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쌓은 모든 업보는 언젠가 돌아온다
엘리는 몸을 푹신하게 감싸는 보들보들한 이불의 감촉을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즐겼다. 누울 때마다 자신이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옷도 많이 사주셨어.`
작고 귀여운 곰돌이들이 잔뜩 들어간 지금 입고 있는 잠옷도 너무 부드럽고 좋았다.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이 집에서 노크를 할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문이 열리며 역시나 아저씨가 들어와서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엘리는 언제든지 아저씨가 앉을 수 있게 의자가 방 중앙에 있어도 치우지 않았다. 그 뒤로 역시나 따라온 삼색도 카렌의 옆에 누웠다.
"잠깐 얘기 좀 할까?"
"네. 그럼요!"
백화점에서 갑자기 자신이 멈춰 선 일 때문일까.
"원래는 얘기해 줄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말해줄 수 있겠어?"
"물론 얘기해드릴 순 있지만...아저씨가 신경 안 쓰셔도 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얘기를 안 했어요."
"그래?"
"절대 아저씨를 못 믿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강하게 고개를 젓는 엘리를 카렌은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는 내 보호 아래 있는 사람이다. 혹시 싫으냐?"
"저는 물론 좋아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저씨에게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엘리가 잠옷 상의 끝자락을 움켜잡고 눈을 살짝 감았다 뜨더니 카렌을 보며 물었다.
"이렇게 저렇게 해주시는 이유는 제가 성녀라 그런가요? 아니면 아저씨가 저에게 보는 누군가 때문인가요?"
엘리는 어쩌면 아저씨에게 미움받을지도,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물어봐야 할 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야 자신도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너무 다가가면 불타 버릴 거야.`
카렌이 침대에서 읽으라고 갖다준 그림 동화책 중에 `이카루스`라는 책이 있었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로 태양 너무 가까이 날아 끝내 추락하고 만 비극의 신화.
엘리가 보기에 카렌은 태양이다. 자신에게 내리쬐는 햇볕은 따스하고 밝다. 더 다가가고 싶지만 이렇게 무조건적인 호의는 너무 무서웠다.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그래. 내가 너무 나빠....`
카렌의 말에 엘리의 눈이 질끈 감겼다. 어떤 말을 들어도 실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래도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얘기를 들으러 왔지만 내가 먼저 해야겠어."
"네?"
"오늘은 좀 다른 얘기를 들려주마. 좀 어두운 분위기인데 괜찮지?"
`무슨 말이시지?`
?
엘리는 카렌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왕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길에서 가족을 잃은 갓난아기를 주웠지. 아델라라는...너와 똑 닮은 여자아이었다."
그렇게 카렌은 얼마 전에 신이 보여 준 본 자신의 과거를 모두 엘리에게 말해주었다.
"흑...너무 슬퍼요."
카렌이 자신의 왕국을 떠나며 이야기가 끝나자 눈물을 훔치며 침대에서 일어나 카렌에게 다가가 안아 주었다. 앉아 있어도 어깨까지 손이 오지 않아 카렌이 엘리의 옆구리에 손을 끼고는 훌쩍 들어 자신의 무릎 위로 올려주었다.
"너무 아프셨겠어요."
"지금은 괜찮다."
"그래도...흉터는 남잖아요. 그리고 저는 그 아델라 언니에게 너무 감사해요."
이번에는 카렌이 엘리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엘리를 쳐다봤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엘리의 눈빛은 티 한 점 없이 올곧았다.
"만약 아델라 언니가 없었다면 아저씨가 저에게 이렇게까지 하셨을까요?"
엘리의 말에 카렌의 머리는 순간 망치로 맞은 것처럼 띵했다.
`그런가...`
닮지 않았더라면? 이 아이에게서 아델라를 보지 못했다면?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잘...모르겠구나."
사람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카렌은 똑같이 했을 거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언니에게 고마워요."
"그래...그랬구나."
아델라가 남기고 간 무언가가 있었다. 시대를 넘어, 시간을 넘어, 차원을 넘어 지금 눈앞에 있었다. 가슴속 깊이 새겨져 있던 흉터가 살짝 엷어진 느낌이다.
"그래도 저는 아델라 언니가 아니라 엘리에요. 아셨죠? 물론 언니한테는 자주 기도할게요."
"맞다. 너 성녀였지?"
카렌이 워낙 아이처럼 대하다 보니 맨날 잊고 산다.
"여신님보다 아저씨가 더 좋아요."
"그러다 천벌 받는다?"
"여신님도 이해하실 거예요. 마음에 든 사람한테는 자비로우시잖아요? 가끔 좀 고집을 부리시긴 하시지만."
"그렇지."
성녀와 이단 심판관이 신을 흉보는 모습을 보며 삼색이 뒷발로 자기 머리를 툭툭 털었다.
`저래도 되나? 하긴 친하면 저렇게 해도 된다고 들었다.`
인간끼리 뭐라 그랬더라? 찐친이라고 그랬던 걸 들었다. 몇억이 넘는 인간 중에 성녀와 이단 심판관으로 임명할 정도면 그 정도는 되겠지.
"아저씨 얘기를 들려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이제 제 얘기를 해드릴게요."
카렌과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에 엘리는 기분 좋게 자신의 얘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내용은 정작 비극이었다. 왜 엘리가 지금껏 얘기를 안 했는지 알 것 같았다.
* * *
?
대격변이 일어난 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많아졌다. 보육원에서 모두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연합은 아이를 입양하는 가정에게 꽤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부모 대부분은 좋은 의도로 아이를 데려왔지만, 엘리가 입양을 간 부부는 불행히도 악용하는 쪽이었다.
"이년은 대체 어디 간 거야? 잘 있나 확인하러 복지사가 올 때가 됐는데."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여자가 앙칼지게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이 발끈하며 자기 아내에게 쏘아붙였다.
"그러니까 좀 적당히 하랬잖아."
"당신이 할 소리야? 어차피 복지사가 안 나온 적이 훨씬 많으니 이번에도 안 나올 거야. 저번에 보니까 주소도 제대로 모르더라고."
일정 주기마다 입양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복지사가 파견된다. 하지만 대격변 이후 공무원들은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기존에 있던 공무원들이 많이 흡수되었지만 세상이 바뀌어 버렸다.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변화는 지형이 바뀌니 무너지고 새로 지어진 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토지와 인구조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게다가 공무원 한 명당 인구 몇천 명을 담당하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젠장. 벌써 몇 달째야. 어디 이상한 단체 가서 신고하거나 얼어 죽어서 경찰이 찾아오는 거 아냐? 그러면 귀찮아져."
"정신 나간 여자아이 얘기를 믿겠어. 우리 얘기를 믿겠어?"
얼마 전부터 엘리가 자신의 귀에 누군가 들린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둘은 머리가 번뜩였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없는 기생충 같은 이들은 또 이런 방면에서는 머리가 기가 막히게 돌아갔다.
"아이가 정신질환이 있으면 지원금이 추가로 나오잖아?"
그 이후로 둘은 끊임없이 엘리를 괴롭혔다. 하지만 엘리는 지독한 악의 속에서도 부부의 의도를 꿰뚫고 의연하게 말했다.
"두 분이 뭐라고 하시던 제 귀에는 진짜 들려요. 하지만 두 분이 저를 미쳤다고 말해도 좋아요. 그걸로 돈을 받으셔도 괜찮고요."
이미 자신들의 의도를 달성한 뒤에도 잠잠해질 줄 알았던 부부의 행동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들이 문을 잠그고 외출한 사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엘리가 사라져버렸다.
"이게 뭐야...자물쇠를 쥐가 갉아 먹었나?"
"어휴, 내가 이 멍청한 남자랑 결혼했단 말이야? 쇠를 어떻게 쥐가 갉아먹어?"
"그럼 네가 그 똑똑한 머리로 말해보지? 이 이빨 자국은 뭔데?"
남편을 비아냥댔던 아내는 막상 떨어져 나간 자물쇠를 보자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봐도 꽤 두꺼운 자물쇠가 쥐가 치즈를 갉아 먹은 것처럼 떨어져 나가 있었다.
"밥값 안 들어가고 좋지. 이대로 영영 안 돌아왔으면 좋겠어"
하지만 둘의 바람과는 다르게 엘리는 지금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다. 다른 점은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
"엘리님. 정말 괜찮겠습니까? 굳이 양부모들과 마주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아니요. 해줄 말이 있어요. 어제 아저씨와 얘기했어요."
강이사의 말에도 엘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꾸잉? 막 물이든 컵을 뿌리고 그런 거? 나 그거 눈 앞에서 보고 싶다."
"넌 제발 가만있어라, 응?"
삼색이 꼬리를 부풀리며 말하자 카렌은 삼색의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엘리의 의사가 중요하지. 이런 건 뿌리부터 잡아야 나중에 흔들리지 않는다."
아직 어린 나이긴 하지만 이미 신과 대화한다는 것부터 보통 아이는 아니다. 카렌은 엘리의 생각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다.
"솔라리 교단이 정상화되면 앞으로 교단을 이끌어야 할 성녀야."
교황이 한 짓을 봤을 때 당분간은 엘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거다. 물론 성녀라는 이름은 교단 내에서 절대적이지만 인류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엘리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커야 한다.
끼익
"도착했습니다. 성녀님. 여기가 맞습니까?"
운전석에 앉은 한길이 장난기를 지운 표정으로 앞에 있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이를 입양한 부부에게 우선으로 지원되는 주택.
"맞아요."
마음속에서 수없이 다짐하고 결심했지만 그래도 차 밖으로 나와 건물의 입구를 마주 보자 엘리의 몸은 조금씩 떨려왔다.
`아니야. 마주 봐야 해.`
부부가 자신에게 쏟아낸 학대와 욕설 앞에서 의연하게 대처했지만 조그마한 방에서 혼자 운 적도 많았다. 갇혀 있을 때는 몰랐지만 다시 들어가려니 밝은 대낮임에도 주택의 입구가 굉장히 어두워 보였다.
엘리는 멈춰서서 잠깐 심호흡을 했지만 그래도 몸은 여전히 떨렸다. 그런데 갑자기 눈 앞에 손이 불쑥 나타났다. 엘리가 고개를 치켜들고 위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카렌의 손이었다. 옆에서 삼색이가 어서 손을 잡으라고 엘리에게 앞발을 발랄하게 흔들었다.
엘리는 무심한 카렌과 장난기 가득한 삼색을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진정되는 걸 느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카렌에게 배운 대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들어가자."
셋은 엘리가 살던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띠링!
"여보, 누구 왔는데? 나 화장실에 있으니까 좀 나가 봐."
"엘리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같이 왔어."
"경찰이나 복지관이야?"
"아니. 그런 느낌은 아닌데? 혹시 저년이 우리에 대해 모함을 한 게 아닐까?"
"뭐?"
"잘 됐어. 데려온 놈들을 손봐주면 다시는 허튼짓을 하진 않겠지."
남자는 한때 학교에서 소위 잘나갔다는 부류에 속했고, 말단이지만 조직 생활도 했던 경험이 있었다. 기세등등하게 현관문으로 간 남자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문을 벌컥 열었다.
"야! 너네...어...어?"
은발의 남자는 키만 좀 컸지, 위협적이진 않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190cm는 족히 넘는 곰 같은 놈이었다. 초인종 카메라 옆으로 물러나 있어서 미처 보지 못했다.
"들어갑시다. 시끄러워질 수도 있으니."
한길이 카렌의 집에서나 쭈그러져 있지, 기본적으로 체격이 압도적이다. 게다가 엄청난 훈련 덕분에 옷 위로도 근육이 두드러지게 울룩불룩 나와 있었다.
사내를 거의 떠밀듯이 집 안으로 밀어 넣은 한길이 현관문을 이중으로 잠갔다. 철컥, 철컥. 거친 기계음 소리가 남자의 귀에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여보? 해결..뭐야? 왜 집에.."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실 밖으로 나온 여자도 사나운 곰처럼 씩씩거리고 있는 한길을 보며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어..어! 엘리야. 저 분들은 누구셔?"
"당신이 그 양부모군."
갑자기 집에 찾아온 자들을 보며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자 부부의 태도가 단번에 바뀌었다.
"저···. 무슨 말을 듣고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엘리는 정신질환이 있습니다. 참 불쌍한 아이입니다."
가장 강해 보이는 한길의 눈치를 슬슬 본 남편이 엘리를 향해 입꼬리를 내리며 안쓰러운 표정을 만들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맞아요. 이거 보세요."
아내는 한술 더 떠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를 펼쳐 보이며 손가락을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흑...저 불쌍한 것을 이렇게 직접 집에 데려와 주시다니 정말 감사해요."
"꾸잉, 개소리하지마라."
가증스러운 둘의 연기는 갑자기 나타난 말하는 고양이에 의해 끊어지고 말았다. 어느새 거실에 있는 소파에 제 집처럼 누워있는 삼색은 둘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거 아침드라마에서 다 봤다. 그러다가 물이나 김치 싸대기 맞는다. 내가 때려줄까?"
삼색이 앞발을 내밀자 털 속에 숨어 있던 발톱이 칼처럼 스릉하고 튀어 나왔다.
"...고양이가 말을..?
"
"시끄럽게 소리지르지 마라. 고양이가 말 하는거 처음 봐?"
삼색이 어슬렁거리며 자신의 발톱으로 소파를 주욱 긋자 둘의 비명이 쏙 들어갔다. 소파에 단순한 스크래치를 남기는 게 아니라 가죽이 그대로 갈라지며 그 안에 있던 안감들이 살벌하게 튀어 나왔다.
"...네가 말하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잖아. 그리고 고양이가 개소리가 뭐야."
카렌이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삼색을 안으며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저 인간들 냄새가 너무 구리다!"
이번에는 삼색도 억울하게 항변했다. 하긴 엘리의 긴장도 완전히 풀리고, 저 꼴보기 싫은 부부도 정신이 반쯤 나가서 조용해지니 좋았다.
'이 녀석 일부러 한 건가?'
정말 가끔 영리해지니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생물이다.
"엘리야. 얘기나 빨리 하고 가자."
삼색의 말대로 카렌은 쓰레기가 살고 있는 악취가 진동하는 집에서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두 분은 지옥에 가실거예요."
"주인. 엘리가 나보다 더 한다."
삼색이 거봐라는 듯 엘리를 자신의 앞발로 신나게 가르켰다.
"아...아니! 그게 아니라..."
엘리도 당황한 듯 잠시 말을 더듬다 설명을 시작했다.
"두 분에게 솔라리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어요. 지금이라도 착하게 사셔야 조금이나마 지옥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거예요."
"이번에는 돌려서 더 심하게 말한다."
"제발 가만히 있어. 이 눈치 없는 고양이야."
영리하기는 개뿔. 아까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한 대 치고 싶은 카렌이었다.
"허...
"
'더 이야기 해봤자 의미도 없겠어.'
연속으로 치명타를 얻어 맞은 부부는 멍하니 듣기만 하고 있었다. 카렌은 둘의 상태를 보고는 한길을 향해 말했다.
"엘리 먼저 데리고 나가. 나는 잠깐 얘기나 나누다 가지."
한길이 마지막까지 둘을 쏘아보고는 카렌의 말에 따라 엘리를 문밖으로 안내했다. ??카렌이 혼자 남을 동안에도 부부는 침을 살짝 흘리며 뭐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고양이...고양이가 말을...발톱으로 소파를 가르고... 지옥에..."
"엘리는 너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려 했지만 난 좀 달라."
"우..우릴 죽일거야?"
갑자기 카렌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들어 온 부부가 겁먹으며 말했다. 이 남자도 고양이처럼 또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너희는 북쪽으로 갈 거다. 거기 아직도 옛날 방식으로 채굴하는 탄광이 있더군. 특별히 유리가루가 잔뜩 묻은 채찍을 보내주마."
카렌은 그 말을 마치고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모두가 간 뒤에도 부부는 한참동안 그대로 서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술...술이 필요해.
"?
그렇게 ?부부가 낮에 일어난 안 좋은 기억을 잊으려 곯아떨어진 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집에 찾아왔다. 문을 익숙하게 따고 들어 온 사내들은 부부에게 다가가 주사기를 목에 거침없이 꽂았다.
그리고는 자루에 대충 쑤셔 박고는 자신들이 타고 온 검은 밴에 태웠다. 그리고는 또 다른 주사기를 부부에게 주입했다. 카렌이 만든 특제 약물이다.
"모든 감각이 몇 배로 예민해지고 자잘한 병 따위에 걸리지도 않을 거다. 오래오래 고통받아라."
두 사람을 태운 차는 어둠 속으로, 북쪽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둘은 이름이 아닌 다른 호칭으로 전산에 기록되었다.
행방불명자.
부부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죽을때까지 지하에서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