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이상한 브레멘 음악대가 출동했다
"엄마! 오늘은 성전사님들이 없어!"
아이가 여의도 신전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따라 솔라리를 믿어 온 아이에게 성전사들이란 하얀 외투를 휘날리며 시민들을 지켜주는 영웅이다. 그런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굳건히 경비를 서던 성전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 그러네?"
엄마는 혹시나 교대 시간인가 싶어 아이와 함께 잠깐 기다려도 성전사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힝, 오늘도 보고 싶었는데..."
"그럼 신전 안으로 들어가 볼까?"
?
아이가 실망하며 칭얼거리자 엄마는 혹시나 아이가 울지 않게 달래며 말했다.
"좋아요!"
아이는 신이 나서 엄마의 손을 잡고 신전 내부로 향했다.
`오늘 무슨 행사가 있나?`
엄마가 생각할 때도 좀 이상했다. 그래도 외부는 몰라도 신도들과 관광객들이 항상 북적이는 안에는 분명 성전사 한, 둘쯤은 있을 거다.
"여기도 없어요."
"그러네? 대체 무슨 일이지?"
자세히 둘러보니 성전사뿐만이 아니다. 사제들도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관광객들과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교단에 적을 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여의도뿐만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전 연합, 구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전역에 걸쳐 나타났다. 사라진 이들은 모두 한곳에 모여 있었다.
도시 주변이 독립영토로 인정되어서 아예 일반인은 출입조차 못 하는 곳. 구 몽골의 울란바토르. 솔라리 교단의 성지이자 교황이 거주하는 장소.
"성자님을 간악한 방법으로 쓰러뜨리고. 솔라리님을 능멸하는 자들이 도시 밖에 왔다!"
하늘로 길게 솟은 태양을 상징하는 빨간 모자를 쓰고 하얀 사제복을 입은 교황의 모습이 도시 하늘에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도시 안의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우뚝 서서 교황의 연설에 집중했다.
"성물들을 보라. 성자님이 힘드신 와중에도 의지를 담아 내려 주셨다!"
곳곳에 배치된 교황의 사람들이 하얗게 빛나는 물건들을 들어 보인다.
"성벽에 올라라! 우리는 지켜낼 것이다! 성자님이 몸을 뉘이신 성지를 사수해라! 태양이 길을 인도하리!"
"태양이 길을 인도하리."
고양감이나 흥분에 소리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낮게 읊조리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사제나 성전사들의 사기를 걱정할 필요 따위는 없다. 신념이 이들의 무기이며 죽음이 와도 물러나지 않을지니.
성전사들은 방패를 들고 성문 쪽과 성벽에 배치되었고, 사제들은 기관총과 소총을 들었다. 항상 정갈한 복장으로 사람들을 맞았던 사제복 위에 오늘은 탄창이 채워진 전술 조끼를 입었다.
다만 주교 이상의 지위를 가진 자들은 거의 없었다. 높으신 분들은 대부분 교황과 같이 안전한 곳에 머물렀다.
철컥, 철컥
사제들은 하나 같이 능숙하게 총기를 점검했다. 신전이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 교단은 말로 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좀 잠잠해졌지만, 대격변 때 성자와 함께 총을 들고 싸운 사람들이 이들이다.
지금도 사제들의 교육과정 중 군사훈련이 있을 정도다. 비록 성전사들처럼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성벽에 의지해서 총기를 쏜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위협적이다.
비록 상징적으로 세우긴 했지만, 일반 돌이 아닌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져 미사일이 직격해도 버티는 성벽이다.
한 사제가 솔라리의 상징이 새겨져 목걸이를 손으로 잠깐 어루만지고는 총에 달린 조준경을 통해 자신의 적들을 바라 보았다.
"솔라리시여. 부디 당신의 종을 승리로 인도하소서."
* * *
"그러니까, 대부분은 위쪽 일을 모른다고?"
카렌이 성벽에 배치된 병력을 쌍안경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옆에는 총지휘관을 맡은 절지아와 뿌리의 국장이 막사 안에 들어와서 앉았다.
"예. 뿌리와 지역관들의 자료을 확인한 결과 도시 안 사제와 성전사 대부분은 그저 성자님과 성지를 지키기 위해 왔습니다."
"그게 말이 돼? 여의도 쪽은 사제나 주교나 다 비슷비슷해 보이던데?"
"도시에 있는 거의 모든 사제들은 대주교나 주교와 연을 맺고 있으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줄이 없으면 가지도 못하고요,"
그냥 대충 때려 부수려 했던 카렌의 머리가 살짝 지끈거렸다.
"연합 내에 안전지역은 별로 없으니 대부분의 성전사와 사제는 도시에 거주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힘든 곳을 찾아 가기도 하고, 교황쪽이 그만큼 치밀하게 정보를 통제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일이긴 하네. 교단이 왜 이렇게 됐는지도 알겠고."
제대로 된 놈들은 말없이 사람들을 돕느라 돈도 인맥도 없으니 위로 못 올라간다. 결국에는 썩어 빠진 놈들로만 수뇌부가 채워지니 지금 이 꼴이 난 거다.
"제가 신성력을 성자님처럼 보여 주면 좋았는데..."
엘리가 슬픈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았다. 높게 솟아있는 성벽에 비해 자신의 힘이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절지아가 묻자 카렌이 막사 중앙에 있는 전략지도를 살폈다. 전체적인 숫자는 7:3으로 저쪽이 유리하다.
"내가 앞장서서 나서진 않겠다."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는 광신을 가진 이들이 쉽게 무력화될까? 카렌이 나서면 다 죽여야 한다. 썩은 걸 재활용 할 생각은 없어서 방금까지 그러려고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저들도 살리는 게 좋다.
`그러면 침략자 놈들을 대비하는 일이 더 쉬워지겠지.`
자신이 왜 이단 심판관까지 하면서 여기까지 왔나. 결과적으로 엘리가 교단을 이끌어서 노후를 망치려는 놈들을 막기 위해서다.
"그럼 시작하지."
"전략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단의 전력만 놓고 봤을 때 이쪽에 유리한 건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카렌이 있다. 선봉에 서지 않겠지만 뒤에서 지원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성전사들만 진격시켜. 몸 약한 녀석들은 빠져 있으라고 해."
피해를 줄이고 이쪽이 그나마 비벼볼 수 있는 것, 최대한 근접전으로 가야 한다. 다행히 성전사의 전설인 절지아가 손수 끌어모은 성전사들의 숫자는 저쪽과 비슷하다.
?
"알겠습니다."
단순하고, 무모하고, 전례 없는 전략이지만, 절지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서 카렌의 명령을 전파했다. 들은 이들도 그저 짧게 기도문을 올릴 뿐이다.
사제들은 뒤로 물러나고 성전사들은 앞에서 무쇠로 만든 방패를 들고는 진형을 갖췄다. 곳곳에 성벽에 댈 사다리를 어깨에 짊어진다.
"태양이 길을 인도하리."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삼킨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계산하지 않는다.
그저 믿는 대로, 신념대로 행동할 뿐.
"가지."
카렌과 엘리는 손을 잡고 미리 준비해 놓은 단상 위로 올라갔다. 자신을 보는 수많은 눈이 보이자 엘리가 살짝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어깨를 펴라. 너를 바라보는 자들이다."
카렌의 목소리가 엘리의 귀에 꽂힌다. 평소와 같은 다정한 온기가 없는 냉정한 목소리다. 하지만 엘리는 전혀 서운함을 느끼지 않았다.
`지금은 어리광부릴 때가 아니야.`
"여기 마이크 있습니다."
엘리가 마음을 굳게 먹고 국장이 건넨 마이크를 꼭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순간 머리가 하얘졌지만, 그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기로 했다.
?
"저는 엘리라고 합니다."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광활한 초원에 울려 퍼진다. 목소리는 살짝 떨렸지만 단호함이 느껴진다.
"부족하지만 솔라리님이 성녀로 정해주셨습니다. 성자님을 구하고 교단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순간으로 같이 돌아가요. 여러분에게 축복을. 걷는 걸음마다 태양이 함께하길."
엘리가 눈을 감고 오른손을 들자 푸른 신성력이 조그맣게 손에 맺혔다. 엘리의 작은 손처럼 빛은 약했지만, 여기 모인 모두에게는 소중한 증표다. 교단에 회의를 느끼고, 성자가 사라져서 어둠 속을 걷던 이들에게 등대와 같은 한 줄기 빛이다.
"성녀님에게 축복을. 솔라리께 영광을."
뒤쪽의 사제들은 눈을 감고 기도를 했으며, 성전사들이 일제히 발을 굴렀다.
지축이 순간 울리며 엘리가 움찔하며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것들아 살살 해라. 살살. 얘 놀라잖아."
카렌이 엘리의 등을 잡아주며 앞으로 나서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이단심판관이다."
"심판관님에게 축복을. 솔라리께 영광을."
이번에는 카렌의 말을 의식했는지 확실히 방금보다 소리가 줄어들었다. 카렌은 그 모습에 귀엽다는 듯 성전사들을 보더니, 성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가자."
"예!"
카렌이 단상에서 내려와 터벅터벅 도시를 향해 걷고 절지아가 뒤로 따라붙었다. 국장은 약속된 다른 작전을 위해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들고 계신 마이크가 성전사들 귀의 무선 장치랑 연결되어 있어 명령을 내리시면 됩니다."
"그래?"
카렌이 손가락으로 마이크를 툭툭 치고는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방패는 모두 두고 간다.]
카렌의 명령에 성전사들이 자신들을 향한 총탄을 막아주는 유일한 방어 수단을 거침없이 땅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곧이어 내려온 두 번째 명령.
?
[사다리도 버려. 거추장스럽다.]
적들의 성벽을 함락시킬 도구도 사라졌다.
"뭐야? 미친 거야?"
도시 내부의 가장 안전한 건물에서 같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교황과 대주교들이 어안이 벙벙해지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잘못 본 건 아니다. 길가의 작은 돌마저 볼 수 있을 정도로 영상의 화질은 좋았다.
여유롭게 성전사들을 끌고 카렌은 유유히 성벽 쪽으로 다가갔다.
"음..."
총과 대전차 포를 겨누고 있던 사제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며 혼란스러웠다. 대체 뭘 하는 걸까.
[성으로 달려. 절대 멈추지 마라.]
카렌의 마지막 명령이 내려왔다.
"태양이 길을 인도하리!"
성전사들은 힘차게 복창하며 망설임 없이 그대로 성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준비. 내 신호에 사격한다.]
조준하고 있던 사제들에게 지시가 내려온다. 이들은 무기의 안전장치를 풀고 각자 맡은 구역의 적들을 겨눴다.
성벽에서 살기들과 흉악한 무기들이 자신들을 향해도 달려가는 성전사들의 속도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는다.
"쏴!"
타타타탕, 슈우우웅!
총들에서 불을 뿜고 전차마저 단번에 파괴해 버릴 로켓들이 날아간다. 아무리 성전사들이지만 이 정도 화력이면 피해가 만만치 않을 거다.
"어?"
하지만 모든 총탄과 로켓들은 허무하게 허공에서 막혀버리고 말았다. 카렌이 만들어낸 반투명한 막 전체가 성벽과 달려가는 성전사들 사이에 수놓아져 있었다.
[계속 달려]
카렌이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들어 올리자 이번에는 땅에서 성벽 위로 연결되는 경사로가 생겨났다.
"성전사들! 빨리 성벽 위로 올라와라! 사제들은 물러나!"
교황의 손가락 중 하나가 다급하게 성문 쪽에 대기하고 있던 성전사들을 불렀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들의 지리적 이점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육박전밖에 없다.
사제들이 모두 대피하고 절지아를 선두로 카렌 측 성전사들이 마침내 성벽에 도달했다. 그 짧은 사이 새로 진형을 짠 교황 측도 손가락들을 앞세워 맞섰다.
"솔라리님에게 영광을!"
"이단자에게 징벌을!"
하얀 외투를 휘날리며 같은 신을 모시는 자들이 마침내 뒤엉켰다. 서로의 몸에 철퇴보다 묵직한 주먹을 날렸으며 성벽 위는 뚫으려는 자들과 막으려는 자들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처절하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렌이 중얼거리며 뒤쪽을 살짝 바라보았다. 역시나 엘리가 입술을 꽉 깨물며 성벽 위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프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끝내 고개는 돌리지 않는다.
엘리의 모습을 보면서 카렌은 자신이 더 이상 손 쓰지 않고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이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함이다. 지금 저 성벽 너머의 도시에 들어가 있는 별동대를 위해서 말이다.
"빨리 그 녀석들이 성자를 찾아야 할 텐데 말이야."
*
카렌의 바람과는 달리 `그 녀석들`의 일은 더디게 진행되는 중이다.
"꾸잉, 여기 맞는 것 같다고?"
-찍!
"아니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삼색이 답답해서 자기 가슴을 앞발로 콩콩 쳤다. 도시 내부까지 수월하게 침입한 건 좋은데···. 문제는 이 쥐랑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안 된다. 그 때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오면서 인간 목소리가 들렸다.
"성벽 위로 더 지원 가!"
"더? 그러면 경비가 너무 허술해져."
"교황님 명령이야.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빨리 가라."
그 모습을 보는 삼색의 눈빛이 번뜩 빛났다.
`저거다. 지금 경비 인력이 있는 곳은 두 군데 밖에 없다. 교황의 거처와 성자가 있는 곳!`
삼색은 토리와 함께 성전사들이 온 곳으로 건물 지붕을 타고 훌쩍 뛰어넘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