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6/140)

  신전 앞의 어린 여자아이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크으으으!"

  카렌과 삼색은 소파에 누워 오랜만에 새로운 드라마를 이틀째 보고 있었다. 케이블 최초로 `허깨비`라는 평균 시청률 20.5%를 달성한 인기 드라마.

  [근데 이거 눈 내린 거 아저씨죠?]

  남자 주인공은 날씨를 조정하고 미래를 보며 염력 등 다양한 능력을 쓴다.

  "삼색, 왜 넌 저런 거 못 쓰냐?"

  "...갑자기 왜 시비냐 주인."

  명치로 훅 들어오는 말에 삼색이 먹던 음료를 켁, 켁 거리며 간신히 삼켰다.

  "물론 각색하긴 했지만, 저 주인공도 설화에 나오는 도깨비고, 너도 설화에 나오잖아. 근데 넌 왜 능력이 치료 능력밖에 없어?"

  "겨우라니! 그것도 대단한 거다! 드라마나 봐라!"

  삼색과 카렌이 투덕거리는 사이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서로 마주 섰다. 그리고 남주가 굵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크으으!!"

  삼색은 감동해서 눈을 빛냈다.

  "쟤는 잘생긴 데다가 말도 잘하네. 우리 집에 있는 영물은 먹기만 하는데."

  "...."

  띠링 띠링!

  삼색이 깊은 내상을 입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강이사네?"

  현관문에 서 있는 강이사를 본 카렌이 바로 문을 열었다.

  "어서 와. 무슨 일이야?"

  "저번에 알아보라고 하신 교단에 대해 알아 왔습니다."

  "그래? 이리 와서 앉아. 음료는 딸기라떼?"

  "네. 좋습니다."

  삼색이 카페에서 갖다준 딸기라떼를 받아든 강이사가 지금껏 모은 자료들을 식탁 위에 쫘악 늘어놓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대격변 이후로 전 세계가 난리였잖습니까. 그때 갑자기 솔라리 교단이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을 구하고 몬스터들도 때려잡았죠."

  "꾸잉, 듣기로는 괜찮아 보인다."

  "그때 폭발적으로 세력을 확장했죠. 그럴 만도 합니다. 실제로 기적을 일으켰으니까요."

  "기적?"

  "이걸 보시죠. 30년 전에 찍은 겁니다."

  강이사가 카페에 있는 TV에 자신의 워치를 연결해 준비해온 영상을 틀었다.

  옛날과는 다르게 요즘 사람들은 사람이 불을 뿜거나 물건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상 현상을 봐도 그다지 괴리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각성자, 게이트, 몬스터는 현실적인가.

  하지만 시대를 반영해도 TV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의 내용은 `기적`이라는 단어밖에 어울리지 않았다.

  [저희를 구해주세요!]

  병에 걸려 신음하는 사람들과 대격변으로 인해 다쳐 중상을 입은 사람들이 한 남자를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어깨에는 솔라리 교단의 상징인 붉은 태양이 수놓아진 하얀 옷을 입은 남자였다.

  [솔라리님이 당신들을 구원하실 겁니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었다. 남자의 손에서 푸른 기운이 퍼져나가 주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내..내 몸이 나았어!]

  [눈이 보인다! 빛이 보여!]

  곳곳에서 탄성과 함께 치료받은 자들이 기쁨으로 소리를 질렀다.

  [솔라리 교단 만세! 솔라리 교단 만세!]

  그렇게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솔라리 교단을 찬양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상이 끝났다.

  "진짜 성자네."

  "맞습니다. 이후로 그렇게 불렸습니다. 그런데 성자라고 불리는지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벨리알에서 한 번 봤다. 저건 진짜다. 지구에도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인간이 뭘 잘못하고 있나?"

  "네?"

  "저렇게 직접적으로 신이 개입한다는 건 뭔가 이상한데? 보통 저렇게까지 안 해. 지구에 이상이 있긴 한가 봐. 하긴 대격변 직후라 그랬지?"

  "예.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라고 불립니다."

  "그럴 만도 하네. 그리고 내가 본 건 성녀였어. 내뿜는 신성력의 색깔이 좀 달라. 어찌 됐든 지구는 저 친구들이 구하게 놔두고···. 교단에 대한 정보나 소식은 좀 어때?"

  "너무 깨끗해서 문제입니다."

  "꾸잉? 그게 문제가 되냐?"

  "그렇군."

  삼색은 이해를 못 했지만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모이는 조직은 작은 흠이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저런 초대형 조직이 드러난 문제가 없다? 말도 안 된다.

  "대격변 때부터 만들어진 여론은 굉장히 좋습니다. 보육원도 운영하고, 자선활동도 하고, 병원도 운영하니까요. 하지만..."

  강이사가 그동안 조사한 서류철을 내밀었다. 그런데 꽤 오랜 시간 조사했음에도 서류들의 두께가 굉장히 얇았다.

  "거의 자료가 없습니다."

  "뭐?"

  "대격변 때 나라들이 줄줄이 망하고 연합이 설립되면서 잠시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만들어진 연합법이 솔라리 교단을 거의 치외법권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을 구제하고 체계가 생기기 전 솔라리 교단의 인기는 절정을 달렸다. 엄청난 기부금과 헌금이 들어오고 여론에 힘입어 교단은 지부를 늘리고 세력을 넓혔다.

  "치외법권?"

  "연합 안의 나라나 다름없습니다. 드러나진 않았지만, 무력 집단도 보유하고 세금도 안 냅니다."

  "그래?"

  "경찰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길드들도 손 못 댑니다. 예술계부터 언론, 법조계, 재계, 헌터계 등 교단의 신자들이 넘쳐 납니다."

  과연 교단에 유리한 법은 곳곳에 숨겨진 신도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나.

  "하...그래, 뭐 내 알 바 아니지. 알아서 잘 살라고 해. 막 성스러운 거 있잖아. 성물이나 그런 거 없어?"

  카렌이 원하는 신과의 대화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애초에 신에 대한 믿음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안 되는 카렌이기에 꼭 신성력이 듬뿍 담긴 성물이 필요했다.

  `아니, 실제로 신이 있다고 알고 있으니, 그냥 믿는 사람들보다 낫나?`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피식 카렌이 웃었다. 지구로 오고 나서 감정이 풍부해진 것 같다.

  "꾸잉, 주인이 또 이상한 생각 한다! 그 막 맨드레이크 같은 생각!"

  "이 녀석이! 아니거든?"

  이 요물 녀석이 아까 도깨비랑 비교한 걸로 복수하고 있네.

  카렌은 삼색을 안아서 볼록 나온 배를 마구 문질렀다.

  "우아아악! 간지럽다!"

  강이사가 그 모습을 보면서 웃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서울에 있는 신전에 성물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가 어디야? 신이랑 잠깐 대화 좀 나누고 오게."

  "여의도입니다. 그런데 전시를 안 한 지 꽤 됐다고 합니다."

  "그래? 좀 드러난 건 없어? 신과 관련된 곳은 좀 껄끄러워서 대놓고 못 가."

  카렌의 말에 강이사가 음료를 먹다가 목에 걸려 쿨럭거렸다.

  "...커헉, 카렌님이 말씀이십니까? 제 앞에 계신 카렌님이요?"

  "꾸잉, 주인 이미지가 얼마나 개판인 거냐?"

  하지만 카렌은 여전히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벨리알에서의 일이 떠오르자 지금도 치가 떨린다.

  "사제계열은 그나마 말이 통해. 걔들은 좀 세속적이거든. 지금껏 교세를 키운 것도 그쪽일 거다."

  "사제쪽이요? 그분들이 더 막힌 게 아니라요?"

  "걔들은 신성력도 못 써. 신이 일부러 그렇게 설정했거든."

  심지어는 교황도 신성력을 쓰지 못한다. 원래 사제들의 존재 이유가 관리자 역할로 성자나 성녀를 보조하고 종교를 전파하며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해서다.

  신이 위화감이 들지 않게 사람들과 같은 조건으로 지내라며 그들에게 일부러 신성력을 주지 않았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부패도 자주 일어나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신 다른 쪽이 좀 꽉 막혔지. 걔들 이름이 뭐야? 아까 말한 무력 집단."

  "성전사라고 불립니다. 검은 바지와 와이셔츠를 입고 흰색 외투를 입고 다닌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성기사가 아닌 성전사라고 부르나 보다.

  "그래, 걔들이 대신 지켜주는 거야. 걔들은 진짜 한 번 눈 돌아가면 죽을 때까지 달려든다. 대부분 신성력을 가지고 있을 거야."

  죽음에 대한 공포? 진짜 성전사들은 죽든 말든 그냥 달려든다. 어차피 죽어도 신에게 가는 포상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없다.

  "그때 되면 어느 쪽이 먼저 죽나 싸움이야."

  물론 그쪽이 죽을 확률이 훨씬 높지만.

  게다가 더 귀찮은 점은 신성력은 마나랑 성질이 좀 다르다. 주먹이나 무기에 기운을 불어넣지도 못한다. 다만 특출난 점 한 가지.

  "바퀴벌레같이 안 죽어."

  "네? 아무리 그래도 바퀴벌레는···."

  "진짜야. 남을 치료해주는 건 성자나 성녀밖에 못 하지만 성전사들은 자기들 몸뚱아리 하나는 더럽게 튼튼해."

  웬만한 상처는 흔적도 없이 아물고 팔 하나가 잘려도 빠르게 옆에서 갖다 대면 다시 붙는다.

  "꾸잉, 좀비 같다!"

  "그래 좀비 맞아. 그래도 좀비랑은 다르게 심장도 약점이야."

  "대단하군요."

  "원래 그놈들은 뒤가 없어. 평소에는 온화하지만, 선을 넘는 순간 너 죽고 나 죽자다."

  실제로 벨리알에서 겪어 봤다. 그때는 중간에 다른 신들이 우리를 뜯어말려서 겨우 화해했다.

  강이사는 순간적으로 오싹해져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래 평소에 착하던 사람이 화나면 진짜 무서운 법이다.

  "합법적으로 만날 방법 없어? 안 드러나는 방법으로."

  "아! 그거 간단합니다."

  "오! 그래?"

  "기부하시면 됩니다. 액수에 따라 솔라리 교단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과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달라진다고 하더군요."

  "꾸잉?"

  그 말을 들은 카렌이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하아..신이시여...왜 당신의 종들은 적당히가 없습니까. 일 좀 제대로 하십쇼."

  "으으으... 카렌님. 그거 되게 불경한 말입니다. 저 방금 소름 돋았습니다."

  "꾸잉! 나도 뭔가 느껴진다. 굉장히 불길한 감각이다!"

  강이사는 그렇다 치고 삼색 이놈은 그래도 영물이라서 감을 무시하면 안 되는데...

  "일단 여의도로 가보자고. 강이사, 견학 좀 하게 기부 좀 해봐."

  "그건 좀 많이 들긴 하지만...많이 찔러주면 될 겁니다. 해 보겠습니다."

  `왠지 불안한데. 신님, 진짜 대화만 하고 옵시다.`

  바라는 것도 없다.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불길한 기운은 뭔지, 왜 자신의 마나가 순간적으로 빠져나갔는지 그것만 들으면 된다.

  ?

  * * *

  카렌이 막 여의도 신전을 찾아가려 결심했을 그때 여의도 신전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났다.

  ?

  "어떡하지..."

  성인 남성의 허리춤에 간신히 오는 키의 소녀가 며칠은 씻지 않아 꾀죄죄한 몰골로 한 건물 앞에 서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곧 눈이 내리는 겨울. 하지만 소녀의 몸에 걸친 건 낡은 티셔츠와 발목까지 오는 어른용 바람막이가 전부였다.

  소녀의 앞에 있는 건물은 순백의 거대한 신전으로 커다란 태양 모양의 상징이 건물 꼭대기와 정면에 달려 있었다. 며칠만 지나도 더러워지는 색이지만 관리를 얼마나 잘하는지 얼룩 하나 없다.

  "하지만...제 말을 들어줄까요?"

  신전을 오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소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러운 쓰레기를 대하듯 피해 갈 뿐이다.

  "저 사람들이랑과 저랑은 너무 달라요. 저 예쁜 옷 좀 보세요."

  ?

  소녀는 자신 옷을 내려다보며 시무룩해졌다. 분명 소녀와 대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소녀는 마치 누군가 곁에 있듯 얘기를 나눴다.

  "제가 더 낫다고요? 하지만···."

  소녀는 자신의 추레한 옷차림과 손톱에 낀 때를 보며 말도 안 된다고 손을 내저었다.

  "일단 기회는 줘야 한다고요? 알겠어요. 그럼 가볼게요."

  소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신전으로 향하는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오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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