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고오오오-
멈춰 있던 정령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돔이 사라졌기에 아무런 제지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정령섬이 움직이는데도 상대측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태훈은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군. 마데우스는 이쪽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건가?’
마데우스 정도라면 이쪽의 의도는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정령섬으로 운석을 막는다는 것을 몰라도 정령섬을 가만히 둔다는 것도 의아했다.
‘우리가 계획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가?’
태훈은 정령섬을 둘러보았다.
크기는 적어도 남한의 크기.
하늘에 떠 있는 운석을 보니 어른 주먹만 했다.
‘저게 얼마나 크고 빠른지 알 길이 없으니…….’
충돌은 질량과 속도에 비례했다.
‘그렇다면 저게 정령섬을 관통할 수 있으려나.’
공룡을 멸종시킨 운석의 크기는 10킬로미터로 알고 있었다.
그 운석은 지표를 수십 킬로미터를 뚫고 들어갔고 정령섬의 두께는 고작 수 킬로미터.
운석이 운 좋게 정령섬을 관통하다하더라도 지면에 닿을 때쯤엔 운동 에너지가 많이 줄어들 터였다.
관건은 떨어지고 있는 운석의 크기와 질량, 속도였다.
“물어볼 게 있는데요. 저승으로 가는 문이 열릴 정도의 피해는 어느 정도입니까?”
“최소한 지상의 생명체 절반 이상이 당해야 할 거야.”
“그 말은 저 운석이 지상의 생명체 절반을 멸절시킬 정도라는 거겠군요.”
태훈은 계산을 해보았다.
인간만이 아닌 몬스터나 짐승을 포함하여 절반의 생명체가 죽을 상황.
최소한 대륙 면적의 30퍼센트에서 40퍼센트가 피해를 입어야 했다.
공룡을 멸종은 운석 충돌 당시보다 충돌 이후에 벌어진 기후 변화가 원인이었다.
‘충돌 여파만으로 문을 열 정도의 피해라면 공룡 시대 때 떨어진 운석과는 비교가 안 될 거야. 그렇다면…….’
태훈은 이미르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 정령섬으로는 운석을 막기 힘듭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문을 열 정도의 대량 멸절 사태를 불러올 정도라면 이 정령섬으로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정령섬이 전진하는데도 마데우스가 반응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두 사람 전부 타개책을 찾아보려 했으나 마땅한 방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르님의 힘은 사용할 수 없습니까?”
“내 힘은 지금 4급신 정도야. 네 전력과 비슷할걸.”
“남은 알약은 없습니까?”
“아까 준 게 마지막이야.”
태훈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해보았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이미르에게 물었다.
“이 정령섬을 움직이고 있는 힘이 뭐죠?”
“핵이다. 탑 아래에 거대한 핵이있지.”
“그렇다는 건 원동력으로 움직인다는 거군요.”
태훈은 정령섬을 운석을 향해 돌진시키자고 제의했다.
정령섬의 두께로는 간단히 뚫려 버릴 수 있으니 맞받아치자는 의견이었다.
“확실히 그냥 받아내는 것보단 나을 것 같군.”
“가능합니까?”
“핵을 조금 손보면 될 것 같군.”
“핵으로 가시죠.”
태훈은 레이첼을 데리고 탑 아래로 향했다.
회전식 돌계단을 내려오니 붉은빛과 푸른빛을 순차적으로 내뿜는 핵이 있었다.
“이게 구동핵이다. 이 정령섬을 위로 상승하게 하면 되는 건가?”
“먼저 정령섬을 90도로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운석을 향해 날아가게 해야 합니다.”
“음, 시도해 보지.”
이미르가 구동핵에 손을 대자 핵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정령섬은 전진을 멈추고 전진하던 방향에 있던 부분이 하늘로 쳐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점점 기울어지자 섬의 지면에 있던 물체들이 흘러내리기 시작.
섬의 지면을 구른뒤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내부에 있던 레이첼과 태훈도 지탱할 만한 기둥을 잡았다.
점점 기울어지던 각도가 멈추었고 그 각도는 30도 정도였다.
“왜 멈추는 겁니까?”
“지금 내 힘으론 무리야. 녀석들의 도움도 받아야겠군.”
이미르는 정령왕들을 불러들였다.
땅 위에서 싸우고 있던 정령왕들이 급하게 달려왔다.
상황을 전해 들은 정령왕들도 핵에 손을 대었다.
섬은 다시 기울기 시작했으나 이내 다시 멈췄다.
약 80도 정도.
정령왕들과 이미르의 표정을 살펴 보니 이것이 최대치인 듯싶었다.
‘각도도 조금 부족하고 무엇보다 속도가 너무 느려.’
동력이 부족했다.
드래곤들을 불러들이려 했지만 그들은 지하로 내려오기엔 너무 컸다.
거기다 정령왕이 빠진 지상의 싸움이 급격하게 밀리며 일부 키메라들이 정령섬을 향해 솟아오르기도 했다.
이미르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한계다.”
“부족합니다. 적어도 속도만이라도 더 올려야 해요.”
운석의 낙하 속도는 분명 빠를게 분명했다.
“안 돼. 이게 한계다. 이젠 운에 맡길 수밖에 없어.”
“운이요? 지금 그게 말입니까?”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지금 상황에서 뭘 더 할 수 있지?”
“이대로 가면 최악은 분명 벌어질 겁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나 낙담하던 순간 태훈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신이 한 명 더 있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미안하지만 타 차원에 힘을 빌려줄 신은 없다. 내가 아는 신도 없고.”
“신이라면 가까이 있습니다.”
“뭐?”
영문을 모르겠다는 이미르를 향해 태훈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잠시 그를 보던 이미르의 미간이 좁혀졌다.
“농담이지?”
“지금 상황에 농담하겠습니까? 애당초 1급신이었잖습니까.”
“그놈이 협력할 것 같아? 그리고 위에 놈들이 만든 봉인이야. 그걸 어떻게 풀고 놈을 끌어낼 거지?”
“제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당신의 남은 힘을 저에게 전부 주십시오.”
태훈은 알약을 과도하게 섭취해 신의 힘이 들어왔을 때를 기억해 냈다.
“지금 내가 힘을 빼면 섬은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올 거다.”
“시간이 없어요. 몇 시간 안 남았습니다.”
태훈은 서두르라는 투로 말했다.
잠시 고민하던 이미르는 태훈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 * *
태훈이 눈을 떴을 때 그는 다른 장소에 있었다.
수많은 흰색 큐브.
언젠가 보았던 광경이었다.
그는 잠시 큐브 사이를 휘졌고 다니다가 이내 한 큐브 앞에 멈추어 섰다.
큐브에 손을 대자 그는 아무런 방해 없이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여어, 다시 볼 줄은 꿈에도 몰랐네.”
태훈을 발견한 알포네는 웃었다.
“긴급한 일이다. 도와줘.”
“나에게 도와달라? 우리 관계에 대해 조금 오해를 하고 있나 본데.”
“넌 나에게 마데우스와 마주치지 말라 했어. 그 말인즉슨 넌 마데우스와 뜻이 다르다는 거 아닌가?”
“확실히 오해하고 있네. 난 마데우스의 의견에 찬성해. 다만 그 방법에 대해 생각이 조금 바뀐 것뿐이야.”
“그렇다면 충분해.”
태훈은 상황을 설명했다.
모든 것을 다 들은 알포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힘을 보태서 운석을 막아달라는 거야?”
“맞아. 대량 멸절을 막는 일이야.”
“……미안하지만 난 봉인된 몸이야. 그냥 방을 오고 나가는 것과는 격이 달라.”
“네가 가진 힘만 빌려줄 수 없나?”
“신의 힘을 물건 빌려줄 듯 줄 수 있다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방법이 전혀 없나?”
“방법이라…….”
알포네는 고심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그 방법이 뭐야?”
“내가 직접 나서는 거지.”
“조금 전에 여길 나가는 건 불가능 하다며?”
“넌 여기 두 번이나 그냥 들어왔어. 거기다 한 번은 그냥 나갔지. 기억은 하나?”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각이 이끄는 대로 들어왔고 방해는 없었다.
“이 봉인은 특수한 마나 파장에 맞춰져 있어. 다른 마나의 파장에는 간섭을 하지 않지.”
“그래서?”
“내 분신이기도 한 너와 내가 바뀌는 거야. 알맹이만.”
그때 태훈은 얀의 황제를 떠올렸다.
“육체전이 같은건가?”
“뭐 비슷하지.”
“그렇다는 건 내 몸을 네가 차지한다는 건가?”
“그것뿐만이 아냐. 넌 나 대신 이 봉인에 남아 있어야 해.”
“…….”
태훈은 잠시 침묵했다.
대신 봉인이 된 채로 육체로 넘겨주는 일.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왜 그러지? 고민되나?”
“날 속이는 걸 수도 있으니까.”
“믿고 안 믿고는 네 선택이야. 난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아.”
딱히 방법이 없었다.
손을 벌리는 것은 자신 쪽이었고 그냥 이대로 돌아가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약속할 수 있겠어? 운석을 막아주겠다고.”
“운석을 막아주겠다고 약속하지.”
“한 가지 더 약속해야 해. 마데우스와는 손을 잡지 않겠다고.”
“……너 내가 일을 끝내놓고 안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는구나?”
“나라도 안 돌아올 테니까.”
“그런데도 넌 거래를 하겠다는 거야?”
“달리 방법이 없어. 네가 가지 않으면 적어도 이 세계는 끝나.”
“……뭐가 널 이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네.”
알포네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결심은 선 거야? 시간 좀 줄까?”
“운석을 막아주는 것. 마데우스와는 결탁하지 않겠다는 것. 이 두 가지만 약속한다면 지금 바로 바꿔줄 수 있어.”
“내가 안 돌아오면 넌 여기 언제까지 있을지 몰라.”
“그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핫, 대책이 없는 녀석인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좋아, 약속할게.”
알포네가 손을 내밀자 태훈은 그 손을 마주잡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알포네는 태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안심하라고. 나도 온전히 1급신 힘은 내지 못하지만 밖에 있는 녀석들이 도와준다면 네 계획은 틀림없이 먹힐 거다.”
“……약속 꼭 지켜라.”
태훈은 그 말을 하고 뒤로 돌아보았다.
이미 그 자리에 알포네는 없었다.
?
슈악!
급격한 마나의 차오름을 느끼며 알포네는 눈을 떴다.
눈앞에는 한 여자가 자신을 향해 미간을 좁히고 서 있었다.
“네가 이미르인가?”
“그렇다. 그럼 너는 알포네군.”
“아아,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꽤나 급박하다며?”
“그게 너의 원래 말투인가? 그 녀석 얼굴로 그런 말투는 쓰지 말아주겠어?”
“뭐 노력해 보지. 그런데 이건 뭐지?”
이미르는 손목에 달린 팔찌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언령으로 만든 족쇄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문제아를 불러올 거라 생각한건가?”
“흠, 일종의 추적 장치 같은 건가? 하위 신이 만든 장비를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거야?”
“너도 온전한 1급은 아닐거다. 안 그래?”
“후훗. 귀엽네.”
알포네는 이미르의 옆에있던 레이첼을 보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레이첼은 멀뚱멀뚱 자신의 남편이었던 남자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 여자가 그 녀석의 아내인가?”
“그렇다.”
“음, 아이를 가졌군. 그게 그 녀석이 모든 걸 건 이유인가?”
잠시 레이첼을 멀뚱멀뚱 쳐다보던 이미르가 말했다.
“이 여자를 지상으로 옮겨. 여기 두었다간 먼지가 될 뿐이야.”
“네 힘으로 운석을 못 막나?”
“네 말대로 내 힘은 완벽하지 않아. 너희 계획에 힘을 빌려줄 뿐이다.”
이미르가 눈짓하자 물의 정령왕이 레이첼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자……. 잠깐만…….”
레이첼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물의 정령왕과 레이첼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하에 남은 것은 이미르와 세 명의 정령왕.
그리고 태훈의 몸을 가진 알포네 뿐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허튼짓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이미 그 이야기는 질리게 듣고 왔으니까 빨리 시작하자고.”
알포네가 핵에 손을 올리자 이내 핵이 급속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정령섬은 90도 직각이 되었고 조금씩 속도가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