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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122화 (122/150)

122화

태훈의 관심은 원유에 있었다.

얀드로의 대화에서 태훈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얀 제국은 악마의 피라고 불리는 원유를 원액 그대로 쓰고 있었다.

원액은 불이 붙기도 힘들고 완전 연소도 힘든 상태.

태훈은 그것을 정제하는 것을 돈 벌이로 삼기로 했다.

‘시추 기술이나 장비를 얀 제국이 그냥 공여해 주진 않을 테고, 바닥부터 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물론 그도 원유의 정제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증류를 통한 정제로 여러 종류의 기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상식.

정제로 파생되는 운송 수단의 연료 개발이나 석유 제품 등은 약 제조 이상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다.

태훈은 파케 영애에게 도움을 청했다.

원유의 채굴과 그것을 원료로 하는 증기기관은 국가 기밀로 다루어지고 있었고 아카데미 내에서 반출금지.

가장 기본이 되는 원유의 질이 궁금했다.

‘중질유와 경질유에 따라 정제 난이도가 심하게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내용을 떠올리던 그는 파케로부터 샘플을 하나 받았다.

꾸덕꾸덕한 액체는 마치 젤리 같았다.

정제 난이도가 어려운 중질유였다.

태훈은 헤이링 황자에게 원유의 개발 사업을 제의했다.

“개발? 지금 악마의 피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그럴 것이라 생각됩니다.”

“확실한 게 아니군요?”

“이곳에 오기 전 나름 악마의 피에 대해 연구를 해봤습니다. 좀 더 고품질의 형태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호오.”

물론 연구를 해봤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기초 지식은 있었으니 거짓은 아니었다.

“그래서 개발에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모험에 시간을 정할 순 없죠. 다만 제 생각으로 3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길면 5년 정도.”

“흠, 사업에 눈이 밝은 공왕님의 말씀이니 신빙성은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원하시는 것은?”

“원유의 제공과 투자금입니다. 전체 개발비의 절반을 지원하신다면 개발 후의 연료 상품에 대한 지분 절반을 약속드리죠.”

“크로이츠 상회에 적용했던 주식회사의 개념이군요.”

“어떠신지?”

태훈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연료에 대한 지분이었으니 석유 제품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태훈의 것이었다.

태훈은 헤이링 황자와 투자 건에 대해 긴밀히 의논했다.

문제는 금액.

정제 시설에 대한 개발에 3년이 걸릴 지 5년이 걸릴 지 확실한 시간을 알 수 없는 만큼 필요한 금액은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헤이링 황자가 제시하는 금액은 그가 생각하는 것에 많이 미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다시 대출이 필요한데.’

약을 제조할 때와는 좀 다른 상황이었다.

크로이츠 상회 같은 경우 샘플을 준비한 뒤 투자를 받았었다.

이번에는 시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자금을 확보해야 했다.

결국 ‘신용 거래’를 해야만 했다.

대륙에 은행이란 기관은 없었다.

대출을 알아보려면 상회밖에 없었다.

아니면 국가나 그에 준하는 단위의 단체에게 빌려야 했다.

얀 제국에게 빌리는 것은 태훈이 원하지 않았다.

연료에 대한 지분의 과반을 넘기게 되면 얀 제국이 연료를 독점할 수 있었다.

헤이링 황자는 의논을 해보겠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그리고 폐하께서 이틀 후에 자리를 마련하시겠다고 합니다.”

헤이링 황자가 말하는 것은 혼인에 관한 자리였다.

애당초 얀 제국과의 접점은 혼인 문제.

“네, 알겠습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환영회를 겸한 소개 자리.

태훈은 익숙하게 얀 제국의 황제와 황녀를 만났다.

자국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미모라고 했지만 태훈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았다.

첫날은 서로를 확인하고 환영회가 주를 이루었다.

태훈은 아카데미의 인물들과 많은 자리를 가졌다.

자리는 수석 자리에 있는 파케 영애가 마련해 주었다.

“공왕님의 관심사는 아카데미뿐이군요.”

비아냥인지 아니면 그의 호기심을 칭찬하는 건지 랑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둘 다 저에겐 중요하죠.”

“공왕님의 취향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막내 황녀님은 황제 폐하께서도 매우 아끼시는 분이죠.”

태훈은 그저 웃었다.

아무리 그래봐야 지구의 기준으로 봐서는 펑퍼짐한 부잣집 아가씨일 뿐.

환영회에서 황제는 직접 태훈을 데리고 다니며 귀족들을 인사시켜 주었다.

황제라는 직위에 있어 공왕에게 이렇듯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파격적이었다.

잠시 황제와 떨어져 있을 때 옆에 있던 파케에게 물었다.

“황제가 적극적이군.”

“이곳 황제는 뭐든지 적극적이에요. 아카데미에도 매일 들러요.”

“흠, 그래?”

황제의 나이는 생각보다 많았다.

세레니스 제국의 황제보다는 어렸지만 그렇다고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동안과 몸이 건장해 보였다.

‘얀 제국 사람들이 동안인가?’

얀 제국의 사람들의 대부분은 동양인의 생김새였다.

지구에서도 서구적인 생김새는 나이가 들면서 동양인에 비해 동년 나이에 비해 들어 보이던 것과 비슷했다.

그래도 황제는 고개가 갸웃할 정도로 젊어 보였다.

“아, 그리고 아카데미에 황제 직속 부서가 있다고 하던데요.”

“무슨 부서인데?”

“병들지 않는 몸을 연구한다고 들었어요. 크로이츠 상회를 인수해서 연구 자료를 가져간 곳도 그곳이에요.”

“거기 연구는 어때?”

“제가 수석이긴 하지만 그 부서에는 접근할 수 없어요. 황제 직속이라 허가받은 인원 말고는 접근조차 못 해요.”

태훈의 호기심이 동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젊어 보이는 외관에 정정해 보이는 몸.

거기에 직속의 연구 단체.

‘불로장생을 꿈꾸지 않는 왕은 없지. 얀 제국 황제는 노화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건가?’

* * *

“뭐야?!”

5황녀는 탁자를 손으로 내려치며 일어섰다.

그녀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그녀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던 레이첼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미안. 깜짝 놀라게 해서.”

레이첼이 임신 상태라는 것을 상기시킨 레이첼이 급히 사과하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가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그 남자는 무슨 생각으로 얀 제국으로 간 거야? 전쟁이 일단락되자마자 여자냐!”

“다 사정이 있겠죠.”

“사정? 무슨 사정이 있길래 임신한 아내를 두고 혼담 자리를 보러가?! 이 자식을…….”

황녀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크로이츠 영지에서 돌아온 귀족 하나가 태훈의 얀 제국행 소식을 알려온 것.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가 혼담에 관한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노발대발한 것이다.

레이첼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남편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손꼽히는 대부호 중 하나였다가 수십만의 대군을 거느렸던 전력이 있는 인물.

거기에 영토는 작지만 공국 하나를 가지고 있는 공왕의 신분을 가진 자였다.

“크윽,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해!”

“진정하세요, 공왕이나 되는 신분인데 여러 곳에서 혼담쯤은…….”

“이게 단순한 혼담이더냐. 제국과의 혼담이다. 너도 넋 놓고 있어서는 안 돼!”

“네?”

“잘 생각해 봐라. 제국의 혼담을 제 발로 걷어차진 않을 거야. 이미 혼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순간부터 최악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최악……. 이라뇨?”

“상대는 제국의 황녀다. 혼담이 이뤄지면 첩으로 들어가겠느냐?”

황녀의 말뜻은 이러했다.

레이첼의 신분은 백작가의 영애.

얀 제국의 황녀와 혼인을 맺게 된다면 얀 쪽에서 자신의 황녀를 정실부인으로 앉히려 들 게 뻔하다는 것이다.

제국의 황녀가 타국의 백작가 영애보다 아래인 첩이 되는 것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리고?”

“그쪽에서 너의 아기에 무슨 짓을 할지 안심할 수 없어.”

“설마 그렇게까지…….”

“정치 싸움을 얕보면 안 돼. 어제의 아군의 오늘의 적이 되는 곳이 정치판이야.”

레이첼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황녀는 앗 하는 표정을 지으며 레이첼의 뒤로 다가갔다.

“걱정 마라. 넌 내가 지켜주마.”

“……네.”

“그리고 이건 우리한테도 신경 쓰이는 문제야. 잠시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황녀는 방을 나와 1황자가 있는 방으로 움직였다.

연합군이 해체된 직후 황제는 건강상의 이유로 인해 대부분의 업무를 1황자에게 일임한 상태였다.

“오라버니, 얀 제국에서 크로니스 공왕과의 혼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혼담 진행을 막아야 합니다.”

“이미 그는 세네리스의 귀족이 아니야. 무슨 명분으로 공왕의 혼담을 훼방 놓으려 한다는 것이냐. 그리고 이미 그는 우리와 두터운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네가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 같구나.”

“안심할 수 없습니다. 오그리아가 패퇴 후 국경을 닫으면서 이제 우리와 얀 제국의 싸움인데 중요한 자리를 내어주는 건.”

“그렇게 걱정이면 우리도 혼담을 진행시키면 되지 않나? 마침 우리도 혼기가 찬 네가 있지 않느냐.”

“예?”

그 말을 들은 황녀는 머리가 띵 했다.

정녕 저 녀석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하면서 황자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진심이었다.

더불어 그의 속내도 알 수 있었다.

반란 사건 이후 5황녀의 입지는 상당히 많이 올라 있었다.

거기에 헤라와 홀든이 수도를 뒤집어놓았을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복구한 것은 그녀가 데리고 있는 병력들.

민심도 5황녀 쪽으로 많이 기운 것을 1황자는 의식하고 있었다.

‘나를 떨쳐내려는 것인가.’

황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꽉 쥔 주먹이 떨렸다.

“그리고 첫 부인인 레이첼과 너는 친하지 않느냐? 마침 좋은 환경이군.”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뭐가 안 되지? 지금은 전쟁도 일단락되어 안정을 되찾아가는 시기다. 이런 시국에 얀 제국과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진 않다.”

1황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혼담에는 혼담으로 방어한다.

가장 비폭력적인 해결책이었기에 황녀는 딱히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도 곧 혼담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보내려 한다. 너도 잘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자신을 국외로 내보내려고 하는 황자의 행동과 말에 황녀는 치를 떨었다.

‘능구렁이 같은 녀석…….’

황자의 방을 나온 황녀는 통로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퍽!

벽을 내리친 황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젠장,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황녀는 손톱을 깨물었다.

이렇게 자신이 핀치에 몰리게 될 상황을 대비해 숨겨왔던 것이 고스트 부대였다.

하지만 레이첼의 구출 작전으로 한 명을 제외한 부대원은 모두 사라진 상태.

방으로 돌아온 황녀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레이첼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황녀는 레이첼의 걱정거리가 늘어나는 걸 원치 않아 사소한 문제라며 얼버무렸다.

* * *

오그리아 제국을 정체불명의 장벽이 둘러싼 이후 얀 제국군과 세레니스 제국군은 장벽을 따라 감시탑을 건설했다.

소수의 병력이었고 장벽을 감시하는 일이었다.

장벽을 뚫지 못하자 그들은 땅을 팠다.

땅굴을 만들어 정보를 얻어올 병력을 투입하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장벽은 땅속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기에 포기해야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카나리스로부터 기구를 원조받아 공중 정찰 임무를 진행하려 했다.

“곧 장벽을 넘습니다.”

“모두 공격에 대비해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기구 안의 인원은 대부분 마법사였다.

장벽은 구름보다 높게 솟아 있었다.

처음보다도 장벽의 높이가 높아진 것.

전진하던 기구는 장벽을 넘었다고 생각되자 고도를 낮추었다.

이내 구름 밑으로 내려온 기구는 지면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최전방이 된 장벽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원래는 사람이 사는 영지였으니 일반인이라도 보여야 했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기구는 좀 더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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