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하하, 좀 실례하겠습니다.”
석상 밑에 쭈그려 앉아 있자니 넓은 광화문 거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바삐 퇴근하는 모습과 도시의 네온사인이 번져 보였다.
한참 후에 다시 그의 입이 열렸다.
“……염치없는 줄은 알지만 한번만 도와주십쇼. 전 돌아가고 싶습니다.”
“…….”
“거 매정하신 분이네. 뒤끝은 없으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큭.”
밉살맞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웃던 그의 시야에 빛이 들어왔다.
꽤나 강렬한 빛이었기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며 손으로 빛을 가렸다.
“거기서 뭐 하십니까?”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빛이 가까워졌다.
잠시 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찰복을 입은 두 남자였다.
둘은 태훈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백마 스물둘. 05상황.”
무전기 소리와 함께 남자는 태훈의 신상을 캐묻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데 우산도 없이 석상 밑에 쭈그려 앉아 있었던 것은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우산이 없으세요? 저기 앞에 가면 편의점에서 우산 팔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냥 아는 사람을 봐서 잠깐 있던 것뿐이에요.”
“누구 만나시기로 하셨어요?”
경찰은 끈질겼다.
이럴 땐 참 일 잘하는 공무원들이었다.
“아뇨, 만가기로 한 건 아닌데…….”
“방금 아는 사람 봤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데 경찰은 서로 잠시 쳐다보더니 손전등을 내리고 물었다.
“선생님, 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요?”
태훈은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짚이는 게 없자 그는 당혹해하며 옷 여기저기를 매만졌다.
“어……. 없네요. 음식점에 두고 왔나…….”
“……그럼 핸드폰은요?”
심지어 핸드폰도 챙겨오지 않았다.
애초에 아침에 출근할 때 챙기지 않은 것.
핸드폰 없이 근 20년을 살았으니 잊고 산 지 오래.
태훈이 고개를 흔들자 경찰은 자신과 동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일단 비가 오니까 저희랑 같이 순찰차에 타실까요?”
태훈은 도로에 세워져 있는 경광등이 빛나는 순찰차 뒷좌석에 앉았다.
“선생님, 신원 확인을 해야 하니 주민번호랑 성함 좀 알려주시겠어요?”
“김태훈, 열일곱 살.”
“네?”
“아, 아니…….”
순간 크로이츠로 착각한 그가 나이를 잘못 말하자 경찰들의 눈이 커졌다.
“장난치지 마시구요.”
“아, 저기 그게…….”
당황하니 나이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자의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
“일단 지구대까지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네.”
“백마 스물둘. 거수자 한 명 지구대로 이송한다.”
졸지에 수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그는 지구대로 끌려가게 되었다.
“선생님, 술 드셨어요?”
“아뇨.”
“사시는 곳은요?”
“인천이요.”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태훈은 그저 있는 대로 말해주었다.
다 듣고 난 경찰은 다시 한번 나이를 물었고 태훈은 제대로 된 나이를 말해주었다.
조수석의 경찰은 뭔가를 검색해 보더니 말했다.
“신원은 확인이 되는데 일단 지구대가서 몇 가지 검사 좀 하겠습니다.”
태훈이 횡설수설한 것을 의심한 경찰은 그가 환각제를 복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백마 스물둘, 서로 움직입니다.”
“백마 스물둘, 확인.”
무전기의 대화를 들으며 태훈은 경찰서에 도착했다.
간단한 약물 검사와 조서를 쓰자 자신을 조사하던 형사가 물었다.
“지갑은 분실신고 했고요. 집에 돌아갈 차비는 있으세요?”
있을 리가 없었다.
“걸어가면 됩니다.”
“광화문에서 인천까지 무슨 수로 걸어가요? 비까지 오는데요.”
경찰관은 잠시 태훈을 살펴보더니 자신의 지갑에서 만 원짜리 세 장을 꺼내주었다.
“빌려 드리는 겁니다. 말씀해 주신 핸드폰 번호로 계좌번호 보내놓을게요.”
“…….”
태훈은 말없이 눈앞에 놓인 만 원짜리 세 장을 보았다.
“신원 확실하니까요. 어차피 거주지도 확인됐으니까 가져가세요.”
태훈은 경찰서를 나왔다.
옷은 쫄딱 젖었고 손에는 형사가 들려준 우산이 있었다.
태훈은 택시를 타지 않았다.
대신 다시 광화문으로 걸어와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자신이 인수했던 그 포장마차였다.
그는 곱창 볶음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한참을 말없이 소주를 들이켜던 그는 술이 맛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무(無)맛이라 물처럼 들이켜던 그는 순식간에 한 병을 비웠다.
다시 술 한 병을 꺼내주던 주인아주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안주나 먹으면서 마셔. 그러다 속버리니께.”
그러면서 뒤돌아서는 한마디 더 했다.
“젊은 사람이 너무 기죽지마. 회사가 어디 한 군데여?”
그는 태훈이 실직한 사람인 줄로 알고 있었다.
사지 멀쩡한 사람이 정장을 입고 비에 쫄딱 맞은 채로 들어와서 소주 한 병을 들이켜니 할 법한 오해였다.
그는 술잔을 들던 손을 멈추고 주인을 향해 말했다.
“혹시 허리 아프시지 않아요?”
“나이 먹으면 온몸이 아픈 법이여. 안 아픈 데가 없어.”
“디스크 수술 하지 않으셨어요?”
“워메, 그걸 우째 알았댜?”
주인 아주머니는 신통하다는 듯이 태훈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20년 뒤쯤에나 태훈에게 포장마차를 넘기는 아주머니와 대화를 했기 때문에 알 수 있던 정보였다.
‘한 20년 전쯤이었나? 그때 수술한 허리가 다시 터져서. 이제 그만 접을라고.’
미래의 아주머니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단순한 예지몽일 뿐인가.’
예지몽인지 아니면 진짜 과거로 회귀한 건지 알 길이 없던 그는 답답한 마음에 술잔을 들이켰다.
회귀라면 다시 죽어 저승을 간 다음 정보를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꿈에 예지몽이 결합된 상황이라면 저승을 생각하고 죽었다가 정말로 그걸로 끝일 수 있었다.
그는 빨리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장점이었다.
100억 포인트의 실상을 알고 나선 그 성격이 확고해졌다.
‘이번 휴가 때까지만 돌아갈 방법을 찾자. 그게 안 되면 여기서 살아가야지.’
술이 연거푸 들어가니 슬슬 취기가 올라왔다.
시야가 흐려지고 척추가 느슨해지자 앉아 있는 자세가 흐트러졌다.
전형적인 취객의 자세.
혼자서 소주 세 병을 마신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삼 만 원을 내밀자 주인 아주머니는 만 원을 건네주며 말했다.
“2천 원은 깎아줄게. 젊은 사람이 힘내.”
“……캄사합니담…….”
비틀거리며 포장마차를 나온 그는 정처 없이 인천 방향을 향해 걸었다.
철푸덕-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며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를 보고 멈추어 섰다.
몇몇 사람들이 손을 내밀었지만 태훈은 고개를 흔들며 그들의 손을 뿌리쳤다.
술 냄새가 나며 도움을 거절하자 사람들은 다시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일어서려던 그는 연거푸 다시 넘어졌다.
손바닥과 무릎이 까졌는지 쓰려왔다.
“힐…….”
당연히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히일…….”
그의 입에선 비음이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흘렀고 코에서는 걸쭉한 것이 흘러내렸다.
“……빌어먹을……. 히일!”
퍽-
바닥을 내리친 그는 어깨를 들썩였다.
사람들이 다시 발걸음을 멈추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겨우 스스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픈 곳은 없었다.
이따금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는 기억을 더듬으며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 * *
다음 날 그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휴대폰을 찾으니 배터리는 나가 있는 상태.
충전을 하니 몇 개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중에는 경찰관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계좌번호도 있었다.
‘오늘은 어디부터 알아봐야 하나.’
일정을 고민하는 사이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후배 놈이었다.
“여보세요?”
“선배, 지금 집이에요?”
“어, 왜.”
“지금 퀵 하나 보냈거든요? 그거 잘 갖고 계세요.”
그 순간 태훈의 머릿속으로 과거의 택배가 떠올랐다.
“너 혹시 그거 샘플하고 증거들이냐?”
“선배, 제 머릿속에 들어와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지끈-
그의 머리가 아파왔다.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증거를 널리 퍼뜨려 두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공신력이었다.
“야, 넌 혹시 언론사에 아는 사람 없어?”
“벌써 터뜨리자구요?”
“아니, 음……. 이런 건 공신력이 중요해. 내부고발을 해봤자 기업이랑 싸우면 너가 힘들어져. 언론사에 아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에게 제보해 봐.”
“음, 일단 아는 사람 있는지 찾아볼게요. 그런데 선배는 뭐 하세요?”
“난 이제 일어났어.”
“팔자 좋구만요. 아무튼 퀵 보냇으니까 잘 받아두세요.”
전화를 끊은 태훈은 얼굴에 물칠만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잠시 후 퀵이 도착했고 태훈은 그것을 가지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가 도착한 곳은 광화문.
포장마차는 닫혀 있었고 그는 다시 충무공 석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는 데까진 해볼 겁니다. 그러니까 보고 있으면 도와줘요. 여긴 내가 없어도 되지만 거긴 내가 없으면 안 됩니다.”
태훈은 다시 경찰서로 향했다.
마침 자신에게 돈을 쥐어주었던 형사가 경찰서를 나서고 있었다.
“어? 무슨 일로 다시 오셨어요?”
“돈 갚으러 왔습니다.”
태훈은 돈을 건넸다.
“이건 그냥 계좌이체 해주셔도 되는데.”
“뭐 하나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태훈은 퀵으로 받은 것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조만간 큰 제약 회사에서 내부고발이 있을 겁니다.”
그 말에 형사의 안색이 바뀌었다.
“분명 회사에선 내부고발자를 몰아세울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가지고 있어주세요.”
“이거 보고 자체적으로 조사해도 되겠습니까?”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그 내부고발자를 끝까지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태훈은 그 형사가 심성이 고운 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차비를 하라며 돈을 쥐여주는 사람의 심성이 나쁠 리 없었으니까.
“ 그 사람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문자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럼.”
태훈은 경찰서를 나왔다.
그리고 광화문을 걷는 사이 커다란 전광판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어젯밤 나사에서 초신성 폭발을 관측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수많은 천문학자들은 기대감을 안고 자료를 공유하는 등 분주한 모습입니다.”
뚜벅뚜벅.
턱-
태훈은 반대편에서 오던 사람과 어깨를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
상대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태훈을 보자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때 태훈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지갑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집어주며 노인에게 건넸다.
“이거 떨어뜨리셨네요.”
“…….혹시 우리 구면인가요?”
“네? 아닌 것 같은데요.”
태훈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뒤돌아섰다.
노인은 뭔가 개운치 않은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다시 갈 길을 걷기 시작했다.
?
허블망원경
나사가 운용하는 우주의 전자 망원경.
과학자들은 이 망원경을 통해 거대한 섬광을 관측했다.
빛의 특성상 그것은 꽤 오래전에 발생한 머나먼 천체의 폭발로 예측했다.
하지만 발생하는 온갖 빛의 구성을 분석하던 중 그들은 그것이 아주 최근의 일임을 알아챘다.
과학자들은 지구상에 끔찍한 감마선과 중성자가 관통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충격파는 곧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시간을 빨리 알아내야 합니다.”
과학자들은 건물을 모두 봉쇄한 채 극비리에 자신들이 본 것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