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는 순간까지 태훈은 가슴을 졸였다.
얼굴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항상 마음은 불안했다.
가장 문제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미국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가짜 여권임을 떠나서라도 얼굴과 손에 붕대를 하고 있는 태훈의 차림은 모두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입국심사관으로 향하는 태훈은 달랑 눈만 내놓은 상태.
긴장하고 있는 그에게 홀든은 걱정 말라며 등을 두드렸다.
그러곤 수많은 입국심사대에서도 한 곳을 가리키며 그리로 줄을 서라고 했다.
그러곤 정확하게 오후 3시에 심사를 보라고 말해주었다.
태훈은 줄을 서다가 3시보다 빠르게 심사를 볼 것 같으면 전화를 하는 척 뒷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다 오후 3시가 되는 순간 입국 심사대의 심사관이 바뀌었다.
백인 남성에서 히스패닉계 여성으로.
태훈이 다가가 여권을 내밀자 여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은 가까이 있는 태훈만이 볼 수 있었다.
태훈은 여권과 함께 위조된 진단서를 내밀었다.
심사관은 대충 훑어보더니 붕대를 풀어보라는 식으로 말했다.
태훈이 붕대를 반쯤 풀자 됐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그에게 여권을 내밀었다.
‘이게 끝이라고?’
얼떨떨해하며 여권을 받아 든 태훈은 심사대 바깥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홀든을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태훈은 재빨리 짐을 챙겨 심사대를 빠져나왔다.
“어떻게 한 겁니까?”
“음, 뭐랄까 동질감? 그런 걸 좀 이용했어.”
홀든은 그 여성 심사관이 원래 불체자의 신분이었다고 했다.
“꽤 오래전에 취재차 왔다가 펍에서 알게 된 여성이네. 불체자일 때 설움을 많이 당했는데 아이의 병 치료를 위해 묵묵히 버텼다는군. 그래서 자네도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피부이식 수술을 위해 어떻게든 입국해야 한다고 설득했어.”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인간의 반은 선하다고 하잖나. 물론 부가적인 지출은 좀 있었네.”
둘은 바로 렌트한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도로 한켠에 있는 허름한 모텔.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주유소와 모텔이 붙어 있는 그런 허름한 장소였다.
짐을 풀며 태훈은 창문 밖을 보았다.
저 멀리 거대한 탑 같은 게 보였다.
“혹시 모르니 창문은 전부 가리게.”
“저게 발사대입니까?”
“맞아. 발사일은 이틀 후야. 그때까지 이곳에서 지낼 거고 먹을 것은 내가 밖에서 사다 줌세.”
“변장은 이제 풀어도 되나요? 굉장히 답답하네요.”
“아직은 하고 있게. 아직 관문이 더 남았어.”
홀든이 사온 싸구려 햄버거와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고 있을 때 태훈이 계획을 물었다.
“우린 발사 당일 비행사 한 명과 자네를 바꿔치기 해야 해.”
“그냥 올라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어디에 앉아서 가려고 그러나? 설마 짐칸에 몰래 타고 간다고 하진 않겠지?”
“안 되나요?”
“발사 시 중량이란 게 있어서 성인 한 명 무게 차이라면 금방 들키고 말 거야.”
그러면서 태훈에게 신분증 하나를 주었다.
거기엔 방속국 각인과 함께 카메라맨이라 적혀 있었다.
“자네와 나는 취재차 방문하는 거야. 거기서 내가 비행사 한 명을 따로 불러내 취재를 할 터이니 그사이에 우주복을 입고 몰래 타게.”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텐데요?”
“비행복에 있는 헬멧에 태양광 차단막이 있어. 그걸 내리면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그럼에도 위험한 도박임에는 틀림없었다.
문제는 경비.
다행히 이번 탐사 임무는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상에 있는 관측소들에서도 충분히 관측과 측량이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그렇기에 관심사가 낮은 만큼 경비도 삼엄하지 않을 것이란 게 홀든의 결론.
다만 미국이 조사선을 파견하는 이유는 위성의 수리도 겸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명실상부한 나사의 우주선 발사였기에 긴장감을 늦출 수는 없었다.
홀든은 휴대폰을 꺼내 몇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발사대의 내부에 찍힌 몇몇 장소들이었다.
“이런 사진은 어디서 구한 겁니까?”
“일이 일인지라 자료실을 뒤져보면 구할 수 있었네.”
태훈은 홀든과 함께 그날의 동선과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
발사 당일.
해가 뜨기 전부터 태훈은 마지막 준비를 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야구 모자를 쓴 뒤 그는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얹었다.
그랬더니 얼굴이 가려져 사실상 잘 보이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이었지만 둘은 차를 타고 발사 기지로 향했다.
입구는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고 둘이 탄 차를 보자 세웠다.
[무슨 용무십니까?]
[한국 방송국에서 취재차 왔습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요?]
[저희가 제일 좋은 자리를 맡아야 해서요.]
[신분증 좀 봅시다.]
운전을 하고 있던 홀든이 태훈의 신분증을 같이 넘겨주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직 내부의 직원들이 전부 출근하지 않아 명부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노킹엄 박사님은 출근하셨나요?]
[그분과 아는 사입니까?]
[네, 여기 여러 번 취재를 왔었거든요. 그분에게 확인해 보면 빠를 겁니다.]
병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홀든에게 신분증을 넘겨주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B구역에 주차하십시오. 그리고 여기 서명해 주시구요.]
[감사합니다]
차단봉이 올라가자 홀든이 다시 차를 몰았다.
“노킹엄이 누굽니까?”
“나사의 화성 탐사 프로젝트 중 한 명이지. 예전에 취재했던 기억이 있어.”
“그분과 잘 아는 사입니까?”
“공석에서 한두 번 보았을 걸세. 기자들이야 질리도록 봤을 테니 날 기억하진 못할걸.”
“도박이었군요. 만약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려 했습니까?”
“명부에 우리 이름은 확실히 있네. 다만 얼굴과 신분증을 확인하는 상황은 피해보려고 했어.”
“확인했다면?”
“내가 왜 해도 안 뜬 이 시간에 자넬 데려왔겠나?”
“……그렇군요.”
차를 주차한 둘은 한쪽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의 안쪽 화장실 한 칸을 수리 중으로 표시한 뒤 안쪽에 가방을 넣어두었다.
시간이 되어 우주비행사들의 짤막한 인터뷰와 관계자들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태훈과 홀든은 평범한 기자와 카메라맨으로 변장하여 취재에 응했고 별다른 문제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비행사들의 인터뷰가 끝날 때 홀든이 맨 뒤의 비행사를 불러 세웠다.
그 위치가 마침 아침에 오자마자 들렀던 화장실 앞이었다.
잠시 추가 인터뷰가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 비행사는 5분을 허락해 주었다.
홀든이 시간을 끄는 사이 통로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 순간 홀든이 전기 충격기로 비행사를 기절시켰다.
“서두르게. 3분 남았어.”
“거기 좀 잡아봐요.”
둘은 비행사를 수리 중이라고 되어 있는 화장실로 끌고 가 우주복을 벗겼다.
그리고 꽁꽁 묶고 재갈을 물린 다음 화장실 안에 가두었다.
홀든이 태훈의 우주복을 채워주며 말했다.
“난 말썽이 일어나기 전에 여기서 나갈 걸세. 여기서부터는 자네한테 달렸어.”
“그런데 장군님은 어떻게 돌아갑니까?”
“나? 난 돌아가지 않아.”
“여기 남겠다는 겁니까?”
“그러면 이 몸을 빼앗는 게 되지. 난 원래 죽은 몸이네. 그자 덕분에 잠시 와 있는 것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난 다시 돌아갈 걸세.”
“어디로요?”
“어디긴 저승이지.”
팡팡-
준비가 다 되었다는 뜻으로 태훈의 등을 쳐주며 헬멧을 그에게 넘겼다.
“잘 가게.”
“……고맙습니다.”
“일이 잘 풀리면 저승이든 어디든 다시 만나게 되겠지. 그때까지 잘 지내게.”
홀든은 그 말을 남기고는 재빠르게 화장실을 나섰다.
혼자 남은 태훈은 잠시 헬멧을 만지작거리다가 고쳐 쓰고는 화장실을 나섰다.
그가 우주선에 착석할 때까지도 사람들은 특별히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차광막을 내렸냐는 따른 비행사들의 물음에도 잘 비켜갔다.
그리고 점화가 시작되는 순간 그는 엄청난 압력을 느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네.’
무중력을 느낀 순간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절로 입술이 씰룩거렸다.
[관측 10분 전.]
[메이든, 가서 장비 준비해 줘.]
메이든은 태훈 대신 타야 했을 우주 비행사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셔틀의 짐칸으로 향했다.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품에서 작은 펜던트를 꺼냈다.
홀든의 말에 의하면 조력자가 만들어준 아티팩트였고 그것을 지닌 채로 충격파에 닿으면 발동한다고 했다.
‘그자가 준 걸세. 원래의 차원선으로 돌아갔을 때도 도움이 될 거라 하더군.’
태훈은 포켓에 펜던트를 잘 챙겨놓고 우주 유영복을 입었다.
[메이든, 아직 멀었어?]
[아……. 아……. 조금 기다려.]
[뭐야? 목소리가 왜그래?]
억양이 다른 동료의 목소리를 캐치한 다른 비행사가 물었다.
태훈은 대답하지 않고 재빨리 에어로크를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에어로크 안에서 공기압을 빼는 순간 경보음이 울렸다.
삑-삑-
[뭐야, 메이든. 외부 작업은 허락하지 않았어.]
[미안, 친구들.]
[뭐야, 당신 누구야?]
금세 다른 사람이란 것을 알아챈 그들은 혼비백산했다.
[저 녀석을 빨리 끌어내!]
[젠장, 안에서 잠갔어.]
우왕자왕하는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압이 0을 가리키는 순간 태훈은 에어록을 개방했다.
그는 우주를 두 눈으로 확인하자 형용하지 못할 기분을 느꼈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젠장, 어디지? 어디서부터 오는 거냐.’
충격파가 오는 방향을 알기 위해 태훈은 이리저리 하늘을 살폈다.
태양을 제외하고 가장 강하게 빛나는 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별을 향해 아티팩트를 내밀자 기이한 푸른빛이 돌기 시작했다.
‘이 방향이군.’
태훈은 시간을 보았다.
도달까진 수 분.
그런데 셔틀 쪽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침입자인 태훈을 잡기 위해서였다.
[저 정신 나간 놈은 대체 뭐야, 어째서 안전선도 안 하고 나간 거지?]
그들은 안전선 연결도 없이 우주공간으로 나간 태훈을 미친놈 취급하고 있었다.
태훈의 등 뒤로 다른 비행사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의 손이 태훈의 등에 닿으려는 순간 거대한 울림과 함께 태훈이 사라졌다.
쿵-
[억!]
[뭐……. 뭐야? 방금 충격은?]
[그보다 그놈 어디 갔지? 조금 전까지 내 눈앞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진 침입자가 있던 자리를 보며 멍하니 우주를 떠돌 뿐이었다.
* * *
태훈은 눈을 떴다.
대기권을 돌파할 때 느꼈던 압박감보다도 더 강한 충격이 온몸을 강타했다.
사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잠깐 동안 스쳐 지나가고, 눈을 떴을 땐 다른 풍경이었다.
“이게 한계다.”
눈앞에서는 이미르가 한계라고 말하고 있었다.
잠시 정신을 갈무리하던 태훈은 이내 자신이 원래의 차원으로 되돌아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 돌아온 건가?”
“돌아오다니? 누가 돌아왔다는 건가?”
“이미르 님, 그리고 정령왕들…….”
눈앞에 그리웠던 존재들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돌아온 시점이 정령섬을 수직으로 상승시키려고 하려던 때임을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모르겠군. 어쨌거나 지금은 이게 한계다. 속도를 더 높일 수는 없어.”
“이걸 써보시죠.”
태훈은 손에 들고 있던 펜던트를 이미르에게 내밀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가 내민 것을 받아 든 이미르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게 어디서 난 거냐?”
“말을 하자면 깁니다. 이걸로 가능합니까?”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 이걸 어디서 구한 건가!”
다그치는 이미르의 말에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던 그가 말했다.
“당신의 조력자란 사람이 전해주었습니다.”
“……이걸 그 녀석이? 그런데 왜 이걸 지금에서야 건네주는 거지?”
“더 말할 시간이 없어요. 일단 이 섬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태훈의 다급함에 이미르는 뭔가 떨떠름해하면서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일단 나중에 자초지종을 듣도록 하지.”
이미르가 펜던트를 동력원에 가져다 대자 펜던트는 구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울림과 함께 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곽 잡아라. 전속력으로 올라간다.”
이미르의 외침과 함께 태훈은 또다시 대기권을 뚫는 중력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