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2/140)

  즐기는 자가 가장 강하다

  [대한 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과 세무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한 제약의 신약 부작용에서 시작된...]

  뉴스에서는 한 시간마다 특종이 터져 나오고 신문 기사도 만만치 않게 자극적이다.

  [충격! 내부에서 고발한 하청 뒤에 숨은 대한그룹의 검은 그림자.]

  [그들은 군림했다. 21세기의 왕족. 대한 그룹을 낱낱이 파헤치다.]

  "대체 얼마나 손을 쓴 거야?"

  카렌이 한가롭게 푹신한 호텔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강이사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역시나 대한 쪽에서 묻으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제가 카렌님을 보고 배운 게 있습니다. 움직임은 묵직하지만 확실하게."

  강이사가 카렌을 향해 눈을 반짝이며 존경을 눈길을 보냈다.

  `...그거 그냥 귀찮아서 잘 안 움직인 건데...`

  뭐...일일이 설명하기도 그렇고 오해가 나쁜 쪽으로 향하진 않았으니 그냥 놔뒀다.

  "여기 경치가 좋네."

  카렌이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다가간다. 스위트룸답게 벽 한 면이 통째로 되어 있는 덕에 시야가 훤하다.

  특수 유리라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깨끗하게 내려다 보인다.

  "이거 확대 기능 있다 그랬지?"

  "예."

  카렌이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창문 유리에 대고는 벌리자 카메라처럼 확대되면서 지상의 사람들이 보인다.

  "특수유리라 법적으로 지정된 공간만 보입니다. 하지만 충분하죠."

  강이사의 말대로다. 대한 그룹 본사 앞에 까마득히 늘어서 팻말과 계란을 던지고 있는 군중들.

  원래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인 본사를 홍보해주는 긍정적인 도구였지만 지금은 아주 좋은 불구경 수단이 되었다.

  "일부러 호텔에서 이 방을 잡았지? 강이사도 참 지독해."

  "제가 그 정도까지는..."

  "모든 방이 공실이었잖아."

  "크흠! 가시죠. 모두 수영장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카렌은 헛기침하는 강이사를 애써 모른척해 가며 수영장으로 향했다.

  "정말 아무도 없네?"

  가끔 인사하는 직원들 빼고는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적막한 호텔. 그나마 은은한 클래식이 복도에 흘러나와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다음 달에 정식으로 엽니다. 그 전에 직원 교육 겸 임시 개장을 하는데 특별히 민들레재단의 회원님이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그래? 고맙다고 전해 줘."

  솔직히 카렌은 강이사가 처음에 재단을 만들 때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저번 삼색의 일을 계기로 마음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네.`

  무엇보다 편리하고 강이사의 말대로라면 직원들이 재단에 진심이라는 게 마음에 든다.

  "그럼 호텔에 사람 좀 늘려도 상관없겠지?"

  "물론입니다. 오히려 호텔 측에서는 시설이나 서비스에 미비한 점을 찾아서 피드백을 아낌없이 달라고 하더군요."

  "재단 직원들도 가족들까지 다 부르자고. 음식이나 추가 금액은 우리가 부담하고 일주일간 유급 휴가를 줘."

  저번에 헬기 지원 겸 뒤처리를 해준 보상이다. 자신의 의무를 성실히 다한 자에게 적절한 보답과 신뢰를. 카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원칙이다.

  "카렌님이 번거로우시지 않게 직원들은 다른 층으로 배치하겠습니다. 아주 좋아할 겁니다."

  강이사의 얼굴이 환해진다. 무엇보다 카렌이 자신이 관리하는 재단의 존재를 인정해 주셨다는 데 감격했다.

  뭉클해진 가슴과 함께 강이사가 카렌을 위해 수영장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 일` 때문이지?"

  "예. 좋은 여흥 거리가 될 겁니다."

  "그래. 강이사도 좀 놀러 왔으니 쉬어."

  "제겐 이게 쉬는 겁니다. 요즘 대한 그룹을 보는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그래."

  저건 진짜다. 강이사는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아저씨!"

  카렌이 수영장으로 들어가자 엘리가 제일 먼저 카렌을 발견하고는 멀리서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입고 있는 원피스 수영복이 참 귀엽다.

  전체가 통유리로 이루어진 옥상형 수영장. 한 쪽에는 널찍한 선베드들이, 그 옆의 바에서는 오영준이 음료를 만들고 영준의 친구는 간단한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다.

  촤아아악!

  현무가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인공 파도를 만들어내는 수영장 중앙에서는 물싸움이 한창이었다.

  채린과 미호가 한 팀. 한길과 민재가 한 팀이었다. 그런데 미호는 끼지도 않고 채린 혼자서 시합을 압도하고 있었다.

  "으아아! 마나 쓰시면 어떡합니까? 그거 반칙입니다. 반칙!"

  ?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채린이 마나를 손에 있는 힘껏 싣고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가며 물을 향해 주먹을 날리자 물폭탄이 날아간다.

  "꼬우면 너도 쓰던가! 쓸 수 있는 거 다 써!"

  "아니...어푸푸!"

  "아하하하! 언니 화이팅!"

  순간적으로 민재와 한길이 꼬르륵 물속으로 잠기고 채린과 같은 팀인 미호가 옆에서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너희는 안 들어가냐? 특히 삼색, 너는 이제 인간으로도 변할 수 있잖아?"

  카렌이 선베드에 눕고는 옆에서 햇빛을 쐬면서 골골대는 삼색과 백호에게 물었다.

  "나는 물이 싫다. 저건 내게 지옥의 열탕처럼 보인다."

  "동감한다. 대체 저게 왜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아...그렇지. 너네 모두 고양잇과지."

  "...."

  "...."

  놀리는 카렌의 말에도 둘 다 아무런 대꾸도 없다. 삼색은 몰라도 백호까지? 카렌이 신기하게 생각해 돌아보자 둘의 얼굴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그 정도로 싫냐."

  차라리 고양이로 불리고 싶다는 둘의 질색하는 표정을 보며 다시 돌아누운 카렌은 팔다리를 위아래로 쭈욱 폈다. 개운함이 온몸에 기분 좋게 퍼진다.

  "이것도 좋네."

  "카렌님. 여기 딸기 칵테일입니다."

  오영준이 라임 잎과 딸기 한 알이 입구에 꽂혀 있는 영롱한 빛깔의 액체가 담겨 있는 잔을 카렌에게 건넸다.

  "여기서까지 일할 필요 없으니 좀 쉬어. 언제 이런 것까지 배웠어?"

  "커피로는 뭔가 부족해서 틈틈이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저 친구는 제빵과 간식을 배웠고요. 이게 배워보니 재밌습니다."

  혹시나 억지로 하나 카렌이 영준의 얼굴을 살펴보니 정말 티 한 점 없는 진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데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고... 카렌은 잔을 받아들며 한 모금 마셨다.

  "음?"

  알코올의 톡 쏘는 맛과 살짝 찌르고 향기로운 과일향이 잘 배합된 액체가 기분 좋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잘 만들었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본인들이 알아서 잘하면서 대체 뭐가 감사한지...카렌은 환하게 웃으며 바로 다시 돌아가는 영준을 보면서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밝은 날. 따스한 햇볕과 즐거운 사람들의 웃음소리. 무엇보다 옆에서 두 고양이의 골골대는 소리가 카렌의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른다.

  카렌이 평화롭게 낮잠을 잔 지 2시간 째. 강이사가 슬그머니 다가와 카렌을 깨웠다.

  "카렌님. 시간 됐습니다."

  "음... 벌써 그렇게 됐나? 화면 띄워 봐."

  "예."

  휴가를 더 즐겁게 해줄 특별한 순간이 다가왔다.

  강이사가 수영장 패널을 조작하자 통유리 한 면 전체가 TV로 바뀌며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법원에 출석하기로 한 대한 그룹 회장은 건강상의 문제로 휠체어로 출석하고 있습니다.]

  머리까지 하얗게 염색하고 마스크를 쓴 회장이 측근이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은 손은 일부러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분장했고, 살은 동정심을 일으키려고 급격하게 뺐는지 푸석해 보일 만큼 쭈글쭈글해졌다.

  ?

  "저걸 아직도 하네. 발전이 없어. 나이도 어린 것이...쯧쯧"

  카렌이 기술은 전에 없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이어지는 구태의연한 광경에 혀를 차며 백호와 현무, 삼색을 불렀다.

  "잠깐 놀러 갔다 오자."

  "아저씨? 어디 갔다 오시게요?"

  "지금 화면에 나오는 저기. TV 잘 보고 있어. 재밌을 거야."

  백호가 바람으로 모두를 순식간에 회장이 출두하고 있는 법원 상공으로 이동시켰다.

  "자...우리 상상력 없는 회장님을 좀 놀라게 해줄까? 현무? 구름 좀 만들어 줘."

  "알겠네. 그거야 쉽지."

  맑던 하늘 위로 갑자기 드리워진 구름에 사람들은 신기하게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뭐지? 갑자기 날씨가..."

  이게 끝이 아니다.

  "시원하게 비 좀 내려봐. 대신 전기는 안 통하게."

  "그것도 쉽지."

  카렌의 요청에 따라 갑자기 쏟아지는 비. 법원 앞에만 내리는 이상현상에 모여있던 기자들은 다급하게 카메라와 전자기기를 감쌌다.

  "역시 회장이야. 엉덩이 무겁게 자리값은 해."

  카렌은 수행원이 씌워준 우산 밑에서 꼼짝도 않는 회장을 내려다 봤다. 지금쯤 기자들의 압박이 느슨해져 일이 편하게 됐다고 좋아하겠지.

  "과연 그럴까?"

  ?

  카렌이 악동처럼 씨익 웃고는 구름 안에 발판을 만든 후 삼색을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실드로 기다란 창을 하나 공중에 띄우고는 삼색을 향해 내밀었다.

  "꾸잉? 뭐 하려고?"

  "여기다 번개 쏴. 구름 안에 있으니 위력도 증가할 거다."

  "오...? 그거 재밌겠다!"

  이제야 카렌의 의도를 알아차린 삼색이 신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는 온 힘을 다해 전기를 뿜어내 창에 담았다.

  "자...일단 첫 발은 좀 멀리하자고."

  카렌이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휙 꺾으며 밑으로 내리자 창이 하늘에서 법원 천장으로 내리꽂혔다.

  실제 번개와 똑같은 생김새와 위력.

  콰지지직!

  피뢰침은 당연히 설치되어 있지만 애초에 자연현상이 아닌 카렌의 의지로 날아간 번개.

  지붕 위에 설치되어 있던 실외기가 박살이 나면서 굉음이 퍼져나간다.

  ?

  "으....으아악!"

  귀를 찌르는 소음과 눈을 어지럽히는 빛에 공포가 순식간에 번지고 사람들이 혼비백산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인! 제우스 같다. 제우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근육 빵빵 아저씨?

  "그 신 바람둥이잖아."

  "그런가? 그럼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토르 어때? 근데 그건 망치로 해야 한다."

  "...됐다."

  삼색의 헛소리는 무시하고 다시 카렌의 눈동자가 지상을 훑는다.

  이제 회장 주변은 비어 있는 상황. 그런데 역시 그룹의 총수답게 조금 불안한 얼굴이긴 해도 아직도 의연하게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럼 기적을 일으켜 볼까?"

  카렌은 번개를 작게 만들어서 회장의 바로 앞으로 날려 보냈다.

  "이런 씨...!"

  회장은 코앞에 떨어진 번개 때문에 외마디 욕과 더 버티지 못하고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측근이 준비한 차로 대피했다.

  "몸이 안 좋을 때는 번개 찜질이 최고야."

  카렌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주인 사악한 얼굴이다."

  "이게 진짜 휴가지."

  "맞다! 너무 재밌다! 또 안 하냐?"

  "됐어. 어차피 전국으로 생중계됐으니까."

  생중계 화면을 잡는 카메라맨한테는 미리 말해놨다. 무슨 일이 있어도 좋은 화면을 잡게 해줄 테니 절대 카메라 돌리지 말라고.

  뉴스로 확인해 보니 과연,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회장이 자신의 건강한 다리로 벌떡 일어나는 걸 이미 온 국민이 봤다.

  "내 역할은 끝났군."

  이미 최악으로 활활 타오르는 여론에 기름을 쏟아부었고, 미리 작업해 둔 소문들도 슬쩍 돌기 시작 할 거다.

  대한 그룹 때문에 토네이도가 일어났고 이제는 하늘이 노해서 천벌을 내리고 있다고. 너무나도 미신적이지만 이미 세상은 비과학적인 일들이 가득하다.

  "음..."

  계획을 들은 현무와 백호가 감탄하며 카렌을 바라보았다.

  "대단하군. 우리는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단순히 죽이는 것보다 이렇게 차근차근 나락에 빠뜨리는 게 확실히 더 비참하겠군. 역시 자네는 대단해."

  "응? 나는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건데."

  그냥 호텔에서 휴가 중에 좀 심심하다니까 강이사가 짜 온 계획이다.

  들었을 때도 재밌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 보니 힘도 안 들고 더 즐겁다.

  "제일 재밌는 부분은 맛봤으니 우리는 돌아가서 감상이나 하자고.?"

  연합 최대의 기업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실시간으로 보며 즐기는 휴가. 때로는 영화보다 현실이 더 재밌는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하다.

  "이번엔 넘길 수 없을 거야. "

  처음에 회장은 지금 당장만 넘기면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잊어버리고 자신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을 거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세상이 하나만 가져도 성공했다 말하는 힘들. 권력, 무력, 재력.

  그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이번에는 어떤 수작을 부리던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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