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그러니까... 2006년에 실종되어서 본인이 게이트를 열고 다시 돌아오셨다구요?"
벽 한 편이 통째로 통유리가 설치된 방 안에서 깔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와 카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다니까. 아! 여기선 마법의 문을 게이트라고 부르는구나."
"하아...그 말을 ....아니...아닙니다."
무례한 말투는 이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적응돼서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귀환자'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갑자기 게이트에서 지구로 오는 사람은 드물게 있지만, 이 카렌이라는 남자가 하는 말은 허무맹랑하기 그지없었다.
'하! 본인이 게이트를 열어? 연금술사 따위가?'
연합에 속한 공무원은 눈앞의 남자가 자신을 속이려 하거나, 정신이 살짝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도 귀환자에게 여러 정보를 들어 지구 말고 다른 세상에 대해 아예 모르진 않았다.
그 중에는 남자가 넘어온 세계로 추측되는 곳도 있었다. 벨리알이었나? 그 정보에 따르면 연금술사는 몽땅 사기꾼이다. 정말 소수의 진짜 연금술사도 기껏해야 약초나 다루는 놈들이었다.
"여기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나중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정일님."
"뭐라고?"
"2006년에 거주 불명 되셔서 주민등록이 말소되었지만 남아있는 서류로 확인해 본 결과 정일님이라고 나오네요."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야. 정일이었어. 맞아, 내 지구에서 이름은 정일이었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사실 누가 들어도 허무맹랑한 이야기긴 했다. ?공무원의 불이익 어쩌구 하는 말은 이미 흘려버린 카렌은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이었다.
반가움인가? 지겨움으로 반쯤 동면해버린 심장이 뛰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이게 얼마 만인지...
"그래도 카렌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니 그걸로 바꿔줘. 그리고 지금이 몇 년이지?"
"가능합니다. 2036년입니다. 실종 되신지 30년이 지났어요."
"30년?"
카렌은 다시 눈을 감고 감상에 빠졌다. 이세계에서 160년이 지구에서는 단 3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긴 잠깐 보긴 했지만 서울의 거리는 게이트 때문에 곳곳이 부서지긴 했어도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야. 빨리 넘겨야 겠다.'
?????
계속 남자가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자 공무원은 가져온 서류철을 덮고는 눈앞의 골칫덩어리를 치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처리해야 할 업무도 산처럼 쌓여있었고 귀환자도 가지고 있는 힘과 알고 있는 정보에 따라 급수가 있었는데 이런 미친놈한테는 뽑아낼 것도 없었다.
"여기 측정기에 손 한 번만 올려주시면 마무리 됩니다."
그래도 공무원답게 법적인 절차는 따라야 했으니 마지막으로 측정기를 내밀었다.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안 느껴진단 말이야.'
헌터들과 각성자들을 상대해야 했으니 자신도 D등급의 각성자였다. D등급 이하면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이렇게 30분 넘게 같은 방 안에 있는 한 자신이 느꼈을 거다.
만약 자신보다 등급이 높으면 정확한 측정은 불가능해도 압박감이 느껴져서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일반인이거나 자신의 힘을 완벽히 숨길 수 있는 최상위등급의 능력자거나.
'귀환자가 일반인이라니 특이하네, 지금까지 온 귀환자들은 최소 D등급 이상인데 말이야.'
이세계에서 말도 안 통하는 지구인들이 살아남기는 쉽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실종자들 중에 살아 남아온 자들은 모두 최소한의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아니면 모두 거기서 죽었을 테니까.
'엄청 운이 좋았나 보네. 최초의 무능력 귀환자가 되겠어.'
삐빅
'역시나 아무것도? 응?'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측정기에는 무능력자를 표시하는 0(zero) 표시가 아니자 공무원의 눈이 커졌다.
[D]
"응? 어떻게?"
공무원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측정기와 남자를 번갈아 가며 보았지만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귀엽네, 그래도 마나석을 활용한 기술이 30년간 많이 발전한 모양이야. 몸에 쌓여있는 마나량으로 측정하고 허점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기준은 되겠어.'
마나석을 활용한 최신 측정기였지만 조금이라도 마력이 흐르는 물품은 내 수준에서는 어린애가 해변에서 장난으로 쌓은 모래성이나 다를 바 없었다. 차라리 마력이 아예 없는 기계로만 이루어졌다면 나도 무지했겠지만 말이다.
'너무 높은 등급은 귀찮고... 그렇다고 일반인이라고 하기에는 제약이 많을 테니까, 눈앞의 공무원 수준으로 설정하면 되겠지.'
"D...등급 나오셨네요. 혹시 어떤 기술을 가지고 계시죠?"
공무원은 혼란스러웠던 표정도 잠시 그래도 경력이 짧지 않던 덕에 멘탈을 다잡고 접었던 서류철을 다시 피고는 기록하려 펜을 잡았다. 모든 문서가 디지털화 된 시기지만 법적으로 종이로 만든 서류도 남겨놔야 했다.
"간단한 방어기술을 가지고 있다."
카렌은 말과 동시에 반투명한 종이 크기의 벽을 만들어냈다. D등급이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몰라서 일단 바로 앞에 있는 종이의 크기대로 만들었다.
"진짜...군요. 알겠습니다."
공무원은 측정기를 보고도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과 같은 등급의 힘이 느껴지질 않았는데?
'하아...모르겠다. 절차대로 하자.'
이 일을 상부에 보고할까 생각하던 공무원은 그냥 가이드대로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뭐...월급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절차대로 하면 크게 잘못된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만든 원인 중에는 과로로 공무원의 눈 밑을 검게 물들인 피곤함도 크게 한몫했다.
"귀환자 지원금으로 3000만원 대출 하시겠어요? 무이자로 나중에 일정한 수입금이 생기시면 연합에서 자동으로 수납해 갑니다."
"하지."
"서류를 보니 친척이나 가족관계도 없으신데, 머무실 거주지가 있으신가요?"
머물 곳이라...애초에 게이트에 휘말려 이세계로 가기 전에도 고아에다가 그럭저럭 살았던 자신이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없어."
"그렇다면 연합에서 지원해주는 돌봄 단독주택에서 3개월 무상으로 머무실 수 있습니다. 후에도 월세만 내시면 거주 가능합니다."
"응? 단독주택이라고? 내가 갔다 온 사이에 그렇게 한국에...아니 연합이라 그랬지, 거기가 그렇게 돈이 많아?"
"다만..."
역시나 예상대로 그냥 줄 리가 없었다. 공무원이 살짝 말을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을 흐리고는 계속 이어갔다.
"게이트 출몰 빈도가 잦은 곳이라 조금...아니 많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게이트 사태 이후 전체적인 집값은 내려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초기에 사람이 엄청 죽었으니 빈집이 많아져서 당연히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연합기구와 헌터 협회가 있는 곳, 길드 밀집 지역, 혹은 게이트 빈도가 적은 곳은 전보다 훨씬 올라가 서민들은 이제 꿈도 꿀 수 없었다.
'망할. 또 멱살 잡히겠네.'
정책을 정하는 놈들은 까마득히 높은 윗대가리지만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자신 같은 일선에 있는 공무원은 총알받이였다. 이제 평소대로 욕이...날아올 줄 알았는데 눈앞의 남자의 반응은 공무원의 예상을 좋은 의미로 뛰어넘었다.
"좋아! 아주 좋아! 혹시 뭐 하나 부탁해도 되나?"
카렌은 기쁜 듯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렇게 나라, 아니 연합에서 도와(?)주다니. 처음 보는 연합이라는 놈들에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의 돌덩어리 같던 심장을 이렇게 뛰게 해주다니!
"네..네? 뭐를?"
"사람들이 없는 가장 위험한 곳! 게이트가 가장 자주 출몰하는 곳으로 해줘!"
"???"
역시나 첫인상대로 눈앞의 은발의 남자는 미친놈이 맞았다. 그것도 S급 또라이.
* * *
"정말 괜찮겠어? 지금이라도 바꿔줄까? 내가 이래 봬도 그 정도 힘은 있는데."
"아니 괜찮아, 근데 여긴 왜 따라온 거야?"
눈앞의 집은 정말 맘에 쏙 들었다. 무려 40평짜리 2층짜리 단독주택에 자그마한 정원도 있었다. 그런데 이채린이 여기는 왜 따라온 걸까. 게다가 자신이 공무원과 있던 조사실 밖에서 기다리다가 여기까지 자신의 차로 태워주기도 했다.
"아니...그냥 걱정 돼서. 그 귀환자라며? 게이트 열릴 때 D등급도 많이 열렸으니 거기로 나왔겠지."
사실 N/A등급이긴 하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를 못 느낀 카렌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믿어 주지도 않을 것 같고.
채린은 혹시나 자신도 감지 못한 쉐도우를 카렌이 알아차린 건 아닐까 의심했지만, 측정기에서 D급이 나온 후로는 아예 지워버렸다. 지금껏 측정기가 오류가 난 적은 세계적으로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사과할 것도 있고..."
"응? 사과할 거라니?"
자신과 얼마나 만났다고 벌써 사과라니? 그 정신없는 와중에 서로 말도 별로 안 했는데?
"내가 너 미쳤다고 정신병원 데리고 간다고 한 거 미안해."
"하하하하,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야?"
카렌이 크게 웃자 채린의 얼굴이 빨개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남이 사과하는데 그렇게 웃는 게..."
채린의 말은 어느새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와 있는 손에 의해 멈춰버렸다. 머리 위에서 부드럽게 쓰다듬는 감촉이 기분 나쁘지가 않았다.
카렌은 채린의 머리를 헝클어트리지도 않고 그냥 살짝 부드럽게 위에서 아래로만 쓰다듬었다.
참 귀여웠다. 물론 이상한 감정은 아니다. 정말이다. 몸은 젊어 보여도 자신의 정신연령이 몇 살인데, 그냥 여동생을 쓰다듬는 느낌이다.
"아씨...너 몇 살이야?!"
카렌의 손을 살짝 쳐내며 얼굴이 붉어진 채린은 괜히 머쓱해서 반쯤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다른 헌터들이나 비서인 정현이 보면 경악을 했을 채린의 뜻밖의 모습이었다. 수줍고 당황한 채린이라니?
"잘 몰라."
"자기 나이도 모르는 바보가...아니...너 귀환자구나...미안."
채린은 자신의 입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때가 없었다. 사고로 휘말려 고생만 하다가 힘들게 돌아온 사람에게 이런 무례한 말이라니? 기억을 잃었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너는 몇 살인데?"
"나는 스물 여덟이야. 아씨, 머리 좀...아니다, 에휴."
채린은 어느새 다시 자신의 머리로 온 카렌의 손을 쳐내려고 했지만 방금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생긴 미안함에 얌전한 고양이처럼 쓰다듬어지며 한숨을 쉬곤 대답했다.
"그럼 나도 오늘부터 그렇게 하자."
"응? 나이를 그렇게 정하는 사람이 어딨어?"
"왜? 그렇게 하면 안 돼?"
카렌이 빤히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자 간신히 제 색으로 돌아온 채린의 얼굴이 다시 붉어지며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 생각보다 잘생겼잖아?'
처음 만났을 때는 급박한 상황이었고 여기까지 올 때는 운전하느라 자세히 못 봤는데 지금 보니 귀엽게 잘 생겼다. 무쌍이지만 큰 눈에 적당히 솟은 코, 뭘 바르지 않아도 붉은빛이 도는 입술에 잡티 하나 없는 피부의 얼굴이였다.
"당연히 안 될 것 없지."
"그럼 그렇게 하자. 그리고 원하는 거 있어? 오랜만에 웃어서 내가 기분이 너무 좋아. 내 웃음은 좀 비싸."
'이상한 녀석은 맞는데.. 잘생겨서 미친놈 같지가 않네.'
자신의 웃음은 비싸다는 둥 확실히 정상적인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쪽 세상에서 고생을 많이 하다 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채린은 생각했다.
"아냐, 나 그래도 S급 헌터라 필요한 거 없어."
돈?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명예? S급 헌터 그 자체로도 명예다.
"그래? 기특하네. 그럼 언제라도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기특하다니! 이제 동갑이잖아. 무슨 말투가 할아버지 같아."
실제로는 할아버지는 명함도 못 내밀만큼 나이가 많았지만, 그냥 흐뭇한 미소만 지어지니 어쩌겠나.
"그리고 내가 필요한 게 뭔지 알고 그렇게 말해."
채린이 괜히 툴툴대며 심술궂게 말했지만 카렌은 오히려 아까보다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에 차서 말했다. 물론 그 말을 듣고 난 채린의 눈에는 그냥 미친놈에서 진짜 미친놈으로 격상되었을 뿐이지만.
"그게 무엇이든 들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