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줍???
"괜찮네.
"
집 앞에서 살펴보니 아무리 봐도 나쁘지 않은 집이었다. 작은 연못과 창고도 있었다. 여기가 어디랬지? 경기도 구리시랬나? 조금만 가면 서울 강변역으로 갈 수 있었고, 고속도로도 연결된 도시였다.
물론 정부에서 지정된 공식 '적색' 도시긴 해도 말이다. 적색도시는 게이트 출몰 확률 최다지역으로 한국식으로 말해 집값이 그야말로 똥값이 되어버린 곳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집만 멀쩡하네?"
주위를 둘러보니 주위에 빌라였던 형체들이 보였다. 도심속의 단독주택이라니 서민들의 꿈이 아닌가. 그런데 주변의 폐허들과 달리 이 집은 담벼락 하나 무너지지 않았다.
[쿠르르릉]
"허어? 역시나 이유가 있었네."
가격이 저렴한 부동산의 진리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싼 매물은 다 이유가 있다. 수압이 약하든, 벽지 안에 곰팡이가 있든, 아니면...
"층간소음이 심하거나 성격이 더러운 이웃이 옆에 살거나 말이야."
카렌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여유롭게 걷기 시작했다. 단독주택 옆에는 커다란 공터가 있었는데 크게 한 번 뒤집힌 듯 중앙과 외곽의 흙 색깔이 달랐다.
[크르르릉]
여기가 확실하다. 귀를 때리는 우렁찬 잠꼬대?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사람이나 일반적인 각성자들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을 거다. 딱 봐도 지하 수십 미터는 족히 밑에 있으니까.
"으라차, 이렇게 해서..."
카렌이 마왕에게 말했듯이 쓸 수 있는 마법은 단 하나였다. 기초 초급마법인 실드(Shield), 자신은 마법에 재능이 없었다.
이것도 진짜 겨우겨우 익혔으니까. 하지만 마력량은 인공적으로 늘릴 수 있었고 마력컨트롤은 재능이 아닌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퍼억, 퍼억]
그 노력의 결과가 눈앞에 나타난 장관이었다. 대형 포크레인은 뺨칠정도의 갈고리 모양의 거대한 반투명한 막이 흙을 폭포처럼 퍼내고 있었다.
얼마나 크기가 컸던지 한 번 흙을 퍼낼 때마다 엄청난 양이 쌓이더니 순식간에 공터 옆에는 흙으로 만들어진 작은 산이 만들어졌다.
"이 녀석이구나."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파고 들어간 끝에 코를 힘차게 고는 녀석의 정체가 드러났다. 카렌은 발에 조그맣게 실드마법으로 반투명한 신발을 만들고는 구덩이로 훌쩍 뛰어내렸다.
당연히 추락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둥둥 뜨며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중급마법이자 하늘을 날게 해주는 부유마법을 보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부유마법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 더욱 효율이 좋았다.
"덩치는 엄청 큰데 귀엽게 생기긴 했네. 야, 일어나 봐."
중형차 만한 크기의 흔히 삼색이로 불리는 검, 흰, 갈 색깔의 털을 가진 거대한 고양이였다. 물론 이렇게 큰 고양이는 없으니 진짜 고양이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일어나라고 녀석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크르릉]
하지만 자신의 근처에서 엄청난 소음이 났음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녀석이 그 정도로 깰리가 없었다. 아랑곳 하지 않고 코를 계속 골았다.
"아오, 시끄러."
멀리서도 그 정도의 소음이였는데 가까이서 들으니 몸의 솜털이 떨릴 정도였다. 카렌이 잔뜩 짜증을 내며 손바닥으로 허공을 치자 반투명한 망치가 생겨나며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가격했다.
[쾅]
"...조금 세게 쳤나? 덩치가 있으니 괜찮겠지."
자신도 모르게 코 앞에서 듣는 소음 때문에 감정이 실렸는지 바위 때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는지 단번에 녀석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꾸잉, 어떤 놈이야!! 혹 났잖아!"
"꾸잉...쿡"
자신은 나름 화낸다고 했지만 목소리는 천상 귀여운 고양이였다. 덩치에 걸맞지 않은 귀여운 소리에 카렌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인간! 나는 묘두사다! 혼나기전에 사라져라! 꾸잉."
아무래도 저 꾸잉은 고양이의 냐옹처럼 습관적으로 나오는 소린가 보다. 이제서야 목소리를 깔고 위협적으로 말해봤자 눈 앞의 인물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사라지긴 네가 사라져야지, 냐옹이. 너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너무 시끄럽다고."
"내가 사라지라고? 네가 뭔데? 내가 먼저 왔다. 사라져야 할 건 너야 인간!"
"나? 여기 근처에 이사 왔는데 층간소음 때문에 못 살겠다. 그럼 누가 잘못했지?"
"...층간소음?"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들려오는 것도 층간소음이야. 냐옹이, 이웃집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지. 조용히 자든가 다른 데로 이사를 가든가."
묘두사는 갑자기 나타난 인간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머리는 커다란 혹이 나서 아직도 욱씬거렸고 정신은 방금 자다 깨서 비몽사몽이었다. 결국 힘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보기로 했다.
"진짜 혼내기 전에 꺼져!"
거대한 앞발을 들어 올리며 거대한 꼬리를 위로 뻣뻣이 새웠다. 바위만 한 앞발이 당장이라도 날아올 듯 위협적이었지만 남자는 겁먹은 표정은커녕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대체 이 인간은 뭐야?'
짐승을 넘어선 영물의 감각은 인간의 감정에 예민했다. 그런데 눈 앞의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감각은 절대 허세가 아니였다. 그저, 흥미로움? 심지어는 자신을 향해서 묘한 이 감정은 뭐지?
"...날 귀엽다고 느끼는 거야? 꾸잉?"
"귀엽지 않아?"
고양이가 커지면 어떤 느낌인지 카렌은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었다. 간단하다. 덩치가 커진 만큼 더 귀여웠다. 목소리도 귀엽고 말이다. 게다가 눈 앞의 고양이처럼 감각이 예민하진 않았지만 오래 살아온 만큼 자신도 한 가지는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의 행동에 조금의 악의도 없어.'
"내가 귀엽긴 하지. 꾸잉, 하지만 인간, 아무리 그렇게 아부해도 난 여기서 못 나가."
"응? 이래도?"
아무리 귀여워도 층간소음(?)은 중범죄까지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카렌이 방대한 마력을 위협 삼아 분출하자 안 그래도 예민한 묘두사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꾸잉..."
흔히 고양이가 겁 먹었을 때처럼 허리를 낮추고는 털을 세우고, 꼬리를 낮추고, 끝을 낮추며 빠르게 흔들었다. 다만 눈앞의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하악질을 하지는 않았다.
"죽이진 않을 테니, 떠나라."
지구로 오고 채린이라는 인간도 만나고 굳이 눈 앞의 생물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엄청난 압박에 녀석은 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움직이질 않았다.
"꾸잉, 어차피 여길 떠나면 죽는다.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
"응? 그게 무슨 소리..."
지하라서 눈에 들어오질 않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녀석의 몸 곳곳에 상처가 보였다. 그것도 몇 개는 뼈가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처였고 털 곳곳은 아직도 피로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변색된 피부를 보니 지독한 독에 중독까지 되어 있었다.
"여기가 겨우 찾은 마력이 풍부한 곳이야. 여길 떠나면 상처 때문에 죽는다. 꾸잉."
"왜 그렇게 다친 건데?"
"갑자기 사악한 것들이 나타나서 싸웠다. 이겼지만 아팠다."
그러고 보니 공무원의 설명이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대다수 구리시의 건물들은 심각하게 파괴되었는데 인명피해는 굉장히 적었다고 했었다. 눈 앞의 고양이의 작품일 것이다.
"...착하네."
"맞다! 나쁜 것들 혼내줬다. 하지만 그 뒤에 나타난 인간들이 나를 공격했다. 죽이고 싶었지만 그래도 숨었다, 꾸잉"
안 그래도 몬스터들과 싸우느라 상처를 입었던 묘두사에게 뒤에 나타난 헌터들은 역부족이었다. 당연하게도 몬스터의 일종인 줄 안 헌터들은 가차 없이 공격을 시작했고 묘두사는 인간을 죽이기도 싫고 상처만 입은 채 도망쳐 지하로 숨었던 것이다.
"이걸 어쩐다..."
마침 기분도 나쁘진 않았고 눈 앞의 생물이 딱히 거슬리지도 않자 카렌은 고민에 빠졌다. 한참을 생각하는 동안 묘두사는 남자가 자신을 죽일 줄 알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죽음을 받아 들인 채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자, 이거 받아라."
"고통 없이 죽여...이게 뭐냐, 꾸잉?"
반항조차 포기한 채 죽음을 각오 한 묘두사가 자신의 앞으로 뭔가가 날아들자 자신의 커다란 앞발로 본능적으로 잡아챘다. 작은 유리병이었는데 안에 든 황금색 액체가 어둠 속에서도 태양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엘릭서다."
"엘릭서?"
"설명도 귀찮으니 잔말 말고 먹어."
묘두사는 잠시 독이 아닌지 의심 했지만 어차피 죽을 각오였으니 눈을 감고 병 안에 든 액체를 삼키자 놀라운 변화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게..."
누가 봐도 중상이었던 상처들이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중독되어 있던 곳 마저 피부색이 원래 색으로 돌아왔고 곳곳에 상처 때문에 빠진 털마저도 윤기가 나는 새털로 다시 돋아났다.
"됐지? 그거 귀한 거야. 이제 다른 데 가서 자라."
묘두사가 낫는 걸 본 난 그 말만 남긴 채 다시 공중으로 떠서 구멍 바깥으로 나갔다. 자신이 떠나줘야 저 녀석도 마음 편히 갈 거다.
하지만 정작 떠날 거라고 예상했던 묘두사는 멍하니 남자가 사라진 곳을 보더니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발톱을 세우고는 벽을 타고 날렵하게 올라갔다.
"으차! 이제 청소라도 해볼까."
"인간!"
지하에 있다가 나와서 축축한 습기에 뻐근해 몸을 쭈욱 피며 집으로 향할 때 녀석이 뒤에서 나왔는지 자신을 불렀다. 인사라도 하려 그러나?
"응? 왜? 고맙다는 얘기는 됐어. 그냥 가라, 기특해서 보내주는 거야."
그런데 인사만 할 줄 알았던 녀석의 입에서 뜻밖의 소리가 나왔다.
"날 데려가라. 꾸잉."
"...싫어. 난 뭐 키우는 거 귀찮아서 싫어해. 게다가 너 덩치가 커서 밥값도 많이 들 텐데?"
반려동물은 철저한 준비와 죽을 때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 키워야 하는 법이다. 어렸을 때 키우다 무지개 다리를 건넌 강아지를 보면서 가진 개인적인 신념이다.
"바...밥값? 아니다. 나 작아질 수 있다."
과연 중형차 크기였던 크기가 이제는 호랑이 크기로 변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목욕시키기도 귀찮고 그...뭐야..똥 싼 것도 치워줘야 하잖아."
"나 영물이다. 인간! 혼자서도 잘 가리고 잘 씻는다."
자신이 무슨 진짜 고양이 취급을 받자 묘두사는 순간 울컥했지만 눈 앞의 인간을 이길 수도 없고, 어쩌겠나, 참아야지.
"그래도.."
"나 청소도 잘 한다."
"오...."
이건 좀 솔깃하다.
"집도 잘 지켜."
"그건 됐고...청소 잘한다 이거지?"
집이야...누가 오든 말든 상관없다. 하지만 아까 살짝 보니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탓에 집이 온통 먼지투성이던데 솔직히 치우기 귀찮았다.
"솔직히 말해봐. 왜 나랑 가고 싶어하는데? 너 나랑 처음 봤잖아."
"갈 데가 없다. 옛날에는 그냥 산에 살았는데 요즘은 인간이 무슨 기계로 나를 자꾸 발견해서 돌아다닐 수가 없다. 너는 강하니까 괜찮을 거 같다. 꾸잉"
몬스터를 찾기 위한 기술의 발전은 옛날부터 이 땅에 살아온 영물마저 찾아 버린 듯했다. 인간의 눈에 몬스터나 영물이나 다를 바 없이 똑같이 사냥의 대상이었고.
카렌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묘두사를 살펴봤지만 거짓은 없어 보였다. 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속일 수 있으면 저건 영물이 아니라 요물이겠지.
"알았다. 대신 조금 보다가 맘에 안 들면 쫓아 낼 거다. 네 이름은 지금부터 삼색이다."
자신의 이름이 순식간에 바뀌었지만 그래도 받아준 게 어딘가. 삼색은 기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역시 귀엽긴 하다.
"꾸잉! 고맙다 인간, 이걸 인간들은 냥줍이라 그런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과연 청소를 잘한다는 삼색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간단한 염력도 사용할 수 있는 듯 어질러진 가구들을 정리하더니, 자신의 꼬리에 풍성한 털을 빗자루 대신 이용해서 먼지들을 순식간에 청소하고 다시 꼬리에 물을 묻혀 걸레질을 하고는, 마지막으로 정원에 있는 연못에서 목욕을 하고 털을 염력으로 빠르게 턴 뒤 구석에서 고릉고릉 잠들었다.
"...이 녀석 밥 구해야겠네. 고양이 사료면 되려나?"
순식간에 깨끗해진 집안을 본 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왼쪽 손목에 부착된 스마트 워치를 만졌다. 그러자 시계에서 홀로그램이 공중에 펼쳐지며 인터넷 창이 떠올랐다. 자신이 떠나온지 3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게이트의 출현은 위기와 동시에 기술 발전의 기회였다.
"그런데 저 녀석 이름이 묘두사라 그랬나? 영물이라 그러면 한국 출신인가?"
카렌은 정부에서 귀환자 지원으로 주는 스마트워치를 어설프게 만지며 묘두사를 검색했다.
[묘두사 : 몸은 뱀이고 머리는 새끼 고양이 머리를 한 생물]
자신의 살던 동굴 앞으로 온 사람들을 치유해줬지만 지나가던 선비가 사람들이 묘두사에게 음식을 바치며 신봉하는 것을 보자 사악한 생물이라 칭하고 활로 묘두사의 머리를 쏘자 단숨에 절명했다.
"뱀의 몸은 사람들이 착각했겠고, 저 녀석 치유능력도 있었나? 깨어나면 물어봐야겠어. 그나저나 활로 쏘아 죽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자신과 비교해서 그렇지 저 녀석의 웬만한 몬스터 쯤은 가볍게 짓눌러 죽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활은 커녕 총으로 쏴도 안 죽을 녀석이다. 아마 녀석은 웬 미친놈이 다짜고짜 공격하자 휘말리기 싫어서 도망쳤을 거다.
"저 녀석도 생긴 것과 다르게 고생을 많이 했네. 코 고는 소리는 작아서 다행이야."
고르릉
삼색의 코 고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카렌은 혹시나 사람들이 탐색기로 삼색을 찾을까 봐 반투명한 결계를 집에 덮고는 아까 생각했던 고양이 사료와 필요한 물품들을 쇼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