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5/140)

  각자의 길이는 다르기에 서로 맞추는 재미가 있다

  띵동!

  카렌은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방문객들이 확인되자마자 문을 열어 주었다. 오늘 오기로 했던 채린과 강이사다. 엘리가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 현관으로 달려가 둘에게 배꼽 인사를 하면서 환영했다.

  "어서 오세요."

  "저번보다 훨씬 보기 좋다 엘리야."

  "확실히 건강해 보이십니다. 엘리님."

  "언니는 오늘도 예뻐요. 강이사님도 정장이 엄청 멋있어요!"

  둘은 엘리를 성녀로 부르지 않기로 하고는 채린은 그냥 반말을, 강이사는 일단 서로 존댓말을 쓰기로 정했다.

  채린과 강이사는 카렌 옆에 있는 소파에 가서 자연스럽게 앉았다. 인사를 마친 엘리도 카렌의 옆으로 와서 조심스럽게 앉았다.

  '아저씨 옆이 편해.'

  넓은 거실에 소파가 세 개나 있었지만 엘리는 굳이 카렌이 있는 소파로 왔다.

  "채린아. 그런데 오늘 모이자고 한 이유는 뭐야?"

  오늘 약속은 채린이 잡았다. 모두의 눈이 채린을 향했다.

  "중요한 이유야."

  채린이 목소리까지 깔면서 말하자 모두 한층 더 집중해서 채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엘리의 옷을 살 거야. 언제까지 저거 하나만 입힐 거야?"

  모두의 시선이 채린에게서 엘리로 향했다. 집에 온 뒤로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길어서 몰랐는데, 여기 처음 올 때 그 옷이다. 물론 세탁기랑 건조기를 같이 돌려서 깨끗하긴 했지만 곳곳이 헤지고 낡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도 몰랐지? 그렇다고 엘리가 직접 얘기할 수도 없잖아."

  "저는 괜찮아요. 깨끗하기만 해도 좋..."

  "맞는 말이야."

  카렌도 동의했다. 신경을 안 썼다기 보다는 아예 생각도 못 했던 문제였다. 카렌 자신도 옷에 관심이 없었다. 편하면 다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여기 삼색 녀석은 옷을 입지도 않고.

  "당장 가자. 응?"

  채린이 신난 얼굴로 모두를 재촉했다. 정작 채린, 자신은 맨날 운동복만 입고 다니지만 남 옷 사는 건 즐거웠다. 게다가 저런 후줄근한 옷을 입고 있어도 빛나는 엘리의 외모와 귀여움에 만약 제대로 된 옷을 입힌다면 어떨까.

  "귀엽겠지? 엄청 귀여울 거야."

  "귀여우시겠군요."

  "꾸잉."

  "그럼 지금 당장..."

  "지금은 안 돼. 눈에 너무 띄기도 하고 아직 교단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몰라."

  모두가 당장이라도 몸을 들썩이며 달려갈 듯했지만 카렌의 말에 다시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모두는 카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은발에 웬만한 연예인 뺨치는 외모의 카렌. S급 헌터 이채린. 금발에 금안의 인형 같은 소녀. 게다가 우주선 가방 안에 들어간 고양이까지. 아무리 다양한 인종과 개성이 섞여 있는 연합이라지만 이미 평범함의 한계를 까마득히 넘어섰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네? 저기...여러분들?"

  모두가 실망하며 고민에 빠졌다. 엘리가 당황해 뭐라고 말했지만, 이미 모두는 엘리에게 옷 입힐 생각에 빠져 해결책을 찾느라 정작 당사자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강이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강이사에게 향했다.

  "마침 시간도 적당하네요. 잠시만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아냐, 굳이 나갈 필요 없이 여기서 해도 돼."

  "감사합니다. 카렌님."

  강이사가 전화를 건 곳은 민들레재단이었다.

  "최근에 저희 재단의 도움을 받으신 분 중에 백화점 쪽 관련 회장님 있었죠? 잠깐 연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사님.]

  삐...삐..

  몇 번 통화음이 끝나기 무섭게 반가운 기색이 잔뜩 실려 있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강이사님! 제가 먼저 전화를 드렸어야 하는데요. 덕분에 식물인간 상태였던 제 조카가 일어났습니다.]

  "참 잘됐습니다. 조카분 재활은 어떻게 되고 계십니까?"

  [요즘 죽도 먹기 시작했고 차도가 좋습니다. 다 민들레재단 덕분입니다. 꼭 재단 설립자 분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럼요. 회장님의 마음을 설립자분께서 아십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바로 앞에 설립자가 듣고 있으니까. 카렌의 기분도 이 상황이 재밌는 듯 나쁘진 않아 보인다.

  [그런데 정말 사레는 안 드려도 되겠습니까? 좀 상스러운 말이지만 제가 가진 게 돈 밖에 없습니다.]

  "먼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좀 부탁드릴 게 있어서 갑작스럽게 전화드렸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민들레재단 전화는 새벽에라도 받아야죠. 비서실에 신신당부해 놨습니다. 꼭 저에게 직통으로 연결하라고요.]

  "하하하! 회장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큰 부탁은 아닙니다. 잠깐 회장님 백화점에서 오늘 밤에 쇼핑을 좀 하고 싶어서요."

  엘리가 화들짝 놀랐다. 쇼핑? 지금 자신의 쇼핑 때문에 백화점을 빌리겠다고?

  [쇼핑이요?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제가 직접 사장에게 지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설립자분께서 조금 쑥스러움을 많이 타셔서요."

  "꾸잉? 주인이 쑥스러움?"

  삼색의 비꼼이 조용히 첨가됐지만, 곧바로 카렌의 손에 잡혀 제압당했다.

  [잘 알겠습니다. 제가 특별히 직원들을 선별하겠습니다.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역시 회장쯤 되니 눈치가 귀신같다. 단숨에 강이사의 말을 알아들은 회장이 호탕하게 말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별말씀을요. 더 필요하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나중에 꼭 이사님과 밥 한번 먹고 싶군요. 가능하다면 설립자 분도 함께요.]

  "감사합니다."

  강이사가 전화를 끊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밤에 쇼핑 가시죠."

  "저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

  "그럼 우린 준비할게! 가는 김에 다른 것도 사자. 엘리야. 네 방에 뭐 필요한 거 없니? 샌드백이나 그런 거 사줄까?"

  채린이 뭔가 말하려는 엘리를 저번과 같이 납치하듯 2층으로 끌고 올라가고 이제 거실에는 카렌과 강이사만 남았다.

  "재단으로 재밌는 걸 하네?"

  카렌이 강이사를 기특하게 쳐다봤다. 그냥 맨드레이크로 적당히 사람들이나 치료해주는 줄 알았더니 별 걸 다 한다.

  `알아서 하랬더니 진짜 다 알아서 하네.`

  아무리 맨드레이크라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해야 빛나는 법이다. 보면 볼수록 유능한 인재다.

  "카렌님의 일인데 어설프게 할 수는 없죠. 그리고 앞으로 여기로 전화하시면 됩니다."

  강이사는 요즘 시대에 보기 힘든 빳빳한 종이로 만든 명함을 하나 카렌에게 건네주었다. 그냥 워치로 전송해도 되지만, 예의와 격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강이사답게 카렌을 위해 종이 명함을 준비했다.

  "민들레 전담부서?"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시니 `민들레`는 카렌님의 코드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부서는 24시간 카렌님만을 위해 존재합니다."

  "24시간을?"

  "네. 복지는 확실합니다. 재단에 돈이 넘쳐서 6시간 4교대에 휴가나 보험, 보너스도 부족함 없이 조치했습니다. 맨드레이크 치료로 형성한 거미줄 같은 인맥으로 카렌님의 지시를 처리할 겁니다."

  때로는 돈을 받는 것보다 인맥이 더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쓰레기들한테는 돈을 뜯고 괜찮은 주요 인사들에게는 식물인간이 된 주변인을 치료해 큰 빚을 쌓아 두었다. 방금 백화점을 선뜻 빌려준 회장님처럼 말이다.?

  "강이사, 고맙긴한데···. 이사 정도면 회사에서 바쁘지 않아?"

  "그래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카렌님."

  "뭔데?"

  "저 조선제약 관두고 그냥 카렌님 밑으로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카렌과 삼색이 놀라서 강이사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만큼 `강일` 이라는 사람의 청춘을 모두 바친 조선제약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쩐지 정장을 입고 온 이유가 이거였군.`

  원래 강이사야 깔끔하게 입고 다니지만, 오늘은 이후에 무슨 경조사가 있나 했다. 이제보니 이직 면접을 보러 왔던 거다.

  "이유가 뭐야?"

  일단 카렌이 단번에 거절하지 않자 강이사는 일단 안도했다.

  "회사 내부에 좀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 저 때문에 생긴 문제군요."

  문제가 심각한지 강이사의 얼굴에 그림자가 생겼다.

  "제가 지금 회사의 걸림돌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았군. 그렇지?"

  "역시 카렌님이십니다.. 맞습니다."

  그냥 내부 문제다. 하지만 거기 목숨을 건 사람이 많다는 게 문제였다.

  "네. 지금 카렌님 덕분에 회사가 여러 분야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사장님의 친, 외가 가릴 것 없이 들어오는 압력이 장난 아닙니다."

  저번에 카렌이 쫓아낸 강부장의 상사였던 이사놈을 떠올리자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도 조선제약 사장을 매형이라고 불렀지.

  "물론 사장님은 저를 최대한 감싸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카렌님의 존재 자체가 극비라 사장님도 설득하기 어려우신가 봅니다."

  카렌을 내세울 수 없으니 강이사가 승진한 이유도 설명하지 못 한다. 갑자기 강이사가 사장의 총애를 받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이사가 돼서 회사에서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으니 적도 당연히 많아졌다.

  "그래. 들어와."

  카렌은 흔쾌히 대답했다. 지금껏 지켜본 강이사란 사람에게 쌓인 신뢰는 충분했다. 일단 믿음이 생기면 끝까지 믿는 게 카렌의 스타일이다. 그 덕분에 왕까지 해봤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물론 조선제약과 계속 선은 이어 나갈 겁니다."

  "그래. 조선제약 사장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 근데 강이사... 어차피 여기서도 이사 아니야?"

  "그냥 이사가 아니죠. 대표이사입니다."

  "승진했네. 축하해."

  "꾸잉! 축하한다!"

  모두가 강이사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자 위층에서 내려온 채린과 엘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내려왔다.

  "무슨 일이야?"

  "좀 있다가 말해줄게. 어차피 밤까지는 시간이 많으니까."

  -찍

  "응?"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쥐소리에 모두의 귀가 쫑긋했다.

  "쥐? 카렌집에 쥐가 있었어?"

  "그럴 리가 없는데?"

  "있다! 내가 쥐 잡았다. 꾸잉!"

  삼색의 솜방망이 밑이 들썩거려서 봤더니 뭔가 하얀 솜뭉치가 깔려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하필 토리가 오랜만에 엘리를 보러 순간이동을 한 순간 삼색의 근처로 이동한 게 문제였다.

  -찍 -찍!

  "토리야?"

  "야! 그거 진짜 쥐 아니야!"

  "꾸잉?"

  모두 자신을 보며 소리치자 삼색이 화들짝 놀라 발을 들었다.

  도도도도도

  토리가 서럽게 울면서 엘리에게 달려가 품에 쏘옥 안겼다.

  찍!

  그러고는 삼색을 가리키며 마치 혼내달라는 듯 발을 통통 굴렀다.

  "쟤는 순간이동 할 수 있잖아? 왜 못 빠져나간 거야?"

  "한 번 쓰면 다시 쓸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네요. 나쁜 고양이라고? 아냐, 모르셔서 그런 거야."

  유일하게 토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엘리가 통역해서 카렌에게 말해 주었다.

  "야, 근데 너 저거 어떻게 잡았냐?"

  한길이 그렇게 애써도 못 잡았던 저 약삭빠른 쥐...아니 신수를 저렇게 쉽게?

  "꾸잉? 고양이가 쥐 잡는 게 뭐 어때서 그러냐?"

  "그렇네. 그런데 너 이제 그냥 고양이 하는 거냐?"

  "아니다! 잘못 말했다! 나는 고양이가 아니다! 이게 다 주인이 맨날 고양이라고 해서 그런다."

  "그래, 그래. 됐고 둘이 친해질 겸 같이 카페가서 음료나 사 와. 토리라고 했지? 음료 먹을 수 있어?"

  -찍!

  토리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자 카렌은 토리를 집어서 삼색의 등 위에 올렸다.

  "주인! 나는 주인 말고는 태우지 않는···."

  "네가 얘 밟았잖아. 사과의 의미로 한 번 태워주고 와."

  "꾸잉..."

  그렇게 고양이가 쥐를 태우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모두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았다.

  "그...엄청 옛날 애니메이션 중에 고양이랑 쥐 나오는 거 있지 않습니까? 톰과..."

  "쉿. 저 녀석 귀 밝다."

  * * *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밤이 되고 백화점으로 가는 길.

  "너 운전 잘 한다?"

  "성전사는 직업 특성상 모든 기본면허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기본이죠."

  카렌은 한길을 다시 봤다.

  `이 녀석 생각보다 쓸만 한데?`

  운전뿐만 아니라 요리도 잘한다. 끼니마다 와서 앞치마를 두르고 온갖 종류의 음식을 뚝딱 만들어 냈다. 처음에는 그냥 데려왔지만, 보모로서는 최적이다.

  "근데 굳이 다 따라올 필요가 있었어?"

  카렌이 백미러를 바라보며 말했다.

  뒷좌석에는 강이사와 채린 사이에 엘리가 끼어 있었다. 하지만 카렌의 험비가 좀 크기도 했고 엘리가 워낙 작아서 자리는 좀 많이 남았다.

  "같은 여자가 골라주는 게 좀 마음에 들지 않겠어?"

  "길 안내하러 왔습니다. 백화점에 네비도 안 찍히는 전용 통로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 거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왜 따라온 거야?

  "꾸잉! 나도 구경가고 싶다."

  -찍!

  "하루만 딱 놀고 간다고 해요."

  참 호기심 많은 녀석들이다.

  "저쪽입니다."

  백화점 입구와는 정반대의 주차장 통로. 일반 주차장 관리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강이사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폐쇄된 문을 열어 주었다.

  지이이이잉

  평범한 차고의 문과는 달리 백화점으로 가는 지하통로는 아름다운 벽화에 은은한 클래식까지 흘러나온다. 그리고 곧 도착한 백화점 직계가족 전용 주차장.

  "어서 오십시오."

  깔끔한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차 문을 열어 주었다.

  "회장님께 연락받았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동복 매장으로 가지. 그리고 이 녀석 옷도 좀 깔끔하게 맞춰줘."

  카렌이 한길을 가리키며 말하자 한길이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네? 저도요? 저는 괜찮..."

  "그럼 눈에 띄는 그 옷으로 계속 돌아다니겠다고?"

  "....

  "

  "이쪽으로 오시죠."

  아직도 성전사 옷을 입고 있는 한길은 카렌의 말에 얌전히 직원을 따라 사라졌다. 그리고는 카렌 일행도 직원의 안내를 받아 이동을 시작했다.

  "응?"

  카렌이 뒤에서 누가 당기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돌리자 엘리가 보였다. 카렌의 옷자락을 손가락으로 살포시 잡고는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아! 혹시 불편하시나요? 죄송해요."

  엘리가 카렌이 뒤돌아보자 흠칫 놀라면서 물었다.

  "아냐, 근데 뭘 뒤에서 걷고 있어? 옆으로 와서 걸어."

  "그래도 될까요?"

  뭐가 이 조그마한 아이를 이렇게 소극적으로 만들었을까. 엘리는 카렌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종종거리며 카렌의 옆에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꼭 잡은 옷자락은 놓지 않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두 사람과 한 영물은 소곤소곤 얘기를 나눴다.

  "보기 좋네. 그렇지 않아?"

  "아빠와 딸 같군요."

  "근데, 둘이 만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어?"

  "꾸잉. 나 저거 왜 그런지 안다. 동물농원에서 봤다. 새끼 오리가 엄마 오리 따라가는 현상, 그걸 각인 효과라고 한다."

  "...엘리는 사람이잖아."

  뒤에서 나름 조용히 얘기한다고 했지만 몇 걸음 떨어지지도 않은 탓에 다 들렸다.

  "저 요물의 말은 그냥 무시해라."

  엘리는 카렌의 말에도 그냥 카렌과 같이 걷는 일이 좋아서 헤헤 웃고만 있었다. 그런데 아까와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뭐지?`

  잠시 차이점을 찾던 엘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까는 아저씨의 뒤에서 힘들게 종종걸음으로 쫓아갔었는데 이제는 그냥 자신의 짧은 보폭으로 걸어도 편안했다.

  "아저씨..."

  "응? 뭐?"

  "아니에요!"

  갑자기 알 수 없는 엘리의 말과 행동에 카렌은 의아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옷을 사러 온 게 신나나 보군. 오길 잘했어.'

  카렌은 옆에서 밝은 기운을 온 몸으로 내뿜고 있는 엘리와 걸음을 맞춰서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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