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도착지까지 20분 남았습니다.]?
"꾸잉, 주인! 거의 다 온 거지?"
"네비를 들어라! 20분 남았다고 말하잖아."
카렌과 삼색은 엘리니아, 옛날 한국의 지리산 깊은 곳에 위치한 그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삼색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아까부터 조수석에 가만 있지를 못하고 쉬지 않고 떠들고 있다.
"꾸잉, 프레쉬 에어! 맑은 공기가 너무 좋다! 이게 얼마만에 느껴보냐."
"정말 게이트도 같이 들어가게?"
"당연하지! 관광은 게이트도 포함이다! 주인만 들어가려고?"
나는 목적이 맨드레이크니 당연히 들어가야지. 이 고양이 녀석은 이미 관광밖에 머릿속에 없는 것 같다.
"게이트 안에서야 채린이 고양이 한 마리쯤은 알아서 해줄 테지만, 사람들 많은 길에서는 어떻게 돌아다니게?"
정작 와서 관광하는데 차와 호텔만 있으면 그다지 의미가 없지 않을까.
"꾸잉, 주인 어깨에 타면 된다!"
"싫어."
"꾸잉?"
개와 다르게 영역 동물인 고양이가 산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양이한테 목줄을 채우고 다녀도 시선이 쏠릴 텐데, 어깨에? 단번에 시선이 집중될 거다.
"뒷좌석에 있는 이동장에 들어가."
"그거 답답하다!"
"그럼 다시 돌아가든가. 차 돌린다?"
이미 멀리 왔다고 생각해서 삼색이 땡깡을 부리지만 어림없다. 카렌이 핸들을 꺾는 시늉을 하자 삼색이 옆좌석에서 움츠러들며 대답했다.
"꾸잉, 알았다..."
"그래야 착한 고양이, 아니 영물이지. 거의 다 왔다."
산길에 난 도로를 굽이굽이 타고 올라가자, 도시 이름이 새겨진 표지판이 보인다.
[엘리니아에 오신 것은 환영합니다]
"우와, 도시 이름도 게이트와 똑같이 엘리니아다."
안내문을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 엘리니아가 보이면서 가까워졌다.
"어서오세요."
간단한 검사를 거치고 출입문을 지났다.
"그런데 입구와는 다르게 저쪽 출구는 인원이 많다."
"음...."
삼색의 말에 출구를 보니 나갈때는 검사가 까다로운지 줄이 있었다. 게다가 경비 인원의 분위기와 수도 입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공기는 참 맑은데, 채린과 정현이 말해준 것처럼 무사시 길드가 군림하는 엘리니아라는 도시에서 구린내가 좀 난다.
"나 이럴 때 쓰는 말 안다!"
"뭔데?"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네가 한 말 중에 가장 그럴싸한데?"
"우와! 주인, 여기 멋지다."
삼색은 조수석에서 뒷발로 서며 앞발을 유리창에 대고는 밖을 보며 감탄했다.
"꾸잉, 인간들은 대단하다."
"언제는 인간은 다 똑같다며 혀를 차더니만..."
"주인, 인간의 단면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거다."
...이 녀석 말이 갈수록 느는데? 방송을 해서 그런가?
하지만 카렌도 삼색의 대단하다는 말에는 동의했다. 이런 험한 산맥에 작지만 도시라니.
잘 정비된 도로와 화려한 간판들, 그 사이를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방금 전까지 숲이 울창한 산길을 달렸다는 사실마저 잊을 정도다.
"일단 채린이 예약해 준 곳으로 가자."
관광이 주 수입원 중 하나인 도시답게 호텔도 꽤 많았다. 카렌은 채린이 예약해 둔 호텔로 차를 몰았다.
"카렌님. 예약 확인되었습니다."
채린이 모든걸 처리해둔 덕에 체크인은 물 흐르듯 이어졌고 카렌과 삼색은 짐만 로비에 맡기고는 곧바로 바깥으로 나와 바람도 쐴 겸 관광을 시작했다.
"어디를 가볼까?"
[꾸잉! 엘리니아의 명소 중에 시장이 있다고 나와 있다!]
바깥에서 말을 할 수 없는 삼색이 카렌의 워치로 메시지를 보냈다. 비록 이동장이지만 메시지로도 오랜만에 바깥에 나온 삼색의 신남이 느껴진다.
"알았다, 알았어. 그럼 그리로 가보자."
시장에 진입하니 큰 가게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가판대까지 가지각색의 물품들이 보였다.
"잘생긴 청년! 여기 이것 좀 보고가!"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부터 작은 공연을 하는 사람들까지, 과연 명소라고 할 만했다.
확실히 게이트와 관련이 있는 도시답게 진귀하고 재밌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런데 약초들이 다 벨리알에서 보던 건데?"
상인들의 말로는 모두 엘리니아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했다. 게이트는 벨리알을 배경으로만 열리나? 내가 게이트는 이걸 처음 봐서 그건 아직 모르겠다.
[킁킁. 저기! 저기! 왼쪽 골목길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삼색의 코를 따라 골목을 지나쳐 좀 들어가자 밝은 시장의 분위기와 좀 동떨어진 으슥한 곳에 가판대가 하나 있었다.
"몬스터 펫푸드? 저건 또 뭐야."
"어서오세요!"
커다란 안경을 쓴 부시시한 머리의 남자가 카렌과 삼색이 다가오자 반갑게 맞아줬다. 가게 가판대 지붕이 꽤 높은데 거의 머리가 닿을 듯 말듯 덩치가 컸다.
'손님! 이게 얼마 만에 온 손님이야.'
가판대 주인은 저 멀리서 오고 있는 손님을 보며 감격했다. 시장의 자리는 인맥과 돈이다.
하지만 둘 다 없었던 주인은 어쩔 수 없이 구석 자리를 잡았고 당연히 손님이 많이 올 리가 없었다.
"흑, 정말 반갑습니다!"
[냄새는 좋긴 한데..좀 이상한 사람 같다.]
손님이 얼마나 오랜만이길래 대체 눈물까지 흘리는지 모르겠다.
"아이고, 고양이를 키우시네요. 딱 맞는 상품이 있습니다. 여기 샘플 한 번 먹여보시겠어요? 맛은 자신 있습니다!"
주인이 말이 참 많다. 샘플을 보니 육포같이 생겨 보기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카렌이 이동장의 철망 사이로 삼색의 입에 샘플을 물려주었다.
[음? 이거 진짜 맛있다. 주인!]
"말대로 맛은 확실한가 보네."
여기 말할 수 있는 고양이가 말해준 거니 믿어도 좋다. 얼마나 맛있는지 손목을 타고 느껴지는 삼색의 버둥거림이 격하게 느껴진다.
"있는 간식 다 줘."
"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달라고. 혹시 재고 있으면 그것도 다 줘."
"알겠습니다!"
주인의 안색에 화색이 돌며 재빨리 포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끝에 익숙한 약초들과 병들이 보인다.
"오? 이건 포션 아니야?"
카렌이 유리병을 들어 살짝 흔들자 푸른 액체가 출렁인다. 이 정도 농도면 24% 정도?
"하하, 부끄럽습니다. 제가 초보 연금술사라."
"연금술사였어? 그럼 포션 팔지 왜 고양이 간식을 팔고 있어?"
"돈이 부족해서요. B급 24% 포션이긴 한데, 공장에서 찍는 30% 이상 포션에 비해 경쟁력도 떨어집니다."
"그래? 그럼 이건 왜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만들어 보면서 배우는 거 아니겠습니까? 언젠가는 꼭 100% 포션도 만들 겁니다."
주인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누군가는 이런 포션을 만들면서 꿈도 크다고 말할 수 있지만 카렌이 받는 느낌은 조금 달랐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아무것도 모른 채 약초 캐러 가다가 몬스터한테 죽을 뻔하고, 포션 잘못 만들어서 한쪽 눈 잠깐 실명되고, 진짜 별 짓을 다 했었는데... 내 옛날 모습을 보는 듯하다.
"여기 다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응? 뭔가 오고 있다 주인.]
"그러네, 오고 있네."
과연, 민소매티를 입고 팔에는 문신을 자랑하는 험상궂은 남자 둘이 이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봐! 거기! 내가 여기서 장사하지 말랬지?"
정말 전형적인 대사에 껄렁대며 걸어오는 폼이 너무 정석적이라 따로 양아치 학교라도 다녔다 싶을 정도다.
"손님. 제가 이래 봬도 C급 각성잡니다. 제가 막을 테니 다른 곳으로..."
과연 덩치가 워낙 크더니 각성자였나. 하긴 벨리알에서도 연금술사는 일반인은 별로 없었다.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거든.
"됐어. 이거나 잘 봐. 여기 있는 장갑 좀 쓴다."
그냥 대충 때려눕히고 가려다가 옛 향수가 카렌의 변덕을 자극했다.
"예?"
"여기 이 약초랑 이거랑 같이 섞은 다음...이거 피 베이스가 뭐야?"
"어...포레스트 울프입니다."
포레스트 울프는 이름은 거창한데, 그냥 숲에 사는 좀 많이 크고 지능이 높은 늑대다.
"24%니까 그럼 이 정도겠어."
카렌은 실드로 작은 컵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포션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두 약초를 넣었다.
빻빻, 이번에는 절구 모양의 실드를 만들어서 빠르게 찧어서 가루를 만들었다.
"이 새끼들이! 감히 우릴 무시해?"
조제는 빠르게 끝났고 놈들이 주먹을 들어올릴 때 카렌은 만든 가루를 장갑 위에 올려 놓고 후하고 불었다.
"어? 지금 뭘 한 거..으으으. 이게 뭐야. 가려워!"
"이렇게 하면 가려움을 유발하는 가루가 된다. 하루 동안은 꼼짝 못 할걸."
놈들은 가루가 닿은 피부를 벅벅 긁으며 비명과 함께 바닥을 반쯤 뒹굴며 추한 모습으로 도망쳤다.
"수고해. 그럼 난 간다."
가려고 뒤돌아선 순간 뒤에서 들리는 간절한 목소리에 카렌은 잠깐 움찔했다.
"저..저기! 잠시만요."
"응?"
이 녀석 표정이 왜 이래? 눈이 마치 별처럼 반짝인다.
"그렇게 조합하면 그런 효능도 있었군요? 아니, 손님은 대체 정체가...."
"연금술사다."
"연금술사! 선배님이시군요! 저에게 그런 걸 보여주신 분은 처음입니다. 가르쳐준다고 저 부려먹고, 스승이라고 부르라고 하고 막 실험쥐로 쓰고 그랬어요. 흑흑"
갑자기 뭐가 그리 서러운지 하소연을 시작하는 가게주인.
[이상한 인간이다.]
삼색이 육포를 먹으면서 문자를 보냈다.
'아니, 여기서 네가 제일 이상할걸.'
주인은 조심스럽게 카렌을 보며 말을 꺼냈다.
"저...혹시 스승님으로..."
"싫어."
"그러시겠죠..."
잠시 풀죽었던 가게주인은 뭔가 고민하더니 말을 꺼냈다.
"그럼 제조법을 보여주신 답례로 가이드를 해드려도 될까요? 제가 엘리니아에 오래 살아서 잘 압니다. 예를 들어 맛집이라든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선배를 만난 가게주인은 어떻게든 카렌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다.
"난 괜찮..."
[주인! 주인! 맛집!]
[띠링, 띠링, 띠링]
"어..전화 오신 것 같은데요."
워치에서 마치 전화벨처럼 계속 울리는 문자 알림에 카렌은 잠깐 이동장을 툭 건드렸지만 워치에서는 여전히 알림음이 계속 울렸다.
"이 돼지 고양이가 진짜...그럼 내일 잠깐 안내 좀 해줘. 사례는 하지.
"
"아이고, 사례는 필요 없습니다. 제가 영광이죠. 저는 한민재라고 합니다. 24살입니다."
스물 네살이라고? 우람한 덩치를 빼고 봐도 족히 얼굴은 서른은 넘어 보이는데?
"...고생 많이 했네."
"꾸잉..."
카렌은 격려의 의미로 한민재의 팔뚝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어깨는 이 녀석의 덩치가 너무 커서 키가 안 닿는다.
우리는 워치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뒤에서 뭐가 그리 기쁜지 한민재가 계속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했다.
"조심히 가세요. 선배님!"
선배라... 참 생소한 단어다.
마법사와 달리 연금술사는 학교도 없고, 벨리알에서의 카렌의 능력은 악명이랑 비례했다. 덕분에 저런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럼 이제 돌아가자."
운전도 하느라 피곤해서 오늘 관광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채린 일행과 합류하기로 한 날이 좀 남아서, 관광할 시간은 앞으로 충분했다.
"주인, 근데 아까 그 인간이 말한 스승 있잖아. 주인은 막 그런 거 안 하냐?"
하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 이녀석에게 스승이라는 단어는 좀 생소할 수도 있겠다.?
"사람마다 다르지. 난 아직 관심 없어."
내 악명 때문에 제자가 되려는 사람도 없었고, 굳이 제자를 들일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뭐든 시킬 수 있다던데? 막 부려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알던 제자의 개념이 아닌데?"
이 녀석이 정보를 얻는 곳은 대체 어딜까. 과연 인터넷이 영물을 타락시키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차도 닦으라고 시키고, 밤에도 일하고, 쉬는 날도 없다 했다."
"어디서 이상한 걸 듣고 왔어. 노예도 그렇게 안 시킨다.?"
실제로 벨리알에선 노예제도가 있는 나라가 있었다.
종류는 다르겠지만 보통 노동력을 위해 노예를 사기 때문에 관리는 필수다.
"노예도 재산이라 나름 규칙적이게 잘 생활한다고. 심지어 어떤 나라는 가난한 자유민보다 노예가 더 낫단 소리도 있어."
주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부유한 사람들이 구입해서 보통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꾸잉? 내가 알던 제자랑 다른가 보다."
"뭐가 다른데?"
"내가 듣기로는 현대에서는 제자가 대학원생이라고 불린다고 들었다."
"응? 나도 그 쪽은 잘 모르겠다. 뭐, 그래봤자 일부겠지. 설마 그러겠어."
요즘 세상에 어떤 직업이 그렇게 하겠어. 카렌은 또 삼색이가 어디서 헛소리를 주워 들었다고 생각했다.
"어서 오십시오. 엘리니아 관광은 즐거우셨습니까?"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호텔에 도착해 카렌을 알아 본 호텔리어가 말을 건넸다.
고급호텔답게 태도는 정중했고 복장도 깔끔하다.
"다 좋은데 치안이 안 좋아."
"치안..이요?"
호텔리어는 어리둥절했다. ?뒷골목이라도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드물 텐데?
"별일 아니었어."
"아! 참 다행입니다.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음식이나 좀 위로 올려줘. 아무거나."
카렌이 사는 곳은 주위에 음식점은 커녕 광속 배송까지 안 된다. ?그래서 도시락 같은 걸 사와서 냉동실에 쳐박아 뒀다가 그냥 해동시켜 먹었다.
'음식에 대해 별로 집착도 없고.'
카렌에게 음식이란 맛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였다. 말 그대로 차에 넣는 연료 정도?
"알겠습니다. 저희 호텔 주방장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추가금이 있나?"
"없습니다. 이채린님이 최상의 대우를 부탁한다 하셨습니다. 여기 VVIP 팜플렛입니다."
원칙적으로 이 호텔은 후불을 받지 않지만 무려 S급 헌터가 직접 전화한 고객이다. 보증이고 뭐고 아무것도 필요 없다.
"뭐가 많긴 하네."
레스토랑 특별룸, 옥상 개인 수영장, 프라이빗 라운지, 고급 바, 의류 서비스, 금고 이용 등 가격조차 써 있지 않다. 애초에 이 팜플렛을 보는 사람들은 그딴 걸 신경 쓰지도 않으니까.
"카렌님께서는 이용만 하시면 됩니다. 이채린님의 카드가 여기 와 있습니다."
"일단 그냥 방이나 가지. 쉬고 싶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객실에 비치된 전화기로 언제든 총지배인인 저와 연결됩니다."
어쩐지 일개 직원치고는 분위기와 여유가 있더니만 역시 뭔가 있었다.
[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특별층으로 이동하겠습니다.]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호텔리어가 카렌을 객실로 안내했다.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카렌님이 묵게 되실 층은 이채린님께서 통째로 빌리셨습니다."
역시 채린이 통이 크긴 크다. 아무리 특별층이라도 객실 몇개는 있었지만 중앙에 있는 가장 큰 객실의 문만 개방되어 있었다.
"저는 언제든지 이 층에 상주 중이니 궁금하신 점이나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카렌을 문까지 배웅하곤 호텔리어는 복도 끝에 위치한 자신의 근무실로 돌아갔다. 이처럼 특별층은 호텔안의 호텔이라 불릴 정도로 철저하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으차!"
"꾸잉, 침대가 구름같이 부드럽다!"
[띵동]
카렌과 삼색이 침대에 누워 잠깐 쉬는 동안 벨이 울리며 아까 시킨 음식이 도착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카렌님. 저는 이 호텔의 총주방장입니다. 혹시 요리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십니까?"
"아니, 혼자 먹지."
"알겠습니다. 여기 반려묘 전용 연어요리와 디저트로 사과가 준비 되어 있습니다."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웬만한 음식점에서 사람이 먹는 음식보다 더 공들인 작은 접시들이 보인다.
"그건 괜찮아. 요즘 고양이가 살쪄서 뱃살이..."
"꾸이이잉!"
"아닌가?"
평소에 당한 것도 되갚아 줄 겸 놀리면서 삼색을 봤다. 녀석이 사람들이 있어서 말도 못하고, 전에 없던 간절한 눈빛으로 카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간절한 것 같네.'
그 때는 심지어 생명의 위기였는데 말이다.
"그래도 먹고 싶나 보네. 놔두고 가줘."
"알겠습니다. 맛있는 식사 되시길."
모두가 나가자 삼색은 마치 고양이가 쥐를 사냥하듯 자신의 요리에 달려 들었다.
"마..맛있다!"
"맛있긴 하네."
카렌도 요리를 한입 먹고서는 동의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요리에 관심이 없었던 게 그냥 벨리알의 음식이 입에 안 맞았던 건가?'
거기 음식은 왕궁에서 먹었어도 좀 많이 느끼하고 짠맛이 강했다.
순식간에 자신의 음식을 해치운 삼색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
"넌 맛있는 거 먹고 목소리가 왜 그래."
"주인은 이채린이랑 잘 돼야 한다."
"...또 헛소리한다.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거든?"
"아니다! 주인은 돈이 있어도 이렇게 쓰질 않는다! 라면이랑 맨날 냉동 음식이나 데워 먹는다!"
농담이 아니라 심할 때는 삼색, 자신이 먹는 동물 전용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일 지경이었다.
"네가 먹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
"그래도 좀 심하다. 주인은 이채린이 필요하다."
"너 그냥 니가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 지금 나 팔고 있는 거지?"
"...야옹?"
"어디서 되도 않는 고양이 흉내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드라마나 보자. 저거 좀 연결해봐."
삼색이 워치를 TV에 연동해 요즘 보는 드라마를 이어 틀었다.
[언년아~~]
2010년에 방영된 드라마로 평균 시청률 30%를 찍은 드라마다.
"주인, 주인 세상에서는 그럼 제자가 되면 어떠냐? 막 저기 나오는 노비처럼 스승한테서 막 도망치고 그래?"
드라마에서 노비를 쫓는 추노꾼들을 보며 삼색이가 아까 한민재가 생각나서 물었다.
"그런 거 없었어. 아니, 있긴 했다."
고약한 스승 밑에 있던 제자들이 야반도주도 하고 그랬지. 자신과 친한 마법사들이 뭐라 그랬더라.
[에잉, 요즘 것들은 정신력이 나약해 빠져가지고는, 나 때는 말이야...]
그런데 몇몇 마법사들은 나도 제자 시절부터 봐왔는데, 지들도 옛날에는 똑같았다. 맨날 힘들다고 투덜거리던 놈들이다.
"맞지! 그럼 한국의 대학원생도 진짜다!"
"내가 있던 곳도 그런 경우는 별로 없었거든?"
[노비가 감히 도망을 쳐!]
마침 자신의 재산이 도망쳐서 열 받은 양반의 고함이 TV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런 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거지.'
그렇게 엘리니아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내일은 진짜 관광이나 신나게 하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