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섬이 제대로 상승하기 사작하자 태훈은 이미르에게 다가갔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위에서 기다리는 녀석이 있어요.”
홀든에게서 자신이 과거로 회귀했던 이유를 들었기에 태훈도 이후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신들의 계획은 태훈이 정령섬과 자폭하는 것.
그렇게 마지막 퍼즐을 수거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알포네가 나와 자폭을 하면서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저 위에 1급신이 있다고?”
“이름이 미카엘이라고 했습니다.”
“들은 적 있다. 그런데 넌 그걸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태훈은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럼 넌 한번 회귀했다는 건가?”
“그런 셈이죠. 당신을 아는 조력자란 존재 때문에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녀석은 나서지 않겠다 했거늘.”
이미르는 정보를 다루는 자신의 동료가 직접 나선 것을 탐탁지 않아했다.
“그 녀석 주제에 용을 썼군.”
“미카엘이라는 자는 왜 위에 있는 거죠?”
“그것까진 내가 알 길이 없어. 다만 네가 이 섬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는 게 놈들의 목적이라면 여기서 철수한다.”
“그랬다가 미카엘이라는 자가 이 섬을 없앤다면…….”
“그러면 마데우스의 계획대로 되는 거지. 그것 또한 위에 놈들의 계획과는 머니 그렇게 하진 않을 거다.”
마데우스의 계획과 1급신들의 계획 둘 다 망치는 방법은 태훈이 살아남는 것이긴 했다.
이미르와 태훈은 순간이동을 했다.
마나가 모이던 도중 갑작스레 이미르의 파동이 사라졌다.
“음?!”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안 이미르의 미간이 구겨졌다.
“젠장, 내 힘이 완전히 사라졌어.”
“사라지다뇨? 능력을 못 쓴다는 겁니까?”
“빌어먹게도 난 지금 평범한 인간이다. 이것들이 나를 인간으로 강등시킬 줄이야.”
이미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렇다면 정령왕들을 통해서…….”
하지만 정령왕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르가 평범한 인간이 되는 순간 막대한 마나를 수급할 길이 없어져 소환해제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상은…….”
“군세가 사라졌겠지…….”
지상에서 마데우스군을 상대하던 정령 군대가 사라졌다는 것 또한 큰일이었다.
거기다 좀 전에는 알 수 없는 강한 마나의 파동이 섬 주위에서 느껴졌다.
“섬 주위에 이 기운은 아무래도 미카엘이란 자가 한 짓이겠죠?”
“아아, 아무래도 너의 마법으로 여길 빠져나가는 건 무리일 거다.”
이미르는 모든 게 끝났다는 듯 허탈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거대한 포탄이 된 섬 안에 갇힌 꼴이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태훈이 아니었다.
회귀 전에 자신은 다신 현실로 돌아오지 못할 상황도 각오하고 에포네에게 뒤를 맡겼었다.
하지만 이대로 자신이 죽는다면 신들의 계획이 완성이 될 것.
결국 자신 같은 하위 생명체들은 이 사태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오만한 신들에게 어떤 일을 겪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떻게 돌아왔는데 이대로 죽는단 말인가.’
태훈은 이미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지? 같이 손잡고 나란히 저승으로 가자는 건가.”
“일어나십쇼. 아직 포기할 순 없습니다.”
태훈과 이미르는 지상으로 향했다.
인간이 된 이미르는 그냥 연약한 여자였기에 태훈이 그녀를 도왔다.
지상으로 나오자 까마득한 지표면이 아래로 보였다.
섬은 90도로 상승 중이었기에 제대로 서 있을 공간을 찾기가 힘들었다.
섬은 성층권을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공기가…….’
희박한 공기.
그리고 태훈은 이대로 더 지체했다간 죽는다는 생각에 아무 망설임 없이 뛰었다.
섬의 지면이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지나갔다.
‘가속해야 해.’
태훈은 지상으로 낙하하는 섬의 잔해 중에 탑의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기둥으로 다가가 그것이 손에 닿자 이미르에게 기둥을 꽉 잡으라는 뉘앙스를 보이고는 마법을 시동했다.
“그래비티!”
그러곤 중력 마법을 연신 걸었다.
기둥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졌고 추진력을 얻기 위해 낙하하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바람 마법을 사용했다.
‘최대 가속으로 뚫어보겠어.’
낙하하는 기둥은 거대한 총알이었다.
10배가량 무거워진 중량의 기둥과 낙하하는 속도가 맞물려 거대한 에너지를 가진 물체가 된 것이다.
그러곤 쉴드를 자신과 이미르의 몸에 걸쳤다.
가속도를 줄일 수 있었기에 최대한 몸에 달라붙는 형태였다.
팡-!
엄청난 마찰열로 인해 금세 쉴드는 깨졌지만 다시 생성했다.
마나는 빠르게 닳고 있었고 저 멀리 섬의 끝자락이 보였다.
보이지 않았지만 미카엘이란 자가 친 마나 장벽이 그 끝에 펼쳐져 있을 게 분명했다.
우우우웅-
이번엔 기둥에 오리진을 흘렸다.
검에 오라를 불어넣을 때와 같은 원리였다.
오라를 두른 막대한 탄환이 된 기둥.
앞부분은 마찰열로 인해 붉게 빛나고 있었고 뒤쪽으로는 검기의 최고 경지에 다다른 황금빛 기운이 흩날리고 있었다.
‘의식이…….’
희박한 공기 속에서 연이어 시동어를 외치고 오리진까지 사용하자 체내 산소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귓가로 스치는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에 정신이 멍해졌다.
쾅-!
섬의 끝자락에 도달하는 순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자욱하게 번지는 먼지구름.
기둥과 장벽이 부딪히며 그 파괴력으로 파편과 가루가 만들어졌다.
후웅-
먼지구름을 뚫고 나타난 것은 태훈과 이미르였다.
장벽은 뚫었지만 둘 다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슈와악-
정신을 잃자 컨트롤이 불가능해진 태훈과 이미르의 몸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지면과 점점 가까워지다 수백 미터를 남겨두었을 때 상공에서 나타난 거대한 그림자가 낙하했다.
그러곤 그대로 둘을 낚아채고 급히 방향을 틀었다.
거대한 드래곤 하나가 둘을 움켜쥐고 자리를 이탈하려 하자 그 뒤로 마법구들이 날아들었다.
펑펑펑펑-
드래곤의 궤적에 따라 터지는 마법구들.
드래곤은 아랑곳하지 않고 둘을 데리고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
정령들이 사라지자 마데우스의 군대를 막을 자들이 사라졌다.
파병을 나온 신관과 마법사들은 전력의 대부분이 사라지자 무참히 살육당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있는 힘껏 도망쳐 가장 가까운 엘프의 숲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하늘에서 거대한 섬광이 번쩍였다.
그 빛은 대륙 어디서든 볼 수 있었고 태양만큼이나 눈이 부셨다.
짧은 섬광 후 하늘에는 노란빛과 붉은빛이 향연을 이루었다.
엄청난 파편들이 대륙 곳곳에 쏟아져 내렸다.
치명타는 피했지만 그 부수적인 피해들이 사방에서 발생했다.
작게는 사람만 한 파편부터 해서 큰 것은 집채보다 컸다.
아무런 대비가 없던 모든 국가들은 사건이 터지자 혼비백산했다.
총국을 찾아가 결과를 물어봤지만 총국은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들도 신탁이 내려오길 바랐지만 신으로부터의 응답이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마데우스가 이끄는 군대가 멈춰 있다는 것이었다.
“하, 그놈이 내 계획을 두 번이나…….”
차선책으로 준비했던 대량 멸절 사태마저 실패로 돌아간 마데우스는 실성한 듯 웃었다.
‘그나저나 아깐 그건 뭐였지?’
마데우스는 섬이 하늘로 치솟기 전에 느꼈던 힘의 파동을 감지했다.
한때 1급신이었던 그는 1급신들이 내뿜는 기운을 알고 있었다.
태훈이 원래 차원선으로 돌아올 때 요동쳤던 그 기운을 감지한 것.
‘뭐 다른 놈들도 가만히 있진 않겠지.’
마데우스는 군을 움직이지 않았다.
애당초 멸절 의식을 보호하기 위한 군세였고 이 군세로 살육을 해봐야 자신의 목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이놈을 어떻게 예뻐해 줘야 하나…… 으득.”
마데우스는 이를 갈며 태훈을 떠올렸다.
자신의 모든 계획을 망쳐 버린 녀석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
한편 드래곤이 안착한 곳은 크로이츠 영지.
그곳엔 이미 퇴각한 드래곤들이 모여 있었고 그중엔 먼저 섬에서 내린 레이첼도 있었다.
알이 기절해 있는 태훈과 이미르를 옮겼다.
레이첼이 태훈을 보살피고 알이 이미르를 챙겼다.
먼저 깨어난 것은 태훈.
그는 일어나자마자 알에게 상황을 물었다.
마데우스군이 돔이 펼쳐졌던 경계 부분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안 태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 당장 움직일 목적은 없다는 것인가.”
“그보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
알은 쏟아져 내린 유성비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모두가 죽었을 거야.”
태훈은 자초지종을 알에게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일단 목적은 달성한 거군요?”
“아아, 맞아. 현장에 있던 마법사와 신관들에게 안 된 일이지만 목적은 달성했어. 살아남은 자들은?”
“현재 엘프 숲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곧 조만간 이쪽으로 데리고 올 생각입니다.”
“마데우스군이 언제 움직일지 몰라. 일단 전력이 될 수 있으니 이곳에 잡아둬.”
“그건 그렇고 세네니스에서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전갈이 와 있습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알은 무엇보다 이미르의 일이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이미르는 모든 신을 적으로 돌린 것이다.
“그보다 다른 신들이 있다는 것에는 안 놀라네?”
알에게 신과 관련된 내막을 이야기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뭐 왕자님을 따라다니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으니까요. 하지만 이미르님의 일을 말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대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태훈도 그 이야기에는 동의했다.
일단 태훈은 각국으로 급하게 보낼 서신을 작성했다.
신과 정령을 포함해 지원해 준 마법사과 신관들을 통해 적이 계획한 대량 멸절 계획을 저지하는 데는 성공.
그 여파로 많은 신관과 마법사가 희생당하고 각국에서 일어난 유성비에 의한 사태는 부수적인 피해라는 것.
* * *
홀든은 발사 장면을 기지 밖에서 지켜보았다.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아득히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차를 몰았다.
모텔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공항으로 향한 그는 늦지 않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해 그는 한국이 아닌 제3국을 선택했다.
그가 내린 곳은 다름 아닌 일본.
그는 도쿄를 한번 둘러보곤 다시 당일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한에 발을 내딛으니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사 측은 발사엔 성공했으나 관측에 실패했다고 했으며 일부 보안 문제가 발견되어 조사에…….]
홀든은 생각에 잠겼다.
빙의를 하면서 몸의 주인인 기자의 지식을 알 수 있었다.
조력자가 태훈을 찾기 편하기 위해 허락해 준 능력.
덕분에 자신이 죽고 난 이후의 역사를 대부분 알고 있었다.
초저녁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향한 곳은 광화문.
그는 경복궁을 비롯해 근처의 문화재를 둘러보았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을 때 네온사인과 조명으로 가득한 광화문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한양의 모습과 너무도 달라진 서울의 모습.
‘내가 없어도 잘들 해왔구나.’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자신의 조바심이 무색해졌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보일 때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그는 자신의 동상과 마주섰다.
“원망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걸 세워놓았을 줄이야.”
그는 앉아서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는 그대로 거리를 거닐었다.
시간이 흘러 12시가 되기 몇 분이 남은 시각.
홀든은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남산 둔턱에 다다랐다.
아무 말 없이 서울의 밤거리를 내려다보는 사이 시간은 12시를 가리켰다.
휘청-
잠시 몸을 가누지 못한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듯 그는 고개를 들었다.
“뭐야, 여긴 어디지?”
정신을 차린 남자는 자신의 품을 뒤져 핸드폰을 보더니 굉장히 당황해했다.
그러곤 재빨리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산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