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8/140)

  뭐지 이 인간은?

  "으라차!"

  바위를 옆으로 밀어내고 뛰어오른 삼색은 주변을 둘러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후 먼지!"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때는 정말 오싹했다.

  순식간에 몸을 작게 되돌리고 본능적으로 붕괴되 건물 잔해들을 피했다. 그리고 짐승의 본능과 영물의 감으로 찾아낸 생로.

  하지만 그것마저 완벽하지 않아 결국 마지막에는 큰 돌덩어리를 방패 삼아 자신의 몸을 스스로 묻어야 했다.

  만약 고양이 특유의 유연성이 없었다면 이 조그마한 틈에 껴서 압사당했을 거다.

  삼색은 토네이도가 지나간 대지에 깊게 새긴 상흔들을 보며 푹 내쉬었다.

  저걸 뚫고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

  "이거는 주인 불러야겠다. 어? 이거 깨졌네..."

  삼색이 워치를 보니 화면에 금이 가며 아예 꺼져 버렸다. 아까 급하게 움직일 때 망가진 모양이다.

  "망했다...나 주인 번호도 모르는데."

  근처를 휙휙 둘러 보지만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일단 뛰자.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저거 나 때문에 일어 났다."

  자신이 백호와 현무를 깨우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삼색은 전속력으로 토네이도가 남긴 흔적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만약 저게 도시를 덮친다면...`

  분명 여기 오면서 본 도시 쪽으로 가고 있었다. 1000만 명 넘는 인구를 자랑하는 연합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

  삼색의 등에서 불안감과 죄책감으로 인해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달려도 몸이 무겁고 달리는 속도가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주인...미안하다. 또 사고 쳤다.`

  순간 떠오르는 카렌의 얼굴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밀어 넣고는 삼색은 토네이도의 뒤를 계속 쫓아갔다.

  * * *

  한편 카렌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조종사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더 사고 치기 전에 빨리 잡는다."

  [예! 저희는 민들레님만 믿습니다!]

  `...얘네는 왜 이래?`

  처음과 달리 카렌을 대하는 조종사들과 승무원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물론 전에도 깍듯했지만 이제는 그 이상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베일에 쌓여 있던 민들레 재단 설립자는 외모부터 시작해서 능력까지 그야말로 탁월했다.

  토네이도를 정면으로 뚫은 이후 이들의 마음에서 카렌은 그야말로 아이돌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정작 카렌은 이들이 상상도 못할 고민으로 심각한 얼굴로 헬기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외출 금지는 당연하고···. 간식은 한 달 금지해야겠어. 아냐···. 그건 너무 심한가? 2주?"

  미호는 카렌이 진지하게 삼색의 처벌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방금까지 세계를 멸망시킬 기세를 뿜고 있던 사람이 맞는가 싶다.

  `뭐...아버님이 그만큼 삼색을 아끼신다는 거지.`

  그냥 삼색이 좋은 주인을 만났다 생각하니 편하다.

  "그래. 2주가 적당하겠어. 뉴스 좀 틀어 줘. 지금 토네이도의 범위가 어떻게 되지?"

  카렌이 알고 싶은 정보는 뉴스를 틀자마자 나왔다. 온 채널이 재난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으니까.

  ?

  [연합 전 지역에 크고 작은 토네이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 보고 계시는 가장 거대한 토네이도는 도시로 빠른 속도로 향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있는 쪽이예요."

  미호가 주변 지도와 뉴스를 동시에 살펴보더니 말했다.

  뉴스가 스튜디오로 화면이 넘어가자 전문가들과 앵커들이 심각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저건 절대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토네이도는 겨울철에 잘 나타나지도 않는 데다가 현재 보신 가장 큰 토네이도. 저건 불가능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교수님?]

  사회자가 묻자 나이가 지긋한 기상학 교수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토네이도는 아무리 크기가 크고 강력하던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소멸합니다.]

  [그렇다면...]

  [상식을 벗어나는 뭔가가 있습니다. 과학자로서 이런 말 드리긴 그렇지만···. 토네이도의 상공에서 거대한 호랑이와 거북이의 모습이 목격됐다고 하더군요.]

  너무나도 비과학적인 답변에 순간 정적에 휩싸인 스튜디오. 진행자가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는 다른 전문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몬스터가 일으킨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군요. 혹시 연합에서 지금 고위 각성자들을 도시로 모으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만약 몬스터라면 도시에 도달하기 전에 충분히 토벌할 수 있을 겁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전문가의 말에 교수가 회의적인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당연히...]

  [저 토네이도는 직경 2km 이상으로 점점 커지는 데다 외곽 바람의 회전 속도만 시속 500km는 족히 넘습니다. 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인간인데 접근할 수 있을까요?]

  교수의 회의적인 발언이 이어지고 이미 모든 정보를 얻은 카렌이 뉴스를 껐다.

  ?

  [띠링, 띠링!]

  그때 카렌의 워치에 불이 깜빡인다. 채린에게서 걸려 온 전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채린과 엘리의 모습이 함께 홀로그램으로 떠오른다.

  "응? 둘이 왜 같이 있어?"

  [중간에 만났어. 나는 각성자 호출 때문에 급하게 왔고, 엘리는 교단 책임자로 온 거야. 너는 괜찮아? 별일 없고?]

  둘의 뒤로 익숙한 도시가 보인다. 지금 헬기가 쫓고 있는 토네이도의 경로에 위치한 곳.

  ?

  하긴 각성자 소집에 S급 헌터인 채린과 한창 구호 계획을 짠다던 교단의 성녀가 도시에 없는 게 더 이상하다.

  "토벌은 어떻게 진행 되고 있어?"

  [최악이야. 이미 실패했고 토네이도는 1시간 안에 도시에 도착하는데 대피조차 안 됐어. 곧 연합 의장을 뽑는 선거철이라 불안감을 조성하면 안 된다나 뭐라나.]

  채린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분노가 묻어 나왔다.?

  방금 본 그 방송이 녹화였구나.

  [저는 성물들로 토네이도의 위력을 약화시켜 보려고 해요.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부담감에 떨려 오는 엘리의 목소리. 하긴 자기 어깨 위에 천만이 넘는 도시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 그럴 만하다.

  "걱정 마. 내가 갈 거다. 잠깐 집 나간 고양이 때문에 볼일이 있거든."

  [아저씨가요?]

  엘리의 목소리가 단번에 살아난다. 카렌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토네이도가 삼색이랑 관련이 있어. 그냥 도시 밖에 아무도 못 나오게 주변 통제만 좀 해줘. 할 수 있지?"

  [그래. 그 정도는 내가 각성자들을 동원해서 어떻게 해볼게.]

  [교단의 전력을 동원할게요.]

  "그래. 좀 이따 보자고."

  전화를 끊자마자 기다리던 소식도 들려 왔다.

  [앞에 목표물이 보입니다. 비상용 줄을 내리겠습니다.]

  헬기 앞에 달린 카메라가 토실토실한 고양이의 엉덩이를 비춘다.

  "우아악! 뭐냐!"

  갑자기 자신의 옆으로 나타난 뱀 같은 줄에 삼색이 꼬리가 부풀어 오르며 펄쩍 옆으로 뛰었다.

  [빨리 타. 이 사고뭉치야!]

  그리고 갑자기 버럭 들려 온 익숙한 목소리.

  "어...어? 뭐지?"

  삼색이 얼떨결에 줄을 타고 헬기로 올라오고 반가운 얼굴이 보이자 펄쩍 뛰어 카렌의 품에 뛰어들었다.

  "주이인!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 그리고 결국 주인도 귀찮게 해버렸다."

  품에 얼굴을 쏙 묻으며 긴장이 풀렸는지 눈물을 펑펑 쏟는 삼색의 등을 카렌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윽고 조금 진정된 듯 하자 카렌은 삼색을 살짝 빼내어 눈을 맞췄다.

  "정말 너의 책임이라 생각해?"

  삼색이 끄덕이자 카렌이 삼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 책임이기도 하지. 원래 동물의 책임은 주인이 지는 거다. 그리고 이 정도는 별것 아니야."

  "나 진짜 고양이 아니.."

  "아오! 한 마디를 안 져요! 빨리 저거 없애고 집이나 가자."

  "좋다!"

  "그리고 2주 동안 간식 없다."

  "꾸잉?"

  카렌은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냐고 꿍얼거리는 삼색의 머리를 주먹으로 살짝 문대면서 헤드셋으로 조종사들에게 자신들을 토네이도와 도시 사이에 내려달라고 지시했다.

  헬기에서 내리고 삼색은 이제 자신들 코앞으로 다가온 토네이도를 마주하고는 카렌을 올려다봤다.

  ?

  "주인, 현무와 백호 안 죽이면 안 되냐? 나 많이 도와줬다."

  "기억 읽어 보니까 네 억지를 잘 받아주긴 하더라. 지금도 그냥 인간한테 열받은 거 같은데···. 그건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그럼 일단 만나서 대화를 좀 하자."

  "그거 좋다!"

  카렌은 삼색을 안고는 옆에 미호를 대동하고 토네이도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삼색과 집 주변을 산책하는 듯 여유로운 발걸음. 도란도란 대화까지 오고 간다.

  ?

  "그러고 보니 이 도시 근처에도 숲이 있네?"

  "네. 아버님. 옛날처럼 종이나 나무로 만드는 물건이 거의 없다 보니 요즘 자연과 함께하는 깨끗한 컨셉의 도시가 유행입니다."

  "크으...좋네. 나도 항상 숲을 만들고 싶었는데 너무 일이 커질 것 같아서 말이야."

  말을 하면서 셋의 몸이 점점 하늘로 떠오른다. 아니,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카렌이 실드로 만든 완만한 경사의 하늘길을 걷는 덕분이다.

  "쟤는 정말..."

  "역시 아저씨예요."

  도시에서 카렌의 모습을 보면서 채린과 엘리가 감탄했다. 마치 신선이 여유롭게 하늘을 거니는 듯한 모습.

  "그런데 저 여자는 뭐야?"

  카렌의 옆에서 눈웃음치는 가증스러운 불여우는 어디서 온 거지?

  채린의 눈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어...잠깐 도와주는거겠죠? 그나저나 저희 도시 통제는 어떻게 되가죠?"

  순간 채린에게서 느껴지는 서늘한 한기에 엘리가 재빨리 말을 돌리며 한길에게 물었다.

  "예. 성녀님. 각성자들과 협력해서 시민들 모두 도시 안으로 일단 대피시켰습니다."

  "혹시 말 안 들으면 말하고."

  기분이 언짢은 채린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한 놈만 걸리라는 채린의 살벌한 기세에 주변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눈을 피한다.

  "방해 전파도 도시 주변에 둘렀으니까 만약 아저씨가 카메라에 찍혀도 흐릿하게 형체 정도만 보일 거예요."

  "엘리야. 그거 불법 아니니?"

  "괜찮아요, 언니. 저는 처벌 안 받아요. 그리고 아저씨가 저렇게 해주시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그렇지? 만약 누가 시비 걸면..."

  "누가 그럴 수 있을까요?"

  S급 각성자와 교단의 성녀가 죽이 척척 맞으며 호호 웃자 주위 사람들이 북극에라도 온 듯 몸을 오소소 떨며 다짐했다.

  둘이 말하는 저 남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겠다고.

  그 사이에 토네이도에 진입한 카렌 일행.

  사람 머리만 한 우박이 떨어지고, 뇌우가 번쩍이는 토네이도 내부는 바깥보다 더 지옥 같다.

  "그런데 주인. 어떻게 알고 이렇게 일찍 왔어?"

  하지만 보호막 밖이 어떻든 셋은 카페라도 온 듯 여전히 평화로운 분위기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

  "어...? 그냥? 이 정도는 쉽지."

  "맞아. 헬기가 참 빠르더라."

  미호와 카렌이 순간 당황해서 재빨리 눈빛을 교환하며 삼색 몰래 말을 맞췄다.

  만약 이 녀석이 열심히 달리는 동안 자신들은 편안하게 쉬었다는 걸 알게 삐질 게 분명했다.

  "어? 저기 보인다."

  삼색이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서 재차 물으려는 찰나 카렌이 손가락으로 마침 앞에 보이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손가락의 끝에선 백호와 현무가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느끼며 돌아본다.

  "너흰 뭐냐? 여기를 어떻게 왔지?"

  백호가 묻자 카렌이 태연하게 대답한다.

  "잠깐 대화를 나누러 온 손님? 여기 올라 올 때는 그냥 걸어왔어."

  백호와 현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카렌을 바라봤다. 1000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이런 인간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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