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마데우스님. 이 기운은…….”
“그렇군. 드디어 그 녀석이 왔어.”
정령섬 쪽에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기운이 흘러나오자 마데우스는 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절반이 봉인을 풀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집사 가면도 그것을 느꼈다.
그런데 정령섬이 다기 기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늘로 향하기 시작하자 집사 가면은 당황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음, 글쎄, 내 뜻을 모르진 않을 텐데. 그새 마음이 바뀐 건가. 동생이여.”
마데우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자신의 반쪽이 봉인을 풀었다는 것은 좋았으나 자신의 편이 아닌 것 같자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길길이 날뛰기는커녕 헛웃음을 쳤다.
“하긴 그 긴 세월 동안 심경의 변화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지.”
“어……. 어떻게 합니까, 마데우스님. 저러다간…….”
마데우스는 대답 대신 날아올랐다.
정령섬으로 날아가던 찰나 한 무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앞으로는 한 발자국도 보내지 않겠다.”
“도마뱀들인가.”
수많은 드래곤들이 마데우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뒤로는 물의 정령왕이 있었다.
레이첼을 지상에 내려주고 마데우스가 정령섬을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드래곤들을 전부 데리고 온 것.
‘이자만 막는다면 지상은 언제든 수습할 수 있다.’
물의 정령왕과 드래곤들은 벌떼 같이 마데우스에게 달려들었다.
마데우스에게 있어 드래곤은 성가신 벌 같은 존재였다.
잡으려 하면 쉽사리 잡히지 않고 이따금 해오는 공격은 매서웠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귀찮은 것들. 제대로 맞기만 하면 존재조차 사라질 녀석들인데.’
드래곤들도 이 점을 아는지 절대로 마데우스이 정면으로 나서지 않았다.
교차하며 교란하며 허점을 찌르는 공격.
물의 정령왕은 물로 증기를 만들어 마데우스의 시야를 방해했다.
“에잇, 귀찮은 것들!”
마데우스가 손을 휘드르며 힘을 방출하자 먼거리에 있던 드래곤 무리 한가운데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퍼벙펑~!
지평선을 따라 일어나는 폭발에 드래곤들은 우후죽순 지상으로 추락했다.
한순간 틈이 보이자 마데우스는 쏜살같이 틈을 통해 섬으로 향했다.
물의 정령왕이 굵은 물 기둥을 그에게 뻗었으나 닿지 못했다.
탓-
수직 상승하는 정령섬의 꽁무니에 올라탄 마데우스.
그 순간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여어, 무임 승차는 안 되지.”
이미르였다.
낙하 속도와 함께 더불어 마나를 두른 이미르고 전신전력으로 부딪혀 왔다.
쾅-
그대로 이미르와 함께 다시 낙하하는 마데우스의 입에서 비음이 흘러나왔다.
“큭!”
총알 같이 지면으로 낙하하는 와중에도 이미르의 공세가 이어졌다.
마데우스가 방어하는 사이 둘은 지면과 충돌했다.
먼지가 일고 크레이터가 파였다.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데우스가 말했다.
“무슨 짓을 했길래 내 동생이 봉인에서 풀려났지? 거기다 왜 네놈들을 돕는 거냐.”
“글세, 형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지. 어렸을 때 좀 잘해주지 그랬어.”
“후후, 네놈들이 무슨 꾀를 부렸는지는 모르지만 운석을 막을 순 없어.”
“글쎄, 그건 네 생각이고. 네놈 동생은 막을 생각인 모양이야.”
“크크, 어디 두고 보자고.”
이상하게 여유를 부리는 마데우스를 향해 이미르가 달려들었다.
?
핵을 다루던 알포네는 자신을 돕던 정령왕들에게 정령섬을 떠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정령왕들은 그가 못 미덥다는 듯 쉽게 떠나지 않았다.
“굳이 떠나지 않겠다면 말리지 않겠어. 이 섬과 같이 사라져도 내가 알 바 아니지.”
“누군가 당신을 감시해야 하오.”
“내가 남지. 그대들은 돌아가 이미르님을 돕게.”
땅의 정령왕이 불과 바람의 정령왕에게 떠나라 권했다.
“그래도 되겠소?”
“나야 이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잖나. 애초에 이 정령섬의 토대를 만든 것도 선대 신과 나였네. 뒷일은 걱정 말고 떠나게.”
“그대만 믿겠소.”
“건투를 비오.”
두 정령왕이 떠나자 지하에는 땅의 정령왕과 알포네만이 남았다.
“너 혼자서 날 감시하겠다는 건가? 자신감이 넘치는군.”
“당신이 마음먹고 도망치려 한다면 막을 순 없겠지. 하지만 최선을 다해 막아설 것이오.”
“구태여 남는 이유는 뭐야?”
“이 섬과는 동시에 태어났소.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을 뿐.”
“호오, 꽤나 감상적이군.”
정령섬은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속도가 붙을수록 충돌 시간은 가까워졌다.
우지끈-
나무 같은 것들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며 아래로 추락했다.
잠시 후 정령섬은 완전히 진공 상태에 놓여 있었다.
우주의 고요함.
소리없이 전진하는 정령섬은 점점 빨라졌다.
저 멀리 다가오는 운석이 점차 커졌다.
마데우스는 핵에서 손을 땠다.
그는 전령으로 땅의 정령왕에게 말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알아서 벌어질 것이다.’
‘그 몸으로 이제 뭘 할 거지?’
‘너에게 말할 이유가 있나?’
‘훗, 그렇지. 가버려라.’
알포네는 지하에서 나와 지상에 올라섰다.
위로는 지평선 너머로 운석이 보였고 아래로는 푸른 행성이 보였다.
그대로 몸을 낙하에 맡기려는 순간.
그는 멈춰 섰다.
그리곤 운석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알포네는 미간을 찡그렸다.
운석말고도 또 다른 존재가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건가.’
알포네는 고민했다.
저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의 자신은 승산이 없었다.
본래라면 숨어서 지내며 원래의 힘을 회복할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 후엔 마데우스를 설득해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을 내쫓은 놈들을 골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도망친다면 정령섬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궁금하니 일단은 만나봐야겠군.’
알포네는 아래로 뛰어내리려던 것을 바꿔 운석을 향해 뛰어 올랐다.
정령섬의 맨 꼭대기에 올라선 그는 전령으로 말을 걸었다.
[거긴 있는 건 누구인가?]
[그 목소리는 알포네인가. 어떻게 봉인을 풀었지?]
[궁금하면 직접 모습을 드러내.]
이윽고 운석을 발밑에 둔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서로가 보일리 없는 거리인데도 둘은 서로를 확인했다.
[미카엘인가. 네가 여깄다는 건 무슨 의미지?]
[아무 의미도 없어. 지켜보고 있자니 계획이 차질이 생길 것 같아서 거들어주려고 말이지.]
[조작해서 계획을 완성시키려는 건 너희가 반대하던 일 아닌가?]
[지금까지 조작은 없었어. 다만 다 된 밥을 쏟을 수야 없지 않나.]
알포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입을 열었다.
[그렇군. 마데우스의 이 일마저 정해져 있던 일이었나.]
[본래 파괴의 나무로 끝날 일이었지. 헌데 여기까지 오는 건 예외였어. 네 분신의 변수였지.]
미카엘은 태훈의 행동이 의외였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분신이 주인을 닮아 꽤나 말썽을 피웠나 봐?]
[이것까지 방해하게 놔둘 순 없지. 계획이 완성 직전이거든.]
[벌써 그렇게 됐나. 그렇다면 나도 계획을 바꿔야겠는걸.]
애당초 알포네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데우스처럼 시스템의 붕괴였다.
지금 미카엘의 말에 따르자면 그 시스템의 완성이 코앞이고 그것을 위해 마데우스의 계획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게 네놈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둘 순 없겠네.]
[끝까지 방해할 셈인가.]
그 말에 알포네는 웃었다.
무엇을 더 말하랴는 미소였다.
[지금의 너는 나에게 상대가 안 돼. 개죽음일 뿐이야.]
[그 개죽음을 당해도 네놈들 계획에는 못 어울려 주겠다 이거지.]
알포네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급격한 마나의 변동에 미카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한때 모두의 선망이었던 존재가 그런 선택을 하다니.]
[어떤 선택을 하던 네 녀석 얼굴이 뭉게지는 게 더 즐거울 것 같아서.]
[미련한 것.]
미카엘이 운석을 박차고 정령섬을 햐애 돌진했다.
이에 알포네도 정령섬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우주 공간에서 격돌한 둘은 무중력이 무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포네의 몸이 더욱 밝게 빛났다.
흑발의 청년인 미카엘이 다시 그를 회유하려 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라. 지금 생각을 바꾸고 협력한다면 네 녀석은 다시 불러들이마.]
[훗, 꺼져.]
알포네는 미카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뭘 하려는지 아는 듯 미카엘은 도망치려했지만 태양처럼 빛나기 시작하는 알포네를 따돌릴 순 없었다.
[큭, 이놈.]
[재밌는걸. 1급신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멍청한 놈! 그걸 몰라서 묻나!]
[몰라. 그러니 알려주던가. 크큭.]
알포네는 미카엘을 붙잡고는 뒤에서 감싸 안았다.
현역 1급신인 미카엘이 알포네의 아귀힘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러다간 네 분신도 죽어!]
[아마 그 녀석도 같은 생각일걸.]
[이 멍청…….]
번쩍-
우주 공간에서 거대한 섬광이 퍼져 나갔다.
섬광은 운석과 정령섬을 집어 삼켰고 먼지로 사라졌다.
* * *
“……뭐 해, 자?”
“으음?”
“설마 자는 거야? 일어나라고!”
느닷없는 고함 소리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는 아는 얼굴이 자신을 한심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얼마나 마셨다고 벌써 조는 거야?”
“어어?”
태훈은 잠시 멍해 있었다.
눈앞에는 친한 동생이 있었다.
자살로 죽었다던 동생이었고 무척이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퇴근 후 자주오던 선술집의 풍경.
익숙했지만 이것마저 꽤나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뭐야, 내가 왜 여기 있어?”
“왜긴 술 먹으러 왔으니까 여기 있지.”
벌떡-
태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과 함께 가게 밖으로 달려 나갔다.
빵빵-
웅성웅성-
수많은 인파와 도로 위의 차들.
기억 한편 속에 있던 오래된 풍경들이었다.
뒤에서 동생이 태훈의 어깨를 붙잡았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취했어?”
“남영아, 내가 지금 꿈꾸고 있냐?”
“이 양반이 진짜 취했나. 왜 그래? 겨우 한 병 마셨잖아.”
태훈은 남영이라 부른 동생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넌 죽었잖아? 나도 죽었는데?”
“어어? 이 양반이 진짜?”
남영은 태훈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섰다.
“왜 그래? 어디 아퍼?”
“아니, 잠깐. 좀 혼란스러워.”
태훈은 비틀거렸다.
갑자기 바뀐 상황에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고 현기증이 밀려왔다.
“어허, 이 형 많이 취했구만. 오늘은 그만 마시자.”
남영은 태훈의 짐을 들고는 직접 계산대로 가서 계산했다.
그러고는 어안이 벙벙해 있는 태훈을 잡아 이끌고는 선술집을 나왔다.
“집은 제대로 갈 수 있겠수?”
“남영아, 지금 진짜 꿈 아니지?”
“네네, 꿈 아닙니다.”
“그래?”
태훈은 잠시 말없이 그가 이끄는 대로 걸었다.
“우리 왜 술 마시고 있었지?”
“내가 오늘 퇴근 후에 한잔하자고 했지. 말해 줄 것도 있고 해서.”
태훈은 걷는 길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풍경.
그리고 기분 좋아 보이는 동기이자 한 살 아래의 동생.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말해줄 거라는 게 혹시……. 신약 관련된거니?”
“어? 어떻게 알았어? 난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
“맞아? 그거 백혈병 관련된 거?”
“형 우리 팀에 나 말고 아는 사람있어?”
놀라는 남영의 모습에 태훈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아픔이 밀려오자 그는 확신했다.
원래 살던 지구로 돌아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