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7/140)

  이 사고뭉치 고양이 녀석

  수정구슬은 카렌과 미호가 도착하기 몇 시간 전의 과거를 눈앞에 펼쳤다.

  삼색은 숲이 살짝 우거진 작은 언덕에 올라서서 눈 앞에 펼쳐진 건물들을 보며 감탄했다.

  계약의 실이 이끄는 대로 일주일을 넘게 달려 도착한 대규모 연구시설. 이곳은 자체적인 상점, 병원까지 안에 있는 작은 마을이나 다름없었다.

  "대한?"

  그런데 연구시설에 오고 가는 차에 적힌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이 골탕 먹인 놈들이잖아?"

  하긴 이 정도 시설을 지을 정도면 대한쯤은 돼야 한다. 요즘 조금 주춤한다만 여전히 연합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이자 길드다.

  "시작하자. 저 안에 백호와 현무가 있어.?"

  자신에게만 보이는 가느다란 실이 끝을 반짝이며 둘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린다. 마침 운 좋게도 구름 뒤에 달이 가린 어둑한 밤이다.

  `경비가 삼엄하네.`

  이번에는 교단의 성지에 침입할 때처럼 밖에서 시선을 끌어 줄 지원도, 순간이동이 가능한 쥐도 없다. 오롯이 혼자만의 싸움.

  "이봐. 교대야."

  "하암...너네 또 10분 늦었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이 녀석이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데 한 번만 봐주라."

  "화장실은 어쩔 수 없지."

  경비들이 잡담을 나누는 동안 삼색은 섬뜩한 칼날이 번뜩이는 가시철조망을 훌쩍 뛰어넘었다.

  고양이 특유의 유연성과 발바닥에 달린 도톰한 젤리 덕분에 조그만 소음도 내지 않고 성공적으로 외각을 돌파한 삼색은 재빨리 제일 큰 건물로 달렸다.

  `원래 중요한 건 티가 날 수밖에 없다. 화려하거나, 크거나.`

  게임과 드라마에서 배운 진리를 되새기며 목표 건물에 도착한 삼색은 발톱을 꺼내 외벽에 박아가며 살금살금 옥상으로 등반했다.

  우우웅

  `ㄱ` 자 형의 밖으로 공기를 내뿜고 있는 환풍기가 보인다.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작은 공간. 하지만 아무리 살이 쪄도 고양이다. 머리만 들어가면 다 들어갈 수 있···?

  "으그극. 좀 끼긴 하네. 살이 찌긴 쪘구나."

  안감힘을 써가며 간신히 진입에 성공한 삼색은 다시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휭, 휭, 휭.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가 밀폐된 공간에서 어지럽게 울린다.

  삼색의 눈이 살벌하게 회전하는 날개를 잠깐 보고는 재빨리 발톱을 살짝 찔러 넣는다. 인간보다 월등한 동체 신경을 지닌 덕에 정확하게 날개 사이로 들어가는 발톱.

  텅, 단번에 날개가 멈췄고 삼색은 그사이의 좁은 틈으로 몸을 비집고 빠져나갔다.

  숨죽이며 어두운 환풍기 통로를 걷던 삼색은 앞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틈으로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연구는 어떻게 돼가?"

  "항상 똑같지 뭐. 위에서는 현장 상황도 모르고 성과 내라고 쪼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한 번씩 방문해서 귀찮게 하고."

  흰색 가운을 걸친 연구원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소파와 자판기를 보니 휴게실로 이어진 환풍기다.

  "후우...가자고, 오늘도 야근이야."

  "젠장. 또야? 월급이 많으면 뭘 하나, 1급 기밀 연구를 맡으니 나가서 쓰지를 못하는데. 택배도 제대로 못 받는 곳인 줄 알았으면 절대 안 왔지."

  푸념을 내뱉은 연구원들이 나가자 휴게실 불이 자동으로 꺼졌다.

  끼이익, 삼색이 환풍기의 잠금장치를 발톱으로 살짝 긋자 깔끔한 절단면과 함께 분리되었다.

  뚜껑을 살짝 열고 휴게실로 잠입한 삼색은 점점 거세지는 심장의 떨림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확실히 현무와 백호가 가까워지고 있다. 진동이 점점 강해진다.

  `저긴가?`

  [특별 연구동]

  휴게실을 나와 심장의 이끌림에 따라 걷던 삼색은 기계와 인력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출입문을 발견했다.

  `저건 어떻게 뚫···.` [위이이잉! 경보! 경보!]

  삼색이 고민하고 있을 찰나 갑자기 스피커를 타고 경보음이 흘러나온다.

  "어...어?"

  그와 동시에 삼색의 심장도 전에 없이 강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꾸잉, 이거... 나 때문인가?"

  우연이라 치부하기에는 지금 자신의 몸에서 거세게 뛰는 심장과 경보가 울린 시점이 너무 딱 들어맞는다.

  한편 삼색이 막 진입하려는 실험실 안의 분위기는 혼란 그 자체였다.

  "저기···. 저거 망가진 겁니까?"

  처음에 한 연구원이 모니터를 보며 무심코 말한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응? 이거 왜 이래?"

  선임 연구원의 눈이 실험실에 연결된 방으로 향했다. 거대한 규모의 방 안에 덩그러니 놓인 화석 두 개.

  대형 트럭 여러 개를 붙여 놓은 듯한 크기의 화석들은 너무나도 생생히 잘 보존되어 있었다.

  껍질 속에 몸을 집어넣은 거북이와 몸을 웅크리고 잠든 호랑이.

  "생체 수치가 왜 올라가?"

  아무리 생동감 넘친다지만 그래봤자 화석. 돌덩어리다.

  그런데 모니터의 수치가 올라감과 동시에 화석들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겹겹이 쌓여 굳어버린 돌 조각들이 후드득 땅으로 떨어지고 실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다.

  "빠...빨리 연구소장님이랑 경비 책임자 불러!"

  모든 연구원이 패닉에 빠진 상황, 선임 연구원이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는 재빨리 긴급 경보를 발령했다.

  "저...저거 살아 있었습니까?"

  "나도 몰라...근데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우린 아무것도 안 했는데?"

  뭔가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나올 것 아닌가. 저 화석들에 대한 실험은 오늘 아예 없었다. 그저 일상적인 수치만 측정했을 뿐.

  쩌적, 쩌저억

  실금을 시작으로 화석 전체에 점점 균열이 일어난다.

  퍼어억!

  갑자기 거북이의 발 한쪽이 쑥 튀어나오면서 폭탄이 터진 듯한 소음이 울려 퍼진다.

  "무슨 일이야?"

  연구소장이 씻다 급하게 왔는지 축축한 머리를 휘날리며 도착했다.

  "저...저.."

  "대체 왜 그래? 어...?"

  짜증스러운 얼굴로 연구원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던 소장도 눈앞에 일어나는 현상들에 입을 쩍 벌렸다.

  이제 화석 따위는 없었다. 팔과 다리에 이어 머리까지 껍질에서 나온 거북이는 눈을 끔벅이며 주위를 둘러봤고, 백호는 몸을 거세게 털며 털에 붙은 돌들을 떨쳐냈다.

  "으아악!"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거대한 덩치 탓에 백호의 몸에서 튕긴 잔해들이 연구원들이 있는 방의 유리를 강타했다.

  "저 방은 절대 못 뚫습니다. 미사일을 갖다 때려 박아도 못 나오니 안심하세요!"

  경비 책임자가 모두에게 소리치려면 안심시켰다. 대한의 시설답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서 만든 시설이다.

  "오히려 잘 됐어. 저걸 연구하면 어떻게 될까···."

  경비 책임자의 말을 들은 연구소장이 손바닥을 비볐다.

  ?

  안 그래도 화석들은 1순위 연구 대상이다. 부산물에 불과한 부스러기에 얻은 신소재가 엄청난 이득을 가져온 마당에, 본체라면?

  "흐흐흐흐···."

  소장이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실험실 안을 바라보았다.

  [여긴 어디지? 우린 분명 대격변을 막느라 봉인에 들어가지 않았나?]

  실험실 안, 현무가 머리를 살짝 털면서 의념을 백호에게 전했다.

  [글쎄...외부의 충격으로는 깨지 않을 텐데? 무슨 일인지 나도 모르겠어. 다만...좋은 의도는 느껴지지 않는군.]

  백호가 자신들을 보고 있는 인간들의 탁한 감정의 바람을 읽으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자네가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저들의 기억을 좀 읽어 보게.]

  [알겠네.]

  현무가 입을 살짝 열고는 가는 물줄기를 강화 유리로 쏘아 보냈다.

  "하하! 뭔 짓을 해도 이건 절대 못 뚫..."

  경비 책임자의 자신감과 다르게 강화 유리는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구멍이 뽕 뚫려버렸다.

  으드드득, 살짝 현무가 고개를 틀자 물줄기가 방향을 틀면서 정확하게 유리를 반듯하게 잘라내었다. 완벽하게 노출된 사람들.

  [이리 와라.]

  백호가 바람을 일으켜 인간 중에 제일 높은 인간으로 보이는 연구소장과 경비 책임자를 현무의 얼굴 바로 앞으로 두둥실 띄웠다.

  [내 눈을 보거라.]

  "으헉!"

  갑자기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둘은 자신도 모르게 명령에 따랐다. 그리고 몽롱해지는 둘의 눈동자.

  ?

  [음...]

  문제는 현무가 기억을 읽은 연구소장과 경비 책임자가 대한에서 비밀리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책임자라는 사실이다.

  특히 연구소장은 중요도로 따지면 대한에서도 손꼽히는 인물.

  지금껏 결코 바르게 살아오지는 않았던 인생들의 발자취들이 현무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뭔데 그러나?]

  기억을 읽은 현무의 표정이 굳자 백호가 어서 자신에게도 기억을 전달해 달라고 재촉했다.

  [으음...]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대격변 이후의 일들.

  연구소장의 지휘 아래, 같은 동족인 인간을 상대로 실험을 벌인 대한이라는 거대기업의 소행들이 머릿속에 박혀 들어왔다.

  [내가 뭐랬나···. 너희들은 너무 착했어.]

  백호가 경멸과 슬픔이 어린 눈으로 겁에 질린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주작과 청룡을 잃어가며 대격변을 도중에 막았다는 사실이 후회되는군. 게다가 우릴 상대로 실험을 해?]

  백호가 주변의 역겨운 실험 기계들을 꼬리를 휘둘러 단번에 부숴버렸다. 그리고는 육성으로 인간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는 예정된 운명을 그대로 맞았어야 했다. 은혜도 모르는 것들. 너희는 지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방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연민으로 도와줬을 뿐.

  은혜가 악의가 되어 돌아온 순간 평생을 함께한 친우들을 잃은 백호와 현무는 선포했다.

  "너희가 원래 맞이해야 할 재앙을 그대로 돌려주마."

  삼색이 마침내 도착한 실험실 내부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경비 인원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고 위로는 수십 층에 이르는 건물 전체가 뻥 뚫려 희미한 달빛이 보였다.

  "으....으.."

  파손된 기계와 전선들은 위협적인 스파크를 내고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인간들은 무엇을 봤는지 공포에 질려 침을 질질 흘린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으윽!"

  위에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인간들은 귀를 부여잡았고 삼색도 인상을 찌푸리며 자기 귀를 덮었다. 이제야 좀 낫다.

  "이 인간들 때문인 것 같은데···. 대체 뭘 한 건지...크앙!"

  삼색은 연구원들을 보며 괜히 이빨로 위협하며 몸을 키웠다.

  ?

  으드득

  "으어...또 괴물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연구원들은 갑자기 덩치가 커진 삼색을 보고 뒤로 자빠졌다.

  "흐어억!"

  이제는 뒤로 돌아 엎드리며 벌벌 떠는 연구원들을 뒤로하고 삼색은 책상을 밟고 위로 뛰었다.

  "한참은 올라가야겠네."

  날 수가 없는 자신은 이렇게 한층, 한층 뛰어가야 한다. 삼색이 투덜거리면서도 재빨리 다시 다음 층으로 올랐다.

  계약의 갑인 백호와 현무는 을인 삼색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자신들이 왜 깨어났는지도 모르겠지.

  "그래도 대화를 하면 좀 진정될 거야."

  지금껏 자신이 느낀 인간들의 좋은 점, 그리고 주인의 존재와 솔라리 여신이 말한 지구로 다가오는 침략자들에 대해 경고해줘야 한다.

  우우웅

  그런데 천장의 구멍과 깨진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마치 악기처럼 소리 내며 진동하기 시작하는 건물.

  "왜 따뜻하지?"

  1월의 쌀쌀한 새벽 온도가 실린 바람이 아니다. 마치 사막 뙤약볕 아래서 몸이 푹푹 퍼지는 느낌.

  "현무여. 시작하지."

  하늘 위로 높이 떠 오른 백호의 솜씨였다. 먼저 건물 근처를 따듯한 바람으로 감싼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차가운 공기를 만든다.

  그리고 둘을 합쳐 빠른 속도로 믹서기처럼 섞어버린다.

  "세상에..."

  삼색이 깨진 유리를 통해 바깥을 보며 비명에 가까운 감탄성을 질렀다.

  바람들이 자아를 가진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충돌한다.

  찬 공기는 밑으로, 더운 공기는 위로 상승하면서 점점 빠르게 회전해 순식간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백호보다 더 위에 있던 현무가 물을 뿜자 물줄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 거대한 구름이 되어 아예 달을 가려버렸다.

  "빨리! 빨리!"

  둘이 뭘 하려는지는 모르지만 심상치 않다.

  삼색이 발에 땀이 나도록 올라가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현무는 몰라도 건물 근처에 떠 있는 백호가 자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우우우!

  소름 끼치는 화음을 내던 소용돌이의 더운 기류는 점점 상승해 마침내 차가운 물을 가득 머금은 구름으로 도달했다.

  슈우우욱!

  갑작스럽게 차가운 물을 만난 소용돌이는 친구를 만나 반갑다는 듯 순식간에 속력이 상승한다.

  그리고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구름이 바람을 타고 내려가서 지상에 발을 디딘다.

  "다 왔...이게 뭐냐."

  삼색이 지붕에 올라가자마자 거센 바람에 발톱을 바닥에다 박아 넣었다.

  이미 저 앞에는 소용돌이가 진화를 거듭해 토네이도가 되어 모든 걸 파괴하고 있었다.

  "백호!"

  삼색이 소리 높여 불렀지만 거센 강풍과 소음에 이미 몸조차 가누기 힘든 상황. 태풍 앞의 반딧불이나 다름없다.

  `망했다...`

  토네이도가 점점 삼색이 있는 건물로 접근하자 삼색은 백호의 관심을 끄는 걸 포기하고 재빨리 자신이 방금 나온 구멍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연구시설 전체를 강타하는 거대한 바람.

  삼색이 있는 실험실은 살짝 빗겨 갔음에도 인간의 모든 기술이 집약된 건물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무너져 내린다.

  * * *

  마지막의 삼색이 있는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걸 본 순간, 충격을 받은 미호 때문에 여우 구슬이 잠시 멈췄다.

  "그 둘이 이렇게 만들었군. 그리고 삼색은 여기 파묻혔고?"

  카렌이 주변을 싸늘한 눈빛으로 훑는다.

  스으윽

  카렌의 의지에 따라 순식간에 실드가 그물 모양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가 모든 잔해 밑으로 빨려 들어간다.

  드드득!!

  돌덩어리들이 하늘로 떠오르며 서로 부딪히며 둔탁한 비명들을 질렀다. 떠오른 그물을 저 멀리 옆으로 날려 버린 카렌은 다시 똑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만약 네가 죽었다면 백호와 현무도 죽여주마."

  신기에 가까운 일을 벌이면서 그저 담담히 말하는 카렌의 모습을 보며 미호의 온몸에 소름이 돋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대체 아버님은...뭐지?`

  조금의 허세도 없다.

  백호와 현무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도 않았다.

  그저 앞으로 벌어질 미래를 말한다.

  범상치 않은 사람임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카렌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옛날에 만나 본 백호와 현무를 아득히 능가하고 있었다.

  "저...아버님?"

  "뭐지?"

  카렌의 동공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호는 카렌의 지금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수백 년을 살아도 무뎌지지 않은 누군가를 잃는 슬픔.

  "제가 빠르게 돌려 볼게요.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혹시나···."

  끝말은 일부러 맺지 않았다.

  미호의 손짓에 따라 여우 구슬이 다시 무너진 직후부터 빠르게 시간을 돌린다.

  둘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작은 기적을 찾지 않을까.

  들썩!

  그 때 둘의 바람에 응답하듯 커다란 돌덩어리 하나가 순간 움찔거린다.

  "으라차!"

  힘찬 목소리와 함께 돌이 옆으로 굴러가며 앙증맞은 고양이 손 하나가 불쑥 솟아오른다.

  "아후! 먼지!"

  잠시 몸에 쌓인 먼지를 몸을 흔들어 털어낸 삼색은 주섬주섬 뭔가를 챙기더니 토네이도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본 카렌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손을 얹고는 중얼거렸다.

  "넌 앞으로 절대 혼자 산책 못 나갈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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