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4/140)

  무서운 채찍과 귀여운 당근

  "자! 따라 해보세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엘리는 이제 인질은커녕 오히려 자신을 납치한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들고 뭔가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다.

  "이..이렇게 하면 됩니까?"

  건장한 사람들이 자신의 허리춤에도 오지 않는 아이를 상대로 쩔쩔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얼굴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저씨 앞에서는 최대한 공손하고 비굴하게! 어설프게 강한 척하지 마세요. 그런 거 안 통해요."

  "저...성녀님. 이단심판관님이 그렇게 강하십니까?"

  뿌리의 부대원 중 한 명이 학교에서 질문하는 학생처럼 손을 들고는 말했다. 엘리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무섭게 깔고 말했다.

  "여러분들 혹시 드래곤 이길 수 있어요?"

  "드...드래곤?"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드래곤의 아종이라 불리는 드레이크도 단독으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판국인데, 전설 속의 그 드래곤?

  지금도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얘기한다. 과연 게이트에서 드래곤이 언제 출몰할까. 만약 나타난다면 몇 급 게이트로 지정될까 하는 주제로 말이다.

  엘리의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위기에 처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러분이 여러 나라 군대랑 정면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어요?"

  "여...여러곳? 한 곳이면 게릴라로 어떻게 해보겠지만, 그건 좀..."

  아무래도 드래곤보다는 조금이나마 손에 잡히는 나라로 얘기하니 현실적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단번에 부대원들이 웅성거리며 시끄러워진다.

  `이것도 많이 축소한 건데..`

  막상 엘리 입장에서는 입이 근질근질할 정도로 아저씨에 대한 자랑을 참았다.

  마왕을 잡았냐느니, 인류 멸망을 몇 차례나 막았냐느니 하는 말은 이 사람들에게는 너무 동화 속 얘기로 느껴질 수 있어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엄청 다정하고 친절한 아저씨지만 영화보다, 전설속의 용사보다 더한 삶을 살아 온 사람이다.

  "자! 주목!"

  "예! 성녀님!"

  교실의 쉬는 시간처럼 시끄러워지자 엘리가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대고 크게 말했다. 과연 잘 훈련된 부대원들답게 순식간에 정자세로 엘리에게 집중하기 시작한 사람들.

  ?

  "못 이기죠?"

  "그렇습니다!"

  부대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자신들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드래곤과 나라를 상대로 싸울 순 없다.

  "그럼 얌전히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알았죠?"

  "예!...어?"

  콰콰콰쾅!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과 진동으로 바닥이 울리며 천장에 매달아 둔 조명이 깜빡인다. 지하가 원래 소리가 울린다고는 하지만 길이가 100km 넘어가는 엄청난 규모의 땅굴이다. 이 정도 소음이면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저희가 설치해 둔 부비 트랩 소리입니다. 이단심판관님이 하시..."

  콰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금씩 가까워지는 폭발음. 심판관님이 드래곤도 이길 수 있다는 성녀님의 말을 듣고 보니 마치 거대한 용이 포효하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저게 저렇게 쉽게 파괴될 게 아닌데..."

  혹시나 불청객이 들어올까 봐 특수하게 보강해서 만든 방과 공간에 엄청난 수의 함정을 깔아 놨었다. 게다가 속도는 또 어떤가. 아까는 바닥이 떨렸다면 이제는 자신들의 몸이 떨릴 지경이다.

  "아저씨가 화가 많이 나셨네. 어떡하지..."

  엘리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불안해하자 뿌리의 부대원들이 다급해지며 엘리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성녀님! 이 각도로 머리를 박으면 어떨까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뒤에 조금 더 감성적인 말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눈물을 흘릴까요?

  "그건 역효과야. 네 험악한 인상을 봐라."

  아까와는 달리 앞다투어 의견을 제시해 가며 직접 시연까지 한다. 엘리도 부대원들에게 다가가 직접 거슬릴만한 부분을 교정해 주기 시작했다.

  "맞아요! 그렇게 하시면 돼요."

  엘리는 모두를 닦달하며 카렌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부디 아저씨가 너그럽게 봐주셔야 할텐데...`

  처음에는 갑자기 자신을 납치해 무서웠지만 알고 보니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다.

  * * *

  "여기가 확실하다."

  삼색이 두꺼운 철문 앞에서 코를 킁킁댔다.

  "먹을 거밖에 못 맡는 코로 뭐 아냐?"

  "흔적이 다 여기로 이어져 있다!"

  "그건 나도 보면 알겠다. 이 고양이야."

  놈들에게서 떨어진 모든 피와 발걸음이 이 문 앞에 제일 많다. 영물의 감은 개뿔. 삼색은 거의 모든 길을 다 돌고 와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애초에 핵 공격에 대비한 방공호로 설계된 까닭에 문 무게만 1톤을 족히 넘는다. 하지만 카렌은 애초에 정중하게 문을 열 생각 따위...

  [문 개방. 문 개방.]

  "꾸잉?"

  카렌이 문을 부수려는 순간 문 앞의 스피커에서 알림음이 나오며 거대한 문이 스스로 개방되었다.

  `나와서 싸울 셈인가?`

  카렌은 삼색에게도 실드를 씌우고는 앞으로 날아 올 공격을 대비했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보인 건 총탄이 아니라 납작 바닥에 엎드린 사람들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감히 성녀님과 이단심판관님 알아뵙지 못하고 큰 죄를 지었습니다."

  "...이상한 인간들이다."

  자신들이 납치하고는 갑자기 용서를 빈다니? 삼색과 카렌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빨리 다음 대사 하세요."

  엘리가 저들의 옆에서 속삭이자 부대원들이 다시 일제히 외운 걸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신다면 저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이단심판관님에게 축복을! 솔라리께 빛을!"

  카렌은 엘리의 지휘에 맞춰 우렁차게 지하를 광장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 똑똑한 아이야.`

  바닥에는 여전히 자신이 공격한 상처에서 흐른 핏자국이 남아있지만, 환자는 없었다. 엘리의 솜씨가 분명하다. 과정은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그 짧은 사이에 잔뼈 굵은 어른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안색이 안 좋군.`

  성자와 힘이 나뉘어서 역시나 조금 무리한 모양이다. 티는 안 내지만 평소보다 살짝 엘리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계속 숙이고 있으세요."

  카렌이 잠시 생각하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머리들이 움찔거렸지만, 엘리가 한마디 하자 얌전히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나를 향한 감정은 남아있군.`

  살의와 적의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하긴 자신들과 동료들을 죽일 뻔한 놈이니 간단히 사그라들 리가 없다. 만약 그랬다면 오히려 카렌이 실망했을 거다.

  성자를 봐 왔으니 성녀는 익숙하지만 이단심판관은 처음 보는 직책이니 그럴 만하다.

  `교육이 필요해.`

  카렌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턱을 살짝 들었다. 손을 가슴 쪽으로 갖다 대며 양손의 손가락들로 살짝 깍지를 끼며 손바닥을 아래로 향했다. 마치 왕의 지팡이를 땅에 짚고 있는 듯하다. 연기 따위가 아니다. 그저 옛날 왕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잠시 떠올렸을 뿐.

  "심히 불쾌하군. 너희는 모두 죽어야 마땅하다."

  누가 봐도 오만할 정도로 단숨에 바뀐 카렌의 자세와 낮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단순히 태도와 말투만 달라진다면 이놈들은 꿈쩍도 하지 않을 거다. 걸맞은 힘이 필요하다.

  "윽..."

  "커억"

  카렌의 의지를 받들어 몸에서 해방된 마나가 폭풍처럼 카렌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오히려 아무 힘도 없는 일반인이라면 아무것도 못 느꼈겠지만, 여기 모인 이들은 각성자와 기감이 인간의 절정에 달한 최정예의 특수부대원들.

  순식간에 대기를 장악해 무겁게 짓누르는 마나에 모두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금껏 본 적 없던 카렌의 모습에 엘리가 놀라서 카렌을 바라보았지만 카렌은 엘리를 향해 한쪽 눈을 찡그렸다.

  "그래도 당당하게 죽게 해주지. 모두 고개를 들어라."

  마나는 위압감을 줄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강제력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의 머리는 벽에 막힌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개개인의 머리 위에 헬멧처럼 실드를 전개해버린 카렌의 작품이다.

  "쯧. 이것조차 견디지 못하는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습격을 해?"

  -탁

  카렌이 입꼬리를 비틀며 손가락을 튕기자 모두를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씻은 듯 사라졌다.

  "헉...헉"

  "뭐...뭐야."

  일개 인간이 이런 힘을 가질 수 있나? 여기 S급 헌터들과 일하다 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날고 긴다는 그들조차 자신들을 이렇게 할 순 없다.

  "죄송합니다! 제가 책임자입니다. 저만으로 용서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군복을 입은 남자가 달려와 카렌의 앞에 머리를 박고는 용서를 빌었다. 아까 엘리가 맨 처음 치료해준 팀장이다.

  "너 따위가?"

  "제가 모든 걸 지휘했습니다. 제가 결정을 내린 책임자이니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저기 뒤에 있는 놈들이 부족해 보여도 나름 정예라 심판관과 성녀님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용서를 비는 동시에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팀장의 모습에 카렌은 내심 이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쓸만한 녀석이다.

  "아닙니다! 저희도 책임이 있으니 부디 벌을 나눠서 받게 해주십쇼!"

  "맞습니다!"

  부대원들이 애써 들었던 머리를 다시 땅에 처박는 모두의 모습에 카렌의 눈이 반짝였다.

  `쓸만하군. 합격이다.`

  괜히 몇 명 본보기로 삼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얌전히 끝낼 수는 없지. 자신은 악역이 되어 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공포를 주어야 한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다면 모두 다 죽여주지. 목을 내밀어라."

  카렌이 손가락을 까닥 움직이자 수십 개의 반투명한 칼들이 생겨났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보내달라는 듯 날카로운 예기를 뽐내며 공중에서 흔들거렸다.

  모두 칼날들을 보고는 그저 카렌이 시킨 대로 가만히 무릎만 꿇고 눈을 감았다.

  `덤벼봤자 못 이긴다.`

  아까 카렌에게 무심코 불만을 품은 자들은 단번에 자신의 썩은 눈을 원망했다. 성녀님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실감이 난다.

  실제로 심판관님이 드래곤이나 나라와 싸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자신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긴다.

  적이라면 죽더라도 싸웠겠지만, 자신들의 무지와 실수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닌가. 압도적인 힘과 권위 앞에 그저 심판을 받아들일 수밖에. ?

  `엄마...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가고 싶었는데.`

  `신이시여...`

  모든 걸 포기하고는 각자 자신의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심판을 막은 존재는 힘이 아니라 부드럽고 여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아저씨.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놈들이 감히 성녀인 너를 잡아갔는데도 말이냐?"

  "모르셔서 그러셨잖아요. 그렇죠?"

  엘리가 조직을 향해 묻자 모두는 고개를 대차게 끄덕였다. 얼마나 세게 했는지 바닥 쪽으로 휘청거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흠...그럼 저놈들이 무시하지 않을까?"

  "아니에요. 저한테도 괜찮게 대해주셨어요. 그렇죠?"

  부대원들은 다시 한번 죽기 살기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엘리를 바라보는 눈에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처음 엘기에게 살기 섞인 눈빛을 날리던 사람들은 엘리에게 깊게 감동했다.

  `저렇게 성녀님이 우리를 위해 애써주시다니...`

  `저 무서운 이단심판관님을 설득하시고 있어.`

  모두 아기 새와 같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성녀만을 바라봤다. 카렌은 엘리에게 쏟아지는 호감을 느끼고는 못 이기듯이 말했다.

  "성녀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만 봐주겠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성녀에게 해라. 나는 정말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성녀님!"

  부대원들이 다시 한번 기적을 일궈낸 엘리를 감싸고는 차례차례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엘리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발뒤꿈치를 들며 카렌을 봤지만 카렌은 저 멀리서 미소를 지어주었다.

  `저 녀석들을 엘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해.`

  자신은 임시직이다. 뿌리를 이끌어 갈 사람은 성녀인 엘리다.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신망을 얻는 방법은 절망 속에서 구원을 내려주고 기적을 보여주는 거다. 성자가 대격변 이후 솔라리 교단을 성장시킨 비결이기도 했다.

  "성녀님은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10살이에요."

  엘리가 손가락을 모두 펴고 말하자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심장을 부여잡고 휘청였다.

  게다가 자신을 구원해 준 사람이 사랑스럽고 귀엽기까지 하다? 그건 이미 끝났다.

  "혹시 이거 드실래요?"

  "야! 그 맛대가리 없는 걸 어딜 감히 성녀님께 드려?"

  "아악!"

  한 요인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며 꺼낸 건빵에 당장 뒤통수를 맞고 동료들에게 끌려나갔다.

  "여기 초콜릿은 어떠세요?"

  "초콜릿은 좋아해요. 고맙습니다."

  엘리가 받아들고는 카렌에게 달려와 반을 내밀었다.

  "아저씨. 이거같이 먹어요."

  부대원들은 카렌이 무서워서 차마 곁에 다가오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엘리를 향한 요원들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우리 성녀님은 마음씨도 곱지."

  "저 작은 손 좀 봐."

  카렌의 계획은 완벽하게 들어갔다. 벌써 `우리`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는 부대원들의 모습을 보자 만족하며 엘리가 준 초콜릿을 받아 들고는 한입 물었다.

  "맛있네. 너도 먹어라."

  "네!"

  엘리는 카렌이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자신도 크게 깨물었다. 추운 날씨에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한 맛에 엘리의 절로 밝아졌다.

  "의자."

  "예!"

  굳이 서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카렌이 부르자 순식간에 의자와 시키지도 않은 책상까지 엘리와 카렌의 앞에 놓여졌다.

  "국장 것도 가져와. 셋이서 얘기나 좀 하게."

  책상 위에는 김이 피어나는 따듯한 차 두 잔과 어디서 구했는지 엘리를 위해 코코아가 나왔다.

  "지금껏 어떻게 지내왔는지 간단히 말해 봐. 현재 상황은 조금 있다 듣지."

  팀장이 이런 얘기를 아이 앞에서 해도 되나 하고 눈치를 보자 카렌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여신이 직접 택한 사람이자 너희를 이끌 성녀다. 너희에게 지금껏 한 걸 보고도 그냥 아이로 보이나?"

  "죄송합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팀장이 말한 뿌리의 과거 얘기는 의외로 짧게 끝났다. 최종결정권자인 성자와 대리인인 국장의 부재 때문이다.

  "그러니까...너희는 딱히 새롭게 한 건 없네? 정보 수집하고 헌튜브, 경매장 관리 빼고는?"

  "맞습니다."

  "질책이 아니다. 어쩔 수 없었겠지. 일단 지휘체계를 다시 확립한다. 네가 앞으로 국장이다."

  "네?"

  "국장도 행방불명이라며. 만약 국장이 돌아와도 내가 임명한 건 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건 너니 네가 해라."

  "...알겠습니다."

  단호한 카렌의 말에 팀장이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엘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게 너희에게 하는 마지막 명령이다. 앞으로는 최종결정은 모두 엘리가 한다."

  "제가요?"

  엘리가 코코아를 후르르 마시다가 갑작스러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좋은 경험이 될 거다. 나중에는 교단 전체를 이끌어야 하니까 연습이라고 생각해라. 물론 내가 도움은 줄 수 있겠지."

  `아저씨가 옆에 있다면야...`

  "알겠어요. 대신 꼭 도와주셔야 해요?"

  "알겠다. 혹시 불만 있는 사람? 손 들어라."

  물론 감히 손 드는 사람은 없었다. 카렌이 쓱 돌아보는 것도 무서웠지만, 저 귀여운 성녀님을 모시는 일도 좋다. 능력? 아까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이미 보여주셨다. 게다가 옆에서 이단심판관님이 도와주신다는데 누가 반대할까.

  "좋아. 그래도 재미는 없군."

  카렌이 아쉽다는 듯 입술을 살짝 핥자 모두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만약 손을 들었으면...`

  그 후는 상상보다 더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을 거다.

  "이제 현재 상황 말해 봐. 교단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

  "마침 지금 긴급하게 처리해주셔야 할 사항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거 가져와 봐."

  팀장이 칩 하나를 가져와서 노트북에 꽂고는 화면을 엘리와 카렌 쪽으로 돌렸다.

  -콰콰쾅

  [죽여! 늙은 노인이야! 왜 쩔쩔매고 있어?]

  영상의 시작부터 굉음과 함께 사람들이 한 노인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할아버지?"

  익숙한 사람이었다. 다만 항상 깔끔했던 절지아의 옷은 공격받아 넝마나 다름없었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휘날렸다. 몸은 비교적 멀쩡했지만 지친 기색은 역력했다.

  "경기도 지역관이었던 절지아입니다. 성녀님이랑 친분이 있습니까?"

  짧은 영상이 끝나고 국장이 엘리에게 물었다. 평소에도 교단의 주요 인사들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기도 지역관인 절지아가 파면당하고 계속 따라붙다가 찍은 영상이다.

  "네. 지금은 어디 계시죠?"

  "저희가 있는 곳과 가깝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쉴새 없이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엘리가 카렌을 바라봤지만 카렌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고 그저 살포시 엘리의 손을 잡아 주었다. 엘리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구해야죠. 교단을 위해 저렇게 하시는 거예요."

  "뭐해? 준비 안 하고."

  뒤이어서 카렌의 말이 나오자 뿌리의 기지는 오랜만에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장비 챙겨! 5분 안에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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