에 남자가 움찔했지만 그래도 몸 좋은 일반인이다. 자신을 이길 수는···
퍼어억!
남자의 얼굴을 순식간에 가격한 주먹에 눈앞에서 별이 번쩍인다. 그래도 내로라하는 길드의 소속답게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나서 자세를 잡는다.
"비겁하게 기습을···"
"싸움에 그런 게 어딨습니까."
평소에도 채린에게 부탁해 끊임없이 대련을 해왔던 영준이다.
"그렇지! 엘리야. 보고 배워라. 저게 싸움이지."
채린이 제자의 성장에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은 잠깐의 우세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고는 남자의 온몸에 주먹을 쉬지 않고 꽂아 넣는다.
"크윽···"
방어해도 팔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남자의 가드가 점점 풀리고 점점 몸에 적중하는 유효타가 늘어난다.
"감히 그분을 그렇게 불러?"
겉으로는 냉철해 보여도 영준의 눈은 반쯤 뒤집혀 있었다. 자신은 욕해도 상관없지만 카렌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크으윽"
계속된 난타에 마침내 남자의 얼굴이 열리고 영준의 공격이 사정없이 목표물을 향해 날아간다.
"원래 조용한 사람이 화나면 진짜 무섭다더니."
"재밌구만."
카렌 쪽은 흐뭇하게 영준을 바라보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흐름에 료쿠 쪽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썩어들어 간다.
"이 새끼가! 감히!"
그때 어디선가 분노에 찬 목소리와 함께 놀라운 속도로 창이 들이닥친다. 당장이라도 영준의 목을 꿰뚫을 기세의 창날.
챙!
하지만 어느새 형성된 바람의 벽에 창은 허공에 무력하게 막혀 버렸다.
"저 인간이 죽으면 내 술은 누가 주나."
백호의 솜씨다.
쏴아아아!
"커어억!"
그리고 뒤이어 날아가는 현무의 물줄기에 료쿠가 꼴사납게 날아가 땅에 처박혀 버린다.
"동감이네."
"너희 힘 조절 잘하는데?"
카렌이 손가락 한 마디를 까딱거렸다.
?
간발의 차이로 섬뜩한 칼날이 방금까지 료쿠의 목이 있던 자리를 정확하게 긋고 사라진다.
"죽이면 귀찮아지는 걸 깜빡했어."
담담한 목소리로 섬뜩한 의미를 담은 말을 카렌이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