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2/140)

  드라마는 해피엔딩이 좋다

  "동생한테 전화하게?"

  카렌이 뒷좌석을 흘낏 보자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채린이 보였다. 채린은 여동생인 정현에게 병원으로 오라고 할지 고민 중이었다.

  "...고민 중이야. 또 희망을 줬다가..."

  채린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떨리더니 결국 끝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두운 밤이 밝은 낮 바로 뒤에 찾아오듯 때로는 희망이 절망을 더 크게 해주는 양분이 되기도 하니까.

  "....."

  카렌은 그저 묵묵히 앞을 바라보며 차를 몰았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이럴 때 타인이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다지 없더라.

  계속 삼색을 쓰다듬으며 창밖을 보며 고민하던 채린은 몇 번이고 워치에 떠오른 동생의 번호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떼었다가를 반복했다.

  '차라리 몬스터와 싸우는 게 쉽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채린의 팔이 힘없이 시트로 떨어졌다. ?

  "...안 하는 게 좋겠어."

  "그래."

  채린은 이상하게 저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좀 진정되는 걸 느꼈다.

  '참 신기해.'

  별거 없었다. 그냥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해준 것, 그것뿐인데 말이다.

  다른 사람과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참 신기하게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편안한 느낌이 든다.

  외모는 자신과 비슷해도 다른 세계에서 오래 살다 왔다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커다란 고목 같은 사람이야.'

  "태워줘서 고마워. 너무 갑작스럽게 전화가 와서."

  "어차피 운전하고 싶었어. 서울도 슬슬 이거 타고 나가보고 싶었지."

  운 좋게도 오늘은 자신이 술을 안 먹어서 다행이었다. 아까 전화를 받은 후, 채린의 정신은 급격히 깬 듯 했지만 몸은 여전히 휘청거렸다.

  채린이 운전하기엔 술을 이미 너무 많이 마셨고, 택시를 기다리기에는 마음이 너무 급했다.

  "다 왔다. 여기지?"

  [아신병원]

  다행히 밤이 깊어서 서울까지 오는 길이 그다지 막히지 않았다.

  "여기 말고 저쪽으로 가줘."

  하지만 네비에 찍힌 곳 말고 그 옆 건물을 채린이 가리켰다.

  "간판도 없는데?"

  "숨겨진 병동이야, 신분이 좀 확실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어."

  채린이 겸손하게 말하긴 했어도, 극히 소수만 입원할 수 있는 일반인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곳이다. 심지어는 병원 본관과 지하로 따로 연결된 비밀 통로마저 있었다.

  "확인되었습니다."

  보안 검색도 일반인 경비원이 아닌 각성자가 잠시 눈을 감더니, 자신의 능력으로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빠르게 통과시켰다.

  채린은 도착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동생이 있는 병실로 달려갔고 카렌은 그 뒤를 따라갔다.

  '완전 호텔이 따로 없네.'

  병원이라면 흔히 환자, 의료진으로 북적대는 장소를 떠올리지만, 이곳은 필수 인원 빼고는 한적했다.

  ?병실은 애초에 1인실 밖에 없었고 신분이 예민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철저하게 선발된 사람들로만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재형]

  보통 병실은 숫자로 201, 323호 이렇게 적혀있지만 1인실 답게 그냥 떡하니 문에 이름이 적힌 게 보였다.

  "재형아...일어났니?"

  카렌이 뒤따라 도착하니 채린이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의 손을 잡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저런 모습은 처음 보네.'

  항상 당당하고 어딜 가나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그녀도 동생 앞에서는 한명의 누나일 뿐이었다.

  "재형아?"

  전화에서 들은 대로 과연 재형이라고 불린 남자의 눈은 동그랗게 떠져 있었다. 깜빡이기도 했고 숨 쉴 때 코도 벌렁였다. 하지만...

  ??채린이 허리를 숙여 자신의 얼굴을 동생의 얼굴 바로 앞에 가져댔지만...마땅히 누나를 반겨야 할 동생의 눈동자는 누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이재형 환자 보호자님?"

  그 때 의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오며 채린을 불렀다.

  "전화로 말씀드렸지만... 의식적으로 눈을 뜬 게 아닙니다. 대뇌피질이 여전히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무의식적인 행동들, 불수의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가진 기술로는 여전히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다만 단 한가지 방법은..."

  "저도 알아요. 그 얘긴 하지 말죠."

  "...알겠습니다. 정말 유감입니다."

  동생의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은 이렇게 따뜻한데, 분명 같은 곳에서 숨을 쉬는데,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S급 헌터면 뭐해. 동생도 못 고치는데."

  채린은 온몸으로 퍼지는 무력감을 느꼈다. 헌터가 된 이유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냥 동생을 치료하기 위해서, 동생을 좋은 장소로 옮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럼..."

  의사가 채린에게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병실을 나가고, 카렌은 그 모습을 그저 조용히 구석에 앉아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덜컥, 의사가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문이 열리며 방문객 명찰을 단 남자가 병실로 들어왔다.

  [무사시 길드]

  지금은 대격변 때문에 한국 밑쪽에 땅이 붙어버린 옛날 일본 쪽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길드다.

  "이채린 헌터님."

  "내가 말했을 텐데."

  채린이 남자를 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남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동생분을 생각하셔야지요. 일단 잠깐 나가서 얘기하시죠."

  "후..."

  하지만 동생 얘기가 나오자 어쩔 수 없이, 채린도 동생의 손을 놓고 몸을 일으켜 복도로 나갔다.?

  "뭔데?"

  "저희 무사시 길드로 오시면 동생분을 치료할 수 있는 맨드레이크 한 뿌리를 제공하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정말 귀한 겁니다."

  '호오...지구에서도 치료법을 알고 있어?'

  복도로 나가긴 했어도 문이 살짝 열려있어 둘의 대화가 다 들린다.

  "이채린 헌터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동생분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현대의학에서 식물인간 판정을 받은 인간을 저쪽 세계에서는 '혼이 나갔다'라고 한다. 그런 인간의 혼을 불러들일 수 있는 치료제가 맨드레이크다.

  "그 맨드레이크를 써도 치료확률이 10%밖에 안 되는 사실은 왜 빼지?"

  "0%가 10%가 되는 거죠. 게다가 저희 길드에 오셔서 활약을 하시면 제공 받는 맨드레이크가 더 늘어나겠죠."

  "...후우, 동생이 그렇게 깨어나도 그쪽 길드에 내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 눈을 감을걸. 그만 꺼져."

  채린의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두들겨 패서 쫓아내고 싶었지만, 병원이기도 했고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결책을 독점하고 있는 길드였기에 차마 그러진 하진 못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길드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는 것만 기억해주시지요."

  "..."

  당장이라도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쏘아주고 싶었지만, 눈을 뜨고 있는 동생을 보니 순간 혹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봐. 쥐새끼."

  "뭐?"

  갑자기 자신에게 쏟아진 폭언에 남자가 멍하니 카렌을 바라보았다. 이 놈은 뭐지?

  "당신, 지금...나에게 한 말입니까?"

  "그럼 여기 남의 불행 파먹고 사는 찍찍거리는 쥐새끼가 너 말고 더 있냐?"

  남자는 얼굴이 붉어져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놈을 묵사발 내고 싶었지만 이채린 헌터 앞이다.

  "누구십니까? 저는 무사시 길드에서 나온..."

  "난 괜찮아. 들어가 있어."

  채린이 걱정스럽게 카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서주는 건 정말 고맙지만, 이놈들과 엮이면 골치 아파진다.

  "맨드레이크 치료 확률이 10%라고?"

  "그렇습니다. 그것도 저희 무사시 길드라서 가능한..."

  "너도, 길드도 둘 다 쓰레기네. 예의도 없고, 실력도 없어."

  "...당신 굉장히 무례하군요."

  "무례는 사람한테 하는 거고. 삼색아."

  병원이라 사람의 눈에 안 띄게 은신해있던 삼색이 호랑이 크기 정도로 변하고는 남자의 바로 뒤에서 나타났다.?

  "허..헉? 뭐야?"

  아무도 없던 뒤에서 거친 짐승의 숨소리가 느껴지자 남자가 기겁하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병원에 쓰레기 굴러다닌다. 어디다 버리고 와."

  "알았다."

  "으...아아아아"

  삼색이 남자의 목덜미를 물고 사라지자 채린이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카렌을 향해 걱정스럽게 말했다.

  "놈들이 보복 못 하게 내가 어떻게든 해줄게."

  "괜찮다. 그런데 이렇게 인기가 많은데. 어떻게 맨날 놀러 왔던 거야?"

  ?

  "하아..."

  채린은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동생이 저렇게 된 이후로 눈물을 흘릴 때는 동생이 깨어날 때만 기뻐서 흘리기로 정현과 약속했으니까.

  "...미안, 못 볼 꼴만 보여줬네."

  카렌을 잠시 잊고 있던 채린이 민망해하며 말했다.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은 상황이 흘러가서 미처 카렌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무사시 길드에서 나왔어. 현재 유일하게 동생을 치료할 가능성이 있는 약초를 가지고 있는 곳이야. 잠깐 나갈까?"

  채린이 재형을 아련한 눈빛으로 돌아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카렌과 채린은 1층에 있는 병원카페에서 음료를 뽑아들고는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맨드레이크라..."

  "알아?"

  "잘 알지."

  ?

  맨드레이크, 벨리알에 있을 때 카렌의 왕국을 부흥하게 한 일등공신이다. 어떻게 약초 하나로 그렇게 해냈냐고?

  "단순해. 정력과 피부미용에 아주 좋거든."

  "꾸잉? 인간들이란..."

  "넌 벌써 갔다 왔냐?"

  뒤에서 불쑥 나타난 삼색이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잘 버렸지?"

  "재밌는 곳이 보여서 널어놓고 왔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런 걸 좋아하냐?"

  "그래, 인간들이란 그런 존재란다."

  "나는 맨드레이크가 식물인간 치료에만 효과가 있는 줄 알았어. 그런 효과도 있었구나?"

  채린이 삼색에게 주머니에 있던 간식을 주고 쓰다듬으며 말했다. ?

  "많이 먹어봐야 알지. 여기선 들어보니 엄청 희귀한 모양이네."

  하긴 내가 맨드레이크 비료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벨리알도 똑같았겠지. 심지어 거기서도 상위 귀족들이랑 왕족들만 상대로 판매했었다.

  "근데 우리 삼색이 살 찌긴 쪘다."

  우울하고 놀랐던 채린의 가슴이 푹신푹신한 삼색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진정되었다.

  "그래서, 맨드레이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사시 길드에만 있는 거야?"

  "맞아. 연합에서는 단 한곳의 게이트에서만 나오는데, 저 길드가 독점을 하고 있어서 방법이 없어. 게이트에 아예 못 들어가니까."

  "너도?"

  그건 좀 놀라웠다. S급 헌터가??

  "한번 정도는 가능해도...연관되어 있는 놈들이 좀 많아."

  "무사시 길드는 어떤데 그래?"

  아까 보니 길드가 좀 싸가지가 없긴 했어도 그래도 동생의 목숨과 관련된 일인데 말이다.

  "내 동생의 꿈은 정의로운 헌터였어."

  [누나! 저기 헌터들이 시민들을 구하는 것 좀 봐]

  저렇게 되기 전, 중학생이었던 동생은 항상 헌터들을 동경했다. 자신도 저렇게 될 거라고 했지.

  채린이 S급이나 되서 귀찮은 소집에 응답하고 다른 헌터들이 기피하는 일들을 맡아 하는 이유기도 했다.

  "사실 연합호출이라고 하면 다 귀찮아 해. 많이 안 가지."

  소집령에 응하지 않으면 최고사형이라고 하지만...??처벌할 수 있을까? 끽해야 보여주기식 벌금형이다.

  "하지만 동생한테 부끄러운 누나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혹시나 누나가 한 일을 누워서도 기뻐하지 않을까, 깨어나면 뿌듯해 하지 않을까.

  "무사시 길드는 연합에서 손꼽히는 더러운 곳이야."

  비록 최상위권 길드는 아니지만 업계에 들려오는 소문은 그 이상이다. 폭력, 사채, 심지어는 인신매매까지 한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채린은 애써 지금껏 무시해 왔다. 그런데...

  "솔직히 좀 흔들렸어."

  항상 카렌의 앞에서 활기찼던 채린의 목소리가 힘이 없다.

  "내가 아까 말한거 잊었어?"

  "응?"

  채린이 고개를 들어 카렌을 바라보았다. 이 종잡을 수 없는 남자가 또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내가 한 말."

  "?"

  "내 웃음은 비싸다고, 원하는 거 있으면 뭐든 들어 준다고 했잖아."

  "푸흡, 말이라도 고마워."

  채린은 카렌이 자신을 위로해준다고 생각해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이런 면도 있었구나.?

  "도와줄까?"

  "어?"

  "한마디만 해라."

  하지만 카렌의 표정은 결코 장난 따위를 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어떻게?"

  "나도 비밀이 하나 있다."

  '뭐지? 분명 D급 각성자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근거 없는 믿음이라도, 왠지 모르게 이 남자라면 될 것 같았다. 안 되더라도, 불가능하더라도 왠지 의지하고 싶다.

  채린은 자신도 모르게 카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도와줘."

  "그래. 난 드라마가 해피엔딩인게 좋더라.?"

  "?"

  채린은 아까도 그랬지만 카렌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꾸잉, 그런데 주인도 인간이지?"

  "그럼 내가 인간이지."

  "그럼 주인도 맨드레이크 먹냐?"

  "....."

  "쯧쯧, 인간들이란..."

  카렌이 말이 없자 삼색은 카렌을 보며 혀를 찼다. 이 놈한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그것 때문에 가는 거 아니다. 정말이다.

  여담으로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웬 고라니 울부짖는 소리가 밤새 들렸다고 한다.

  "끄아아아아! 살려줘!"

  사람 말을 하는 고라니라니, 요즘 세상이 많이 바뀌긴 했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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