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태훈은 책상 앞에 앉아 눈앞에 놓인 물건을 바라보았다.
목걸이와 자그마한 약병,
홀든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었다.
그의 사체는 마법으로 소각했다.
매장을 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무 곳에나 묻을 수 없다는 생각에 화장을 택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얀 제국의 기사들에게는 적이 도주했다고 설명했다.
그 직후 얀 제국의 기사단과 병력들이 몰려와 수색을 하는 통에 시끄러워졌지만 태훈은 말리지 않았다.
지금 문밖에도 기사단 1개 병력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홀든은 눈을 감으면서 자신에게 이 물건을 쥐여주었다.
‘이걸 쥐어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이 물건을 준 자가 이번 일의 배후인가.’
그는 자신과 결전을 치루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게 분명했다.
태훈은 위병소로 향했다.
전에 엘프들의 소란으로 인해 잡았던 도둑의 소지품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없다고?”
“네, 이미 치우고 없습니다.”
도둑의 사체는 이미 없었다.
물품들도 모두 처분했다는 말에 장부를 보니 누군가가 물건을 수거해 가고 없었다.
“명부에 사인한 이 사람은 누굽니까?”
“음, 글쎄요. 제가 사인을 받은 건 아니라서. 아마 위병소에 근무하는 관리 중 하나겠지요.”
태훈은 명부의 적힌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위병소를 관리하는 자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그런 인물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가짜 이름을 적고 물건을 처분했다고?’
상대는 말단 좀도둑이 아니었다.
국빈 자격으로 와 있는 일행의 물건을 훔친 인물을 신원 확인이 안 된 자에게 처리를 맡기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명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는 아카데미로 향해 파케에 양해를 구해 공방을 하나 빌렸다.
마법 회로를 새길 때나 쓰는 도구에 달려 있는 돋보기.
그것으로 목걸이를 살피자 수많은 문양들이 보였다.
그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목걸이에는 최상급 마나석이 연결되어 있었고 거기서 동력을 얻은 마법 회로는 수도의 결계를 무효화 하고 있었다.
‘대략 목걸이로부터 반경 2미터인가. 이 정도면 허술한 장비로 만들기는 힘들어.’
마나석에 직접 세공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세공을 하면서 마나석이 깎여 나가는 것은 낭비였고 좁쌀만 한 크기로 회로를 새겨 넣는 것은 상당한 장비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목걸이는 비교적 새것이었다.
찬찬히 살펴보던 그는 목걸이의 목줄이 희귀한 몬스터의 가죽임을 알아채고 상회들이 있는 거리로 나갔다.
그중 가죽둘이 걸려 있는 상회를 찾아 발길을 돌렸다.
“이 가죽을 취급하는가?”
“어디 보자……. 붉은 가고일의 가죽이구만요. 저희도 취급은 합니다만 예약을 하셔야 합니다.”
“최근에 그걸 사간 사람이 있나?”
“그건 왜 물으슈?”
상회 주인은 넌지시 흘겨보며 말했다.
기사를 대동하여 들어오길래 호ㅗ구 귀족 하나가 가죽 장비 하나를 마련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호위하고 있는 기사가 황궁의 기사고 분위기가 살벌한 것을 알고는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수도에서 이 가죽을 취급하는 곳은 여기뿐인가?”
“몇 군데 더 있겠지만 구하기 워낙 어려워서 구하려면 물건 수배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수배를 관리하는 곳이 어딘가.”
“모험가 길드죠. 이건 용병들이 구해오는 것이니까요,”
태훈은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그곳에서 붉은 가고일 가죽을 매입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니 주인이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 물건이 여기서 만든 것이 맞는가?”
“아티팩트로군요. 저희가 만든 것이 맞습니다.”
“이걸 주문한 자가 누군지 말하게.”
“그건 좀…….”
주인은 뭔가 꺼리는 듯 말을 아끼는 듯했다.
“나는 크로이츠 공국의 공왕이다. 저들은 나를 수행하는 황궁의 기사고. 조사에 협조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있었으니 속히 말하게. 아니면 나와 같이 황궁으로 갈 텐가?”
태훈이 윽박지르듯 말하자 주인은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그보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환불을 해드리겠습니다.”
“환불?”
“마음에 들지 않으셔서 찾아오신 것 아닙니까? 그 물건은 일전에 황궁에서 주문해 가신 것입니다만.”
“……그런가?”
뭔가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주인은 황실에서 주문한 목걸이라 기억하고 있으며 자신은 목걸이를 만들기만 했지 마법 회로 같은것은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황실의 누군가가 목걸이를 구입한 뒤 직접 세공을 했단 말이 되는군.’
여기까지는 기존의 의심과 일맥상통했다.
“누가 찾아갔는지 알 수 있나?”
“잠시만요, 장부가……. 웬달 경이라고 되어 있군요.”
“헤이만 웬달?”
주인의 말에 답한 것은 태훈이 아닌 그의 뒤에 있던 얀 제국의 기사였다.
태훈이 어찌 된 일인지 대답하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 기사는 웬달이 근위 기사라고 대답했다.
“근위 기사?”
사건의 내막을 모르는 기사는 어리둥절해하며 대답했다.
“네, 황제 폐하를 모시는 근위 기사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이름이 왜…….”
“자네는 알 것 없네. 자네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거야.”
기사가 돌아가서 자신의 상관에게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입단속을 시켰다.
‘황제의 호위가 목걸이를 가져가서 결계를 무시하는 아티팩트로 만들었다는 건가.’
그렇다는 건 배후에 황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황제가 뭐 때문에 보석을 노리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밤 알 수 있겠군.’
태훈은 한 가지 더 수를 써두었다.
그는 보석화 되기 직전의 열매를 가지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려놓은 상태.
태훈이 생각하기로 상대는 열매를 노리고 있지만 그것은 보석화 전의 열매라 생각한 것이다.
본래 간밤에 홀든이 아닌 다른 자가 찾아올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열매를 노리던 자는 홀든과 연결된 것.
그 말은 황제 혹은 황실의 누군가가 마데우스와 연결된 자라는 뜻이었다.
어느 정도 가설이 완성되자 태훈은 황제를 찾아갔다.
“오늘은 무슨 일인가?”
“간밤에 사건이 있었습니다.”
“보고 들었네. 내 나라에 와서 고초를 겪는군. 할 말이 없네.”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열매를 훔친 자와 간밤에 저를 덮친 자. 모두 황제께서 보낸 자들입니까?”
그러자 황제 주위에 있던 자들이 웅성거렸다.
대놓고 ‘네가 범인이냐’라고 물은 것과 진배없었다.
태훈은 돌려 말하기 싫었다.
이미 중요한 사람 하나가 죽은 마당에 일을 꾸민 자를 빨리 색출해 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자 황제 옆에 있던 귀족이 대답했다.
“공왕, 말이 지나치시군. 아무리 우여곡절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감히 폐하께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심증과 어느 정도 물증은 갖추었소. 그리고 나는 황제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나 3자는 빠지시오.”
“이……. 이런 무례한 자를 보았나!”
귀족은 얼굴이 벌게졌다.
다른 자들도 태훈의 태도를 나무랐지만 황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폐하, 저 무례한 자를 당장 내치십시오. 어느 안전이라고…….”
“모두 나가 있도록.”
“네? 하오나…….”
“그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사람들은 마지못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홀에 남은 것은 태훈과 황제.
그리고 황제를 보필하는 근위 대장뿐이었다.
셋만 남게 되자 황제가 입을 열었다.
“다 알고 온 것 같군.”
“그 말은 긍정으로 받아들이죠. 홀든과는 무슨 관계입니까?”
“그자가 먼저 찾아와 손을 벌린 거네. 보아하니 그 사내는 실패했나 보군.”
“당신은 마데우스와 한패입니까?”
“아니. 그자와는 일면식도 없지. 하지만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해.”
어느새 황제의 표정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온화한 미소가 아닌 모든 것을 발밑에 두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마데우스는 모르지만 상부상조하는 관계라. 언제입니까? 결탁한 것이.”
“결탁까진 아니야. 일단 내 입장에선 그쪽을 이용하는 거니까. 알게 된 건 장벽이 생기기 전이었지.”
황제는 장벽이 생기기 전 마데우스의 사자가 찾아왔다고 했다.
얀 제국은 건들지 않겠다는 것.
대신 태훈을 잡아서 넘겨달라는 것이었다.
“그자의 꿍꿍이는 잘 알 텐데요.”
“음, 그것도 대화를 나누었어. 천국이란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군. 그래서 자신이 그것을 부수고 부조리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하더라고. 그 말에 코웃음 쳤지.”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나대로 얻고 싶은 게 있었어. 그것뿐이야.”
“그 얻고 싶다는 것이 혹시 영생입니까?”
그 말에 황제는 잠시 멈칫거렸지만 더욱 입꼬리가 올라갔다.
“감이 좋은 사내로군.”
“그자가 협조하면 영생을 준다고 했습니까? 그자의 바람이 이루어지면 모두가 죽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자네 때문에 계획이 틀어져서 차선책을 택했다는군. 그 방법은 모두가 아닌 일부만 희생해도 된다는 거야.”
“미련한……. 열매는 어째서 노리는 거지?”
태훈은 반말로 바꾸었다.
상대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엘프의 열매는 영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정보가 있어. 먼 옛날 그 정보를 알고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지. 그런데 눈앞에 나타났으니 기회를 잡아야지.”
“도서관의 책을 본 것인가?”
“무슨 소리. 그 책을 쓴 게 바로 나인데. 오래 될수록 기억은 가물가물해지니 적어둔 거야.”
그 말에 태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책은 어림잡아 100년 이상 된 서적이란 결론을 내렸던 터였다.
황제는 지금 자신이 100년을 넘게 살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뭘 그리 어리둥절한 표정인가. 내 말대로 난 오랜 세월을 살았어.”
“당신 설마…….”
“아, 엘프는 아니야 오해는 하지 말고.”
“그럼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그렇게 오래 살 수가 있는 거지?”
황제는 대답 대신 웃어 보였다.
“어쨌거나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온전한 열매. 그게 있다면 마데우스라는 자와는 만날 필요도 없지.”
“열매를 달라는 말인가?”
“그걸 넘긴다면 공국에 대한 무한한 원조를 약속하마.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닌가.”
분명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문제는 온전한 열매는 없다는 것.
엘프의 열매는 오직 지도자만이 행방을 알고 있었다.
“유감이지만 나에게 열매는 없어.”
“흠, 그런가. 나도 소싯적 엘프의 수장에게만 비전이 전해진다고 들은 것 같군. 날 속인 건가.”
“그렇게 됐군.”
“그렇다면 엘프에게 직접 물어야겠군. 자네에게는 더 볼일이 없으니 돌아가게.”
“어떻게 할 생각이지?”
“엘프가 말로 설득될 것 같지 않으니 자그마하게 힘의 차이를 보여줄 참이네.”
“싸움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군대를 이용하나. 장벽 너머에는 아직 적이 존재하는데.”
태훈은 황제를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에 근위 기사 대장이 껴들었다.
“처리할까요?”
“아니,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황제는 근위 대장을 만류했다.
“그 마데우스라는 자는 어째서 너를 노리는 거지? 듣기로 그는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아닌가.”
“글쎄, 그거야 나도 모르지.”
“거짓말을 하는군. 나 정도 나이가 되면 느낌으로도 거짓말을 구분할 수 있다.”
“대체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보기와는 다르게 나이가 많아.”
태훈은 손에 마나를 집중했다.
아티팩트 덕분에 마나를 다루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나 보군. 뭐 상관없어. 근위 대장. 적당히 손봐주게. 물어볼게 많거든.”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태훈도 움직였다.
그 순간 근위 대장이 그의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빠르군.’
근위 기사 대장은 무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무식하게 큰 투 핸드 소드였지만 마치 단검 다루듯이 휘둘렀다.
몇 번 검을 주고받은 태훈은 그가 상당한 실력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근위 대장이면 나라에서 제일가는 실력자겠지. 그런데 상당한걸’
검술 실력만 봐선 홀든이나 자신보다 위였다.
상대는 오리진만을 사용하는데도 상대하기가 벅찼다.
거기다 급소를 피해서 공격하는 것으로 보아 봐주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황제가 적당히 하라고 했다고 진짜 적당히 하는 거냐?’
태훈은 실소를 머금으며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