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
[대박...저렇게 기자회견 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저러고 나간 거임?]
[근데 무사시길드가 저랬다고? 저거 엘리니아에서 평판 좋지 않았나? 치안 유지도 하고.]
[무사시길드에서 조작했겠지. 거기 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작은 나라나 다름없었음.]
[하긴 거기 A급 게이트인데도 들리는 소식은 별로 없긴 했지.]
채린의 화끈한 기자회견 이후 기사들과 댓글들은 그야말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댓글이 몇 개 보인다.
[내 아들이 그놈들한테 맞고 장애를 얻어 왔어요. 제보해도 다 무시합니다.]
[엘리니아에서 갑자기 실종된 내 딸! 무사시길드!]
막혀있던 댐이 터지듯 무사시길드의 진면목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충격!) 무사시 길드의 만행!]
[(독점보도!)연관된 길드의 카르텔들!]
[다른 길드들 우리는 무사시길드와 아무런 연관이 없어. 그저 식사 한번 했을 뿐]
[길드 성명. 무사시길드는 선을 넘었다]
[ 연합/헌터협회 성명. 심정은 이해하지만, 개인적인 복수는 지양되어야]
[시민, 헌터들 이채린 헌터를 응원한다. 누구든 방해하면 가만있지 않겠다. 대규모 시위 발발]
"씨발 새끼들!"
무사시길드장, 사토의 집무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해 손에 집히는 물건들을 던져대니 남아날 리가 없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전화를 걸어주세요.]
띠리리링, 띠리리링,
[고객님께서...]
자신에게 평소에는 틈만 나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대던 놈들이 갑자기 무슨 그렇게 바쁜 일이 생겼는지 받지를 않는다. 그렇게 수십 군데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건 기계음뿐.
[딸깍]
수십 군데에 전화를 건 끝에 드디어 한 곳에서 전화를 받았지만...
"어! 역시 내 동생..."
[무사시 길드장님? 죄송하지만, 지금 길드장님께서 중요한 회의 중이셔서요.]
하지만 받은 건 사토가 기다리던 동생이 아닌 비서였다.
"뭐? 야!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 당장 동생 안 바꿔?"
[야, 그걸 왜 받아? 미쳤냐? 같이 죽을 일 있어? 빨리 끊어!]
옆에서 평소에는 호형호제하던 놈이 비서를 꾸짖는 소리가 전화를 타고 들려온다.
"하...."
[뚜...뚜...뚜]
전화는 끊어지고 사토의 입에서 허탈한 숨이 새어 나왔다.
쾅! 분노를 참을 수 없던 길드장이 마나를 실어서 책상을 내리쳤다. A급 헌터답게 책상은 단번에 부서졌지만 그래도 사토의 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뭐? 식사? 밥만 같이 먹어? 돈도 그럼 입으로 처먹었냐?"
띠링
자신들과 관련된 또 다른 기사가 올라왔다는 알림음이 들려온다.
[충격! 무사시 길드의 만행은 어디까지인가. 참혹한 진실들.]
"크크크, 지랄들 하네. 이제 와서 아는 척 하지 마. 너네도 알고 있었잖아."
사토의 눈에 익숙한 기자들의 이름들이 보였다. 피해자들의 제보가 들어왔는데 엘리니아를 파보려는 사람들이 없었을까. 타협한 자들은 살았지만 ?올곧은 자는 죽거나 사회에서 매장당했다.
어제까지 같이 놀면서 떡고물을 받아먹던 놈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에게 비난을 쏟아 내고 있었다.
"무사시 길드장은 당장 나와라!"
"죽여라!"
게다가 밖에서는 몰려온 시민들이 자신들의 본부 건물로 욕은 기본이고 달걀과 돌을 던져대고 있었다.
벌컥, 문을 열고 부길드장이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 채로 들어왔다.
"넌 또 얼굴이 왜 그래?"
사토가 어이없는 얼굴로 부길드장을 바라보았다. 무사시길드가 대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혼란스럽다.
천하의 무사시 길드 부길드장이 어디서 맞고 들어오다니.
"말씀하신 대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만...놈들이 철저하게 명부와 얼굴을 확인하고 막고 있습니다."
"하아...그래서 맞고 들어 왔냐?"
"시민들은 그렇다 치고 헌터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토가 창문을 통해 바라보니 과연 시민들 맨 앞에 날카로운 눈빛들을 한 헌터들이 물 샐틈 하나 없이 지키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사토가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왕이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엘리니아의 지리적 특징에 기대어서 군림했다.
어설픈 뒷골목 불량배 따위가 아니라 군주였단 말이다!
"길드원들은?"
"...저.."
"말해봐. 더 나빠질 것도 없다."
"이채린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모두 도망쳤습니다."
사토의 착각이었다. 바닥 밑에는 지하실이 있었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잘해줬는데. 어? 의리도 없는 새끼들!"
그 말을 들은 부길드장은 속으로 길드장을 비웃었다.
'웃기고 있네. 툭하면 때렸으면서...그래도 돈은 많이 줬으니 버텼지.'
내부적으로 지금껏 무사시 길드를 지탱하고 있는 힘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했다. 돈. 하지만 돈이 없어지니 순식간에 밑천이 드러나 버렸다.
부길드장 자신도 갈 곳이 없어서 여기 있는 거지 아니었으면 벌써 사라져 있었을 거다.
?
"그런데 저 새끼들은 대체 뭐 하는 거야?!"
자신의 길드를 포위한 헌터들을 보며 사토가 말했다. 어제부터 밤새 꼼짝 않고 저 자리에서 성을 포위하듯 서 있기만 했다.
저놈들이 뭐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성난 시민들도 포위망 뒤에서만 있을 뿐이다.
"그...이채린 헌터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합니다. 듣기로는 직접 때려 부순다고..."
"씨바아알!"
마침내 사토의 방에서 유일하게 멀쩡했던 화분이 창문을 깨부수며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사토가 분을 못 이겨 하는 것과 정반대로 건물을 포위하고 있는 헌터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소풍이라도 나온 듯 화기애애했다.
"휘우, 사람들이 화가 많이 났네."
채린의 부탁을 받고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한 헌터가 뒤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럴 만도 하지. 그 미친 짓을 해 왔는데. 나도 듣기만 해도 화나더만."
주변의 헌터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나는 일은 감히 이채린을 건드렸다는 점이다.
"감히 이채린 헌터님을 건드리다니 간덩이가 부었나?"
"맨드레이크로 동생을 구해주겠다고 했대."
"그래도 이렇게라도 은혜를 갚으니 우리야 좋지."
여기 있는 모든 헌터는 모두 이채린에게 작은 일부터 목숨까지 여러 가지를 빚진 사람들이었다. 이채린이 평소 언론에서는 험악한 이미지로 나오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크하하, 욕하면서 구해주시지. 빨리 꺼져 있으라고 하시더라고."
"그렇지. 같이 싸우다 죽은 헌터의 가족도 찾아가시더라고. 사비도 털어서 위로금도 주시고."
"솔직히 S급헌터 중에 제일 많이 외부형 게이트 처리해주셨던 분은 그분밖에 없어."
"각성자가 아닌 내 친구도 그 분 덕분에 살았더라고."
이채린이 동생의 꿈을 이루어지기 위해 한 행동들은 모두 씨앗이 되었다. 그리고 꽃으로 만개해서 헌터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았다.
?
"응? 무슨 일이야? 뒤쪽이 시끄러운데?"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파로 가득 차 있던 저 뒤에서 부터 앞을 향해 천천히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채린이다..."
자신의 적발과 닮은 빨간 슈퍼카를 탄 여성, 요즘 언론에 도배된 얼굴을 보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무사시 길드로 향하는 길을 만들었다.
"이채린 헌터님! 제 딸의 원수를 갚아주세요!"
한 중년의 여성이 주머니 속 낡은 사진을 꺼내 흔들며 울면서 소리쳤다. 이채린은 흘낏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이채린의 차가 천천히 앞에 도착하고 차에서 이채린이 내렸다.
"어서 오십시오."
"모두 와줘서 고마워."
이채린이 차에서 내리자 모두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닙니다. 일찍 못 도와드려 죄송하기만 합니다."
"어차피 그때는 못 도왔어. 지금은 너희 덕분에 복수도 할 수 있고 좋네."
이채린의 곁에 서 있는 헌터들의 가슴에 달린 길드 뱃지들은 다양했다. 서로 적대적인 길드들도 있었지만 모두 이채린 한 명을 위해 여기로 모였다.
이제 이채린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법? 경찰들은 저기서 시민 통제하는 것만으로 바쁘다. S급 헌터는 사회적 통념이 허락하는 한 면책특권도 있다.
힘? 말도 안 되는 소리. 여기 모은 헌터들은 둘째치고 이채린 스스로가 S급 헌터다.
여론? 시민들부터 길드원들까지 여론이 이런데? 그 말하기 좋아하는 언론조차 침묵하거나 옹호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정말 혼자 들어가실 겁니까?"
"응. 너희까지 들어가면 일 커진다. 애초에 그냥 서 있어 달라고만 했잖아. 그리고 같이 들어갈 사람 있어."
이채린이 한곳을 바라보며 윙크하자 삼색 무늬를 가지고 있는 고양이가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자신의 하얀 솜방망이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런 말투 안 어울립니다. 평소대로 하십쇼."
채린이 헌터의 말에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나도 오글거렸어 새끼들아. 갔다 올게, 시민들 안 다치게 잘 보고 있어."
채린이 동네 산책 나가듯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은 채로 거침없이 무사시 길드 정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녀오십쇼."
뒤에서 헌터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이채린은 손을 흔들고는 건물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화려하던 무사시 길드의 장식들은 모두 부서져 있어 음산한 분위기의 내부.
"이...이채린?"
첫 손님으로 웬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안 그래도 극심한 스트레스로 죽상이던 남자의 얼굴이 이채린을 보자마자 창백하게 질렸다.
"안녕? 길드 내부에 남아있는 걸 보니 죽을 놈이네?"
채린이 세심하게 작성한 명부에 올라 있는 놈들은 그야말로 인간쓰레기들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이 쓰레기들이 중벌을 받기는 힘들거다.
반쯤은 길드의 편인 법정이 여러 이유로 감형을 할거다.
"지금까지 몬스터를 죽이고 사회에 공헌해 온 공로로 감형."
퍼억
이채린의 주먹이 깔끔하게 놈의 턱을 깨고 머리를 부순다. 그리고 소란에 나타난 이어진 놈들도 차례차례 머리를 부숴버리기 시작했다.
"기부로 인한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으로 감형"
이채린은 원래 적발이 아니다. 항상 누구보다 근접해서 싸워야 했기에 지금처럼 적의 피가 튀어서 적색으로 염색한 것 뿐이다. 적들의 몸에서 흐른 피가 무사시 길드를 적시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죽어!"
물론 자포자기해서 덤비는 이들도 있었지만...
퍼어억
"술 취해서 주취 감형."
어김없이 몸이 터지고, 갈라져서 죽어 나갔다. 이채린이 진정 강하다고 평가 받는 항목은 대몬스터전이 아니다.
채린의 장기는 대인전. 옛날 인파이터 스타일의 복싱 챔피언이었던 채린의 주먹은 오히려 사람을 상대할 때 더 빛난다.
지금 길드에 남아있는 놈들은 죄에 걸맞게 최소 중간관리자부터 간부급들이다. 당연히 실력자들이지만...
"너 때문에 못 맞추잖아! 비켜!"
"이...이년이?"
자신의 무기와 능력으로 이채린을 열심히 공격하고 있지만 좁은 복도와 건물 안에서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움직이는 이채린에겐 속수무책이다.
"그러니까 내 손에 죽어. 어?"
또르르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던 한 간부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이채린의 발 밑에 굴렸다.
"수류탄?"
이 미친놈들이 이런 것까지 가지고 있어? 군 무기는 철저하게 통제될 텐데? 이채린이 발에 마나를 집중해 피하려던 찰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로 있어."
수류탄의 주위에 반투명한 막이 생기더니 폭발할 때의 충격을 모두 흡수해 버렸다.
"카렌!"
채린이 고양이와 나타난 사내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지켜보고 있었어?"
"그래, 잘하던데?"
아름다울 만큼 철저하게 효율적인 채린의 움직임. 몬스터를 상대할 때 와는 또 전혀 달랐다.
"다 정리한 것 같아. 그럼 이제 가볼까?"
"그래. 약속은 지켜야지."
콰아앙
길드장의 방문이 폭발하듯 터져버렸다.
"허억!"
갑작스러운 노크에 깜짝 놀란 사토가 뒤로 자빠졌지만 채린과 카렌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사..살려줘! 도..돈! 돈을 줄게! 아니면 맨드레이크? 여기 다 있어!"
사토가 금고를 열자 그 귀하다는 맨드레이크가 수십 뿌리가 있었다.
"...."
하지만 놈이 뭘 하든 둘은 그저 놈을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다 줄게! 응? 엘리니아를 통째로 주고...모든 걸 줄게! 제발 살려만 줘."
"필요 없다."
"...이게 뭐야? 어?"
카렌이 사토의 몸 주변으로 네모난 모양의 반투명한 감옥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통째로 맨드레이크가 있는 금고로 집어넣었다.
"그 막은 하루 동안 점점 천천히 줄어들 거야. 너의 몸을 손가락부터 피부, 뼈, 장기, 머리까지 하나하나 쥐어 짜며 결국에는 몸이 가루로 변해 으스러질 거다."
"허...허헉! 살려줘! 제발! 아니, 그냥 죽여줘!"
듣기만 해도 끔찍한 고통에 사토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으며 빌었다.
"삼색아 금고문 닫아라."
끼끼끼끼끼끼긱
하지만 길드장이 들을 건 자비가 아닌 얄미울 정도로 아주 천천히 닫히는 금고 문의 소리였다.
"제···. 제발!"
삼색이 조그마한 앞발로 일부러 아주 느리게 금고문을 닫고 있었다.
조금씩 닫히는 문 만큼이나 사라지는 빛줄기에 사토가 절망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삼색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으며 끝내 문을 모두 닫아 버렸다.
쿵!
"안.....!"
"음...금고문이 방음이 잘 되네."
문이 닫히자 마자 길드장의 절규가 끊겨 버리자 카렌이 굉장히 흡족한 눈초리로 금고를 바라보았다.
"근데 너 좀 사악하다. 진짜 영물 맞냐?"
"저건 죽어도 된다."
삼색이 자신의 앞발의 털을 혀로 정돈하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인간을 좋아하긴 하지만 저건 사람이 아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