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8/140)

  친절한 이웃

  ?

  "F급 물약, 그 건은 어떻게 됐어?"

  "알아냈습니다. 주소지가 경기도 구리시였습니다."

  대한제약의 정보팀장이 정보가 담긴 서류들을 사장의 책상 앞에 두면서 말했다. 거의 모든 서류는 디지털화되어 전송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상사인 사장은 중요한 서류는 종이로 받는 걸 고집했다.

  일일이 출력해야 하는 부하는 귀찮고 원시적이지만 이런 일을 처리하기에 지킬 수만 있으면 가장 보안이 강력한 방법이기도 했다.

  "개발자의 정체는?"

  "연합에 있는 공무원들에게 정보를 빼냈습니다. 주소의 거주자는 최근 지구로 돌아 온 D급 귀환자입니다."

  연합헌터경매장은 신기하게도 지금껏 포섭한 사례가 없었지만 여러 길드들이 내는 지원금으로 돌아가는 연합정부는 달랐다.

  연합법에 의하면 속해 있는 연합 공무원들이 귀환자의 정보를 발설하는 건 불법이지만...돈으로 찔러보면 어딘간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애초에 돈이 길드로부터 나가는데 입김이 없을리가 없었다.

  "좋아. 또?"

  "일단 거주지에는 그 귀환자만 있는 건 확실합니다. 감시자를 붙여봤는데 일체의 출입이 없고 택배만 발송되었습니다. 산책할 때 신원도 확인했습니다."

  일반 고양이보다 좀 큰 고양이도 같이 산다고 얘기할까 고민하던 정보팀장은 그냥 인간만 세기로 했다.

  '반려몬스터라기에는 너무 고양이 얼굴이었어.'

  멀리서 찍은 사진을 보니 귀엽긴 해도 특별히 위험대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주인에게 이상이 생기면 자신이 분양할까 생각까지 했으니까.

  "좋아. 뒤에 누군가 있지는 않고?"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없습니다. 어쩌다 우연히 다른 세계에서 F급 포션 제조법만 알아 온 듯 합니다."

  "허어...운이 없는 친구인 데다가 멍청하기까지 해. 조용히 살았으면 좋았으려만... 아니 덕분에 우리가 운이 좋아졌구만, 하하하"

  "..."

  사장이 기분 좋게 웃었지만, 정보팀장은 말없이 뒷짐을 지면서 속으로는 불쌍한 귀환자를 동정했다. 살든 죽든 앞날이 절대 편하진 않을 거다.

  '쯧,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옛날에도 힘들었지만 분에 넘치는 기술을 힘 없는 개인이 갖고 있는 것만으로 지금 세상에서는 죄였다. 그것도 목숨이 위험할 만한 아주 큰 죄.

  "가족도 없다 그랬나?"

  "예."

  "귀찮은 일 없이 잘됐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용히 처리해. 알겠지?"

  "알겠습니다. 회사 이름 안 나오게 용병들로 처리하겠습니다."

  "하하하, 회장님에게 좋은 선물을 들고 갈 수 있겠어."

  비서가 눈치껏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고 한참 동안 기분 좋은 사장의 웃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 *

  "흠..."

  "꾸잉, 죽일까 마스터?"

  내가 뭔가 거슬리는 듯 신음을 흘리자 삼색이 자신의 날카로운 발톱들을 꺼내며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평소에는 호랑이 크기가 편하지만 산책 때는 보통 고양이 몸집보다 좀 크게 변신했다.

  "그런 말투는 또 어디서 배운 거야."

  "미개한 인간들은 우리의 상대가 못 된다. 마스터, 명령만 내려."

  "...너 당분간 인터넷 금지야."

  "꾸...꾸잉!"

  우리 둘이 이렇게 같이 산책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개도 아닌 고양이가 산책을 한다는 게 좀 이상했지만 뭐 어떤가, 실제 고양이도 아닌데.

  삼색이 이렇게 밖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도 내가 준 물약을 몸에 뿌려 연합의 감지기를 피하면서 가능해졌다.

  "어떻게 할까..."

  우리들을 감시하고 있는 시선들이 생긴지 벌써 2주일 째다. 삼색이가 알아차렸는데 내가 못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다 조금 더 귀찮아지지 않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뭐, 정부...아니 연합에서 귀환자를 감시할 수도 있으니 놔둬. 목줄은 어때?"

  아직까지도 연합이라는 단어 대신 정부라는 단어가 입에 붙는다. 세상이 많이 바뀌긴 했어.

  "괜찮다. 꾸잉, 이렇게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니 좋다."

  삼색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가슴을 부풀리며 크게 호흡했다. 옛날부터 인간의 눈에 띌까 봐 자유롭게 못 돌아다녔다. 사람 수가 많지 않고 울창한 산에서도 그랬는데 현대는 오죽했겠나. 목줄 쯤은 별 거 아니었다.

  "응?"

  "누군가 이리로 온다, 꾸잉."

  삼색의 말대로 지금껏 우리를 주시했던 시선들이 사라지고 새롭게 교대한 기척들이 우리 쪽으로 오는 게 느껴졌다.

  ?

  "아씨, 연합 쪽이 아닌가 본데?"

  나는 짜증을 내며 최근에 짧게 짜른 은발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겼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라던데 멋은 모르겠고 장발이었을 때보다 머리 감기 편하긴 했다.

  그나저나 만약 연합이라면 감시하다 이렇게 대놓고 나타날 리가 없으니...그런데 여기 와서 특별히 눈에 띄게 한 일이 없는데? 쇼핑하고, 드라마 보고, 포션 팔...잠깐만...

  "있구나."

  머릿속에 스쳐가는 딱 한가지. 하지만 경매장은 연합에서도 못 건드린다고 들었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기업의 힘으로 유통단계를 하나하나 추적해 올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미 적의는 느껴지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지. 거기 못생긴 놈들!"

  어느세 눈 앞까지 온 험상궃은 놈들에게 도발하자 장본인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각자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미친놈인가?"

  "근데 저 놈 잘생기긴 했네. 저 놈에 비하면 솔직히..."

  "닥쳐."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는 놈의 입을 단숨에 다물게 한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한 손에는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커다란 도끼가 들려 있었다.

  "형씨, D급이라 들었는데 힘 빼지 말고 협조해서 갑시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가 않네."

  "꾸잉."

  역시나 좋은 의도로 온 놈들은 아니다. 삼색이 위협적으로 꼬리를 세웠지만 나는 나서지 말라고 손을 내리자 눈치가 빠른 녀석답게 재빨리 뒤로 몇 걸음 물러난다.

  "입이 험한 친구 같긴 하지만, 우리도 댁이 멀쩡하면 추가수당이 있어서 말이야. 좋게 갑시다."

  무려 추가금이 1.5배다. 저 정신나간 놈이 자신을 보자마자 막말을 해댔지만 그 정도야 들어올 추가금을 생각하면 충분히 눈 감아줄 수 있다.

  '당분간 쉴 수 있겠구만.'

  대장은 이미 통장에 그 돈이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표는 잘생기긴 했지만 딱 봐도 몸은 비실비실했다.

  '거저먹는 의뢰구만 그래.'

  붕, 붕

  대장이 일부러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도끼를 허공에 흔들며 위협했다. 정보에 따르면 놈은 D급, 자신부터 C급이고 뒤의 놈들도 D급이었다.

  이 정도면 눈 앞의 허약한 놈이 벌벌 떨며 무릎을 꿇을 거라 생각했지만 목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대장의 예상을 한참 빗나가버렸다.

  "너는 살려줄 거야"

  눈 앞에 용병들이 떡 하니 버티고 있는데도 마치 방금 만난 동네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한 목소리에 대장은 위화감을 느꼈다.

  "뭐?"

  "주위에 CCTV는 예전에 다 파괴 되었고, 주변에 사람도 없으니, 너는 전서구다."

  "전서...구?"

  생소한 단어에 대장이 혼자 뭐라 지껄이든 말든 난 계속 말을 이어갔다.

  "구구구, 비둘기란 말이다. 삼색!"

  "꾸잉"

  "땅 파. 하나, 둘, 셋, 아홉명? 많이도 데려왔네. 이 놈은 빼니까 8명 분이다. 혹시 쓸데없이 원혼으로 변해 소음 생길 수도 있으니 소금도 좀 준비하고"

  "알았다."

  삼색은 순식간에 달려가더니 원래 크기로 변해 자신이 예전에 잠자고 있던 공터에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번 팠다 다시 덮었기도 했고 힘도 워낙 좋아서 금세 쑥쑥 구덩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으드득, 귀환자라고 들었는데...너무 저쪽 세상에서 오래 살다 보니, 진짜 정신이 나갔나? 야, 뭐해? 잡아 와."

  자신이 직접 손을 썼다간 팔 하나는 부러뜨릴 것 같아 대장은 억지로 화를 참으며 뒤에 있는 D급에게 명령했다. 1.5배는 소중하니까.

  "...."

  "뭐해? 빨리 안 나가?"

  "..."

  "이것들이 너네까지 날 무시하냐? 내가 저 놈은 못 패도 너네는..."

  대장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 뒤를 훽 하고 돌아봤지만 거기에는 대장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뭐...이게 뭐야?"

  엄밀히 말하면 마주칠 수 있는 얼굴이 없었다. 목 위에 있어야 할 머리는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끔찍한 광경에 용병대장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더욱 공포스러운 사실은 엄청나게 예리한 무언가가 베고 지나간 몸은 아직도 머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굳건하게 서 있었다.

  목의 절단면에서는 단 한방울 피도 나오질 않았는데 정체 모를 반투명한 막이 출혈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까먹지 말고 전해라."

  "허억, 허억"

  "하아...너도 죽여줄까?"

  짝

  용병대장의 바지가 순식간에 축축하게 젖어들고 공포 때문에 집중을 못하자 내가 놈의 뺨을 실드로 살짝 때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역시 공포는 최고의 집중제다. 대장이 이번에는 단번에 칼같이 대답했다. 마치 군대에 방금 입소한 신병 같았다.

  "누가 시켰는지 따위 구질구질하게 안 물어봐. 네가 의뢰주를 알건 말건 신경 안 써. 누군지도 관심 없어."

  "예?"

  이제 자신에게 끔찍한 고문이 가해지며 심문할 거라고 예상했던 대장이 얼이 빠져 되물었다.

  '안 물어 본다고?'

  백이면 백 모두 자신을 납치하려고 한 사람에 대해서 궁금한 게 상식이었다. 물론 용병으로 고용된 대장은 용병의 신의 따위는 집어치우고 아는 걸 모두 대답해줄 예정이었다.

  당연히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나. 사실 의뢰도 익명으로 건너 건너 들어와 아는 것도 별로 없었지만.

  "고문 같은 거 안 해."

  "가..감사합니다!"

  그런 걸 왜 하냐. 고문이라는 일도 엄연히 전문직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기술직이자 서비스직이다. 나 같은 아마추어는 힘들고 귀찮아서 못 한다.?

  "그냥 내 말만 기억하고 너한테 의뢰한 놈한테 전해. 요즘 기분이 좋아서 딱! 한 번만 봐준다. 또 오면 찾아가서 죽이기 귀찮으니까 오지마. 기억했냐?"

  "예!"

  "외워봐."

  "내 말만 기억하고 너한테 의뢰한 놈한테 전해. 요즘 기분이 좋아서 딱! 한 번만 봐준다. 또 오면 다 죽이기 귀찮으니까 오지마. 기억했냐?"

  공포의 너무 효과가 과도하게 나타났는지 대장은 아예 말한 그대로 외워버린 것도 모자라 어설프게 내 목소리마저 따라했다.

  너무 심했나? 나는 머리를 머쓱하게 긁으며 몇 가지를 친절하게 교정해줬다.

  ?

  "아니...잘했는데. 거기서 앞 부분하고 맨 뒷부분은 빼고. 목소리도 안 따라 해도 돼."

  "알겠습니다!"

  "그래, 네가 끌고 온 녀석들은 묻고 가고. 내가 피도 안 나오게 처리하고 땅도 파놨으니 가져다 놓기만 해라. 땅은 알아서 우리가 메꿀 거다."

  "네..네!"

  대장은 자신이 시체까지 묻어야 하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이미 선택지는 없었다. 둘이 들어가자 대장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벌벌 떨면서 자신이 데려온 동료들의 시체를 구덩이를 끌고 모두 옮기고는 ?뒤도 돌아 보지 않은 채 도망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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