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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138화 (138/150)

138화

집사 가면의 검이 드래곤의 목덜미에 파고들기 전에 태훈의 검이 막아섰다.

둘의 검이 공중에서 불꽃을 튀길 때 정신을 차린 드래곤의 꼬리가 집사를 덮쳤다.

쾅-

꼬리를 얻어맞은 집사 가면이 바닥에 나동그라지자 다른 드래곤의 브레스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콰쾅-

자욱이 피어오르는 먼지 구름 속에서 태연히 걸어 나오는 집사 가면은 너덜너덜 해진 자신의 상의를 집어 던졌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애먹일 줄은 몰랐는걸.”

“용케 여기까지 몰래 왔지만 너무 안일했어. 아무런 준비도 안 했을 것 같았나.”

“이런, 내 말을 잘못 이해했군. 애먹는다고는 했지만 불가능이란 말은 안 했는데.”

“혼자서 우리를 전부 상대하겠다는 건가?”

드래곤이 둘.

거기에 그와 동급에 가까운 자신까지 상대하겠다는 집사 가면의 허세에 태훈은 코웃음을 쳤다.

다만 자신의 뒤에는 홀몸이 아닌 레이첼이 있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마데우스가 이 타이밍에 날 잡으러 보낸 녀석이야. 쉽게 볼 녀석은 아니군.’

집사 가면은 검을 들지 않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우리와 함께할 생각이 없나. 우리의 목적을 이루고 나면 너의 바람 정도는 쉽게 이루어줄 수 있다.”

“내 바람? 내 바람이 뭔지 아는가?”

“우매한 나로서는 그분의 반쪽이자 분신이기도 한 그대의 바람은 모른다. 부디 알려주겠는가?”

말투에서는 적의보단 정중함이 느껴졌다.

진심으로 묻고 있다는 느낌이 충분했다.

“내 바람은 이곳에서 비극이 일어나는 걸 막고 모두가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다.”

“비참한 현실이 주어진 내일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다면 믿어주겠나?”

“모두가 죽는 미래가 어떻게 나은 미래지?”

“비좁고 한계가 있는 육체를 벗어나 한정적인 운명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는 것이지. 너도 본래 그런 세상이 있는 곳을 원하지 않았나?”

가면이 말하는 것은 천국이었다.

그러나 천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위 신들이 완벽한 존재를 만들기 위한 재료 수급용으로 만들어놓은 감언이설.

“나도 신이란 놈들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놓고 싶진 않아.”

“음, 결국 그래봐야 인간의 그릇인가. 편협한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군. 아까워.”

집사 가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레이첼은 대화를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태훈과 가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용서하시게. 난 어떻게든 우리의 비원을 실행해야겠으니.”

“뭘 새삼스레.”

두 드래곤이 다시 집사 가면에게 달려들었다.

그 사이 태훈은 레이첼을 데리고 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현장을 벗어나는 것을 본 물의 지니가 물로 된 몸체를 가진 유니콘을 생성해 주었다.

“고맙다.”

유니콘 위로 오른 태훈은 레이첼을 뒤에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중앙탑을 벗어나 물의 영역으로 접근했다.

주위의 풍경이 푸른빛으로 바뀌고 한눈에 봐도 물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풍경이 나타났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거대한 호수.

“여기서 내리라는 거냐?”

유니콘이 움직이지 않자 둘은 유니콘에서 내렸다.

호수 위로 걸어간 유니콘의 형상이 무너지며 호수와 융합.

잠시 뒤 호숫가 갈라지며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내려가자 동굴이 나타났다.

동굴에 들어서자 갈라졌던 호수는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동굴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동굴 안은 넓고 쾌적했으며 공기도 청정했다.

태훈은 앉기 편한 바위를 찾아 레이첼을 앉혔다.

“여기라면 안전하겠어. 설마 호수 밑에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하겠지.”

“정말 괜찮나요? 상황이 꽤나 위험한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라서 말이야. 일단 믿고 기다려 보자고.”

호수 밑의 동굴인지 공기가 차가웠다.

태훈은 자신의 옷을 벗어 레이첼의 배 위에 덮어주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아무도 찾지 않는 곳으로 갈까?”

“갑자기 왜요? 공국은 어떻게 하구요?”

“공국은 엘프들에게 줄 생각이야. 일단은 세레니스에게서 받은 영토니 양해를 구해야겠지만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척박한 땅이니까.”

“그래도 다른 분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하려고요.”

사실 태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얀 제국이었다.

황제의 정체를 안 이상 이미르가 무슨 조치는 취하겠지만 시일은 제법 걸릴 것이었다.

“당분간만 그러자는 거지. 아이가 나오고 몇 년 동안만.”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레이첼은 웃으며 태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알아요, 쉴 틈이 없었죠. 일이 끝나면 푹 쉬자구요.”

둘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오그리아와의 전쟁 때 레이첼이 세레니스에서 지내면서 있었던 일을 경청하는 것이었다.

‘그래, 멀리서 행복을 찾을 필요는 없지. 이게 행복인 것을.’

잠시나마 싸움을 잊고 행복에 젖어 있을 때 육중한 울림이 동굴 안에 퍼졌다.

태훈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고 울림은 몇 차례 계속되었다.

그리고 큰 울림이 한번 울리자 입구 쪽에 있던 물의 장막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후끈거리며 밀려들어 왔다.

태훈이 나가 보니 호수였던 것은 사라졌고 지면 아래에 있던 동굴은 훤히 지상으로 드러나 있었다.

주변에 그을린 자국이 수두룩한 것으로 보아 호숫가 한순간에 증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령왕이었던 자와 집사 가면이 동굴 쪽을 향해 서 있었다.

앰플로 각성한 불의 정령왕에게 물의 지니가 당한 듯 보였고 드래곤들도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놈들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

레이첼에게는 동굴 안쪽에서 대기하라고 말해놓았다.

그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이미르가 떠나기 전 혹시 몰라 그에게 건네주었던 알약이 손에 잡혔다.

“결국 끝까지 가보자는 건가.”

“말했잖나. 우리의 비원을 이루겠다고.”

“그래? 그럼 나도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겠어.”

태훈은 알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곤 적들에게 중지와 검지를 보이고는 까딱였다.

“와라. 여기서 모든 걸 끝내자.”

* * *

이미르가 땅으로 내려앉자 키메라들이 달려들었다.

단 한 번의 번쩍임과 키메라들이 먼지로 사라졌고 그 너머로 금발의 소년이 보였다.

“여, 네놈이 마데우스냐?”

“그러는 너는 이곳의 신이구나.”

“남의 세계에서 꽤나 질펀하게 놀고 있네. 진작 불러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미르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살기가 어려 있었다.

마데우스도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은 실로 천진난만한 웃음이었다.

“그렇군. 초대장을 보냈으면 응해줬으려나?”

“그럴지도 모르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미르가 둘러보니 공터에 있는 마법 회로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기다리는 마나는 오지 않을 거야. 내 부하들이 모든 길목을 막았거든.”

“그거 애석한걸? 곧 있으면 완성인데.”

“그만 포기하는 게 어때? 얌전히 묶여서 저승으로 가라고.”

“저승으로 가긴 하겠지만 묶여서 가진 않아.”

먼저 움직인 것은 이미르였다.

둘의 형체는 보이지도 않은 채 격돌했다.

한번 격돌할 때마다 충격파가 바위와 나무를 분쇄했다.

한 명은 힘이 봉인된 1급신.

또 다른 한 명은 제약을 받는 3급신.

두 신의 격돌은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째서 힘을 쓰지 않지?”

“위에 계신 놈들 신경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말이야.”

“너도 고생이군.”

둘은 무기도 없었다.

그저 주먹다짐과 발길질이었지만 파급력은 엄청났다.

‘이 자식, 어째서 급소를 노리지 않는 거지.’

이미르는 마데우스가 급소를 노리지 않고 기회만 엿보는 듯하자 주의를 기울였다.

무슨 기회를 엿보는지 몰랐지만 마데우스가 거리를 좁혀올 때마다 거리를 두었다.

“왜 그러지? 꽤나 몸을 사리네?”

“여자 몸에 함부로 손을 대려 하다니. 꽤나 밝히는데?”

마데우스의 실력이 어디까지 인지 모르는 상황이라 이미르는 신을 조금 더 끌어냈다.

그럴 때마다 마데우스는 거기에 맞춰 힘을 끌어 올렸다.

‘젠장, 여기서 더 힘을 내면 그 녀석이 감당이 안 될 텐데.’

저승에서 자신의 뒤를 봐주는 동기에게 부담이 갈 수 있었기에 힘을 자제하던 그녀는 허점을 찾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어느 정도에서 더 힘을 올리지 않자 이번에는 마데우스 쪽에서 힘을 더 개방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는 이미르의 몸에 생체기기 생기기 시작했다.

‘쳇, 아무리 전직 1급신이라지만 봉인된 채 쫓겨난 거 아니었나.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거지.’

수세에 몰리던 이미르의 손이 마데우스의 손에 잡혔다.

아차하며 손을 빼내려 했지만 삽시간에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빛의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재빨리 떨어져 손을 회복하려는 사이 마데우스는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마데우스는 회로의 마나가 비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차!”

“고맙군. 찰나였지만 이렇게 많은 마나가 모일 줄이야.”

번쩍-

공터에 새겨진 마법회로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미르가 재빨리 상응하는 규모의 다른 마법을 시전했지만 이미르가 다시 그것을 상쇄했다.

“아직 네놈 반쪽을 되찾지 못했을 텐데!”

“어차피 이건 저승의 문을 여는 것에 불과해. 저승에서 2차전을 하자고.”

“미친놈. 제 발로 적진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이냐? 거긴 위에 놈들이 득실거린다고.”

“하핫, 내 걱정을 해주다니 감동인걸.”

마법회로의 빛이 푸른빛에서 붉은빛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하늘로 빛의 기둥이 쏘아져 올라갔다.

그 뒤마법회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쏘아진 빛이 닿는 순간 돔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미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제기랄.”

푸른 하늘엔 정령섬이 떠 있었고 그보다 더 멀리 주먹만 한 돌덩이가 떠 있었다.

“앞으로 반나절 후면 이곳에 떨어진다. 저건 신인 네놈도 막을 수 없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아도 돼. 망할 놈아.”

이미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티어는 10클래스 마법이었고 그 급의 마법은 신의 영역이었다.

마데우스가 자신의 신체를 재료로 쓰지 않은 것은 후에 있을 1급신들과의 싸움에도 대비하는 의미였다.

거기에 이미르의 신체 일부를 재료로 씀으로써 그녀가 신체 회복에 힘을 쓰게 만들어 혹여나 있을 방해를 막기 위함이기도 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 진정한 해방을 보여줄게.”

“이렇게 된 이상 그 녀석은 죽어도 못 넘겨준다.”

그 말을 끝으로 이미르의 모습은 사라졌다.

더 이상 볼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정령섬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반나절 동안 녀석을 지켜야 한다.’

운석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십중팔구 대륙의 생명체 중 대부분이 사멸하고 영혼들이 대거 저승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

그 공간의 뒤틀림 규모가 커 저승으로 가는 입구가 눈에 보일 정도로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미르가 정령섬으로 퇴각했지만 마데우스는 뒤를 쫓지 않았다.

그는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 * *

태훈은 알약을 먹은 뒤 둘과 호각으로 싸우고 있었다.

동굴을 보호하면서 싸우기 때문에 그는 큰 힘을 낼 수 없었다.

상대도 온전한 상태로 태훈을 사로잡기 위해 최대한 절제하는 듯했다.

그러다 거대한 붉은 기둥을 발견했다.

잠시 후 나타난 바위 덩어리를 보고 그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설마 이미르가 진 건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이미르의 모습에 태훈이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면목 없군.”

“그게 답니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사이 적들도 이미르를 보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곤 자기들끼리 뭔가를 이야기 하는 듯하더니 이내 정령섬에서 뛰어내렸다.

적들이 사라지자 태훈이 이미르에게 다가가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이쪽은 죽기 살기로 안 잡히려고 노력하고 있었다고요!”

“너무 열 내지 마. 내가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 마지막 보루는 있어.”

“그게 뭡니까? 저걸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겁니까?”

태훈은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이미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최후의 대비책으로 준비한 게 있지.”

“그게 대체 뭡니까?”

“지금 자네가 밟고 서 있잖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 거대한 걸 끌고 왔겠어?”

이미르의 말에 태훈은 자신도 모르게 잡고 있던 그녀의 멱살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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