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태훈의 신력이 전격으로 바뀌며 손으로 흘러갔다.
키메라와 태훈의 두 전류가 만나면서 불꽃이 튀었다.
파지지직-
두 전격이 스파크를 튀며 불꽃이 일었다.
섬광이 불길로 바뀌기 시작했다.
두 전격은 밀고 당기기를 몇 차례 반복하더니 이내 키메라 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스윽-
세 머리 중 하나가 태훈 쪽으로 입을 벌렸다.
키메라의 입에 마나가 밀집하는 것을 본 그가 다른 손을 들었다.
펑-
키메라보다 태훈이 먼저 마법을 난사하자 벌렸던 입 안쪽에서 폭발이 일었다.
머리 반쪽이 날아간 키메라가 비명을 질렀다.
‘이놈, 동시에 두 속성을 다루는군.’
이가누스는 일어나 키메라의 목을 타고 태훈에게 뛰어갔다.
그 순간 태훈은 알약 하나를 더 삼켰다.
화악-
콰지지직-
거대한 섬광과 화염이 일순간 터지면서 키메라와 노먼을 휩쌌다.
키메라의 검은 비늘이 과열돼 새빨갛게 물들었다.
타닥타닥-
비늘이 타들어가는 것을 본 이가누스는 재빨리 키메라에서 뛰어내렸다.
펑-
태훈과 전격을 겨루던 가운데 머리가 터져 나가며 폭발이 일었다.
턱-
쿠웅-
지면에 사뿐히 내려앉은 이가누스와 달리 키메라는 육중한 몸을 그대로 지면에 떨어졌다.
허공에 있던 태훈은 그대로 지면에 있는 적을 향해 돌진했다.
총알처럼 다가가는 태훈과 이가누스가 격돌하자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완력에 있어 이가누스는 절대 밀리지 않았다.
‘이놈, 네크로맨서 주제에 어째서 이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 거지?’
그가 힘을 더 주려는 찰나 이가누스의 몸에서 급격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흠칫하며 빠르게 방어막을 펼치자 바로 검은 전격이 쏟아졌다.
콰과광-
검은 전격은 방어막에 가로막히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검은 전격에 맞은 병사들은 순식간에 피부와 근육이 증발하며 비명을 질렀다.
상당한 검술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자 여태껏 상대한 자들과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태훈은 몸이 더욱 빛나자 이가누스가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맞부딪힌 검에선 불꽃이 튀었고 노먼의 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힘을 버티지 못한 것은 태훈의 검도 마찬가지였다.
알약 두 개를 복용한 힘을 미스릴 검이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균열이 점점 커지던 둘의 검은 이내 부서졌다.
검이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이가누스의 주먹이 태훈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가뿐히 주먹을 피한 태훈의 주먹이 가면을 강타했다.
투확-
이가누스의 몸이 뒤로 날아가며 오그리아 군세에 길을 만들었다.
마치 홍해처럼 갈라진 틈을 태훈이 뒤쫓았다.
퍽- 퍽-
투확-
둘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수십 합의 주먹이 오고 갔다.
적의 주먹은 닿지 못했고 태훈은 상대를 가지고 놀 듯 허공에서 그의 몸을 연타했다.
“크와와악!”
어느새 정신을 차린 키메라가 끼어들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위에서 덮쳐오자 태훈은 적에게서 떨어졌다.
육중한 소리와 함께 그가 있던 자리가 움푹 꺼졌다.
슈우우욱-
태훈의 몸에선 흰 연기가 필어 올랐고 이가누스의 몸 곳곳에는 연타의 흔적으로 갑옷 여기저기가 터져 나가 있었다.
둘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았다.
둘 다 고른 숨을 쉬고 있었다.
투둑-
적의 흉갑이 부서지자 태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흉갑의 안쪽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고통에 찬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가슴팍의 얼굴을 가리켰다.
“가면 뒤에 있는 건 뭐고 그 얼굴은 뭐지?”
“인사하지, 내 동료인 노먼이다.”
“2 대 1로 싸우는 건 비겁한데.”
“몸은 하나니 상관없지 않나.”
두 얼굴은 번갈아가며 말했다.
태훈은 상대의 오라를 살폈다.
가슴팍에 있는 얼굴에서만 다른 색의 오라가 보였다.
‘몸은 가면의 것이고 가슴팍에 있는 것이 합성된 개체인가.’
살피는 사이 적의 몸 주변으로 마나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내 지면에 전격이 방출되었다.
그러자 땅에 떨어져 있던 무기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전격으로 자성을 띠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가슴팍에 있는 흉상의 오라가 커진 것으로 보아 마법을 쓰는 쪽은 노먼이라는 얼굴인 모양이었다.
슈우욱-
허공에 뜬 검과 창들이 태훈이 있는 쪽으로 날을 세우곤 날아들었다.
검은 태훈의 주변에서 튕겨져 나갔다.
“호오, 맨손으로 검을 쳐내는 건가.”
“놈은 세 가지 속성을 모두 쓴다고 들었으니 오리진을 몸에 두른 것 같군.”
두 얼굴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검이 부서지면 부서진 검날이 날아 들었다.
“좀 더 힘을 써보게.”
“음, 그러면 저 녀석 제어가 힘들어지는데.”
“알게 뭔가.”
“그것도 그렇군.”
기수가 두 팔을 들어 올리자 키메라가 괴로운 듯 사방으로 몸부림쳤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방을 날뛰는 탓에 오그리아군은 비명을 질러댔다.
스스슥-
땅에서 시커먼 구름 같은 것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뭐지? 흑마법인가?’
그것을 본 태훈은 마나를 이용한 방어막을 펼쳤다.
슛-
검은 구름은 마치 뱀처럼 날렵하게 움직이며 그에게 뻗어져 나왔다.
검은 연기는 방어막을 통과해 글대로 태훈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핏-
방어막을 전부 무효화시키긴 힘들었는지 살짝 빗나간 그것은 그의 얼굴을 스치며 선혈 자국을 만들어냈다.
태훈이 손을 들어 만져 보니 피와 함께 까끌까끌한 것이 만져졌다.
‘철가루? 사철인가?’
이런 협곡에 사철이 있을 리 만무했다.
주위를 둘러 보니 검은 연기의 끝에는 키메라가 있었다.
전격의 마찰로 타들어간 키메라의 비늘이 철가루였다.
‘골치 아프군.’
머리가 둘 남은 키메라.
검술과 흑마법을 동시에 쓰는 인간형 키메라.
거기에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철가루까지.
이미 처음 먹은 알약의 효과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피잉-
그때 뒤쪽의 요새에서 붉은색 불꽃이 하늘로 솟구쳤다.
후방의 기습조가 성공했다는 신호였다.
그와 동시에 이가누스가 마탑이 있는 자신의 진영 쪽으로 몸을 돌렸다.
상대의 반응으로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이놈…….”
이가누스에게서 살기가 뻗어져 나왔다.
태훈은 그런 상대를 도발했다.
“마데우스라는 놈한테 가서 전해. 내가 있는 한 절대 종말은 오지 않는다고.”
“……여기서 죽여주마.”
“잠깐, 마탑이 무너졌으면 언데드의 통제가 불가능해져.”
노먼의 말대로 주위의 언데드들이 진격을 멈추기 시작하고 있었다.
“통제가 무너지기 전에 오그리아 놈들을 데리고 후퇴해야 한다.”
“쳇.”
“누가 그냥 보내준다고 했나.”
태훈은 그들을 보내줄 이유가 없었다.
“흥, 네놈이 강하다 해도 전방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거만하군.”
“자신 없으면 단신으로 오지도 않았지.”
태훈은 가용 가능한 모든 마나를 전격으로 바꾸었다.
휘몰아치던 사철들이 태훈의 지배하에 들어오자 머리 둘 남은 키메라가 적과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사철가루가 응집하며 새까맣게 만들어졌다.
그리곤 불길에 휩싸이면서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철끼리 부딪히며 마찰열까지 발생하자 사철가루들은 점점 하나의 형태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알약 효과가 빠르게 소진되기 시작했다.
하나로 뭉쳐진 사철들은 회전을 멈추었다.
마찰열과 고속 회전으로 인해 사철은 강한 자성을 띠고 있었다.
남아 있던 마력을 쥐어 짜내자 철 덩어리는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위잉-위잉-
파지직-
순간 위험함을 눈치챈 이가누스가 명령하자 키메라가 태훈에게 달려들었다.
쾅-
자성을 띈 철 덩어리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대로 키메라를 관통하며 키메라는 먼지로 산화되었다.
철 덩어리는 뒤에 있던 이가누스의 반신을 뚫고는 산언저리에 부딪혔다.
휘청이는 이가누스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던 태훈의 몸이 멈칫거렸다.
치이익-
태훈의 몸도 만신창이였다.
강력한 자기장에서 발생하는 고열로 인해 옷 곳곳은 증발했고 살갗도 화상이 심했다.
본래 뼈까지 녹일 정도의 고열이었지만 신력이 그의 몸의 회복을 도왔다.
피부와 근육이 타들어가고 또다시 재생되는 고통을 겪은 것이다.
거기다 알약은 물론 원래 지니고 있던 마나들도 바닥이었다.
온몸이 삐그덕거리는 느낌.
태훈은 간신히 쓰러지려는 몸을 가누었다.
하지만 멀어져 가는 의식까지 붙잡기는 어려웠다.
이가누스도 반신을 잃은 채 몸을 휘청이더니 이내 신기루로 변해 몸을 감추었다.
현장에는 걸레가 된 키메라와 선 채로 정신을 잃은 태훈만이 남아 있었다.
* * *
물의 정령왕을 따라간 불의 정령왕은 정령계의 정중앙에 위치한 신전에 도착했다.
정령계는 중앙의 신전을 기점으로 원형태로 펼쳐져 있었다.
신전에 도착한 불의 정령왕은 이미르와 마주했다.
“고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오느라 수고했다. 용건은 들었겠지?”
“그렇습니다. 그때 맡은 신기들은 전부 폐기처분했습니다.”
“그땐 이 자리가 빈자리였지 아마?”
“그렇습니다.”
“신기를 폐기처분한 것은 어떻게 하였나?”
“제 영역에 있는 불길에 태운 다음 잿가루를 만들어 흩뿌렸습니다.”
“그것을 본 다른 존재가 있나?”
“없습니다.”
불의 정령왕의 당당한 답변을 들은 이미르의 미간이 좁아졌다.
“마데우스를 직접 만난 적이 있나?”
“없습니다.”
“그럼 신기를 만들려고 시도한 적이 없나?”
“그 또한 없습니다. 신기는 지상의 물건. 저에겐 관련된 지식조차 없습니다.”
“그럼 이건 뭔가?”
이미르가 손짓하자 하급 정령들이 무언가를 들고 왔다.
그것은 황금빛 금속이었고 무언가의 틀처럼 보였다.
금속은 살아 있는 듯이 빛이 너울거렸다.
“이게 무엇입니까?”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저는 모르는 물건입니다.”
불의 정령왕이 모르는 척하자 이미르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험한 기류를 느낀 물의 정령왕이 입을 열었다.
“무너지고 있는 틈새에서 발견했네. 저 금속은 누가 보아도 자네의 기운이 담겨 있어.”
“나는 모르는 일이야.”
“늦지 않았네. 모두 털어놓아.”
물의 정령왕의 설득에도 불의 정령왕은 요지부동이었다.
“저는 저런 걸 만든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신기를 만드는 데 저런 틀은 필요 없습니다.”
그 말에 물의 정령왕은 미세하게 떨었고 이미르는 피식 웃었다.
둘의 반응에 불의 정령왕은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훗, 애초에 필요가 없다? 지식이 없다는 것치곤 잘 아는군.”
“…….”
팟-
순간 붉은 구슬이 사라졌다.
불의 정령왕이 사라진 것이다.
“다시 잡아오겠습니다.”
“아니, 됐다. 놈이 어딜 가든 내가 추적할 수 있어. 되레 놈이 마데우스에게로 간다면 놈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불의 정령왕은 바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리곤 솥 안에 든 쇳물 같은 것들을 작은 구체로 만들었다.
그리곤 정령계에서 몸을 감추었고 물의 정령왕이 찾아온 것은 바로 얼마 후였다.
솥을 본 물의 정령왕은 솥을 옮기라 지시했다.
잠시 뒤 물의 정령왕에게 전령이 도착했다.
‘모든 정령왕들을 호출해라. 새로운 불의 정령왕의 선출과 함께 할 이야기가 있다.’