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태훈은 하루 종일 광화문을 돌아다녔다.
하루를 꼬박 돌아다녔으나 소득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다시 포장마차를 찾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주를 시키는 일이었다.
‘아, 지친다…….’
벌써 일주일.
한 달짜리 유급 휴가를 쓰고 단서를 찾아 헤맨 지 일주일이 흘렀다.
광화문 일대를 뒤지던 그는 서울 에 있는 박물관이나 영험하다는 장소를 찾아 이 잡듯이 뒤졌다.
탁-
“살다 보면 이래저래 일도 있는겨. 젊은 사람이 아까부터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어.”
주인아주머니가 내려놓은 골뱅이를 한참 멍하니 바라보던 태훈이 잔에 술을 따르려는 찰나.
후다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포장마차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여깄군!”
중년 남자는 태훈을 보고 외쳤다.
취기가 올라 있던 태훈은 의아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남자는 다짜고짜 태훈의 손을 잡아끌었다.
“뭐……. 뭐요?”
“일단 나와!”
“아니, 당신 누구냐니까?”
일면식 없는 남자가 자신을 거칠게 잡아끌자 태훈은 팔을 뺐다.
하지만 중년 남자의 힘은 강했다.
훨씬 젊은 태훈이 붙잡힌 팔을 제대로 뿌리치지 못할 정도.
“이거 놔요!”
“시간 없어!”
실랑이를 본 주위 사람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허, 이거 여기서 왜들 그려! 남의 장사 방해하게!”
보다 못한 주인아주머니가 중재에 나섰다.
그런데 붙잡힌 팔을 떼어놓으려는 주인아주머니까지 중년 남자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우당탕-
세 사람이 몸부림을 치니 포장마차 안의 식탁이 넘어졌다.
다른 손님들은 난장판을 피해 알아서 포장마차 밖으로 나갔다.
“아니, 이 양반이 왜 이래! 남의 가게에서 행패여!”
“어서!”
결국 태훈과 아주머니는 포장마차 밖으로 끌려나왔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포장마차의 한쪽이 움푹 찌그러졌다.
콰과광-
포장마차를 뚫고 들어온 것은 검은색 승용차.
태훈은 가까스로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승용차는 포장마차를 완전히 짓뭉개고 화단을 들이박고 멈추어 섰다.
“와, 뭐야.”
“사고다, 사고!”
삽시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태훈은 멍하니 부서진 승용차를 보았다.
“어서 이리 오게!”
중년 남성은 그를 잡아끌었다.
멍하니 있던 태훈은 그대로 끌려 한적한 골목길까지 끌려갔다.
아무도 보이지 않자 그제야 중년 남성은 그를 놓아주었다.
“위험했군. 자칫하면 죽을 뻔했어.”
“뭡니까, 당신…….”
“음, 내가 누군지 모르겠나?”
태훈은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순간 며칠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지갑 흘렸던 분?”
“음, 그건 기억하나 보군. 하긴 이 얼굴은 알 수가 없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태훈에게 중년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나 홀든일세.”
?
덜컥-
태훈이 사는 원룸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것은 태훈과 중년 남성.
불을 켜자 홀든이라 밝힌 남자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음, 이런 데서 살았나.”
“아, 네…….”
태훈은 그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타인은 절대 알 수 없는 이세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홀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을 알고 있었다.
홀든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설명하겠다며 자리를 옮기자고 했고 태훈은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것.
“이제 설명을 해보시죠.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거죠?”
“자네와의 일전 후 난 죽었지. 그리고 저승에 가서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말하려 했네. 내 나름의 속죄라 생각했지.”
“위에 놈들도 한통속이었을 건데요.”
“음, 나를 도와준 자도 그렇게 말하더군.”
홀든은 자신이 만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하얀 옷을 입은 자에게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태훈이 강제 전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기 위해 왔다는 것을.
“강제 전이?”
“알포네라는 자는 신들의 계획을 망쳐놓기 위해 자폭했어. 그 결과 자네의 영혼은 알포네와 함께 소멸되었지.”
“……그런데 제가 왜 여기 있죠?”
“신들이란 놈들의 계획은 자네가 마데우스를 처치하고 획득한 막대한 포인트를 절대 존재의 마지막 퍼즐로 사용하려고 했어.”
“포인트는 그냥 허구였던 게 아닙니까?”
“아니야. 그것으로 천국에 간다는 것은 허구지만 그 포인트라는 게 절대 존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일종의 에너지 같은 개념이라고 하더군.”
“알 수가 없군요. 그런 포인트를 왜 우리 같은 자들이 모을 수 있는지……. 그냥 신들이란 존재들이 만들면 되는 게…….”
“그건 나도 자세히 묻지 않았네. 어쨌든 자네와 알포네가 영구히 소멸되면서 그들의 계획에도 큰 차질이 생겼지.”
그래서 그들은 시간을 되돌리기로 했다고 했다.
문제는 시간에 관여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큰 부담감.
시간을 되돌린 그들은 다시금 태훈을 정해진 운명대로 죽게 한 뒤 이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할 작정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어. 첫 번째는 자네가 원래 계획대로 죽는 건 먼 훗날의 일이야. 시간을 되돌린 그들은 그 시간대를 붙잡고 있어야 했기에 그건 부담이었지.”
“그래서 좀 전에…….”
“좀 일찍 당기기로 한 거지. 두 번째는 자네가 기억을 온전히 갖고 있는 채 되돌아간 거야. 아무래도 알포네의 영향인 듯해.”
“그럼 이런 데로 와봤자 놈들의 눈을 피하지는 못하겠군요.”
“자네와 나는 좀 달라. 원래 존재하지 않아야 할 존재들을 직접 감시할 수는 없어. 여기서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감시할 수 있지.”
“나와 당신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이 감시자 역할을 한다는 겁니까?”
끄덕.
홀든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훈은 오른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신이 조사를 한다 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게 안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여기에…….”
“나를 도와준 자가 자네가 죽지 않게 해서 데리고 와달라고 했네.”
“그자가 누굽니까?”
“우리가 사는 차원의 신의 조력자라더군.”
“……돌아갈 수 있습니까?”
“돌아갈 수 있네. 다만 쉽지 않아.”
홀든은 원래의 차원선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얼마 정도의 에너지입니까?”
“이 행성이 폭발하면서 내는 에너지 정도?”
“뭐라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해.”
“……여기를 날려 버리자는 겁니까?”
“그건 아니야. 그것도 그자가 준비해 준다고 했어.”
중년 남자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너튜브 영상을 보여주었다.
거기에선 나사가 발표하는 공식 인터뷰가 있었다.
[……거대 항성의 폭발로 인한 충격파가 곧 도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다만 저희의 의견으로 태양에서 내뿜는 에너지와 완충 작용을 하여…….]
그걸 본 태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큰 문제는 없겠네요.”
“저건 지금 시대의 인간들이 착오한 거지. 닥쳐올 충격파는 아마 태양도 밀어낼 정도일 거야.”
“……결국 여기는 파멸입니까?”
“그게 어렵다는 거지. 저걸 이용해서 우리가 돌아가는 거고 잘 성공하면 우리도 무사하고 이곳도 무사할 거야.”
잠시 침묵에 잠긴 태훈.
먼저 입을 다시 연 것은 태훈이었다.
“지난번에 마주쳤을 땐 절 모르는 척하지 않았습니까?”
“지난번? 난 오늘 자네를 처음 봤는데.”
“우린 한번 만난 적이 있어요. 며칠 전에요.”
“내가 이자의 몸에 들어온 것은 그자가 해준 거야. 사실 이 몸도 일종의 빙의라 온전히 쓰고 되돌려 줘야 하네.”
태훈은 홀든을 빤히 바라보았다.
돌아갈 수 있다는 단서를 얻은 것 때문에 그와의 악연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되레 그의 마지막에 악연은 한번 정리가 되었었다.
지금은 이세계를 같이 살았던 자와의 해후에 기쁠 따름이었다.
“……그래서 돌아가는 날은 언제입니까?”
“나도 지시를 받아야 하네. 그러니 당분간 여기서 같이 지내지. 바깥을 돌아다니면 그 녀석들이 우리 위치를 알고 방해할 게 분명해.”
“그런데 왜 날 죽여서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거죠?”
“그럴 땐 기억 제거가 되니까. 그럼 자기들 꼭두각시가 될 거 아닌가.”
“아…….”
태훈은 전생을 떠올렸다.
거금을 주고 산 기억을 잊지 않는 앰플.
‘기억을 잃지 않은 것은 그때 그 앰플의 효과일지도…….’
당분간은 홀든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자와 연락이 되는 건 언제죠?”
“매일 밤 12시네. 일단 서로 연락처를 교환해 두지.”
태훈은 홀든과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휴대폰을 꺼내던 홀든의 주머니에서 그의 신분증을 보았다.
“기자?”
“아아, 그런 모양이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그 말을 마친 홀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난 돌아가야지. 이 몸의 원래 가족도 있고. 뭐 그래봐야 기러기 아빠 정도지만 일상은 지켜야지. 그래야 우리가 가고 나서 이 몸의 주인이 곤란해하지 않을 것 아닌가.”
태훈은 현관을 나서는 홀든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절 도와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전 당신을 방해했는데요.”
“물론 나에게 아직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할 생각이네. 그만큼 내 조국과 후손들이 그 시간대 이후에 겪은 곹통을 생각하면 치가 떨려. 그래도 이곳으로 와서 느낀 점이지만 자네가 한 말도 틀리지 않았어. 뒷일은 후대에게 맡겨야지.”
홀든은 태훈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떠났다.
태훈은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돌아갈 수 있다.’
그 사실 하나가 다운되어 있던 그의 기분을 바꾸어놓았다.
다만 돌아가고 나서의 일도 문제였다.
자세한 것은 이미르나 그녀의 협력자가 지시를 해줄 터였지만 이젠 마데우스뿐만이 아니라 신들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원래의 차원선으로 돌아가면 알포네는 존재하나? 분명 자폭을…….’
태훈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홀든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자신의 안에는 알포네가 있었다.
‘뭐 일단 돌아가면 알게 되겠지.’
태훈은 오랜만에 단잠에 빠질 수 있었다.
?
홀든에게 연락이 온 것은 이틀 후였다.
태훈의 집으로 찾아온 홀든은 그에게 비행기 표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뭐긴, 돌아가는 티켓이지.”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자는 것은 아닐 텐데…….”
비행기 표는 미국행 티켓이었다.
출발일은 3일 후.
홀든은 말 대신 다시 한번 너튜브를 틀어주며 보여주었다.
거기엔 나사에서 이번 항성의 폭발력을 측정하기 위한 조사대를 파견한다고 발표하는 입장문이 있었다.
“이 조사대에 섞여서 가는 거네.”
“우주로 나간다는 겁니까?”
“그래야겠지.”
“저들이 우리를 태워줄 리가 없는데요.”
“그건 나에게 맡기게. 이미 자네 비자도 내가 신청해 놨네.”
그는 태훈에게 여권을 건네주었다.
여권은 태훈의 사진이 붙어 있었지만 이름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아야 하니 좀 변장이 필요해.”
홀든은 가져온 가방을 열었다.
거기엔 온갖 화장품 도구가 들어 있었다.
“이게 다 뭡니까?”
“이 몸의 지인이 영화사에서 일하고 있길래 좀 빌려왔지. 자네 얼굴이 알려지면 놈들이 눈치채니까 변장을 해야지.”
홀든은 태훈의 얼굴을 흉측하게 바꾸어놓았다.
화상 환자처럼 해놓았기에 태훈의 원형 얼굴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이렇게 해서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자네는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가는 거야. 자네 영어는 할 줄 알지?”
“네, 어느 정도는.”
“그럼 됐어. 내가 다 손을 써둘 테니까 걱정 말게.”
“그 몸의 주인이 그 정도 인맥을 가지고 있습니까?”
“뭐 관록 있는 기자다 보니 여기저기 인맥이 있더라고. 난 돌아갈 테니 출발 당일 날 보자고.”
홀든이 돌아간 뒤 태훈은 멍하니 있다가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