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8/140)

  숲의 노래

  첫째 날과 이틀째까지 원정은 무사했다. 우리는 계속 엘리니아의 중심부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근데 정말 맨드레이크를 찾을 방법은 확실한 거요?"

  앞서가던 이정이 카렌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하긴 지금까지 안 물어본 게 신기하다.

  일단 현재까지 맨드레이크가 가장 많이 발견된 중심부로 가고 있긴 하지만, 엘리니아는 중심부 자체도 워낙 넓다.

  "어제 운이 좋았다. 이 곤충을 발견했거든."

  카렌이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한 개의 더듬이가 머리에 삐죽 솟아 있는 이 곤충은 마력 잎을 주식으로 먹는다.

  "이 곤충은 마력의 농도가 가장 짙은 식물을 향해 나침반처럼 더듬이를 뻗지. 중심부로 가서 이것만 따라가면 돼."

  카렌은 자신의 패를 일부러 하나 공개했다.

  '승부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는 이미 끝났다. 카렌은 맨드레이크를 확실하게 찾을 수단을 보여줬고, 만약 정말 페로몬을 악의를 가지고 사용한다면...

  '오늘 밤이 될 거다.'

  "이 곤충 이름이 뭐야?"

  채린이 유리병을 받아들고는 안에 있는 곤충을 바라보았다.

  "황금마력충이다."

  채린은 자신의 동생이 다시 눈을 뜰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게 이제서야 실감이 좀 났다. 채린은 한동안 곤충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투하다 깨질 수도 있으니, 내가 가지고 있도록 하지."

  카렌은 일부러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순간 본인의 주머니에 황금마력충이 담긴 유리병을 집어넣었다.

  '꽤 연기를 잘하는군.'

  곤충을 공개한 순간부터, 혹시 수상한 기색이 비칠까 봐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봤지만 이상한 점은 못 찾았다.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앞에 커즈아이 감지."

  리사의 말대로 커즈아이의 무리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식당에서 봐서 익숙한 녀석들이다. 하지만 과연 꼬리가 본체에 달려 있으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자신의 몸통보다 길고 철보다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꼬리, 게다가 입에서 뱉는 더러운 침은 피부에 맞으면 몸이 굳어버린다.

  "여긴 전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저놈들을 처리해야 지나갈 수 있어요."

  외곽지역과 중심부 근처에는 커다란 나무 두 개가 산처럼 가로막아서 그사이는 조그만 샛길밖에 없다.

  문제는 그 샛길이 커즈아이들이 주로 서식하는 질퍽한 늪지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지나가려면 막고 있는 놈들을 죽여야 했다.

  "째째짹"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울음소리야."

  생긴 건 커다란 외눈 도마뱀이지만 성대에서는 신기하게 새소리가 흘러나온다. 소리를 미끼로 먹이를 유인하기 때문이다.

  "시작한다. 모두 신발 신어."

  순식간에 채린의 목소리가 딱딱해지며 동생에 대한 생각을 저편으로 미뤄 버린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전투태세.

  일행은 모두 한민재가 짐에서 꺼내준 신발을 착용했다. ?물 위를 자유자재로 떠다니는 몬스터인 물쟁이의 비닐로 만든 늪 전용 신발.

  조금의 습기만 있어도 비닐 자체의 부력 덕분에 가라앉지 않는다. 늪에서 전투를 위해서는 필수다.

  "자리 잡아."

  한민재와 카렌이 저 멀리 뒤로 빠지고 이정이 선두, 그 바로 뒤를 채린, 후방을 활을 든 리사가 자리했다.

  '지금.'

  채린이 신호를 보내자 리사의 화살이 커즈아이를 향해 날아간다.

  퍼억

  A급 헌터의 실력답게 정확하게 커즈아이의 머리의 삼 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 눈알에 화살이 박혀 든다.

  "쿠어어억"

  사냥감을 유인할 때의 아름다운 새소리가 아닌 본래의 갈라지고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준비, 하나씩 넘겨. 힘들면 두 마리도 괜찮고."

  "오케이."

  커즈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하지만 이정이 샛길의 입구에 이미 바위처럼 자리 잡은 뒤였기에 놈들은 많아 봐야 한 번에 세 마리 밖에 오지 못한다.

  쿵, 쿵, 쿵

  놈들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정의 방패를 향해 짜증과 분노를 실은 강철같은 꼬리를 내질렀다.

  "윽"

  한 번에 날아오는 꼬리의 숫자는 셋, 별것 아닌 숫자다. 하지만 놈들의 꼬리는 바위도 부순다.

  팡, 팡. 채찍의 원리를 이용한 꼬리에서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충격에 이정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정은 이를 악물고 온몸과 방패에 마나를 실어 버티면서 방패에 뚫려 있는 조그마한 창으로 놈들을 관찰했다.

  쿵, 쿵, 쿵

  "넘기겠수."

  얼핏 보면 불규칙해 보이지만 놈들의 공격도 A급 헌터의 경험과 감각으로 보면 규칙성이 보인다. 왼쪽 놈이 공격할 차례. 이정이 기다리던 때가 왔다.

  "읏차"

  이정이 왼쪽 놈이 꼬리를 힘껏 휘두르는 타이밍에 맞춰 방패를 살짝 비튼다.

  "꾸엑?"

  자신의 공격이 미끄러지면서 놈이 멍청한 소리와 함께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린다. 이정이 훌쩍 발을 내밀어 놈을 자신의 뒤로 보내면서 나머지 두 녀석과 분리한다.

  "어서 와. 그럼 죽어."

  놈은 당연히 앞을 막느라 옆구리가 훤히 빈 이정을 공격하려 했지만 기다리고 있던 건 복싱 스텝을 밟고 있던 채린의 주먹이었다.

  ?

  채린의 능력은 두 가지다. 신체능력강화, 그리고 절단.

  마력으로 몸을 강화시키는 신체능력강화는 가장 흔한 능력이다. 하지만 절단은 채린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쩌저적

  마나를 실은 채린의 주먹은 상대방을 말 그대로 절단한다. 게다가 온몸에 마나를 불어 넣고도 주먹에 보일 정도로 넘실거리는 마나량은 채린을 S급 헌터로 만들기 충분했다.

  휙, 휙. 채린이 허공에 잽을 날리면서 몸을 풀고는 이정에게 말했다.

  "두 마리씩 넘겨. 아니, 최대한 많이."

  놈이 자랑하는 꼬리를 써볼 새도 없이 조각이 나버린 커즈아이의 시체를 이정이 잠시 보더니 씨익 웃었다.

  "역시 대단하시네."

  커즈아이를 저렇게 단신으로 박살낼 수 있는 헌터가 얼마나 될까. 역시 이채린이다.

  이정이 커즈아이들을 하나, 둘씩 넘길수록 커즈아이의 시체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서로의 실력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움직임과 속도.

  "꾸에엑!"

  "잘했어"

  뒤에서 리사도 놀고 있진 않았다. 채린이 커즈아이를 죽이는 동안 혹시라도 이정한테 커즈아이의 주의가 끌리면 화살로 알맞은 타이밍에 시선을 돌린다.

  화살이 조금만 빗나가도 이정과 채린이 맞을 수도 있었지만 서로의 실력을 알고 있는 셋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선배, 정말 A급 이상 헌터들은 수준이 다르네요."

  "그래, 제법이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민재가 빠른 속도로 줄어가는 커즈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채린이야 S급 헌터니 당연하겠지만 나머지 둘도 놀라웠다.

  등급을 떠나 팀워크와 사선을 수없이 넘으며 쌓인 경험으로 싸운다. 저번에 카렌을 찾아온 무늬만 A급이라고 하는 것들과는 수준 자체가 달랐다.

  내 상태가 정상이라면 생각할 것도 없겠지만...

  ?

  '지금 싸운다면 쉽지는 않겠어.'

  꾸에에에엑

  끝내 마지막 커즈아이가 역겨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며 중심부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후우..."

  모두 땀을 닦고 잠시 숨을 돌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채린은 싸늘한 눈빛으로 혹시나 살아있는 커즈아이가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내부형 게이트가 특히 무서운 점이 이거다. 높은 등급의 헌터라도 방심할 수 없다는 점. 아무리 채린이라도 침 한번 맞으면 마비되어 죽는다.

  늪이라는 환경은 기동력을 제한하고, 몬스터들은 무리생활을 하면서 한꺼번에 덤벼 온다.

  "부산물은 챙기지 않는다. 진입하고 야영 준비할 거야."

  커즈아이의 시체들만으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목표는 돈 따위가 아니니까.

  채린의 지시에 파티는 커즈아이들의 시체를 넘어 중심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선배님? 뭘 뿌리시는 겁니까?"

  선두가 모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는 카렌은 커즈아이의 시체 근처에 보라빛의 포션을 곳곳에 부었다.

  "그런 게 있어."

  한민재에게 모든 걸 알려줄 순 없다. 주동자는 아니지만 협력자일 가능성도 있으니.

  "나중에 알려주실 거죠? 네?"

  카렌의 손에 들린 포션을 간절한 눈빛으로 보는 한민재.

  카렌은 지금껏 한민재의 행동이나 눈빛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이 만약 배신자라면 배우로 성공할 놈이었던 거지.'

  "알았다. 가자."

  샛길을 빠져나가자 지금까지 왔던 길은 장난이라는 듯 더욱더 울창한 숲이 파티를 반겨주었다.

  "여기서 야영한다."

  어느새 둘째 날도 거의 저물어가고 슬슬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숲의 밤은 달빛에 익숙한 주민들의 것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딸랑

  헌터들이 종을 실에 매달아 곳곳에 연결했다. 이걸로 위협이 되는 몬스터는 대략 알 수 있다.

  기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게이트 안이기 때문에 몬스터 감지기는 엄두도 못 낸다. 모든 건 옛날 방식이다.

  ?

  "불침번은 우리 셋이 번갈아 가면서 설 테니, 둘은 마음 놓고 자."

  역설적이게도 능력이 강할수록 책임과 의무도 커진다. 비전투원을 밤에 세우는 건 비효율적이고 위험도 증가한다.

  "꾸잉, 주인. 채린 멋있지 않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자라."

  약초를 캔 뒤로 가방 안에 얌전히 있던 삼색의 처음 건넨 한마디가 가관이다.

  "우리랑 있던 때랑 완전 다르다."

  하긴 맨날 추리닝이나 입고 투정 부리던 강아지 같은 모습이 아니라, 파티 리더로서의 모습의 채린은 색다르긴 했다.

  "근데 주인, 채린에게 몬스터 페로몬에 대해 안 알려 주냐?"

  "저 녀석이 연기를 잘할 것 같아?"

  "...꾸잉, 졸리다 어서 자자."

  과연 채린이 맨드레이크를 캐는 걸 방해하려는 목적일까, 내가 목적일까.

  '차라리 직접 공격했으면 좋겠군.'

  마력량이 B급으로 내려앉았어도 명백한 살의쯤은 눈치챌 수 있다. 그건 오랜 세월 살아남기 위해 몸으로 체득한 것이니.

  코로롱

  벌써 자신의 다리 근처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고양이의 코골이를 들으며 카렌은 잠을 청했다.

  만약 녀석이 활동한다면 쓸데없이 안 자면 손해다. 아주 긴 밤이 될 테니까.

  찌르르

  곤충들의 노래를 자장가 삼아 잠에 빠져든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딸랑

  나뭇가지가 자연적으로 부러지며 실에 걸렸는지, 설치해 둔 방울 소리가 한 번 울렸다.

  딸랑, 딸랑

  이번엔 두 번, 작은 동물일까?

  하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방울 소리에 모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뭐야?"

  사방에 설치해 둔 방울이 온 숲을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 주위를 둘러봤다.

  "세상에..."

  불빛 하나 없었던 숲은 어느새 밝아져 있었다.

  빈 병에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 페로몬과 그 달콤한 향을 맡고 몰려든 주민들의 눈빛으로 말이다.

  "시작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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