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3/140)

  언젠가 찾아오는 하루

  이름 오영준. 나이 43살. 그는 43년이라는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다고 할 수 있는 세월 동안, 아니 앞으로 겪을 날을 통틀어 오늘을 잊지 못할 거다.

  [★ ★ ★ ★ ★ : 판매자님 근데 이거 대형제약사에서 가만 안 있을 건데 ㅠㅠ 혹시 위험하시면 제가 잘 알고 있는 해외로 연결 해 주는 사람 있으니 헌터 넘버 남길게요 HN : 009827]

  "이글 오영준씨가 쓰셨죠?"

  ?

  "...예."

  영준은 순간 거짓말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금방 알아차리고 다시 찾아올 거란 생각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습니다."

  남자가 자신을 찾은 게 뭐가 그리 기쁜지 환하게 웃으며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고, 오영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과 자신이 리뷰에 남겼던 댓글로 예상해 볼 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포션 제작자한테 결국 무슨 일이 생긴 게 확실했다.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제약사들이 괘씸죄를 이렇게 처리를 하는구나. 그래도 댓글 하나 달았는데 이렇게까지 하나?'

  ?

  "예...예..알겠습니다. 연결하겠습니다."

  게다가 일을 시킨 사람이랑 이제 통화까지 하란다. 영화에서 보면 이렇게 익명의 사람이랑 대화 나누다가 어디 산속으로 끌려가거나, 강 밑으로 가라앉는 장면이 나오던데.

  '살려달라고 애원해볼까? 변덕을 부려서 살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영준은 남자가 연결해준 사람에게 빌어 보려고 입을 열었다.

  "한번만 용서..."

  "혹시 카페에 관심 있나?"

  정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잠시 살짝 나가 있던 영준의 영혼이 다시 힘겹게 돌아와 한박자 늦게 대답했다.

  "...예? 카페요?"

  "맞아 카.페."

  영준이 그제서야 지금껏 겁에 질려 보지 못했던 통화자의 모습이 보였다. 스마트워치에서 떠오른 홀로그램에서는 은발이 눈에 띄는 잘생긴 20대 청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서 표정을 살펴봤지만, 이 남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앞에 선 정장을 입은 사람들도 한없이 진지했다.

  "그...커피 파는 카페 말씀이십니까? 사람들이 대화도 나누는?"

  "그렇지. 난 커피보단 단 걸 더 좋아하지만 말이야."

  "저도 가끔 아들이 사다 줘서 좋아합니다."

  오영준은 자신도 모르게 홀로그램 속 남자가 하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하고 있었다. 남자의 외모가 뛰어나선지, 아니면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들 때문에 위압감이 들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좋아. 하는 일이 뭐지?"

  "F급 던전에 가서 근근이 먹고 삽니다. 하지만 몇 년째 승급이 안 돼서 이것도 그만둘까 생각 중입니다."

  몬스터를 잡다 보면 어느 순간 마력량이 확 늘어나 다음 등급으로 올라가는 순간이 온다. 이걸 승급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현대기술로는 언제 승급을 할지, 자신의 한계등급이 어디까지인지 측정을 못한다.

  "그렇군. 얼마나 벌어?"

  "...200 정도 법니다."

  이것도 많이 부른 거다. 사고가 나거나 한 번 다치면 반토막도 나고 적자가 나기도 한다. 자신과 같은 F급 각성자는 '헌터'라고 취급을 못 받는다. 그나마 D급부터나 조금 사람 취급을 받지.

  '후우...재능이 없는 거지.'

  모든 분야가 재능 차이가 심하지만 이 업종은 더 심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잔인한 마라톤. 게다가 그 끝에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은 질주.

  원래 평범한 페인트공으로 살아가던 영준은 30대에 F급으로 각성하며 꿈이 생겼었다.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해봐요. 우리는 괜찮아요.]

  누구는 이 나이에 꿈을 쫓아 가는 자신을 보며 정신 나간 놈이라고 했지만, 아내와 아들은 자신의 선택을 응원해줬다.

  심지어는 지금도 돌아가면 오늘도 수고했다고, 따뜻한 미소로 반겨줄 거다.

  "즐겁나?"

  남자가 던진 한마디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처음엔 금방 D급으로 올라갈 기대감에 재밌고 즐거웠다.

  하지만 옆의 주자들이 D급으로 올라가고 시간이 지나자 즐거운 마음보다 괴로움이 커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더 하면 되지 않을까? 여기만 올라가면 괜찮을 거야]

  ?

  이런 생각이 늪처럼 자신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곧 아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가 되니 꿈보단 현실이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

  "그렇군."

  때로는 침묵이 가장 좋은 답변이다.

  "다시 묻지. 카페일 해 볼 생각 있나? 싫으면 절대 강요하진 않아."

  "하지만 저는 태어나서 카페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두배 주지."

  팅

  은발의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앞에 있던 남자가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

  "주 5회 근무, 세후 월 400, 빨간 날 100% 휴무. 직장 근처 신축 거주지 입주 가능. 아플 시 조선제약 협력사 병원 지원. 자녀 학자금 전액 제공."

  "...사람이 배워서 안 되는 게 어딨겠습니까. 배움에 나이는 없죠."

  조건을 들은 오영준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언젠간 승급할 마음가짐으로 몇 년간 힘겹게 버텨왔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이런 제안을 누가 거절할 수 있나.

  "좋아. 강부장이 이미 음료를 배울 카페까지 다 준비해 놨으니 준비되는 대로 몇달간 배우도록. 물론 그 기간에도 월급은 주지."

  "그런데...저에게 대체 왜 이런 조건을..."

  자신은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나이나 먹고 분에 맞지 않는 헌터가 되는 꿈을 좇았다가 끝내 F급 헌터로 머무는 실패한 인생이었다.

  "내가 그 F급 포션의 판매자야. 후기가 맘에 들어. 별 5개 준 값이라고 생각해."

  "아..."

  "내가 원한은 가끔 귀찮아서 넘어가도 이거 하나는 지켜. 호의는 호의로."

  "감사합니다! 그런데...하나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뭔데?"

  갑작스러운 오영준의 말에 모두가 의아했다. 지금껏 주눅 들어 있던 사람이 부탁을?

  하지만 이어진 영준의 말에 왜 그가 용기를 냈는지 모두 알 수 있었다.

  "제 월급을 깎아도 좋으니. 제가 몇 년간 일한 친구와 같이 일해도 되겠습니까? 그 놈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받아줄 곳이 없습니다."

  "그 친구도 같은 조건으로 계약하도록 하지."

  "정말 감사합니다!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은혜는 됐고 잘 배워봐. 맛없으면 쫓겨난다."

  * * *

  [두두두두]

  "시원한 거 좀 드시고 하세요!"

  "그럽시다. 건물주님 잘 먹겠습니다!"

  찌는 듯한 여름, 작업반장이 나에게 크게 소리치며 감사 인사를 전하자 나는 살짝 손을 들어 화답해 주었다.

  "이봐들 이리와. 더운데, 좀 쉬었다 해!"

  ?

  주변에 식당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서 강부장은 아예 간이 식당이랑 작업자들이 쉴 넓은 쉼터를 공사장 근처에 만들어 버렸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쉼터에 들어간 인부들이 땀을 훔치며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가졌다.

  "크으...이런 공사현장은 내 생전 처음 보네."

  애초에 법을 지키는 게 놀라웠다. 법적으로 이런 폭염에는 10~15분을 한 시간 마다 쉬어야 한다지만 진짜 지키는 현장은 처음이다.

  "역시 대기업은 달라."

  "강씨, 무슨 소리야? 여기가 특이한 거야 "

  "맞지 보통 이렇게 안 하지."

  "보통 건설업체 주면 그 업체의 하청이 하지. 저렇게 의뢰주가 일일이 감독 안 해."

  이렇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게 된 이유는 모두 강부장이 카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혹시 사고라도 난다면? 보니까 급해 보이시진 않았어. 공사에 변수를 최대한 줄인다.'

  돈? 늘어나는 임금? 그딴 게 중요한가. 카렌이 알려준 포션 제작법으로 앞으로 벌어들일 돈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최대한 잘 보여야 해.'

  강부장의 걱정은 조금 다른 의미로 적중해 내 추억을 자극했다.

  벨리알로 가기 전 나도 공사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고, ?그 고생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나에게 인부들의 미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암, 굳이 이렇게 할 수 있는데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옆의 강부장에게 말했다.

  "우리 강부장, 일 처리를 아주 잘 해."

  "아닙니다. 카렌님 덕분에 골치 아팠던 최이사도 사라지고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요즘 진짜 하루하루 살맛 나는 강부장이었다. 사장님과 독대도 자주 매일하고, 중역회의도 참석한다. 최이사에 막혀 포기했던 미래가 보인다.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어.'

  그러고 보니 강부장의 군데군데 비어있던 정수리에서 새싹이 돋고 있었다.

  물론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까이서 보면 눈에 띄게 메꿔져 있었다. 역시 탈모의 최대 적은 스트레스다.

  '첫인상은 그렇게 무서웠는데.'

  카렌이 요청한 집 주변 땅 매입과 공사 때문에 자주 본 덕분에 강부장이 이렇게 개인적인 일까지 말할 정도로 카렌이 편해졌다.

  강부장이 파악한 카렌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단순한 성격이었다. 선만 안 넘으면 관대하지만 넘는 자에게는 그야말로 무자비해진다.

  ?

  "옛날이랑 다르게 공사하는 속도도 참 빨라졌어."

  "꾸잉"

  내 말에 옆의 삼색도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지어지고 있는 카페와 그 옆에 직원들이 살 건물을 위해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내부 인테리어만 남았다.

  게이트가 생겨나고 세상이 변하면서 희생자는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기술은 세계대전에도 그랬었던 것처럼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렇죠. 세월이 참 빠릅니다. 그리고 카렌님 집 근처의 주변 땅을 매입했습니다. 동 세개 정도의 크긴데 더 매입할까요?"

  "아냐, 그 정도면 괜찮아."

  땅이야 사실 별 의미 없었다. 혹시나 주변에 누가 이사라도 오면 귀찮아질 수도 있어서 매입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얼마든지 다른 좋은 곳에서 살 수 있는데 굳이 여기서 사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글쎄...그냥 여기가 마음에 들어."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이 지역에 살다 보니 뭔가 땅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삼색도 여기서 만나기도 했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게이트가 한 번도 출몰하지 않네요? 사실 처음엔 적색지역이라 공사하기 힘들 줄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서 있는 구리시는 게이트 적색지역이라 저 인부들도 웃돈을 주고 데려왔다.

  거기다가 공사장 근처에 안전을 위치해 곳곳에 각성자들도 배치했지만 신기하게도 게이트는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강부자의 말에 생각해보니 적색지역 치곤 이사한 뒤로 단 한번도 게이트가 발생한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뭐...어차피 나타나도 상관없으니 별 신경은 안 쓰인다.

  "...그러네? 안 나타나면 좋지, 뭐."

  "그러고 보니 기초공사할 때 게이트 감지할 때 쓰는 마력 탐지기가 울리긴 했다던데...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카렌님이 계셔서 그런가 봅니다. 하하하."

  습관적으로 나오는 강부장의 처세가 귀엽다.

  "D급 포션 50% 제조법도 알려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강부장이 울먹거리며 인사하고 나는 괜찮다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런데 이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삼색은 갑자기 찾아오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뭐지? 이런 감각 저번에 한 번 느꼈는데. 꾸잉'

  뭐 주인이랑 같이 있는데 별일 있겠나 싶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