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140)

  포션제작

  [6,000,000]

  "벌써 육백 만 원밖에 안 남았어. 돈이 필요해."

  카렌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돈에 대한 갈증에 신선함마저 느꼈다. 160년 만의 쇼핑이 문제였다. 이 집에 자리잡은 지 일주일이 지나고 오랜만에 보내는 휴식에 쇼파와 침대에 뒹굴며 160년 만에 인터넷에 빠져들고 자연스럽게 물건을 시키기 시작했다.

  "냉장고? 필요하지. 요즘 유행하는 비스비프로 사고, 세탁기 건조기 세트? 당연하지! 무드등도 좋겠다. 마약쿠션? 쇼파에 놔야지, 쇼파에 누워서는 TV지!"

  이렇게 하나 둘씩, 장만하다 보니 어느새 1,400만 원이 훌쩍 나가 버렸다. 게다가 게이트 출몰 빈도가 높은 위험 지역이라 일반 택배비가 만원이 넘었다. 가전제품은 택배비만 10만 원 가량 됐으니 돈이 훌훌 빠져나가는 게 당연했다.

  "삼색아, 너 영물이라며, 돈 어떻게 벌까."

  "꾸잉, 나한테 먹인 거 팔면 되지 않을까?"

  "흐음... 이것만 제대로 넘어왔어도 괜찮았을 텐데."

  카렌은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쓰다듬었다. 여기 걸려 있는 마법인 초대형 아공간이 제대로 넘어왔으면 속에 굴러다니는 아무거나 팔아도 충분하겠지만, 게이트를 타고 차원이동을 하면서 영혼에 각인된 비상 아공간만 자신과 같이 게이트를 넘어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걸 팔 수는 없고..."

  손을 뻗자 공간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카렌의 팔을 빨아들였다. 이윽고 나온 손 위에는 삼색이한테 줬던 엘릭서가 담긴 병과 동그란 원형 구체가 놓여 있었다.

  삼색이는 딱히 앓고 있는 병이 없어 외상만 치료했지만, 흔히 알고 있는 전설의 비약이다. ?그조차 비상용으로 몇 병 가지고 있지 않았다.?

  "효과만 보면 기적인데 조건이 좀 까다롭긴 하지."

  외상에 대한 효과는 절대적이지만 깊게 파고들어가 보면 웬만한 연금술사는 제대로 쓰지도 못 한다. 현대에서도 아무리 약이 좋아도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 처방해주는 약사와 의사라는 직업이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그건 뭐냐. 꾸잉."

  카렌의 손에 들린 동그란 구체를 보며 삼색이의 눈이 동그라졌다. 인간이야 볼 수 없겠지만 영물인 삼색이의 눈에 저 돌멩이 생긴 구슬에서 나오는 힘은 삼색의 털을 단번에 곤두서게 할 만큼 거대했다.

  "인공 드래곤하트다."

  언젠가 우연히 마주친 드래곤의 심장을 본따 만든 그의 특제품이었다. 물론 실제 드래곤하트보다는 성능이 떨어졌지만, 이거 하나만으로도 한 나라 정도의 전력 정도는 몇백년 간 거뜬히 감당할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일체의 유해물질도 안 나오는 친환경 에너지였다.

  "이것들이 세상에 나가면 엄청 귀찮아질 게 뻔해."

  자신이 이세계에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사방에서 날파리가 꼬였던 물건들이다. 그걸 여기서 꺼낸다?

  그 후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면 벌써 두통이 밀려오는 듯했다. 나중에라면 몰라도 160년간 치열하게 살아온 카렌은 당장은 그냥 좀 쉬고 싶었다.

  "안 꺼내는 게 좋겠다. 꾸잉."

  카렌이 인공 드래곤하트를 다시 아공간에 집어 넣자, 삼색은 그제서야 멈췄던 숨을 몰아 쉬었다. 그냥 들고만 있어도 저런 힘이 분출되다니...삼색도 바보는 아니었다.

  자신도 눈앞의 주인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치유능력을 가지고 갈등에 휘말렸는데 저런 물건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래서 좋은 생각 있냐, 밥값 해야지 삼색. 너 인터넷도 계속 뒤적거렸잖아."

  자신은 간단한 쇼핑이나 영상이나 볼 줄 알지 이런 건 오히려 인간인 자신보다 영물인 삼색이 잘했다.

  ?

  삼색은 카렌이 사서 앞발에 채워준 스마트워치를 만지면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고무를 비롯한 여러가지 신축성 있는 소재를 결합해 시계줄을 만들어줬으니 다시 중형차 크기로 돌아가도 시계는 멀쩡할 거다.

  츄릅 츄릅

  능숙하게 츄르를 먹으며 공중에 뜬 인터넷 창들을 조작하는 모습을 보니 인간인 자신보다 훨씬 낫다.

  처음에는 쇼핑을 하면서 헤매자 삼색이 나서서 몇 번 만지더니 결제도 쉽게 하게 설정해주고, 심지어는 저기 삼색이가 물고 있던 츄르도 자기가 샘플로 몇개 사보더니 자신의 취향에 맞는걸로 알아서 주문해서 먹고 있다.

  "주인! 이거 어때?"

  삼색이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한 사이트를 보여줬다.

  [연합헌터경매장]

  한 눈에 용도를 알 수 있는 직관적인 이름, 헌터들이 각종 사소한 물건부터 억이 넘는 물건까지 거래하는 온라인 거래소였다.

  "이건...오?"

  홈페이지 경매장에는 무기, 방어구, 재료, 등 많은 카테고리가 있었지만 삼색이가 넘겨 준 페이지는 포션 카테고리였다.

  "이게 주인 전문분야라며?"

  일주일 동안 뒹굴다 보니 삼색이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한 얘기였다. 모두가 처음이 있듯 연금술사로서 카렌의 첫 직업은 약초꾼이었다.

  나중에 이것저것 배워서 골렘 제조법 등 다양하게 익혔지만 그래도 뿌리는 약물제조인 만큼 포션 쪽이 제일 뛰어났다.

  "어디보자... 대부분 마나포션이네. 효과가 이게 뭐야? F급 마나포션이 F급 각성자의 총 마나량 30%를 채운다고? B급도 B급 각성자의 30%? 쓰레기 아냐?"

  카렌이 질색하며 말했지만? 사실 저것도 지금 기술로는 혁명이었다. 30%란 수치를 처음 개발한 회사는 특허권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재료는 몬스터의 피를 정제해서 만든다. 정제법은 각 회사의 특급 기밀이다."

  이 정도 정보는 검색만 해도 간단하게 나왔다.

  "이거 하자. 몬스터의 피는 경매장에서 파냐?"

  "꾸잉, 종류별로 판다. 제일 싼 게 개의 머리를 한 놀, 그 다음 고블린..."

  "제일 싼 걸로 주문해."

  "하지만 여기 인터넷에서는 약한 몬스터들에서는 정제율이 떨어진다고..."

  "정제율은 상관없어. 그냥 피에 담긴 농도의 차이야. 놀은 F급 포션을 만들 수 있지."

  "알았어. 300만 원어치 놀의 피로 주문할게."

  "포션을 담을 10ml 짜리 플라스틱 빈 통도 주문해."

  "유리병에 안 담기면 포션 특유의 독성 때문에 안 된다는데? 일반인이 마시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

  "삼색아."

  "꾸잉?"

  "주인 못 믿냐? 무슨 엘릭서도 아니고 그깟 마력포션에 유리병은 사치야."

  3일 후 아이스팩과 함께 신선한 놀의 피가 대량으로 도착하자 카렌은 그것들을 몽땅 목걸이에 담긴 대용량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영혼에 각인된 아공간처럼 시간 정지마법이 걸려 있지는 않았지만, 제국에서도 국보급으로 지정되어 있는 물품답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마법이 걸려 있어 당분간은 괜찮다.

  "병 준비됐지?"

  "꾸잉!"

  삼색이 염력으로 플라스틱 병을 준비하자 카렌은 실드를 변형시켜 깔대기 보양을 만들어 플라스틱 병 입구에 꽂았다. 그리고는 놀의 혈액에 자신의 마력을 넣고는 작업을 시작했다.

  부글부글.

  혈액이 뜨거운 주전자에 담긴 것처럼 끓자 놀 특유의 갈색 피에서 푸른색의 액체들이 방울맺혀 깔대기를 타고 플라스틱 병 안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끓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놀의 피를 엄청난 속도로 안에서 휘젓고는 압력을 가해서 피에서 마력만 분리해내는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와아...역시 주인! 이건 몇%야?"

  마침내 병의 거의 채운 액체를 보며 삼색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단 너무 눈에 띄지 않게 50%만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다음!"

  '50%도 많지 않나?'

  삼색이의 영물 특유의 감으로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카렌이 다시 부르자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개씩 해서 언제 다 하냐, 몇 십개씩 까!"

  처음에야 오랜만에 해보는 작업에 시험 삼아 해봤지만, 귀찮기도 했고 답답함을 느낀 카렌은 아공간에서 놀의 블러드팩을 꺼내 수십 개의 페트병에 깔대기를 꽂고는 같은 작업을 시작했다.

  * * *

  "어이. 이것 봐봐."

  "또 뭔데 그래?"

  나이가 40살은 족히 넘은 중년의 F급 헌터 하나가 동료에게 가방에서 조그마한 페트병 하나를 꺼내서 보여줬다.

  "내가 50%짜리 포션을 사왔다는 거 아니냐."

  하지만 정작 동료는 한심하게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 녀석이 귀가 얇은 건 알았지만 이렇게 까지 팔랑귀일 줄은 몰랐다.

  "아이고, 그딴 게 어딨어 멍청아! 또 어디서 게이트 앞 약장수한테 속았지?"

  몬스터가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내부형 게이트는 장시간 지속되므로 그 앞은 상권이 생기며 별의별 놈들이 다 모여든다. 푸드트럭부터 술집, 화려한 불쇼를 선보이는 약장수까지 말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아니라 헌터가 속아 넘어간 건 처음 봤다.

  "이거 경매장에서 샀다니까?"

  "응? 경매장? 거긴 사기 못 치는데? 저번에 어떤 간 큰 놈들이 치다가 행방불명 됐잖아?"

  헌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는 동료가 내민 물약통을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물약에 비해 색깔이 진한 것 같기도 했다.

  "페트병에 담긴 물약은 처음 보네. 뭐...뭐시기...무슨 이유 때문에 유리병 말고는 못 쓴다 했는데, 그래도 50%는 너무 심한거 아냐?"

  [통, 통]

  "슬라임!"

  둘의 대화는 많이 듣던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며 끊기고 재빨리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둘이 현재 있는 F급 던전은 슬라임이 주로 서식했다. 공격수단이라고는 약 산성인 자신의 몸뚱아리 밖에 없는 최하위급 몬스터.

  "어..어? 왜 이렇게 수가 많지?"

  하지만 그것도 몇 마리일 경우였다. 갑자기 수십 마리의 슬라임이 나타나자 둘은 재빨리 뒤를 돌았지만 어느새 뒤에도 슬라임이 있었다.

  "젠장! 싸우자, 수십 마리면 해볼 만해."

  F급 던전에서 부상을 입으면 남는 게 없어서 도망치려 했지만 그래도 슬라임은 슬라임이었다. 이내 인간과 슬라임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크윽, 마력 거의 다 떨어졌다."

  이 헌터들의 능력은 F급인만큼 단순했다. '육체강화' 마력이 유지되는 한 일반인보다 튼튼한 육체를 강화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슬라임이 많았고 이내 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몸 곳곳에 슬라임이 붙었다 떨어져 옷은 녹고 피부는 벌겋게 부어올랐다.

  슬라임이 뭉치면 무서운 점은 여기 있다. 한, 두 마리야 공격을 허용해도 괜찮지만 만약 수십마리가 달라붙는다면? 말벌도 수십 마리가 달려들면 생명이 위험한데 약하긴 해도 산성몸체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다.

  "이거 먹어! 포션! 여기 네 것도 사 놨어."

  "너...설마 기존 포션 안 갖고 왔냐?"

  "이게 있잖아."

  "이 미친놈이 진짜!"

  하긴 욕을 하긴 했어도 어차피 자신들이 평소 비상시로 가지고 다니던 포션은 기껏해야 20%짜리였다. 잠깐 시간은 벌어줄 수 있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거다. 다른 방법도 없었던 동료는 슬라임을 향해 크게 도를 휘두르고는 재빨리 뚜껑을 따서 마셨다.

  "크으"

  중년 특유의 소리를 내며 다 마신 통을 내던지던 둘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각성자들은 본인몸에 남아있는 마력의 양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는데 거의 바닥을 보이던 마나가 반이 쑤욱 차오른 것이다.

  "...사기 아냐? 진짜 50%이라고?"

  다시 돌아온 힘에 둘은 마침내 간신히 모든 슬라임을 처리하고는 헥헥 대며 바닥에 누웠다. 이 정도 처리했으면 당분간 슬라임은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거다.

  "봤지? 50%라니까?"

  옆에서 어깨가 으쓱한 귀얇은 녀석의 기를 살려주기는 싫었지만, 이번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살았으니까.

  "잘했다 임마. 그런데 이거 얼마 주고 샀냐?"

  가격이 중요했다. F급 20%짜리가 10만원, 30%짜리가 30만원이다. 퍼센트마다 가격이 확 뛰는 이유는 독성 때문에 하루에 단 한 번밖에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비상시를 대비해서 몇 병 정도는 사둘만 하지 100만 원은 당연히 넘겠지?'

  "50만 원 주고 샀어."

  "...판매자 이름이 뭐야. 당장 사!"

  "일인당 한도 제한 있던데?"

  "한도대로 빨리 다 사자."

  이렇게 싼 가격인 50만원이 된 이유는 별 이유 없었다.

  "50%면 50만원이 깔끔하네. 50만원으로 경매장에 올려."

  그냥 내 마음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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