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강줄기를 발견했을 때 둘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벌리고 뛸 듯이 좋아했다.
거기다 천운인지 자그마한 나무배도 자갈밭에 걸쳐져 있었다.
“운이 따라주네요. 이걸 타면 하구까지 금방이겠어요.”
“노가 없으니 일단 강변을 따라서 이동하지.”
둘은 근처에서 막대기를 주워 들고 배에 올랐다.
강변을 따라 조심스레 나아가던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연기는 강변에서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군인일 수 있었기에 둘은 배를 멈추고 숨을 죽였다.
조심히 상황을 지켜보던 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닐곱 정도 되는 무리는 아무리 봐도 일반인이었다.
모습을 드러내자 모여 있던 사람들도 놀라며 그들을 경계했다.
“어디서 오는 사람들이요?”
“우리는 타국에서 왔습니다.”
“타국? 장벽 밖에서 왔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구원이라도 받은 듯 활짝 웃으며 둘에게 다가왔다.
“연합군 소속이오?”
“그렇습니다.”
“어디로 들어온 거요? 장벽으로 막혀 있었을 텐데.”
“장비를 이용해서 넘어왔습니다.”
“우, 우리도 같이 데려가시오. 정보를 제공하든 뭐든 하리다.”
사람들은 둘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애원했다.
둘은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설명했다.
장벽을 넘어 들어오긴 했으나 일행과 떨어져 낙오가 됐다는 것.
장벽을 넘을 수가 없어 강의 하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설명했다.
사람들은 한껏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려간다 해도 의미없소. 우리는 해안가의 마을에서 출발해서 올라가는 중이오.”
“해안가도 막혀 있단 말입니까?”
“수평선 대신 시커먼 장벽이 막아서고 있소. 해변을 따라 움직여 봤지만…….”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젓자 둘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야단났군. 전혀 길이 없는 건가.”
“혹시 사람들이 돌로 변한 것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십니까?”
헨델이 묻자 사람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렇군. 외부에서 들어와서 그걸 못 봤군.”
“그거?”
“하늘에 떠다니는 괴물이오. 괴물이 빛을 쏘는 순간 노출된 사람들은 돌이 되어버렸지.”
“괴…… 괴물?”
“그럼 여러분들은 어째서 멀쩡한 겁니까?”
당황해하는 헨델과 달리 그리브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집요하게 캐물었다.
“우린 어부요.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돌아오던 중에 마을 사람들이 돌로 변하는 걸 목격했지.”
“흐음.”
“멀찍이서 그걸 보고 바로 배를 돌려 도망친 거요.”
그리브는 하관을 어루만졌다.
자신이 아는 선에서 그런 몬스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후론 가는 마을마다 돌로 변한 사람들이 있더군.”
“저희도 봤습니다. 병사들이 돌로 변한 사람들에게 뭔가를 하는 것도 봤구요.”
“그래서 당신들은 어떻게 할 거요? 본국으로 돌아갈 길이 없다면 우리랑 같이 갈 거요?”
“어디로 가십니까?”
“내 친척이 사는 마을에 탄광이 있소. 꽤나 깊은 곳이고 안에는 광부들이 휴게소로 쓰던 공간이 있지. 어릴 때 봐둔 곳인데 그곳으로 가려고 하오.”
사람들은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잠잠해질 때까지 숨어 지낼 요량이었다.
헨델과 그리브는 고민했다.
바다까지 막혀 있다면 도저히 가망이 없었다.
둘은 사람들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당분간 따라다니며 상화을 보고 탈출구를 찾자는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지나왔던 길을 따라 다시 거슬러 갔다.
마을이 보이면 식량과 필요한 물품을 챙겼고 이틀 후 그들은 산 언저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꽤 높은 곳까지 올라갔음에도 장벽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우리가 넘어왔을 때보다 더 자라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 것 같군. 대체 어디까지 자랄 생각인지.”
“이보게들, 빨리 들어오게.”
사람들은 횃불을 밝히고 탄광 안으로 들어갔다.
친척을 따라 어릴 적에 와봤다고 하던 남자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사람들을 인솔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자 널찍한 공터가 나타났다.
“공기가 나쁘군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니까요. 여기라면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대를 정해 입구에서 망을 보기로 합시다.”
헨델과 그리브를 포함해 인원은 9명.
헨델은 더 아래쪽으로 깊이 나 있는 길을 보며 물었다.
“아래쪽으로 더 길이 나 있는 겁니까?”
“그렇겠죠.”
“다른 출구는 없구요?”
“이 주위의 산은 토대가 약해서 깊이 파지 않았을 테니 다른 길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해가 지자 순번이 된 헨델과 그리브는 광산 입구로 향했다.
봄이 되었지만 산 중턱이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많이 추웠다.
서로 붙어 앉아 모포를 뒤집어쓰고 앉은 둘은 멍하니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언제 돌아가게 될까요?”
“우리를 찾으러 올 것 같지는 않으니 저 장벽을 넘을 방법을 찾아야겠지.”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방법?”
“텔레포트요.”
텔레포트.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마법으로 장애물이 있어도 좌표를 알면 가능했다.
“하지만 우린 마나가 안 되지 않나. 가장 가까운 거리라고 해도 텔레포트에 필요한 마나는 5클래스. 그것도 최소 3명이 있어야 한다고.”
“그건 마나석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습니까?”
“설마 마나석을 갖고 있나?”
그리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부족한 것은 마나석을 이용하면 되었다.
“아니요, 마나석은 없습니다.”
“그럼 불가능하잖는가.”
“그 병사 녀석들이 갖고 있던 병. 그리브님의 말대로라면 마나가 담겨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걸 빼앗자고?”
“정확하게는 훔친다는 표현이 맞겠죠.”
“무슨 수로? 설마 완력으로 빼앗자는 것은 아니겠지?”
헨델은 병사들의 뒤를 쫓자고 말했다.
사람들에게서 마나를 갈취한 병사들을 쫓으면 그것들이 모이는 곳을 알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게 말처럼 쉬울까? 분명히 경계가 삼엄할 텐데.”
“장벽 때문에 안쪽에 적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 못 할 겁니다.”
그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문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저는 혼자라도 할 겁니다.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사람을 제물로 뭘 하는지도 궁금하구요.”
“호기심 때문에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어.”
“애초에 저희 목적은 정찰이었잖습니까. 전 각오하고 기구에 탔습니다.”
“으음…….”
한참을 고민하던 그리브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밝자 그들은 일행에게 떠나겠다고 말했다.
“뭐 애초에 정찰을 하러 왔다 하니 말리진 않겠지만…….”
“행여 잡히더라도 이곳은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뭐 그래준다면야…….”
사람들은 얼마간의 식량을 내어주며 그들을 배웅했다.
둘은 아직 석상이 남아 있는 마을을 찾아 움직였다.
석상이 남아 있는 마을을 찾아낸 그들은 비어 있는 집에서 병사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곧 병사들이 나타나 마나를 갈취하고 이동하자 멀찍이 그들을 따라갔다.
야영을 할 땐 적들보다 늦게 잠들고 일찍 일어나며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마법사인 그들의 체력으로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이틀 뒤.
수레가 멈춘 곳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터였다.
사방에 오그리아군 병사들이 천막을 치고 있었다.
“연병장치고는 너무 넓은데요?”
“원래 숲이었는데 벌목한 것 같은데.”
그리브의 말대로 곳곳에 나무 밑둥이 남아 있었다.
전초기지 개념이 아닐까 생각하던 찰나 수레가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한 헨델이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수레가 모여 있습니다.”
“그 옆에 있는 건 뭐지?”
“똑같은 게 군데군데 있군요.”
돌무더기 같은 것들이 공터 곳곳에 놓여 있었다.
병사들은 수레에 실려 있던 병을 그 돌무더기 안에 집어넣고 있었다.
‘창고? 아니 그러기엔 그냥 돌무더기 같은데.’
그리브는 헨델을 데리고 사람이 없는 쪽 돌무더기로 다가갔다.
돌무더기 안은 비어 있었다.
‘뭐지? 정말 그냥 창고 개념으로 쌓아놓은 건가?’
“그, 그리브님. 이리 와보십시오.”
헨델의 부름에 그리브가 다가가니 돌무더기 한쪽 벽에 온갖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수많은 마법진이 얽혀 있는 마법회로를 본 둘은 입을 떡하니 벌렸다.
한눈에 봐도 어설픈 자가 그린 마법회로가 아니었다.
일부만 잠깐 해석을 해도 머리가 아파왔다.
“생전 처음 보는 마법회로입니다.”
“2겹…… 아니, 3겹 이상의 마법회로다. 이런 마법회로가 존재할 줄이야.”
“그 마나들은 이걸 가동시키는 데 쓰는걸까요?”
“그렇겠지. 자네 이게 뭔지 알겠나?”
“글쎄요, 좀 더 살펴봐야겠는데요.”
하지만 그럴 새가 없었다.
그들은 공터에 엎드려 있었지만 언제 병사들이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 나무가 있는 곳까지 움직이자고.”
둘은 기어서 숲이 있는 곳까지 돌아갔다.
“돌무더기 하나에 그 정도의 마법회로면…… 돌무더기가 총 몇 개지?”
“눈에 보이는 것만 열 개가 넘어요.”
“대체 뭘 하려고 이 정도나…….”
주위를 살피던 그리브의 눈에 야트막한 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로 가봅시다. 저기면 공터가 한눈에 들어올 것 같소.”
둘은 언덕으로 향했다.
그리고 언덕에 올라 공터를 내려다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래에 있을 땐 몰랐지만 돌무더기 말고도 그것들을 잇는 마법회로가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공터 가득한 크기에 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수도에 있는 대마법 결계보다도 복잡한데요.”
“혹시 이게 장벽을 유지하는 마법진이 아니겠소?”
“아, 그럴 수 있겠군요. 저 정도의 장벽을 유지하려면 마나도 적지 않게 들 테니까요.”
“그럼 저걸 파괴하면?”
“장벽에 문제가 생기겠군요.”
하지만 둘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회로가 작동 중이라면 마나의 흐름이 느껴져야 했다.
하지만 거대한 마법회로는 전혀 작동하는 느낌이 없었고 마나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회로가 아직 미완성인 것 같은데.”
“하긴 아까 저희가 본 돌무더기는 비어 있었죠. 그럼 이건 뭘 하는 용도일까요?”
“일단 해가 지길 기다려 봅시다. 우리도 마나가 담긴 통이 필요하니 밤이 되면 가까이 가서 통도 훔쳐오고 좀 더 살필 수 있을 거요.”
날이 어두워지자 둘은 다시 엎드린 자세로 돌무더기를 향해 다가갔다.
병사들은 곳곳에 흩어져 잠이 들어 있었다.
적들은 장벽을 넘어올 수 없다는 것을 맹신하고 있는지 상당히 풀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돌무더기 중 하나에 다가간 그들은 마나가 담긴 통을 발견했다.
통에선 희미한 푸른빛이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품 안에 넣어 빛을 차단했다.
“얼마나 필요하오?”
“일단 두 통씩만 들고 가보죠.”
둘은 통을 들고 다시 숲으로 향했다.
숲에 도착해 품에 든 통을 꺼내니 푸른빛이 은은하게 퍼졌다.
“이게 사람의 마나…….”
“마나석은 봤지만 이런 액체 형태의 마나는 처음 보는군.”
“마나석에서 느껴지는 마나보다 기운이 청명합니다. 이 정도면 한 통에 최상급 마나석과 맞먹겠는데요.”
“이 정도면 장벽을 돌파할 수 있겠나?”
“충분할 것 같습니다.”
텔레포트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헨델은 들떠 있었다.
장벽 밖에서 텔레포트를 이용해 장벽을 관통하려고 시도를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텔레포트도 장벽을 돌파할 순 없었다.
문제는 마나의 출력이었는데 지금은 시도를 해볼 수 있을 만큼의 고순도 마나를 손에 넣은 것이다.
이제 통을 갖고 장벽 근처로 가서 마법회로를 만들면 끝이었다.
하지만 들떠 있는 헨델과 달리 그리브는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이 정도의 고순도 마나를 채워 넣는 수 없이 많은 돌무더기.
그리고 광범위한 마법회로.
물론 돌아가서 보고를 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임무는 끝이었다.
“이제 돌아가죠.”
“그래, 서둘러 보고해야지.”
둘은 공터를 뒤로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때 구름이 걷히며 달이 드러났고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본 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허공에는 거미 같이 생긴 거대한 생명체가 떠 있었고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