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6/140)

  진입

  "여기 너무 좋다."

  한민재가 소개시켜준 식당은 과연 훌륭했다. 엘리니아의 컨셉에 맞춘 내부 인테리어가 마치 숲속에 들어온 느낌마저 들었다.

  의자와 책상은 모두 원목으로 만들어졌고 군데군데 나무 옹이가 보여 자연스러움을 더했다.

  [짹짹]

  천장에는 요정 모양의 조명은 눈을, 은은한 새소리가 섞인 분위기 있는 클래식은 귀를 즐겁게 한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직원들까지 저러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내 생각에도 직원들이 싫어할 것 같긴 해."

  카페에 맞춰 직원들도 요정컨셉인지 남, 여 직원 모두 뒤에 날개를 달고 있었다.

  물론 일에 방해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날개지만 시간에 맞춰 가끔 파닥파닥 거리며 움직이기까지 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직원이 다가와서 묻자 카렌과 채린은 미리 정해놓았던 메뉴를 시켰다.

  "특제 버터소스 커즈아이 꼬리세트 2개, 음료도 포함이죠?"

  "맞습니다."

  "후식은 이걸로요."

  "알겠습니다. 곧 음식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직원이 떠나가고 채린이 자신의 앞에 놓인 물을 마시면서 말했다.

  "드디어 내일이야.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항상 기다려 왔던 날이지만 점점 가까이 오니 오히려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고칠 수 있다. 믿어라."

  "너를 못 믿는다는 게 아니거든?"

  몇 달간 봐왔지만 채린은 아직도 눈 앞의 남자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양파처럼 뭔가가 자꾸 튀어나오는 사람이다.

  "참 둔한 건지 눈치가 빠른 건지 모르겠어."

  "응? 뭘 모르겠어?"

  카렌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채린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또 이럴 때 보면 귀엽단 말이지.'

  "에휴, 아니다. 잠깐만...너 설마 일부러 이렇게 하는거야? 그럼 소름인데."

  "응?"

  "그럴 리가 없지. 됐어."

  카렌은 대체 채린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혼자 좋아했다가, 감상에 빠졌다가, 뭔가 실망했다가.

  '아! 설마...삼색이 말이 맞았나? 아냐 조금 더 보자.'

  카렌은 애써 머리속의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럴 리가 없다. 그냥 고마워서 그럴 수도 있다.

  "정현이가 파티 멤버를 모두 구했어. 내일 점심쯤에 들어갈 거야. 짐꾼은 여기 괜찮은 사람이 있다더라."

  "근데 네가 S급인데 굳이 파티가 필요한가?"

  여기 올 때부터 궁금했다. A급 던전 밖에 안 되는데? 자신이 처음 지구로 올 때는 온갖 게이트가 열렸지만 헌터들이 잘 막았었다.

  "그거 연합에서 하는 눈속임이야."

  "눈속임?"

  "한 장소에 계속 유지되는 내부형 게이트는 일부러 등급을 위험도에 비교해서 낮춘 거야. 시민들의 불안을 자극할 수도 있거든."

  비록 주기적으로 몬스터들을 줄이는 청소를 하면 안전하다지만, 그래도 자신의 앞마당에 폭탄이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더 위험하기도 해. 우리가 몬스터들의 앞마당으로 들어가는 거잖아."

  "일리가 있어."

  똥개도 자신의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하지 않나.

  "그리고 동생이 그러는데 제일 큰 이유는 등급이 높을수록 부동산이 떨어진다고 하더라고."

  이건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다. 역시 어딜 가나 집값이 연관되어 있구나.

  "음식 나왔습니다."

  말하다 보니 어느새 직원이 음식을 올려놓고 갔다.

  커즈아이의 방어수단인 꼬리는 두꺼운 껍질이 둘러싸고 있지만, 그 껍질을 벗긴 다음 고기를 고열로 가하면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진미가 된다.

  거기다 일류 주방장의 특제 소스, 요리법이 합쳐지니 충분히 엘리니아의 특산물 중 하나가 될만 했다.

  ?

  "그 한민재라는 사람, 칭찬 해줘야겠네."

  카렌도 채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과 함께 나오는 레드와인의 살짝 떫은 맛이 자칫 많이 먹으면 느끼할 수도 있는 고기맛을 중화해주면서 완벽하게 어울린다.

  카렌과 채린은 약속이라도 한듯 아무말도 없이 음식을 먹은 후 후식으로 나온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식혜를 마셨다.

  "그럼 외부형은 그 반대인가?"

  음식을 먹느라 아까 끊겼던 얘기를 다시 나누기 시작했다. 채린이 알고 있는 게 많아서 그런지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그렇지, 시민들을 겁준다...라기 보다는 그냥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거지."

  시민들이 게이트가 일상이 되어 버리니 잘 대피를 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점점 커졌다.

  "그래서 보통 한, 두 등급 정도 높게 발표해. 하지만 N/A등급은 진짜야. 그건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우리가 처음 만난 게이트네."

  "어? 쿨럭"

  채린은 갑자기 훅 들어온 말에 식혜의 밥알이 목에 걸렸는지 사레가 들렸다.

  "괜찮아? 이거 천천히 마셔봐"

  카렌이 옆에 있던 물을 따라서 건네주자 채린이 먹고는 조금 괜찮아졌는지 기침이 멈췄다.

  "너, 여자 많이 만나봤지."

  채린의 눈이 가늘어지며 카렌을 째려본다.

  "아니. 별로 안 만났어."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확실히 거의 안 만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래?"

  채린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카렌을 바라봤다.

  갑자기 채린이 째려보자 카렌이 채린의 얼굴을 보니 입가에 소스 한 방울이 묻어 있었다.

  "여기 뭐 묻었어."

  카렌이 휴지를 뽑아 손가락으로 채린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훔쳤다.

  "너...다른 여자한테도 이래?"

  "그냥 닦아준건데? 보통 보이면 닦아주지 않나?"

  카렌의 기준에는 바닥이 더러우면 청소를 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갑자기 다른 여자는 왜?

  "나랑 약속 하나 하자."

  카렌이 어리둥절해 있자 채린이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뭔가 말하려다가 왠지 차가운 채린의 표정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물었다.

  "뭔데?"

  "나한테만 이러기로."

  "뭐를?"

  "입가에 뭐 묻으면 닦아 주는 거."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게 약속까지 할 필요는..."

  "약속."

  카렌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채린이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카렌의손가락에 걸고 꼬았다.

  "헤헤, 이걸로 약속했지?"

  "에휴, 그래."

  '확실하네.'

  카렌은 채린의 말에 맞장구 쳐주면서도 ?삼색이 지금껏 장난삼아 한 말들이 생각났다.

  [주인! 채린이 주인 좋아한다니까? 여자가 남자를 좋아할 때 하는 행동들이랑 똑같다!]

  [너가 그걸 어떻게 아냐? 너 연애는 해봤어? 맨날 산에서 곰마냥 겨울잠이나 잤다며.]

  [...헌튜브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관심 있을 때 하는 행동 10가지' 에서 봤다.]

  [야 이..]

  지금껏 그냥 웃고 넘겼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 ?

  "후...채린아."

  "응?"

  카렌은 자세를 가다듬고 진지한 목소리로 채린을 불렀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채린이 흠칫하며 대답했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이 녀석이 꽤 많이 티를 냈었다. 아니 대놓고 했지.

  '너무 오랫동안 연애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눈치채는 게 너무 느렸어.'

  이미 알아버린 이상 모른척 하는 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빙빙 돌려 얘기하는 것도 내 취향이 아니니 그냥 직진하자.

  "너 나 좋아하냐? 남자로?"

  "어?"

  갑자기 들어온 묵직한 직구에 채린의 말문이 순간 막혀 버렸다.

  "내가 저쪽 세계에서 오래 있다 보니 헷갈려서 그래. 내가 거기서는 좀 막 살기도 했고, 여기 정서랑 좀 많이 달라서 물어보는 거야."

  정략결혼은 일상이고, 혼기가 찬 딸은 정치도구이자 무기였다. 물론 거기도 연애도 있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끝은 안 좋거나...불륜이지.

  채린의 얼굴이 붉게 변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떡하지?'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카렌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잠시 입술을 질근질근 씹으며 고민하던 채린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좋아한다. 바보야."

  "너 연애 한 번도 안 해봤지."

  "어...어떻게 알았어?"

  전에 인기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복싱만 하느라 바빴고, 동생이 쓰러지고 난 뒤에는 헌터일 때문에 바빴다.

  "그럴 것 같더라."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채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카렌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긴장감에 주먹을 꽉 쥔 손이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변했다.

  "일단 내 사정을 좀 말해줄게."

  "...그래."

  '거절이구나...'

  채린은 몸에 힘이 쭉 빠졌지만 그래도 내색하지는 않았다. ????

  "벨리알에서 난 160년 동안 지냈어. 이건 내가 말해줬지?"

  "응. 하지만 그래도 난 괜찮아."

  채린이 혹시 그것 때문에 자신을 멀리하나 싶어서 다급하게 말했다.

  "그건 아냐.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내가 몇 살로 보여?"

  "나랑 비슷한...어?"

  "맞아.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특별한 능력이 아무것도 없었어. 하지만 딱 하나. 나이가 들지 않았어. 불로지."

  "아..."

  "벨리알에선 그랬지만 지구에서는 내 시간이 다시 흐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걸 확인할 때까지 여자를 만날 생각이 없어."

  "나는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그건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 그리고 막상 너도 나이가 들면 변할 수도 있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딱 한가지. 노화. 하지만 이 법칙에서 벗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이질감과 질투심을 불러온다.

  "그럼 내가 싫은 건 아니지?"

  그런데 실망할 줄 알았던 채린의 얼굴은 오히려 환해졌다.

  "당연히 싫진 않지."

  "그럼 됐어. 기다릴게."

  "뭐?"

  "나이가 들면 티가 날 것 아니야. 그럼 나에게도 기회가 있잖아. 만약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해도 넌 충분히 좋은 사람이야."

  "시간이 좀 많이 흘러야 할 거다."

  나이가 육안으로 확인 되려면 최소 몇 년은 걸릴 텐데?

  "그 동안은 친구 하면 되지. 안 돼?"

  "하하하, 그렇게 하자."

  "좋아, 헤헤."

  카렌은 자신도 모르게 강아지처럼 웃는 채린의 머리를 쓰다듬을 뻔하다가 재빨리 손을 거둬들였다.

  "왜? 머리 쓰다듬으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삼색이가 여자들이 싫어한다고 하던데? 머리 헝클어진다고."

  채린은 아니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자신의 손을 뻗어 카렌의 손을 다시 자신의 머리로 끌고 왔다.

  "사람마다 다르지! 난 괜찮아. 머리세팅을 거의 안 하기도 하고. 아! 머리는 물론 감았어."

  "그래? 알았어."

  자신의 머리에서 느껴지는 카렌의 손길에 채린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간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높게.

  ?

  채린은 엘리니아가 너무 좋았다. 자신의 동생의 치료제인 맨드레이크를 캘 수도 있는 게이트가 있어서고, 또 다른 이유는...그냥 좋았다.

  * * *

  다음날, 날이 밝고 드디어 게이트 진입일이 찾아왔다.

  "여기서부터 수비수인 이정 헌터, 감지계열 리사 헌터야. 둘다 A등급."

  이정현이 게이트 앞 대기실에서 자신과 함께 온 사람들을 소개했다.

  "반갑수다."

  "만나서 반가워요. 어머, 이 분은 너무 잘생겼다. 이렇게 잘생긴 호위대상은 오랜만이네?"

  튼튼한 방어구와 등에 커다란 방패를 메고 있는 남자가 투박하게 인사했고, 금발의 여자는 가죽 갑옷을 입은 가벼운 차림으로 카렌에게 눈웃음을 쳤다.

  "으음..."

  리사를 보며 채린은 신음을 흘렸지만 애써 모른척 했다.

  '일이다. 일이야.'

  냉정해야 한다. 아무리 카렌이 좋아도 자신은 지금 파티리더, 헌터 이채린이다.

  "그리고 짐꾼은 곧 도착..."

  "안녕하십니까!"

  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어?"

  "꾸잉?"

  동그란 안경에, 큰 덩치, 부스스한 머리. 어제 자신들을 가이드했던 한민재였다.

  "선배님?"

  한민재가 카렌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환하게 바뀌었다.

  "선배니임! 운명인가 봐요!"

  카렌의 주변을 저 덩치로 폴짝 폴짝 뛰니 바닥이 울린다.

  "아는 사람이에요?"

  정현이 시끄러운 소리에 질색하는 카렌에게 물었다.

  "엘리니아에서 잠깐 만났어."

  "마음에 안 드시면 바꿀 수 있어요. 정 안되면 일정을 미뤄도 돼요."

  기뻐하는 한민재의 모습에도 정현은 냉정하게 말했다. 이 파티에서 VIP는 카렌이다. 막말로 짐꾼이야 언제든지 교체 가능하고.

  "아냐, 됐어."

  카렌에게 한민재는 시끄럽긴 하지만 싫은 녀석은 아니다.

  "다행이네요. 그래도 엘리니아에서 평판이 괜찮은 짐꾼이라고 들었어요. 특이하게 C급 각성자이기도 하구요"

  이 녀석이? 하긴 C급이나 돼서 엘리니아 게이트에 들어가서 약초 캐는 사람은 이 녀석밖에 없겠지.

  "근데 말이우, 대체 그 고양이는 뭐요? 무슨 동물 병원가는 거요?

  "

  카렌이 앞으로 멘 우주선 가방을 보면서 이정이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뒤로 메니 삼색이 답답하다고 해서 위치를 좀 바꿔봤다.

  "아...그건."

  ?

  "그냥 같이 산책하고 싶어서."

  "...게이트를? 고양이랑? 개도 아니고?"

  "그래. 나야 어차피 전투할 일도 없고."

  들어가서 귀찮게 뭘 할 생각은 없었다. 가서 약초 뽑고 끝! 그리고 남는 맨드레이크는 집 앞에 화분처럼 좀 키우다 빼먹고.

  "꾸잉?"

  이 눈치 없는 삼색 녀석은 또 가방을 열고 손을 흔들었다.

  "그게 무슨.. 크흠, 귀엽긴 하네.."

  투덜거리던 이정은 삼색이 나온걸 보더니 남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렸다. 흘낏흘낏 훔쳐 보는게 고양이 자체가 싫은 건 아닌가 보다.

  "거기까지. 갈 시간이에요"

  모두 정현의 말에 대기실을 나가기 시작했다.

  ?

  "저기, 혹시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요. 알겠죠?"

  나가기 직전 리사가 카렌에게 속삭이며 스쳐지나갔다.

  "뭐야. 저 여자?"

  "꾸잉, 주인한테 호감이 있나보다."

  삼색이 카렌의 얼굴 쪽을 향해 속삭였다. 가방에 얼굴 쪽으로 향하는 작은 소리 구멍을 뚫어서 녀석의 목소리가 잘 들렸다.

  정현의 안내를 받아 일행은 마침내 게이트 쪽으로 움직였다. 게이트 문지기에게 각자의 헌터등록증을 제출하니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C. D? 저기 짐을 메고 계신 분은 짐꾼이라고 등록되어 있지만, 나머지 한 분은 어떤 이유로 가십니까? 고양이는...뭐 법적으로는 안 될 건 없습니다만."

  "사정이 있어요."

  "그래도 저기 D급이신 분은 출입 이유를 적어주셔야 합니다."

  "산책."

  "네?"

  카렌의 말에 잠시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의 뜻이 잘못 됐나 생각하는 문지기였다. 그 모습을 보더니 채린이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인이에요. 제가 보장하니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S급 헌터가 보장하니 문지기가 막을 이유도,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통과하고 우리는 모두 게이트 앞에 섰다.

  A등급 게이트답게 웬만한 건물 크기, 게이트가 세간에서 섬뜩한 이미지가 형성된 이유 중의 하나는 생김새에 있다.

  지금 보는 것처럼 입구가 칠흑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소용돌이가 폭풍처럼 계속 회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 준비 되셨죠? 일단 들어가면 돌아오는 쪽 게이트가 닫혀 최소 일주일 동안 못 나오니 지금 말씀하세요."

  모두가 잠시 자신의 짐을 확인하고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히 갔다 오세요."

  정현의 배웅과 함께 게이트의 입구로 발을 내딛었다.

  '음?'

  게이트에 들어가자 모든 시야가 암전되며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났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기분이 왜 이렇게 더럽지?'

  벨리알에서 지구로 올 때는 오히려 상큼한 느낌마저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 느낌은...그래. 마력이 폭포처럼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카렌은 어둠속에서 무심코 뒤로 고개를 돌려 지구 쪽을 바라보았다.

  "젠장"

  역시나 자신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들이 지구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왔어? 게이트는 처음인데 어때?"

  어둠이 어느샌가 사라지고 눈 앞에 채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처음에 게이트를 이용하는 사람은 기절하거나 구역질 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

  "아...괜찮아."

  겉은 정말 멀쩡하다. 어떤 증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부는 좀 심각했다. 항상 넘칠듯 충만했던 몸 안의 마력이 대부분 느껴지질 않는다.

  '그래도 좀 남아있긴 하네. 지구로 가면 아마 힘은 돌아올 거고...'

  각성자로 치면 A? 아니다. 겨우 C와 B사이정도의 마력만 남았다. 카렌은 앞에 매달려 있는 삼색에게 속삭였다.

  "야, 그...상황이 안 좋을 때 하는 말 뭐라고 그랬지?"

  "꾸잉? 음...뭐였지...아! 조졌다?"

  "그래, 조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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