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10/140)

  다시는 전문직을 무시하지 마라

  "아...귀찮게 정말."

  내 집 주변에 택시가 있을리가 없었고 나는 기본금 3배 도착금액의 2배를 준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간신히 택시를 불러 대한제약 본사로 가는 중이었다.

  '차가 너무 커도 안 좋네.'

  서울 지리를 몰라서 아직 육중한 험비를 타고 오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중간에 잠깐 준비하느라 들를 곳도 있었고.

  택시 안에서 이 귀찮은 사태의 원인인 F급 물약을 경매장에서 내리려고 경매장에 접속하자 제품에 달린 수많은 후기가 보인다. 내가 봐도 후기가 참 좋긴 하다.

  "그럼, 그럼, 누가 만들었는데."

  어차피 곧 지우면 모두 사라지니 심심풀이로 쭉 내려보다가 한 후기가 내 눈에 들어왔다.

  [★ ★ ★ ★ ★ : 판매자님 근데 이거 대형제약사에서 가만 안 있을 텐데 ㅠㅠ 혹시 위험하시면 제가 잘 알고 있는 해외로 연결해 주는 사람 있으니 헌터넘버 남길게요 HN : 009827]

  "호오..."

  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기특한데? 나는 그 후기를 따로 저장하고는 원래 목적대로 물품을 경매장에서 삭제해버렸다. 다시는 내 이름으로 올리지 말아야지.

  "다 왔습니다. 손님."

  그 사이에 택시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워치를 결제 단말기에 살짝 대 요금을 지불했다.

  "이야, 크기도 하네."

  나는 내리자마자 밑에서는 꼭대기도 보이지 않는 높은 빌딩을 올려다보며 감탄했다. 대한제약, 과연 대기업의 이름답게 건물도 압도적이다. 확실히 겉으로 보이는 높이는 마탑도 이걸 못 따라갈 거다.

  삼색은 두고 왔다. 자동차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아무리 작아졌다지만 그래도 도시에서 산책하는 고양이는 너무 관심을 받는다.

  "가볼까."

  "저기...혹시 정일님이십니까?"

  대한제약으로 들어가려고 한 발 내디뎠을 찰나, 나는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옆을 돌아보았다.

  '날 아는 사람이 있다고? 대한제약 놈들인가?'

  30년간 떠나있던 자신을 길 한복판에서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응? 누구?"

  "진짜시군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조선제약의 강일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강부장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저희 회사는 바로 건너편에 있습니다."

  강부장의 말대로 대한제약 보다는 작은 크기의 빌딩이 강부장이 가르키는 손끝에 있었다.

  "혹시 대한제약이랑 계약하신 겁니까?"

  "아니, 그 반대에 가깝지."

  '지금 부시러 가는데.'

  "휴, 다행입니다. 대한의 움직임을 주시한 보람이 있군요."

  강부장은 더운 날씨에 흐르는 땀을 닦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윗선이 움직이는 대한제약과 달리 자신과 같은 부장급의 정보력으로는 판매자의 이름과 얼굴만 간신히 알아냈다.

  그것마저 대한 쪽에서 인원이 움직이면서 살짝 빈틈이 생기자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고 발로 뛰어서 빼 온 거지 평소라면 어림도 없었다.

  "저도 정일님을 여기서 우연히 만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여기 제 명함이 있으니 언제 한 번 편하실 때 저희 조선제약에 들리시지 않겠습니까?"

  "우연이라..."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두 회사가 가깝기도 했고, 만약 그랬다면 단번에 눈치챘을 거다.

  "부담스러우시면, 나중에 들르셔도 됩니다. 여기 커피...없군요. 혹시 초코라떼도 드십니까?"

  강부장은 오늘도 야근을 하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줄 음료들을 사서 회사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덟 컵이나 담겨있는 커피 트레이에는 커피가 아닌 초코, 딸기, 과일 등 카페인이 적거나 아예 안 들어간 음료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팀이 신기하게도 카페인이 많이 들어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요."

  강부장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자신 같이 원래는 마셨던 사람도 있었지만 연속된 야근과 스트레스로 위가 고장 나서 이제는 많이 못 마시는 몸이 됐다.

  나는 강부장의 사람 좋은 웃음에 피식하며 딸기 아이스 라떼를 하나 집어 들고는 빨대를 입에 물고 쪼옥 빨아들였다.

  "오...이거 맛있네."

  처음 먹어봤다. 집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카페가 있을 리가 없었고, 이런 사소한 음료는 택배도 못 시킨다.

  '집 주변에 카페를 세워볼까? 돈이 좀 필요하겠는데?'

  "그렇죠? 생딸기를 직접 갈아 넣어서 저도 요즘 그것만 먹습니다. 저희 팀만 알고 있는 단골집입니다. 물론 원하시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좋아. 그럼 나도 알려준 보답을 해야지, 조선제약에 들리도록 하지. 이제는 내가 직접 팔 생각도 없고 말이야."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전화만 하신다면 언제든 제가 나가겠습니다."

  강부장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눈앞의 남자가 진짜 경매장에 나온 포션의 제작자든 아니든 일단 대한에서 움직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임은 이미 확인됐다. 이렇게 끈을 만들어 놓는 게 어딘가.

  "오늘 가지. 정일은 됐으니 카렌이라고 불러.? 이름이 뭐야?"

  "강지유입니다. 편하게 강부장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오늘..이요? 저야 감사하긴 하지만.."

  30대 후반인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사람이지만 뭐 그딴 게 사회에서 뭐가 중요한가. 기술과 돈 있으면 반말이 대수냐.

  그리고 실제로 외모와는 달리 풍기는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연장자를 대하는 느낌이라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난 카렌이야. 한군데만 들렸다 가자고."

  "그럼 준비해 놓겠습니다."

  "아냐, 난 강부장이 지금 필요해. 증인과 증거가 필요하거든."

  "네?"

  "그...뭐냐, 영상 찍는 거 할 수 있지?"

  "할 수 있습니다."

  옛날처럼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스마트워치에서 카메라 기능을 키기만 하면 스마트워치가 장착된 손목을 기준으로 전방위로 녹화가 가능했다.

  "좋아. 켜, 그럼 가지."

  내가 말이 끝나자마자 터벅터벅 대한제약 건물을 향해 걷자 이게 뭔가 싶던 강부장이 카메라를 킨 채 재빨리 뒤를 따라왔다.

  '역시 천재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 뭔가 생각이 있겠지.'

  강부장은 그러려니 하고 따라갔다. 자신같은 범인들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특이한 행동을 하는 천재들은 많았다.

  하지만 강부장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실은 지금 앞에 걷고 있는 남자는 괴짜들 사이에서도 까마득히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멈추십시오. 허가받지 않은 인원은 출입이 불가합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경비원이 앞을 가로 막았다. 경비원의 기준으로 목에 걸려 있는 사원증도 없고 자신이 알고 있는 얼굴도 아니었다. 불청객이다.

  "비켜. 너흰 안 죽여."

  "보안실, 확인 부탁한다."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었던 경비원이 익숙하게 보안실에 확인을 부탁하자 입구에 있던 카메라가 움직여 얼굴을 인식하더니 이름을 화면에 띄웠다.

  [정일]

  포션 제작자에 대한 정보는 비밀이었기에 유일하게 남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보안팀장밖에 없었다.

  ?

  "요주인물이다. 1급 발령."

  보안실에 있던 보안팀장은 떠오른 이름을 보자마자 1급 경계 버튼을 감싸고 있는 보안유리를 열고는 거침없이 눌렀다.

  [우우우우우웅]

  곧바로 사이렌 소리가 나며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실제상황입니다. 무장을 한 위험한 각성자 출현. 모두 평소 훈련과 안내에 따라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치워주니 고맙네."

  게이트로 인한 대피와 과연 대기업다운 꾸준한 평소의 훈련 덕분에 일반 사원들은 빠르게 사라져 이제 로비에는 어느새 내려온 보안팀들과 내 뒤에서 어쩔 줄 모르는 강부장만 남아 있었다.

  "놈이 왔다고?"

  갑자기 울린 경보음에 회사 고층에 위치한 보안룸에 대피한 대한제약의 사장이 신경질적으로 앞에서 보고하는 보안부팀장에게 쏘아 붙였다.

  "네, 현재 보안팀에서 막고..."

  하지만 떠오른 CCTV 홀로그램 창에서 이미 몽땅 쓰러져버리고 멱살을 잡힌 채 버둥거리는 보안팀장 영상을 비추자 부팀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도 그가 모두를 죽이는 영상을 봤지만 이렇게 일방적일 줄은 몰랐다.

  저기 쓰러져 있는 놈들이 회사가 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최고의 D급 상위 각성자들이었다. 심지어는 혹시 몰라 대한길드에서 잠시 편법으로 파견 나온 B급, C들도 있었는데.

  '어쩔 수 없다.'

  "대피를..."

  쾅!

  부팀장의 말은 두터운 문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보안팀장이 날아들면서 멈춰 버렸다.

  "어디 가시려고?"

  ?

  A급 이하는 고맙게도 놈들이 알맞은 실험체(?)를 보내 준 덕분에 힘 조절이 잘 되어서 꿈나라로 보내주는 일이 참 빠르고 쉬웠다.

  '시간이 하루만 더 있었어도. S급을 동원해 놈을 죽일 수 있었는데.'

  찾아온 불청객들을 보며 사장이 눈을 감으며 탄식했다. 분명 만만치 않은 인원을 보냈지만 하루 만에 저렇게 멀쩡하게 쳐들어 오다니... 심지어는 조금의 부상도 없어 보였다.

  "대한제약 사장이 누구냐?"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커억."

  부팀장이 달려들었지만 나는 파리를 쫓는 듯한 손짓으로 벽에 반쯤 파 묻어버리고는 다시 물었다.

  "사장, 누구냐고."

  "나다."

  "오호, 역시 사장은 다른데. 기개는 있어."

  강력한 폭력을 보고 실제로 눈앞에 닥쳐 왔지만 그래도 대기업의 사장답게 비굴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밑에 녀석들은 뭔지도 모르니까 죽이진 않았고...항상 어딜 가나 윗대가리가 문제니, 너흰 죽어야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나? 감히 대한이라는 적을 만들고도 네가 살 수 있을 줄 알아?"

  "살 수 있지."

  "멍청한 놈, 아무리 날고 뛰는 S급이라 하더라도 쫓기다 죽을 거다. 날 죽여도 넌 죽어."

  "아! 넌 안 죽어. 당장은."

  "뭐?"

  [쨍그랑]

  나는 품 속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사장에게 던졌다.

  전투능력이 전혀 없던 사장이 반응하지 못하고 유리병이 깨지며 사장의 몸에 갈색 액체가 주르륵 흘렀다.

  "이게 뭐냐?"

  "나에 대한 정보를 못 들었어? 나 연금술사야."

  "흥! 거짓말을 잘도 하는군. 우리도 정보를 가지고 있어. 연금술사 따위가 이런 무력을 가질 순 없다."

  "믿든 말든 진짜다. 그리고 연금술사의 특기가 뭔 줄 알아? 발견이다."

  "발견?"

  "그래, 흔히 알고 있는 새로운 포션이든 아니면...역병이든 말야. 여기선 전염병이란 단어가 더 익숙하더군."

  "저..전염병?"

  지금껏 의연하던 사장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이..이게?"

  사장이 자신의 코 밑에서 흐르는 축축한 느낌에 손가락을 대자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신기하게도 지금껏 이세계에서 전염병이 넘어온 사례가 없더라고. 게이트가 무슨 작용을 하는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여기로 오는 길에 시장에서 재밌는 걸 만들어 왔어. 식용 몬스터를 팔더라고? 신선한 고기를 위해서 당일 도축을 하더라."

  "커어억"

  사장에게 시작된 코피는 중역들에게 옮겨가더니 이제는 입에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내 뒤에 있는 강부장을 빼고 모두의 피부에는 두드러기가 돋고 눈은 흰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충혈된 채 바닥에 쓰러졌다.

  "내가 동물들과 이세계에서 넘어온 식물들로 몇가 지 조작을 해서 만들었어."

  "미...미친놈! 이런 짓을 하고도..."

  사장이 고통으로 물고기처럼 바닥에서 파닥거리면서도 나를 향해 분노로 이를 갈았다. 확실히 기개는 있어, 기개는.

  "넌 당장은 안 죽인다니까. 그냥 일 년 안에 천천히 몸이 붕괴되는 정도?"

  난 사장을 향해 싱긋 웃고는 천천히 뚜벅 뚜벅 걸어가 사장의 앞에 해독제를 놓았다. 회의실에 울려 퍼진 경쾌한 발소리는 평소의 산책 때랑 다를 바가 없었다.

  사장이 다급하게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는 마시자 해독제의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나 사장에게 나타난 모든 이상 증상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제..제발 우리도 좀..."

  다른 중역들이 그 모습을 보고 내게 애원했지만 냉정한 대답만 돌아갔다.

  "너흰 죽어야 돼. 저 놈은 내가 더 귀찮아지기 싫어서 잠깐 살려 놓는 증인이자 경고다."

  "커어어억"

  이윽고 버티지 못한 중역들이 모두 피를 쏟으며 죽고 이제 방 안은 사장과 나, 저 구석에서 반쯤 혼이 나간 강부장만 살아 있었다.

  "너희 대한이라는 놈들이...많지? 강부장!"

  "네..네! 일단 대한이라는 이름만 붙은 곳도 대한 전자, 전기, 보험, 공업, 해운, 물산 등 엄청 많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는 ?관계사, 자회사까지 합치면 셀 수도 없을 겁니다."

  "그래, 저렇게 많잖아. 그걸 다 부수기에는 나도 귀찮거든. 증인인 니가 가족들한테 잘 말해. 강부장이 찍고 있는 영상도 보내 줄게."

  "웃기지 마. 넌 대한의 이름으로 비참하게 죽을 거다."

  "하아...똑똑한 줄 알았더니, 제약회사 사장이 머리가 안 돌아가나? 내가 돌아다니면서 너네 회사랑 공장마다 아까 그 병 하나씩 던져줄까?"

  "백신을 만들면..."

  "푸하하하, 백신? 내가 오기 전에 코로나라는 게 유행 했더만. 지금이야 예방주사도 있고 약 하나만 먹으면 낫는 감기보다 못한 질병이지만, 백신 개발까지 몇 년 걸렸지? 몇 년 걸리는 임상시험은? 다른 세계의 전염병을 본 적은 있어? 내가 만들 수 있는 전염병이 한가지라고 생각해?"

  "...."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네."

  나는 부들거리는 사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왔던 문으로 걸어가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회의실을 나섰다.

  "너희가 가진 힘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귀찮게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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